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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학교에서 스승의 날 행사가 있었다. 먼저 중국집에 갔다. 코스 요리가 나와서 맛있게 먹으며 술을 마셨다. 강영안 선생님이 앞에 앉아계셨는데, 너무 눈빛이 반짝거려서 바라보시면 왠지 피하게 된다. 객관적으로 볼 때 글 잘 쓰는 철학자, 뭐 이런 주제로 말을 꺼냈다. 비유의 참신성과 생명력을 주요 채점 기준으로 놓고 볼 때 칸트는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이다, 반면 훗설은 이건 뭐 글이 아니라 단지 논증과 설명이 있을 뿐인데 그것을 인공언어가 아닌 자연언어로 풀어놓고 있을 따름 같다, 한편 하이데거는 글을 참 잘 쓰긴 하는데 읽다보면 내가 뭔가 속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여기까지 말하자 와하하하 하고 웃으셨다. 존재가 말하게 한다면서 지가 실컷 떠드는 게 참 그렇죠, 이렇게 덧붙였다.

2차로 맥주를 마시러 가서 여러 교수님들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엿들었는데, 자리가 자리인만큼 취하지 않기 위해 살살 마셨다. 당연한 말이지만 서강대학교 철학과에는 신부님들이 교수직을 수행하고 계신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신부님'이라고 칭하는 것을 듣기 전까지는, 사실 그분들이 사제직을 수행하시는 분들이라는 것을 알기가 쉽지 않다. 특히 다들 술을 잘 드신다.

대흥역에서 12시 37분 정도면 한강진행 막차를 탈 수 있으리라는 계산을 했다. 30분에 자리가 파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르르 내려와보니 시간이 벌써 35분. 미친듯이 뛰었지만 실패했다. 등과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났는데, 돈을 많이 쓰게 되어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오늘 운동은 이거면 되겠다는 긍정적인 발상으로 슬픔을 이겨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씻기 전에 일단 음주 게시판에 접속했다. 이상한 모자 홈페이지에서 가장 활발한 게시판임에도 불구하고, 별 글이 올라와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요 밑에 한윤형이 인사말을 만든다고 하던 게시물을 다시 클릭해서 봤는데, 그 과정에서 내 설명이 미흡했던 것이 마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여 이참에 보충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나는 비평가가 10만명 정도 직장을 잃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비평이 자리를 잡는다면, 현재 활동하는 독사(doxa)의 자식들은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논리적인 전개 과정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논리적인 전개 과정에도 사실은 오류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비평이 잘못된 비평을 타도해낸다고 해도, 잘못된 비평을 하던 놈들은 그 잘못된 비평의 잣대로 나를 비평하려고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글을 실어주는 매체도 분명히 더 있을 것이다. 한편 나의 비평을 긍정적인 방향에서 비평하는 사람들 또한 발생할 것이다. 요컨대 지금보다 적건 많건 일정 수의 사람들은 계속 비평질을 하게 된다. 다만 그 대상이 달라질 따름이다. 가령 《노정태 연구: "너희들은 다 틀렸다"》같은 책들이 대거 등장할 터이다.

즉, 올바른 비평으로 인한 실업은 한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뿐이다. 이상한 글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 그게 옳건 그르건 그 이상한 유형의 글을 쓰는 사람들 또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가 비평가 10만명의 일자리를 빼앗으려 든다는 말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 다만 올바른 비평을 하는 가운데 적지 않은 수의 실업이 수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데, 나는 그러한 결과를 사회적으로 용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하자 서동욱 선생님이 발리바르의 '대중들의 공포'를 권해 주셨다. 진태원씨가 번역한 책에 부록으로 껴 있다고 하니 그쪽을 보는 편이 낫겠다. 구미에 맞으면 더 얘기를 해보자, 이런 취지인 것이다. 서강대학교 철학과는 교수마다 나는 칸트 너는 헤겔 이런 식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고, 대체로 두루두루 가르치고 지도하는 편인 것 같다. 하지만 프랑스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서동욱 선생님에게서 배우는 게 좋겠지. 불행히도 내 취향은 그쪽으로부터 구만리이긴 하지만, 추천을 받았으니 읽어보긴 해야겠다. 그러고보니 다음주 금요일이 성찰 과제 제출인데, 책은 재미있게 잘 읽고 있지만 요약을 안 하고 그냥 좋은 성적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자야지.

이상한 모자

2008.05.21 04:35:14
*.147.155.253

난 운동권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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