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독창적인 과학철학자의 진기한 인생 | ||||||
[새책] 『킬링타임 : 파울 파이어아벤트의 철학적 자서전』 | ||||||
자신의 인생전반을 회고해 기록한 자서전을 내면서 제목을 '시간낭비(?)'라고 짓는다면 얼마나 허무한 일일까?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시간낭비' 혹은 '시간죽이기'로 규정한 (그나마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타인의 인생사를 시간을 들여서 읽는 것은 요즘 같은 광속의 시대에 또 다른 시간낭비일 수 있지 않을까? 『킬링타임 : 파울 파이어아벤트의 철학적 자서전』(한겨레출판, 15,000원)은 저자의 주요서적들이 단 한 권도 국내에 유통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툭 튀어나온 철학자의 자서전이다.(『킬링타임』의 번역자인 정병훈이 번역한 『방법에의 도전』이 1987년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적이 있지만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가 쉽지는 않다.) 한마디로 말해서 일반독자들에게서 '구매의욕'을 끌어내기는 매우 곤란해 보이는 책이라는 말인데, 오히려 제목 그대로 '킬링타임'용으로서의 미덕은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이 또 이 책의 매력이다. 과학철학과 심리철학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20세기의 가장 독창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파울 파이어아벤트가 1994년 사망하기 불과 몇 주전에야 완성했다는 이 책은 한 과학철학자의 진기한 인생 기록을 통해 20세기 인류 역사의 한 단면을 소묘한다. 저자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과학철학의 전성기에 활약한 주역 가운데 한 사람으로, 당시 함께 활약한 철학자로 토마스 쿤, N.R. 핸슨, 이므레 라카토슈, 스티븐 툴민 등이 있었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과격한 견해를 펼쳤던 사람이 바로 저자 본인이었다. 저자는 "철학자들에게는 과학과 상식의 영역이 철학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편견있는데, 이런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하면서 "단순한 이론과 규칙에 의해서 복잡한 과학의 세계를 포착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하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에 가서야 진정한 사랑을 만났는데, 뇌종양으로 죽는 순간까지 그와 함께 했던 그라지아에 대한 지고한 사랑과 신뢰는 감동적이다. 특히 자신이 진정 바란 것은 ‘지적인 생존이 아닌 사랑의 생존’이라는 그의 마지막 언명에서는 냉정하고 비판적인 이미지의 저자와는 전혀 다른 일면을 볼 수 있다. * * * 지은이 파울 파이어아벤트는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등 여러 대학에서 가르쳤다. 『이성이여 안녕』, 『자유사회에서의 과학』, 『방법에의 도전』 등 많은 책을 남겼다. 김성이는 이화여고와 이화여대 과학교육과를 졸업하였고 미국 위스콘신주 웨슬리 언어연구원의 TESOL과정을 졸업하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