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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안철수 바람은 ‘냉소주의 혁명’

조회 수 3831 추천 수 0 2011.10.12 16:38:42
한국 정치 제1의 변수는 아직도 안철수다. 오직 안철수의 존재 때문에 서울시장 보궐선거판이 좌우로 요동치고 여·야의 조직적 구심은 붕괴 직전의 상황에 처했다. 그야말로 안철수 바람, 안풍(安風)이라 부를 만하다.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안풍이 이토록 강하게 불 수 있는 까닭은 이 바람을 지탱하고 있는 대중적 열기가 그만큼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언뜻 보기에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탄생의 원동력이 됐던 노풍과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바람의 성격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노풍은 바람의 목적지가 명확했다. 노풍에 휩싸인 대중들은 ‘바보’라고 불리는 정치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민중적 정의를 실현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조선 건국 이래 600년 동안 우리는….”으로 시작하는 노무현의 가장 유명한 연설은 이들의 이러한 소박한 민중주의를 대변하는 것이다.

반면 안풍은 목적지가 명확지 않다. 여론조사 결과를 참고하면 안철수가 대통령을 해서 꼭 무언가를 이뤘으면 좋겠다는 것보다는 굳이 대통령에 출마하면 한 표 찍어주기는 하겠지만 괜히 정치권에 뛰어들어 신세를 망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여론이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범야권 후보로 출마한 박원순 후보에게서도 비슷한 모습을 본다. 박원순 후보는 늘 다양한 긍정적 가치들을 역설하고 있으나, 정작 시장이 되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는 보는 사람의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그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오직 5% 박원순을 향한 50% 안철수의 멋있는 양보이다. 이것은 서울시장이라는 직책 그 자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안철수를 눈앞에 두고 정치권 인사들이 갈팡질팡하는 것도 이들이 안풍의 이러한 성격을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를 뽑는 국민참여 경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하고, 손학규 대표가 사퇴의사를 밝히고, 그와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계파의 인사들까지 모여서 그의 사퇴를 만류하고, 결국 대표의 사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민주당에서 벌어진 일련의 혼란스러운 과정 역시 기성 정치의 문법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안풍의 특이한 속성과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야권 일부에서는 안풍을 제도권 정당의 입장에서 올바르게 대변하기 위해 기존 정당을 새롭게 재창당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시도는 당장 2012년의 정권교체에는 도움이 되는 시도일 수 있으나, 이미 우리가 2003년에 열린우리당의 사례에서 보았듯 한국 사회의 근본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면 변화의 방향을 가늠하기 위한 이정표가 필요하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도구는 아마도 ‘이념’일 것인데, 지금 논의되는 ‘간판 바꾸기’ 정도의 시도로는 이념의 한계를 넘을 수 없을 것임이 매우 확실해 보인다.

안풍의 이념적 성격에 대한 논의도 있는 모양이다. 어떤 학자는 안풍이 ‘자유주의 혁명’의 시대를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다른 학자는 ‘사실상 중도적 진보주의와 다른 내용이 아니다’라는 반론을 편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안철수를 지지하는 계층에 먼저 주목하고 싶다. 안철수의 주요 지지층은 ‘무당파’이다. 이들은 자유주의와 진보주의가 정치인이라는 특정 계층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점을 꿰뚫어보고 있다. 대중들은 늘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조금 우매했지만 동시에 우리가 폄훼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했다. 어쩌면 이들은 지금 가장 파괴력 있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위험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선택을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앞에서 대중없이 설명한 여러 현상들을 조합해보면, 그것에 ‘냉소주의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110111608361&code=124

댓글 '6'

놀이네트

2011.10.13 08:49:14
*.242.8.34

엥 뭔가 얘기하다만 느낌이네요...

이상한 모자

2011.10.13 11:51:57
*.208.114.70

죄송합니다...

너구리

2011.10.16 01:48:50
*.104.89.57

제가 볼 때, 안풍의 본질은 (물론 제가 생각하는 본질이지요. 근데 아무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한명도 없어서 여기에 글을 남깁니다.) 안철수라는 사람의 (정치적) 정체성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통 안철수를 좌파와 연결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문맥인데, 사실 안철수는 우파적인 면모 또한 매우 강하게 갖고 있으며, 우파를 포섭할 수 있는 매리트가 있는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좌파는 안철수를 좌파라고 생각하고, 우파는 안철수를 그들 나름대로 우파라고 생각한다는 거지요. 중도는 어떤가요? 중도도 안철수에 대한 적대의식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 다양한 계열을 포섭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뚜렷한 정치색이 없다는 말도 됩니다. 저는 이게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만약에 안철수가 과거에 정치경력이 있었다면 서울시장 출마 당시에 그때처럼 폭팔적인 환대를 받았을까요? 그럴일은 아마도 없었을 겁니다. 본래 정치 판도는 반쪽은 아군이고, 반쪽은 적군이지 않습니까. 안철수는 좌파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나머지 반쪽 세력 또한 잘만 꼬우면 우리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을 주는 사람이라는 거죠.

알다시피 안철수는 소규모 자본의 벤처기업을 굴지의 소프트웨어 회사로 만든 장본입니다. 과거에 무지막지한 자본을 들어부으면서 규모의 경제를 시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창의력, 도전정신, 수평적 경영이라는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신자유주의 공식을 가지고 얼마든지 한국 사회를 개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몸소 보여준 인물입니다. 이런 레파토리를 누가 좋아할까요? 당연히 신우파들이나 중도 세력들이 딱 좋아할만한 레파토리입니다.

실제 여론 조사에서 안철수는 강남권에 상당한 지지를 받았고, 블루칼라가 아닌 화이트 칼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블루칼라는 박근혜의 지지도가 앞섭니다) 이런 정황을 종합해볼 때, 안철수가 폭넓은 대중의 지지를 받는 이유는 좌파든, 우파든, 중도든, 관조파든, 모든 정치 계열의 장점만을 골라 가지고 있는 그의 특색적인 정체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반감도 심히 크게 작용한 요인 중에 하나겠지만, 그것만으로 안철수 돌풍을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기성 정치인들에 희망을 잃어버린 관조파들은 안철수에 사심없는 지지를 보낼 수 있겠지만, 이미 정치색이 뚜렷한 좌파, 우파, 중도의 대중들은 자기 편이라고 인지를 해야지만 움직임을 보인다는 거죠.

그래서 안철수 현상에 대한 올바른 분석은, 안철수는 아직까지는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고, 중도도 아니고, 관조파도 아닌, 마치 "거울"같은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상한 모자

2011.10.16 03:01:22
*.208.114.70

아마 생각을 나누시는 분들의 범위가 좀 협소한 것 같습니다.

2011.10.18 06:00:52
*.246.78.247

"냉소주"의 혁명으로 잘못 읽음...

이상한 모자

2011.10.18 07:40:32
*.208.114.70

고백하자면 네이버 메인에 '순국 대가 5000원' 이라는 문구를 '순대국이 5000원' 으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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