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하뉴녕

2012.02.01 08:20

저는 '사이버 민중주의'가 파시즘의 성격과 친화성이 없다기 보다는, (원래 파시즘은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민중적인 감성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사조죠.) 한국에서 파시즘적 정치세력이 잘 결집하기 '힘든' 이유에 대해서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사실 제가 종종 농담조로 하는 이야기가, 한국판 극우정당 강령을 직접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여성 혐오와 외국인 혐오를 잘 결합하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이 외국인 혐오는 영어를 통해 쉽사리 돈을 벌고 한국 여성을 잘 꼬신다고 여겨지는 백인 남성에 대한 혐오와 우리 일자리를 뺏는다고 여겨지는 유색인종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가 모두 있습니다. 만일 한국에서 파시즘적 정치세력이 성공하려면, 이런 이들을 통제/규제하거나 내쫓을 수 있다는 공약을 내걸 수 있어야겠죠.


이렇게 볼 때 이 시도가 성공하기 힘든 이유는 두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는 (이건 몇년 전에 이미 제가 이택광 선생님 등과의 술자리 대화에서 도출해낸 것인데,) 소수정파의 진입에 지극히 불리한 선거제도가 오히려 파시즘적 정치세력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허경영과 진보정당이 함께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있는 상황이지요. 한국 사회의 '부족한 민주주의'가 '파시즘'을 제약하고 있다는 사뭇 재밌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또 최근 직관적으로 떠올리는 두 번째 이유는, 한국 보수세력이 외국인을 배제하고서 유지될 수 있는 체제를 대안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자본이 그러한 배제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본이 원하지 않는다는 건 여론을 주도하는 보수세력의 의식 속에서 제노포비아가 '상식'이 아니라 '현실을 모르는 짓거리'로 인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한국인들은 서구의 관점으로 보면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거의 전부 다가 인종주의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극우적 세계관을 가졌다는 조중동은 한국인 내부의 이견에 대해서도 관용이 없으면서도 제노포비아에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외국인의 노동이주와 결혼이주가 없이는 한국의 중소기업과 농촌사회가 지탱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구성원 대부분의 인종주의적 편견으로 그들의 삶을 힘들게 하면서도, 보수세력의 본체는 외국인을 규제하자고 말하기는커녕 오히려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부분도 참으로 역설적인데, 만약 한국의 경제구조가 수출대기업과 내수중소기업의 격차가 현격한 양극화 경제가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재화가 더 원활하게 돌고 내수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면, 글로벌 경제위기의 국면에서 다른 사회처럼 외국인의 진입을 점점 배제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서구사회도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한국처럼 단일민족의 신화와 인종주의가 강한 나라에선 말할 필요도 없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그것이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입장에서 결코 취할 수 없는 전략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사회가 그런 '보수적 전략'을 택할 수 있게 되려면 거의 한국사회에서 '빨갱이' 소리듣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수준의 강력한 경제개혁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그걸 용인할 수는 없으니, 문제가 생기면 외국인노동자나 다문화가정에 대해 물 한잔 더 퍼주는 시늉을 하는 수밖에 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 


'보수'가 한국 사회에서 인기를 얻을 수 없는 지점도 그 부분에 있을 것 같고, 그들이 이 부분을 포기할 수밖에 없기에 감상적 민족주의자나 심지어 제노포비아들이 본인들이 진보라고 종종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MB
파일 크기 제한 : 2.00MB (허용 확장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