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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대중은 왜 냉소하는가

조회 수 4290 추천 수 0 2011.11.09 17:35:53
인문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대정신이 일종의 ‘냉소주의’에 기초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오랫동안 가져왔다. 냉소주의의 기본형은 일상의 언어로 ‘다 똑같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한다고 해도 그는 결국 ‘거짓’을 말하는 것이며 그 뒤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고, 그 진실은 반드시 나의 이득과 합치되지 않는다는 직관적 믿음이 냉소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근본적 인식인 것이다.


지난 10월 10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혁신과 통합’의 제안 설명회. / 박민규 기자

냉소주의의 이러한 메커니즘은 ‘가요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빗대어 설명해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가요계에서 립싱크, 표절, 성형 등이 고질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이러한 거짓된 방법을 통해 우리의 감동과 금전을 갈취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 아닌가?

이런 상황에 대중들은 보통 두 가지 방법으로 대응한다. 첫 번째는 거짓을 즐기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아이돌 가수가 노래는 립싱크를 해도 다른 즐거운 요소를 제공하니 이것들을 즐기면 된다는 식의 태도를 떠올리면 된다. 두 번째는 거짓 이면에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진실에 집착하는 것이다. 가수들의 심리상태와 가창 실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승부하는 ‘나는 가수다’와 같은 프로그램의 성공은 바로 이러한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정치에 대입하면 어떨까? 거짓에 속아주고 즐기는 것은 기성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태도일 것이다. 이들은 정치인들을 둘러싼 웬만한 스캔들이나 잘못된 판단으로 추진한 정책으로 생긴 문제 등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정당을 변함없이 지지한다. 반대로 거짓 너머의 진실에 집착하려 하는 것은 늘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존재감이 없어졌다가 최근 혜성처럼 돌아온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이명박 시대의 숨겨진 ‘진실’을 폭로하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승승장구 하는 모습을 보라. 이 프로그램에서 김어준 총수는 연신 비겁한 기성 정치권을 비웃으며 아직 장외에 있는 문재인 이사장에 대한 지지를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나 정치권 인사들이 이런 대중의 냉소에 맞서게 되는 방식에도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자신들이 스스로 ‘진실’의 영역에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자칫 잘못하면 곧바로 ‘죽음’과 맞닿게 된다. 김광석과 유재하의 노래를 우리가 거짓된 그 무엇으로 정의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서거로 인해 펼쳐진 정국에서 대중들로부터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얻게 된 정치인들의 경우도 이러한 상황을 잘 나타내는 예라고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스스로의 형식을 파괴해서 진실을 찾는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이를 테면 ‘후크송’에 대한 논란이 그렇다. 음악의 내용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진실성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형식의 변화를 통해 스스로가 가치 있는 것임을 증명해보인 것이다. 정치로 따지자면 어떤 예가 있을까? ‘보수신당’. ‘혁신과 통합’, ‘새로운 진보정당’ 등의 신당 열풍 때문에 우리가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 됐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이것은 기성 정치권이 스스로의 형식을 파괴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전형적인 시도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치 긴 고민 끝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한 상품이 정작 손에 들어왔을 땐 뭔가 성에 차지 않는 감정을 느끼듯, 이러한 새로운 정치에 열광했던 대중들도 목적이 이루어지면 금방 등을 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올바른 방법은 ‘거짓’의 너머에 ‘진실’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텅 빈 공간’이 존재하고 마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정치권에 보다 근원적인 성찰이 요구되는 이유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_id=201111081539021

댓글 '1'

이상한 모자

2011.11.09 17:40:18
*.114.22.71

제목은 제가 안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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