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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사이버 민중주의, 그리고 열폭

조회 수 4428 추천 수 0 2012.01.31 08:51:28


나꼼수와 관련해서 어떤 의견을 개진할 때는 유난히도 "열폭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 많이 나왔다. 이런 반응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천하의 진중권'이 나꼼수 4인방에게 열폭할 것 같진 않고, 허지웅이 그들에게 열폭해야 할 이유도 설득력이 없어 보이지만, 뭐 이런 '예측'이 중요한 문제라고는 볼 수 없다. '열폭'이 틀림없다고 믿는 사람들 앞에서 이 믿음은 기껏해야 상대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나같은 사람은 다행히 유명하지도 않고 돈도 없으며 나이까지 그들보다 어린지라 '열폭' 운운하는 소리를 들어도 크게 열을 받지 않는다. 딱히 그분들을 염두에 두고 산 적은 없지만, 나같은 듣보잡의 경우, 상대방이 내가 열폭한다 믿는데 정색하고 "난 그런 종류의 것들은 부러워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도 민망한 자뻑인 것 같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누군가 실제로 열폭하는지 아닌지를 판명하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열폭'이라는 심리적 동기에 대한 설명이, 비판 내용의 타당함이나 비판의 사회적인 의의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 놓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열폭'이라는 설명으로 비판을 막으려는 것은 그 설명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떠나서 일종의 범주오류다. '열폭'으로 비판을 시작했더라도 의미있는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냥 무심한듯 시크하게 비판을 시작했더라도 내용이 엉터리인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나꼼수 비판을 '열폭'으로 설명하려는 이들은 그 설명 과정에서 이 부분을 전적으로 놓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충분한 것일까? 합리주의의 관점에선 그렇겠지만, 이 문제엔 비평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이 있다. '열폭'이란 게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어 있을 거라는 그런 추측 말이다. 그리고 대체 '열폭'을 말하는 분들이 인간을 획일적인 기준으로 늘어놓고 자의적인 판단 ("진중권은 김어준보다 못하므로 당연히 그에게 열폭할 것이다." 따위의)을 늘어놓게 되는 이유도 어떤 식으로든 해명되어야 한다. 사실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제법 긴 글을 쓴 적이 있다. <안티조선 운동사>의 에피소드를 늘어놓은 '잊혀진 이야기' 꼭지 중 하나에서 '사이버 민중주의와 열폭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이 꼭지의 이름은 <사이버 민중주의, 노무현을 만나다>였는데, 이 참에 웹에 공유하기로 한다. '잊혀진 이야기' 들 중 몇 꼭지는 앞으로 내용을 상기해 볼만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이런 식으로 공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잊혀진 이야기 10 - 사이버 민중주의, 노무현을 만나다

 안티조선 운동사,텍스트(2010).p279-287


끊임없이 ‘소통’이 화두가 되지만, 사실 한국 사회에서 ‘소통’은 희소한 사건이다. 인터넷 문화 좌담에서 만난 어떤 분은 외국에서는 기자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면 기자가 직접 답을 주는 일이 많은데, 한국에서는 그런 경우가 흔치 않으니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 밑에 ‘악플’이나 달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의 착상은 한국의 인터넷 문화 전반에서 유효하다. 사회적인 관계에서 상하가 뚜렷하고 하급자의 이견이나 항변을 수용하지 않는 사회에서, 인터넷은 해소되지 못한 욕망이 들끓는 뜨거운 냄비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욕망은 기득권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사회에서 나름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욕망을 품은 이들이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은 일종의 ‘사이버 테러’이며, 그 방식은 ‘적’들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것이다. ‘사생활 폭로’야말로 사이버 공간에서 다른 사람을 욕보이게 하는 가장 효과적이며 유일한 방법이니 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오늘날의 사이버 세상이 자신의 삶을 남들에게 전시하려는 욕망으로 가득 찬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선 고전적인 의미의 공사 구분이 허물어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적인 생활을 보호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 그것을 드러낸다. 이 욕망은 현실 세계의 언론 윤리마저 바꾼다. 아이돌 그룹 2PM에서 퇴출된 박재범 군의 과거 발언이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었을 때, 《동아일보》 기자는 인터넷 문화의 문제에 대해 꼬집었다. 맞는 말이었지만, 디시인사이드에서 논란이 된 재범 군의 발언을 처음으로 기사화한 것도 《동아일보》 관계사인 《동아닷컴》이었다. 각 언론사의 연예 뉴스를 보면, 남의 사생활을 관람하려는 사이버 세상의 욕망을 트래픽으로 잡아내기 위해 언론사들이 얼마나 이전투구를 벌이는지 여실히 볼 수 있다.

  

인터넷 공간의 사이버 테러의 효시는 2002년 인터넷 문화를 선도하던 디시인사이드의 ‘디시폐인’들이 만들어 낸 ‘병욱대첩’으로 보는 것이 맞는 듯하다. 당시 이 사건에 참여했던 김민하의 증언을 들어 보자.


“하루는 어떤 서울대생이 ‘일주일에 두 번, 회당 두 시간, 한 달에 40만 원 이하의 과외는 하지 말자’는 요지의 주장을 모 사이트에 게시했으니 몰려가서 혼을 내주자는 선동문이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 무차별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또 재미있는 일이 생겼구나 싶어서 선동문에 첨부된 사이트 주소를 얼른 눌러서 사건의 현장을 찾아갔다. 이미 현장은 자칭 ‘폐인’들이 점거하여 온통 난리도 아니었다. ‘우리 같은 지방대생은 어쩌란 말이냐’며 다짜고짜 욕부터 하는 사람, ‘아햏햏’ 등의 의미 없는 단어를 붙이는 사람, 진지하게 토론을 해보려고 하는 사람, 뜬금없이 ‘고구마 장사를 할 테니 40원만 달라’는 사람까지……. 해당 원문에는 이미 몇 천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고 각기 제멋대로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튿날이 되자 상황은 더욱 처참해졌다. 폐인들은 과외비 동결론을 주장했던 사람의 신원을 공개하고 홈페이지를 박살냈으며, 그 외에도 여러 측면에서 ‘사이버 테러’라고 불리는 일을 자행했던 것이다. 하지만 같은 반에서 인기 없는 학우를 집단으로 괴롭힐 때 본인들의 양심은 저 먼 곳에 미뤄 놓듯, 모두들 자신이 한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철없는 주장을 한 예비 엘리트를 혼내 준 것에 통쾌해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거사’를 자축하기 위해 이 사건을 문제의 서울대생 이름을 따서 ‘병욱대첩’이라고 명명했다.”(주1)


이 사건은 여러 모로 사이버 테러라는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첫째, 원인을 제공한 ‘피해자’는 실제로 잘못을 한 경우가 많다. 둘째, ‘피해자’의 잘못에 대한 애초의 문제 제기는 필요했으며, 정당한 경우가 많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국적으로는 피해자가 저지른 잘못의 크기에 비해 큰 단죄가 이뤄진다. 사생활 침해가 흔히 나타나며 피해자의 명예에 사망 선고를 내리려는 욕망이 횡행한다. 넷째, 그러나 참여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도대체 누구의 잘못으로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지 알 수 없다. 다섯째, ‘피해자’의 잘못은 확실하고, ‘가해자’의 잘못은 불확실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피해자의 잘못을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사태를 정리한다. 디시인사이드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문제의식을 느끼기는커녕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며 피해자의 이름을 따 이 사건에 ‘병욱 대첩’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런 상황이 ‘특이한’ 경우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이버 테러는 인터넷의 ‘투명성’이란 기본적인 조건에서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와는 달리 인터넷을 통해 ‘투명하게’ 과외비 단가가 공개되자 누군가는 담합을 주장한다. 담합을 주장한 내용 자체가 ‘투명하게’ 대중에게 공개된다. 대중은 이에 분노하고 문제가 된 이의 신원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이 투명성 속에서 그는 상처를 입게 된다. 인터넷에 안전한 공간은 없다. 다시 2PM 박재범 사태를 떠올려 보자. 사태가 발생하기 몇 년 전, 재범 군이 ‘한국이 싫다’고 털어놓은 공간은 지인 몇 명만이 드나드는 사적인 공간이었다. 영어로 된 이 게시물이 새벽에 디시인사이드에 퍼진 후 뉴스 사이트의 보도를 거쳐 소속사의 공식 사과로 이어지기까지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결국 박재범은 2PM을 탈퇴했고 그 후 누리꾼 사이에 자성의 물결이 일었다. 그런데 그 자성의 핵심은 ‘박재범은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만일 박재범이 정말로 부적절하게 한국을 비하한 것이 맞았다면 그가 그렇게 쫓겨나도 별문제가 없는 일이었을까?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것은, 구체적인 피해자를 양산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이버 테러가 일종의 민중적 의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김민하의 설명을 들어 보자.


“돌이켜 보면 이 사건이야말로 일종의 ‘징후’였다. ‘폐인’들이 공유했던 이 사건의 정당성은 그들이 잠시 양심을 망각한 결과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서울대생의 과외비 동결론을 보고 느꼈던 분노는 그것이 정당한지 여부를 떠나서 매우 ‘민중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에서 그들은 그 ‘민중적인’ 분노를 매우 ‘민중적으로’ 표현했다. 그들은 ‘사이버 테러’를 저지르는 내내 자신들의 손으로 부조리를 응징하는 ‘자력구제의 쾌감’을 공유했던 게 분명하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환경은 다양한 곳에서 비롯된 많은 양의 정보를 매우 빠른 속도로 공유할 수 있게 했다. 동시에 사람들이 익명성의 가면을 쓰고 신속하게 판단하고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 내가 PC통신을 이용하면서 느꼈던 ‘게임을 하는 듯한 감정’을 당시 병욱대첩에 참가했던 수많은 폐인들도 모두 함께 느꼈을 것이다. 즉, 그들은 현실에서 금지된 것을 가상 세계에서 해낸 것이다. 그것도 집단적으로!


당시에 이런 식의 집단적인 ‘응징’은 인터넷 세계의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에이치오티(H.O.T.) 출신의 아이돌 가수 문희준이 록 음악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도 그랬다. 그 죄로 문희준은 군인이 되기 직전까지 전국적인 규모의 테러를 감수해야만 했다. 폐인들의 상당수가 여성주의자는 되지 못했기 때문에 ‘감히 빠순이들을 속여 얻은 인기로 먹고사는 아이돌 가수 따위가 록 음악을 논하다니……’하는 식의 감성으로 불쌍한 문희준을 못살게 굴었다. 물론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아이돌 가수에게 침략당하는 록 음악의 영토를 지키기 위하여 ‘넷마블’에 개설된 문희준 팬 페이지에 도배를 하다가 넷마블 아이디 영구 사용 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주2)


지난 10년 동안 사이버 테러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공공장소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해 문제가 된 ‘○○녀’ 시리즈가 있었다. 남성 파트너의 돈으로 식사를 하고 명품을 사는 ‘된장녀’가 증오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국제 경기에서 한국 대표 팀에 불리한 판정을 내린 심판도 공격당했고, 파벌 싸움으로 얼룩진 한국 체육계의 관행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됐다. 2009년엔 저 유명한 2PM 재범의 사건이 있었고, ‘루저녀’ 발언으로 인한 ‘루저들의 난’이 있었다. 한편 오프라인 매체에 보도되진 않았지만 디시인사이드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 유저들은 손쉽게 고소득을 올리는 아프리카 TV의 여성 BJ(Broadcasting Jacky)들을 단체로 공격했고 그 위대한 승전보(?)를 동영상으로 남겼다. 


사이버 테러의 윤리 문제는 상당 부분 기술적인 문제다.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발달이 아니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반에는 분명히 한국 사회의 진실이 숨어 있다. 그 진실을 끌어낼 수 있는 키워드는 다름 아닌 ‘열폭’이다.

 

‘열폭’이란 ‘열등감 폭발’의 준말이다. 이 말은 인터넷에선 유난히 많이 사용되어 시쳇말로 통하는데, 사실 인터넷의 굵직굵직한 사건 뒤에는 이 말의 코드가 감춰져 있다. 어떤 사건에 대한 반응이 ‘분노’를 넘어 과잉된 것으로 흘러가는 데에는 이 ‘열폭’이라는 정서가 필요하다. 가령 최근에 KBS 예능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여성의 발언에서 시작된 ‘루저의 난’을 생각해 보자. 키 180cm 이하의 남성은 루저라는 여성의 발언에 수많은 남성들은 왜 그렇게 격분했던가? 사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별 이상한(혹은 천박한) 기준도 다 있네. 나는 저런 기준 가지고 있는 애들이랑은 (설령 퀸카라고 할지라도) 안 놀아’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런 분노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을 평가하는 데에 외모 이외의 다른 기준을 가지지 못하고, 남성이 키가 작을 경우 그것을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획일화된 욕망의 사회에서 ‘루저녀’의 발언은 ‘열폭’이란 감정의 태풍으로 변해 한국 남성들의 마음을 침몰시켰던 셈이다.   


다른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에서 ‘서울대’라는 학벌 자본이 그 후의 노력으로 뒤엎을 수 없는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때, ‘꼬마 엘리트주의자’에 대한 ‘사이버 민중주의자’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열폭이다. 한국 사회가 제아무리 싫어도 달아날 곳이 없고, 꼼짝없이 군대에 끌려가야 하는 한국 남성의 처지를 이해할  때, 2PM 재범에 대한 그들의 분노 역시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한국 욕을 영어로 하다니! 그것은 본질적으로 열폭이다. 스탠퍼드대학교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는 에픽하이의 타블로에게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한 사람들’이 행한 사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그렇다면 ‘여자로 태어난 것이 벼슬인’ 아프리카 TV의 BJ들을 비판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디시인사이드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 유저들의 정치의식은 어떤가? 그들을 철없고 몰지각한 젊은이들이라고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그들의 정치의식은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어떤 본질적인 의식일 수 있다. ‘너희보다 돈을 더 많이 받는 노동조합원들의 파업에 마음껏 불만을 표하라!’는 조중동의 ‘명령’에 순응하는 (물론 그게 꼭 나쁘단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정치의식 역시 ‘열폭’이 아닌가? 


‘된장녀’를 비롯한 ‘○○녀’에게 거품을 무는 남성들의 싸이(싸이월드www.cyworld.com)를 찾아보면 노무현을 추모하는 이도 있고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이도 있더라는 얘기가 있다. 사이버 민중주의는 그 사람이 한나라당 지지자인지 민주당 지지자인지와는 상관없이 작동하는 어떤 기제인 거다. 오히려 그것은 한나라당을 매국노 집단이라고 혐오하는 정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기까지 한다. 이제 한국 사회는 ‘열폭’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린 것 같다. 


2002년은 사이버 민중주의가 처음으로 한국 사회에 등장한 시기였다. 그리고 그 시기에 우리는 다름 아닌 ‘노무현’이란 정치인을 만났다. 386세대가 아닌, 이제 주로 30대 직장인이 되어 버린 당시의 탈정치적인 20대들이 ‘노무현’을 어떻게 지지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려면 사이버 민중주의를 반드시 논해야 할 듯하다. 오늘날의 20대들이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사실 이미 40대가 되어 버린 386세대라기보다는 10년 전 노무현에 열광했던 그 30대들이다. 안티조선 운동이 완성한 ‘원 클릭 쇼핑몰’은 인터넷 문화의 ‘주류’였던 디시인사이드와 만나 사이버 민중주의의 이름으로 융합했고, 노무현을 인터넷의 대세로 만들었다. 김민하의 남은 설명을 들어보자.


“병욱대첩이 일어난 지 5개월 후, 사이버 민중주의자들은 그게 바람직한 것이든 아니든 구체적인 정치적 성과를 내놓게 되었다. 바로 21세기 대한민국 최고의 논란거리였던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 것이다. ‘폐인’이라고 지칭할 수 있었던 일군의 인터넷 마니아들은 매우 명백하게 노무현 지지를 표명했다. 당시 노무현 후보의 경쟁자였던 대쪽 판사 출신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다른 데서는 몰라도 인터넷에서만큼은 ‘이회충’이라는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정치에 ‘한 올’의 관심도 없었던 이들에게도 노무현이라는 신선한 아이콘은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안티조선 운동을 통해 성장해 있던 정치 토론 사이트 등에서 노무현지지 논리를 학습하고 이를 무서운 속도로 공유해 나갔다. 이러한 현상은 누구에 의해 기획된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 의해 이끌어진 것도 아니었다. 분노하는 사람들 앞에 이들의 민중적 갈망을 터뜨릴 만한 대상이 적절한 시기에 나타났을 뿐이었다.”(주3) 


사실 사이버 민중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이 시대의 욕망의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의 집단행동이 사이버 테러의 피해자들을 양산하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눈을 감아서는 안 되겠다. 우리는 사이버 민중주의를 탄생시킨 한국 사회의 소통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사이버 민중주의 그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편 이들이 ‘2002년 대선 승리’라는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행동이 정치인보다는 연예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역시 지적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이들의 집단행동에 연예인은 금세 타격을 받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생까면’ 그만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불특정 다수의 행동에 신경을 써야 할 사람들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다. 하지만 정치인이 사이버 민중주의자들의 행동에 영향받지 않을수록, 그들의 분노와 파괴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참여정부가 집권하고, 노무현이 임기를 마친 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오늘날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강력한 에너지를 간직한 채, 자신들을 대변해 줄 새로운 정치인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1) 김민하,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도서출판 텍스트, 2009, 43~44쪽.

(주2) 앞의 책, 44~45쪽. 

(주3) 앞의 책, 45~46쪽.


내가 김민하의 말을 받아 '사이버 민중주의'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는, 먹물들에게 '파시즘의 전조'라는 악평도 듣고 '집단지성의 현현'으로 추앙받기도 하는 인터넷 공간의 어떤 흐름을 좀더 가치중립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 분석은 상당부분 직관에 기초해 있고 많은 부분이 비어 있기 때문에 비록 시사점은 있을지라도 그 자체로 의미있는 반성이나 지침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이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면 좀 더 진전된 논의가 나오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물론 그럴리가 없다!!


여하간 위 분석에 따른다면 '사이버 민중주의'는 '자신들을 대변해 줄 새로운 정치인'을 만나기 전에 (안철수가 있지만 안철수는 이 조류보다도 더 큰 어떤 흐름을 포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김민하는 이 흐름을 '냉소주의'로 표현했다.) 나꼼수 현상을 만난 셈이다. 그리고 나꼼수 현상과 거듭 각을 세우는 진중권 등의 문제의식은 (비판 자체에도 논거가 있지만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이 조류만을 신봉하는 것으로는 중간파 유권자를 설득해낼 수 없고 올해의 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것에 상당부분 기반해 있다. 


그러나 내가 분석한 사이버 민중주의는 애초에 인터넷상의 집단행동만을 염두에 둔 것이라, 오프라인까지 직접적인 행동을 개시한 08년 촛불이나 나꼼수 열풍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나는 08년 촛불시위에서부터 오프라인으로 분출되기 시작한 정치참여의 흐름에 대해서는 '커뮤니티 민주주의'라는 어휘를 제안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것까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촛불시위와 사이버 민중주의는 모종의 연관은 있을 테지만 또한 차이가 나는 지점도 있을 것이다. 촛불시위에 적극적으로 결합했음을 주장하는 여성들이 미권스 내부에서 나꼼수와 그 팬덤의 마초성에 문제제기를 시작한 상황은 그 '차이'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에 대해 좀 더 진전된분석을 하려면 내게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듯 하다. 이 글의 의의는 일단 '열폭'이 사이버 민중주의,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어떤 정치의식과 어떤 식의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설명을 한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댓글 '18'

마플

2012.01.31 10:10:46
*.178.228.6

와, 잘 읽었습니다. 

제게는 인터넷문화에 관해 이제껏 읽어본 글중 가장 차분하고, 시사하는 바가 많은 글이었습니다. '집단지성', '파시즘'운운은 아주 딱 들어맞지도 않고 조금 호들갑스럽다고 느끼던 차에.. 안티조선운동사는 몇달전에 사서 책장에 앉혀놓고는 여즉 열어보지도 못했는데 이걸 읽고 바로 꺼내들었어요. ㅎ

평소에 트윗하시는 짧은 멘트들도 아주 짭짤하게 잘 눈동냥하고 있고 오늘도 트윗서 보고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네요. 하뉴녕씨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그나저나 평소에도 느끼고 있었지만 이글을 주욱 읽으면서도 새삼, 여기서 '열폭'을 중심으로 어느정도 정의될 수 있을 '사이버 민중주의'라 말해질 수 있는 현상이 '민중적'이면서 동시에 참 성별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뉴녕

2012.01.31 22:28:57
*.118.59.70

감사합니다. '민중적'이면서 동시에 참 '성별화'되어 있다는 데에 동의하고 그게 이번 비키니 인증 논란에서도 잘 드러난다는 생각입니다. 


p.s 그 책은 사회과학도서가 아니라 무협지니까 언능언능 보세요 ㅋㅋㅋ 

베트남잔치국수

2012.01.31 21:53:56
*.150.205.135

나꼼수를 비판적으로 보는 지식인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  마음 한 켠에 열등감 까지는 아니더라도 '허탈감' 정도는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요. 진보진영에서 정론을 통해 나름 꾸준하게 제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하는데, 대뜸 스스로를 '잡놈'이라 칭하는 경박한 무리가 튀어나오더니 신드롬을 일으키며 진보 담론을 죄다 자신들의 식성에 따라 먹어치우니 말이죠. 특히 출판계가 불황인 가운데에서도  진보 쪽의 파이를 크게 키우기도 했지만 늘어난 몫의 거의 대부분을자신들 혹은 관련된 분들이 차지하기도 했으니...진영 내 양극화의 주범이라고도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러한 감정이 나꼼수에 비판을 가하는 직접적인 계끼를 아니더라도, 나꼼수 현상에 대해 좀 더 촉을 세우고 비판의 수위를 날카롭게 만드는 정도의 변수로는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저 같은 일반인과 지식인들이 가지는 생각의 질과 양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겠으나 지식인들도 자연인으로써 느끼는 감정에는 크게 차이가 없을 거 같아서요.

하뉴녕

2012.01.31 22:32:53
*.118.59.70

그렇겠지요. 그런데 진중권은 더 이상 진보정당 지지자가 아니고, 사실 나꼼수가 나타나기 전 (진보정당 지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반MB 전선을 주도하던 사람이며, 지금도 '반MB'를 잘하기 위한 개혁진영의 합리성을 역설하는 측면에서 나꼼수를 비판하는 거라서, 말씀하신 그런 부분이 별로 해당 안 될 듯합니다. 이택광도 강단에서 문화평론 하는 사람이라 그닥...


제가 개인적으로 겪은 바로는, 진보정당 당직자들 경우도 하도 예전부터 이런 일 저런 일 많이 당해서 그냥 그런갑다 하는 것 같은데, 진보개혁 언론의 일선기자들의 허탈감이 제일 큰 것 같습니다...

베트남잔치국수

2012.01.31 22:49:59
*.150.205.135

결정적으로는 진보정당 내 적지 않은 지분을 차지하는 종북세력에 대한 거부로 진보진당의 지지자이기를 철회?포기?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이 곧 진보진영에 명백히 속함을 부정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건 확대해석이겠죠? 확대해석이 아니라고 한다면, '국민생각 당원 진중권' 이라는 초현실적 그림도 그려질 거 같네요. 그러고보니 요즘의 진중권은 부쩍 '진보'보다는 '상식'을 말하는 것 같네요..

백수

2012.01.31 23:00:12
*.206.112.107

진중권은 신삼당합당을 적극적으로 찬성했으며 (그것 때문에 한윤형님과 트위터에서 가열차게 한번 싸웠는데, 제가 보기엔 진중권이 졌습니다...) 종북/노빠/좌익소아병은 당내 삼분구도로 제어될 수 있을거란 나이브 한 분석을 남겼었죠. 지금은 어떤 개혁적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거기에 복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민주당이나 나꼼수와 다른 점이라면 참여정부 시즌2 만은 막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정도? 그리고 상식을 이야기 하는건 소위 나꼼수 극렬빠들의 문자 그대로 몰상식한 행태 때문인 것 같은데, 그 자체가 진중권의 정치성향이라고 믿긴 힘듭니다. 자유주의자가 '상식'을 맹신하는 그림은 아무래도 웃겨요.

하뉴녕

2012.02.01 08:06:47
*.118.59.70

진중권은 이미 십년 전부터(2002년부터) '시민적 상식'을 말해왔는데요. 일반적으로 말하는 '상식'이라기보다는 비트겐슈타인 언어철학에서 말하는 '공통된 코드'에 가깝습니다. 그런 게 있어야 사회적으로 소통이 가능할 수 있지 않겠냐고 하면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론을 모델로 끌어들이곤 했습니다. 

백수

2012.02.01 21:21:00
*.206.112.107

그럼 진중권의 그 '상식'이라는 것은, 어떤 공화적 가치와는 약간 맥이 다른 것이겠네요.

하뉴녕

2012.02.01 22:17:26
*.118.59.70

음....공화적 가치와는 왜 다르다고 생각하시는지 그 이유가 좀 궁금하네여...

백수

2012.02.02 00:55:01
*.206.112.107

제가 알기로 공화적 가치라는게 '우리 공화국에서 최소 이 정도는 합의해야 되지 않겠음?' 인데, 예컨데 '살인하지 말자, 한국은 민주국가임, 이왕이면 범법은 하지 맙세' 뭐 이런 것들, 진중권의 소통에 관한 상식은 이런 것을 조금 뛰어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가벼운 생각이 들었어요. ㅎ

하뉴녕

2012.02.02 02:23:41
*.118.59.70

더 메타적인 부분이 있는데 그렇다고 조화가 안 될 것까진 아니라고 봅니다. 하버마스도 괜히 끌어들인 건 아닐테고...진중권 독일 유학시절 지도교수가 하버마스 수제자로 유명한 사람이에요...-_-;;; 

백수

2012.01.31 22:52:05
*.206.112.107

마플 님의 의견에 어느정도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김민하가 정의한 '사이버 민중주의'라는 어떤 흐름이 파시즘적 선동에 매우 취약할 것 같다는 제 우려는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저 대중이란 기본적으로 전체주의/애국주의 교육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왔으며(물론 저도 그 중 하나지요..), 자본/쁘띠/중산층에 느끼는 경제적 박탈감이 상당히 크고, 작업장은 해체되고 일용직 노동시장마저 외국인 노동자에게 잠식당하고 있는 상황이라 조건이 너무 좋거든요;;; 민중주의적 욕구가 오프라인에서 안 좋은 방향으로 터진다면 그것이야말로 파시즘의 전초가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하뉴녕

2012.02.01 08:20:56
*.118.59.70

저는 '사이버 민중주의'가 파시즘의 성격과 친화성이 없다기 보다는, (원래 파시즘은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민중적인 감성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사조죠.) 한국에서 파시즘적 정치세력이 잘 결집하기 '힘든' 이유에 대해서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사실 제가 종종 농담조로 하는 이야기가, 한국판 극우정당 강령을 직접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여성 혐오와 외국인 혐오를 잘 결합하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이 외국인 혐오는 영어를 통해 쉽사리 돈을 벌고 한국 여성을 잘 꼬신다고 여겨지는 백인 남성에 대한 혐오와 우리 일자리를 뺏는다고 여겨지는 유색인종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가 모두 있습니다. 만일 한국에서 파시즘적 정치세력이 성공하려면, 이런 이들을 통제/규제하거나 내쫓을 수 있다는 공약을 내걸 수 있어야겠죠.


이렇게 볼 때 이 시도가 성공하기 힘든 이유는 두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는 (이건 몇년 전에 이미 제가 이택광 선생님 등과의 술자리 대화에서 도출해낸 것인데,) 소수정파의 진입에 지극히 불리한 선거제도가 오히려 파시즘적 정치세력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허경영과 진보정당이 함께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있는 상황이지요. 한국 사회의 '부족한 민주주의'가 '파시즘'을 제약하고 있다는 사뭇 재밌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또 최근 직관적으로 떠올리는 두 번째 이유는, 한국 보수세력이 외국인을 배제하고서 유지될 수 있는 체제를 대안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자본이 그러한 배제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본이 원하지 않는다는 건 여론을 주도하는 보수세력의 의식 속에서 제노포비아가 '상식'이 아니라 '현실을 모르는 짓거리'로 인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한국인들은 서구의 관점으로 보면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거의 전부 다가 인종주의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극우적 세계관을 가졌다는 조중동은 한국인 내부의 이견에 대해서도 관용이 없으면서도 제노포비아에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외국인의 노동이주와 결혼이주가 없이는 한국의 중소기업과 농촌사회가 지탱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구성원 대부분의 인종주의적 편견으로 그들의 삶을 힘들게 하면서도, 보수세력의 본체는 외국인을 규제하자고 말하기는커녕 오히려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부분도 참으로 역설적인데, 만약 한국의 경제구조가 수출대기업과 내수중소기업의 격차가 현격한 양극화 경제가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재화가 더 원활하게 돌고 내수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면, 글로벌 경제위기의 국면에서 다른 사회처럼 외국인의 진입을 점점 배제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서구사회도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한국처럼 단일민족의 신화와 인종주의가 강한 나라에선 말할 필요도 없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그것이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입장에서 결코 취할 수 없는 전략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사회가 그런 '보수적 전략'을 택할 수 있게 되려면 거의 한국사회에서 '빨갱이' 소리듣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수준의 강력한 경제개혁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그걸 용인할 수는 없으니, 문제가 생기면 외국인노동자나 다문화가정에 대해 물 한잔 더 퍼주는 시늉을 하는 수밖에 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 


'보수'가 한국 사회에서 인기를 얻을 수 없는 지점도 그 부분에 있을 것 같고, 그들이 이 부분을 포기할 수밖에 없기에 감상적 민족주의자나 심지어 제노포비아들이 본인들이 진보라고 종종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백수

2012.02.01 21:32:58
*.206.112.107

만약 한국에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면, 노르웨이 '진보당(브레이빅의..)' 처럼 한국에도 어떤 파시즘적 정당이 성장할 여지가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좌파정당이 성장하기 쉬운 만큼 얘네가 클 여지도 있을테니;; 아 허경영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직접 정치적 지지를 보낸다는 측면에서 한국인들은 의외로 냉정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권영길이 허경영보단 더 득표했..


한국의 정통 보수파의 이해에 대한 분석은 동의하고, 그러므로 파시즘적 세력이 조직되려면 당연히 그 바깥에서 나올테고 물적조건이란 측면에선 진보정당보다도 못할테니, 정치인들이 단체로 미쳐 돌아가지 않는 이상 당장 어떤 유의미한 세력으로 결집이 불가능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포텐셜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좀..

하뉴녕

2012.02.01 22:20:22
*.118.59.70

확률은 별로 없지만 만일 그리 된다면 아마 기독교 정당들이 그 영역을 메꾸겠죠. 지난 총선에는 통일교의...평화통일가정당이 힘을 썼는데...아무래도 딱 통일교 사람들만 찍을 그 당에 비하면 좌파와 외국인을 사탄으로 보는 극우 기독교 정당 하나 정도는 원내정당이 될 가능성도 있지 않겠어요? ㅎㅎㅎ 

백수

2012.02.02 00:48:06
*.206.112.107

"그렇다 한국엔 대형교회들이 있었던 것이다!! 전도나 해야징 ㅎㅎ (사이버 민중주의자들에게 오프에서 포교하다 욕을 먹곤) 아.. 안되겠어 난 여길 나가야겠어! 으아 개독으로 찍혀 지지율이 오르지 않아 ㅠㅜ"


한국 개신교가 충분히 포텐충만한 집단이지만, 사이버 민중주의자들의 규합이란 측면에선 대충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ㅋㅋㅋ 근데 기독당은 레알 의회입성 할 것 같아요 08년엔 진보신당 다음이었던걸로 ㅎㄷㄷㄷ

쟁가

2012.02.03 04:49:20
*.214.127.224

반이주노동 극우세력이 정치세력화하지 못하는 이유 중 첫번째(정당제도)는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으나 두번째는 아니라고 봐요. 사실 이주노동자 없이 자족적으로 굴러가는 자본주의국가는 존재하지 않거든요. 그럼 이주노동자의 경제 내 비중이 관건일텐데 한국이 유독 이주노동이나 농촌이주여성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면 모르겠지만 노동력이란 관점으로 봤을 때 오히려 한국경제는 여타 선진국경제에 비해 이주노동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순혈노동자의 사회'입니다. 일본과 유사한 수준의 강력한 이주노동자 유입 통제기조로 인해 이주노동력의 절대적 유입 자체도 적어요(일본과 한국은 세계적으로 확립된 '이주문제연구'라는 분야에서 매우 예외적 사례입니다). 요컨대, 수사적 차원을 배제하고 건조하게 말하자면, 이들 없이 경제운용이나 농촌사회 유지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불편하긴 하겠지만요. 제 경우 반이주노동 극우정치세력이 발호하지 못하는 조건으로 경제적 조건보다는 사회문화적 조건(개혁정부 10년간 빡세게 지속된 다문화주의 캠페인과 '강한' 시민사회의 온정주의 경향 등에 따른 사회적 합의 등)을 더 주요한 이유로 보는 편입니다. 뒤집어말해, 만약 이런 상부구조적 요인이 흔들리고 제도정치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두 개의 조건이 만족되는 경우 언제든 극우세력이 현실정치세력으로 등장할수 있다는 것.

하뉴녕

2012.02.03 12:28:33
*.118.59.157

네 합당한 지적이라 생각하고, 좀 더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근데 제 직관은 <촌놈들의 제국주의>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요. 한국경제의 내수시장의 양극화가 내부문제를 해결하려면 '식민지'를 요구할 정도인데, 식민지를 찾아낼 수는 없으니 노동이주와 결혼이주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저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그 수많은 해외담론들을 떠올려 보니 해외와 한국을 이런 식으로 구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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