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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나꼼수 열풍에 대한 성찰

조회 수 4445 추천 수 0 2011.12.02 15:41:32
‘나는 꼼수다’ 열풍이 불고 있다. 이들의 인기와 영향력은 이제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의 정치에까지 확산됐다. ‘나는 꼼수다’의 출연진은 전국적인 토크 콘서트를 열고, 한·미 FTA 반대 집회에 나타나 일장 연설을 한다. 이 자리에서조차 수많은 대중들이 이들의 재기발랄한 목소리에 환호를 보낸다.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다.

이들이 이토록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우선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오늘날 대중들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어떤 특징적인 정서다. 이것은 ‘더 이상 속고 싶지 않다’는 문장으로 표현이 가능한데, 이는 이명박 정권이 수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들의 사익만 추구하고 있다는 주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나꼼수’ 출연진

2008년의 촛불시위는 이러한 정서가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한 출발점이었다. 그 전까지 ‘압도적인 표 차이로 승리했다’며 자신감을 내보이던 이명박 정부는 촛불시위 직후 더 이상 자신들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권임을 내세우기를 포기했다. 사람들은 국민들을 속이고 쇠고기 협상을 해서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려 한 정권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이러한 분노는 쇠고기 문제와 함께 이슈화되었던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고, 향후 3년 동안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은 ‘4대강 사업만 포기하면 ~를 할 수 있다’는 버전으로 획일화되기에 이르렀다.

‘나는 꼼수다’는 일간지 정치부 기자 정도의 입장에 있으면 이런 저런 루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이를 통해 대중들은 4대강 사업 이외에 이명박 정부를 비난할 수 있는 더욱 많은 근거들을 갖게 됐다. 국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명박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고, 그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이득을 챙겨가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는 꼼수다’를 통해 ‘확신’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 열광하는 대중에게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자신감 있는 어조로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이번 대선에서는 오직 사익을 챙기는 데에 혈안이 된 속물이 아닌, 나라를 올바로 책임질 수 있는 ‘공정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그런데 벌써 우린 그런 공정한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모셔본 경험을 갖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어땠는가? 군부의 사익 추구 집단인 하나회를 박살내고 정치인들의 사익 추구 수단을 무력화시키는 금융실명제를 시행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기득권들끼리 이득을 나눠먹느라 국가를 망친 대표적 사례인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민주화’의 가치를 널리 전파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그 자체가 이미 부패한 사회 기득권층에 대한 도전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들이 집권했던 시기에도 우리는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했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보증받을 수 없는 공정성을 시장으로부터 얻고자 했다. 강자가 살아남고 약자는 도태되는 시장의 질서는 우리 사회의 깊숙한 곳까지 공정성을 담보하는 제1원칙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억울하면 성공하라’, ‘패자는 말이 없다’와 같은 신념은 사익 추구의 집단이 아니라 공정한 사람들이 만든 정권에서 오히려 더욱 활개를 치며 거리를 돌아다녔고, 결국 ‘공정한 사람들’이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정권을 잃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기로에 섰다. 또다시 ‘공정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어쩌면 과거를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히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구체적이고 자주적으로 하는 것이다. ‘공정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려는 노력이 결코 세상을 바꾸지 못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나는 꼼수다’ 열풍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진정한 교훈이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111291818561

댓글 '1'

손민석

2011.12.03 17:35:00
*.125.43.5

잘읽었습니다.김어준의 문제는 한국 정치를 '부여의 정치'로 만든게 아닐까하는 생각이..5년마다 대통령 족치는 모습을 계속 봐야한다는게 슬프네요.방법은 제도의 개혁밖에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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