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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위클리경향] 유쾌한 진보에 한 표

조회 수 741 추천 수 0 2010.01.28 16:52:17

[편집실에서]유쾌한 진보에 한 표
2010 02/02ㅣ위클리경향 861호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386세대라고 부릅니다. 1960년대에 태어났고,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습니다. 학생운동세대라고도 합니다. 당시 대학생들은 맨 먼저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세상을 고민했습니다.

 

강의 시간에 배운 공교육과 과 학회나 언더 서클에서 배운 사교육은 엄연히 달랐습니다. 철학개론 시간에는 심지어 칸트의 코페르니쿠적 전환에 대해 설명할 때조차 졸았지만 2학년 선배가 주도하는 학회 모임에서 ‘마 선생’(마르크스)의 양질전환 설명은 흥미진진했습니다. 데카르트와 칸트를 배우기 전에 헤겔과 마 선생을 배웠습니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학년 선배인 ‘사교육 강사’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들 선배는 오랫동안 빨지 않은 청바지를 입거나 검은 홑외투를 입고 다녔습니다. 남자가 아닌 여자 선배의 복장은 치마가 아닌 바지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패션의 ‘패’ 자 근처도 가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멋이 있었습니다.

 

1학년들이 토론을 마치면 정리는 2학년 선배가 했습니다. 그토록 명쾌할 수 없었습니다. 더 놀라운 명쾌함은 마치 전설 속에 이야기로만 들은 선배 이론가가 간혹 등장했을 때입니다. 순간 세상의 진리가 한눈에 펼쳐졌습니다.

 

항상 술자리가 ‘아침이슬’과 ‘선구자’의 노래로 끝난 것처럼 모임은 진지했고, 경건했습니다. 열사의 기일에는 흥겨운 술자리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축제에는 학술토론과 시위만 있었습니다. 남녀가 어울리는 쌍쌍파티는 말을 꺼내지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어느 한 고등학교 동문회에서는 쌍쌍파티를 알리는 포스터를 게시판에 붙였다가 두고두고 욕만 얻어 먹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한 고교 동문회는 마치 독립운동 하듯이 몰래 쌍쌍파티를 했습니다.

 

진지했던 시간은 벌써 20년이 넘은 이전의 일이 됐습니다. 그 사이에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 등 좌파 이론가들의 나라인 소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세계화 시대, 글로벌 시대가 됐습니다.

 

사회주의 붕괴로 한때 절망했든, 2002년 대선에서 한때 열광했든, 다시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실망했든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진보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고, 어떤 이는 냉소하며 돌아섰습니다. 어떤 이는 젊은 세대에 대해 혀를 끌끌 찹니다.

 

젊은 세대에도 세상을 대하는, 이 시대에 맞는 특유의 방식이 있습니다. 지금 인터넷에서는 마 선생의 정통 이론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진보가 등장했습니다. 386세대보다 어린 세대인 이들의 글을 읽어 보면 진지한 듯하면서도 유쾌합니다. 무릎을 딱 칠 만한 유머도 있습니다.

 

386세대는 이제 진지함을 버릴 때가 됐지만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386세대는 지금까지 역사 앞에서 즐거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즐거워지면 좋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젊은 세대의 즐거운 진보, 유쾌한 진보, 명랑한 진보를 기대하겠습니다. 386세대에 속하는 경향>의 기자들은 유쾌한 뉴타입진보에 기꺼이 한 표를 던집니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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