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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가장 끔찍한 반성과 평가의 시간을 알몸으로 맞이하며

김민하 / 서울회원

신자유주의적 주체의 완성

이명박의 당선은 이제 더 이상 ‘정치윤리’가 핵심 의제가 아님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한국에 ‘신자유주의적 주체’가 완성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우리가 흔히 ‘민중’이라 불렀던 사람들은 이제 황금 외에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 그나마 허술하게라도 진보의 가치를 선호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은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전체 비율 중 10%~15%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 이제 상식으로 통하고 있다.

진보신당의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앞으로 민주노동당과의 경쟁에서 그 15%의 얼마를 점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을 거쳐 이 속물적인 정치적 주체가 완성되어 갈 때 까지 진보진영은 무엇을 했었던가?

민주노동당과 의의는 그나마 이 15%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이 어디까지였나를 보여주었다는 데에 있다. 민주노동당이 대안이 아니라고 이야기 하는 진보신당은 그럼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민주노동당의 정당 활동은 긍정적 평가를 받았던 부분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가지는 인식의 사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는 점에서 실패했다. 민주노동당은 나름 많은 것을 했지만 사람들은 그것들을 모두 창문을 통해 보았다. 창 밖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이 공권력과 지지고 볶는 동안 사람들은 따뜻한 집 안에서 신자유주의적 주체로 무럭무럭 커가고 있었다.

우리는 항상 우리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를 억울해 하지만, 바로 위와 같은 상황 때문에 사람들은 진보진영을 오해할 수밖에 없다. 창 밖에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은 필요할 때에 혹은 할 일이 없을 때 잠깐씩 쳐다볼 수 있는 관상용 어항과 같은 것이다. 어느 날 보면 물고기들이 죽어 있기도 하고 혹은 번식을 하기도 하는데, 이 어항의 주인은 구체적으로 이것들이 어떻게 죽었고 언제 번식을 하였는지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이미지가 어느 날은 ‘쓸데없이 투쟁만 하는 당’ 이 되었다가, 어느 날은 ‘비정규직 문제는 무시하는 당’이 되었다가, 어느 날은 ‘대안 없이 반대만 하는 당’이 되었다가, 어느 날은 ‘정책은 좋지만 정치적 실천력이 없는 당’이 되었다가 하면서 둥둥 떠다녔던 것은 바로 이런 원리에 연유한다.

그러므로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과 차별적으로 보여 줄 수 있어야 하는 가장 우선적인 것이 (북한에 대한 태도가 아니고) 바로 이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사실 중 한 고리가 될 수 있는가를 집중적으로 고민하지 않으면 2017년 정도에는 한국과 민중들, 그리고 거기에 기생해 살고 있는 에일리언들은 대단히 황당하고 비참한 사태를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누군가 묻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모두 잊자!’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상쾌하게! 새로운 기분으로!

상층 고공정치를 망각하자

진보신당의 창당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큰 염려로 다가 오는 것은 국회의원의 존재와 총선에 대한 대응일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2월 3일 이후 우리는 엄청난 혼란 속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건 주로 ‘노회찬, 심상정은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총선 전에 창당을 해야 되는 거냐, 총선 후에 창당을 해야 되는 거냐?‘ 이런 물음들 덕분일 것이다.

그런 물음들에 답하기 위하여 고전적인 방식으로 예측해보자. 노회찬, 심상정과 같은 유력 정치인이 함께 하느니 마느니를 놓고 일단 설전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 상황에선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이 넙죽 엎드려서 투항 선언을 해버린 고로 함께 하게 될 공산이 큰데, 그러면 나를 포함해서 소위 평당원을 자처했던 사람들은 도로 민주노동당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일단 조금 삐질 것이고, 그 다음에 소위 선수들은 계파정치에 휘말려서 거의 전쟁일 것이다. 그거, 계파정치 아니라고?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할 때 정말 온갖 대단한 걸 다 경험했잖은가. 그걸 이제 드러내놓고 자주파도 없는 진보신당 안에서 하게 된다고 생각해보라.

그렇다고 해서 노회찬, 심상정 더러 진보신당 하지 말라고 할 것인가?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파’ 자체를 대단히 싫어하지만 내가 보기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쉬운 예로, 그래서 중앙파 해체하라고 할 것인가?

내가 알기론, 소위 중앙파라고 지칭되는 활동가들은 그들을 비판하는 일부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스스로를 해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을 이미 한 바 있다. 하지만 해체가 안 됐다. 삼국지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죽을 때 까지 해산 못한 거랑 똑같다. 심지어 유비는 원소네 집에 빌붙어 있었고 관우는 조조의 장난감 이었으며 장비는 산에서 도적질을 하는 판이었는데도 해산을 못했다.

이걸 꼭 잘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고, 하여간 그들 자신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의 활동을 반성하고 돌아보아야 한다. 떨어지는 것도 없는데 너무 중앙 정치, 상층 고공정치에만 너무 핏대를 올린 것은 아닌지, 유력 정치인들의 행보를 보면서 지나치게 일희일비 해온 것은 아닌지, 그러느라고 다른 생각은 잘 못해봤던 것 아닌지...

그래서 내 의견은 이제 그런 물음을 그만 던지자는 것이다. 노회찬, 심상정은 자기 할 일을 알아서 잘 할 것이고 노회찬, 심상정의 가신을 곧 죽어도 해야 하겠다는 사람은 그걸 잘하면 된다. 비난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 것에 지나친 관심을 두면 둘수록 우리는 우리 스스로 앞서 이야기 한 ‘창문의 밖’으로 걸어 나가는 셈이 된다.

‘정치를 위한 정치’에 대해서는 이제 그만 이야기 하고, 우리의 진보정당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상상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지역으로의 도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민주노동당 시절에 정파 담합과 왕따가 난무하는 중앙 정치에 실망했다며 지역 정치를 하겠다고 명함을 뿌리고 선전전 이벤트 뭘 할까 고민하는 사람들 꽤 있었다. 물론 이제 이야기하기에도 입 아프지만 이것도 민주노동당 실패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시작할 것인가?

쉽게 말하면 ‘생활정치’ 하자는 것이다. 일본의 ‘가나가와 네트워크’ 이런 것도 연구해보고, 유럽에서 진보정당이 지역조직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고민해보고, ‘민중의 집’ 사업도 열심히 해보고, 하다못해 자기 동네에서 ‘민중의 맥주집’이라도 하자는 것이다. 그 어디 바다에 있다는 민중들이 최소한 맥주는 마시러 올 것 아닌가? 찌푸린 얼굴로 선전물 받는 우리의 민중들과 (자기들은 뭘 듣는지도 모르겠지만) 인터내셔널가 재즈 버전 같은 거 들으면서 술 푸는 술꾼들 중 과연 누가 우리를 더 싫어하겠는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러한 바람직한 진보 정치를 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자주파에 밀려서인가? ‘실력이 모자라서’ 인가?

이런 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직 우리가 우리 안의 스탈린주의를 극복하지 못해서 그렇다. 진보적인 여러 가지 운동에 있어서는 다양한 방향에 대한 다양한 실천과 실험이 당연히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우선해야 하는 것,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구분해서 사고해 왔던 것이다. 이것은 ‘지금 우선 해결해야 할 모순은 민족 모순이고 그 이외의 실천은 좌편향적인 것’ 이라는 전제 하에서 운동을 지속해왔던 자주파의 사고방식과 정확히 대칭되는 것이 아닌가?

지금껏 우리의 ‘좌파 운동’은 그러한 정치적, 이념적 스탈린주의와 더불어 과거의 전투적 노동조합주의로부터 태동된 대중조직에 대한 불명확한 태도 등이 뒤엉켜져 풀뿌리 지역정치를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왔다.

이제 진보신당은 이론과 사상의 차원에서 이러한 고리를 끊어내야 하는 중차대한 역사적 임무를 떠안게 된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체계를 지닌 교육기관과 그것에 관련된 사업이 대단히 중요하게 사고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반성’의 화살은 비단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활동했었던 사람들 뿐 아니라 당 외에서 활동했던 사람들 에게도 냉혹하게 향해져야 한다. 10년간 풍찬노숙 한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사회당과 노동조합 운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던 소위 현장파 동지들, 그리고 환경운동에 매진해왔던 초록정치연대 등의 활동가들 역시 자기반성을 철저히 하고 진보정치의 실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명확히 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제 진정으로 가장 끔찍한 반성과 평가의 시간이 왔다. 우리 앞에 당장 여러 가지 정치 일정들이 놓여져 있지만 이번에도 아무것도 반성하지 못하고 평가하지 못하면 우리는 민주노동당이 저질렀던, 혹은 민주노동당 외부에서 저질렀던 오류들을 다시 한 번 저지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오류는 계속해서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뼈를 깎는 반성과 평가를 통해 내일을 준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며.


이상한 모자

2008.03.05 05:06:55
*.221.144.156

쓰기는 2월 18일에 쓴 글이라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아무래도 월간지다보니.. 요즘 같은 때엔 상황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에 지금 이런 주제로 글을 쓰라고 하면, 이렇게 안 쓸 것 같다.

바둑이

2008.03.13 08:47:37
*.83.199.7

전진 3달째 받아보지 못하고 있음.... 보내달라고 이메일을 보내도 도통 답변도 없고. 심경이 몹시 불쾌함.. 소식을 알고 있으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가르쳐주세요. 이상한 모자님.

이상한 모자

2008.03.13 15:36:28
*.198.97.74

바둑이 / 김형탁 얼굴 크게 나온게 16호이고, 이번이 17호 입니다. 그 사이는 기관지가 발행되지 못했습니다. 확인 결과 님의 주소는 성동구 마장동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메일을 다른데 보내지 말고 goequal@gmail.com 으로 바뀐 주소를 보내주기 바랍니다.

바둑이

2008.03.14 18:40:44
*.84.8.193

얼마전에 이미 알려주신 그 메일로 주소변경신청 및 문의 메일을 보냈었다고요... 일주일이나 답변이 지체되는 일은 어찌된 노릇입니까?

이상한 모자

2008.03.15 01:36:14
*.198.97.74

바둑이 / 그럼 답변은.. 안 올겁니다. 운동권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17호는 내가 나중에 사무실 들려서 가져오겠습니다. 조직이 깨지니 마니 하는 통이고 18호가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니 마음을 비우십시오. 그렇게 되면 돈 문제는.. 누군가 책임을 지겠지요.

바둑이

2008.03.15 15:08:37
*.216.116.47

그야 말로...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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