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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킥애스: 영웅의 탄생> 일본 전투미소녀의 할리우드로의 전이
 

 
킥애스? NO! 힛걸!
 

4월 22일 개봉한 영화 <킥 애스-영웅의 탄생>은 기존의 히어로 물을 살짝 뒤트는 매력을 지녔다. 평범하다 못해 조금은 모자란 느낌마저 주는 청소년 데이브(아론 존슨)는 이 세상에 악당은 있는데 왜 히어로는 없을까하는 실존적인 고민 끝에 스스로 히어로가 되어보고자 한다. 인터넷에서 구입한 코스츔을 입고 ‘킥애스’라는 다소 코믹한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는 않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의 감상이나 평가는 대부분 주인공인 킥애스에게 달려 있지 않았다. 조연이라고 할 수 있는 ‘힛걸(클로에 모레츠)’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녀는 작중에서 11살 정도 되는 외모를 가진 귀여운 소녀이지만 폭력 조직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고 마누라까지 잃은 아버지에 의해 살인 병기로 키워졌다. 실제 영화의 액션은 거의 이 소녀가 맡는다. 그런데 그 액션이라는 게 전부 선혈이 낭자한 하드고어한 액션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의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가르는 요인이 되고 있다.

 

클릭하면 커집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힛걸 덕후인듯한(-_-;;)
 

보다시피 위 <씨네21>의 평론가들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데, 그 중심에 힛걸이 있다. 김종철을 제외하면 모두 힛걸에 관련한 내용뿐이다. 아니, ‘티란티노’적인 액션을 보여주는 주체가 힛걸이라는 점에서 김종철도 예외는 아닐지 모른다. 조그마한 소녀가 덩치 큰 악당들을 말 그대로 ‘써는’ 장면은 조금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어른들에게 받아들여지기에는 정서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힛걸은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다. 귀여운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거친 말투(“등신아”, “머저리 같은 놈!” 등등), 선혈이 낭자한 총질을 하면서도 배경에 흐르는 경쾌한 음악, 졸라 짱센 여왕님이면서 제 아빠에게는 따뜻한 모습 등이 상당히 언밸런스하면서도 묘한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의 핵심은 힛걸을 찬양하자는데 있는 건 아니다. 사실 이런 캐릭터는 꽤나 익숙하다. 적어도 일본의 서브컬처(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를 즐겨 접하는 사람에게는 말이다.

전투미소녀에 대하여

 

정신과 의사인 사이토 다마키(斎藤環)는 <전투미소녀의 정신분석(2000)>이라는 저서에서 ‘전투미소녀’를 일본 오타쿠 문화에서 탄생한 오직 일본에만 있는 독특한 현상으로 파악하였다. 그가 말하는 전투미소녀는 거슬러 올라가면 데즈카 오사무의 <리본의 기사>에서부터 90년대의 세일러 문이나 웨딩 피치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사 전반에 퍼져있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다. 이러한 미소녀들의 특징은 몇 가지 점에서 미국(서양)의 여성 전사와 구별된다. 원더우먼을 비롯한 미국 문화의 여성 전사들은 대부분 성인이며, 그 캐릭터는 남성적인 터프함을 과시하는 소위 아마조네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무사족)계열에 속한다. 또한 그들이 전통적인 여성성을 잃고 전투 여성이 되는 것은 어떤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로 인한 경우가 많다. 그 트라우마로 인해 이야기가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또한 그것은 가상세계와 현실을 연결 짓는 고리가 된다.

 

반면에 일본의 전투미소녀는 싸우는 여성이면서도 여성 특유의 가냘픔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녀들에게는 어떠한 트라우마 때문에 전사로 거듭난 것이 아니라, 외부의 힘에 의해 갑자기 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세일러 문의 경우 그녀 자신의 힘이 아닌 외부에서 갑자기 얻은 변신 능력으로 전사로 거듭난다. 그녀들은 강한 전사이지만 평소에는 또래 친구들과 별 다를 바 없이 연애이야기도 하고 아이돌 팬질도 하는 등 지극히 평범한 학생으로 살아간다. 이 모순은 그 자체로 비현실적이며 라캉에 기반을 둔 사이토의 논리에 따르면 실재계나 상징계가 아닌 상상계 내부에서 모든 욕망이 생성되고 소비되는 오타쿠의 독특한 섹슈얼리티와 연결된다. 상상계에서 일어나는 가상세계와 현실을 연결시켜주는 가장 확실한 고리가 바로 섹슈얼리티이기 때문이다. 오타쿠 특유의 페도필리아적 욕구는 그들이 진짜 유아 성도착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타쿠는 현실과 허구를 구분 못하는 것이 아니라 허구를 허구 그 자체로 소비하는, 아니 허구이기 때문에 섹슈얼리티를 느끼는 인간형으로 제시된다.

할리우드 영화에 이식된 일본식 전투미소녀

 

실제 사이토의 주장은 이보다 복잡하지만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아무튼 그는 적어도 그 당시에는 이 같은 현상이 일본에만 일어나고 있다고 파악하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나 나타난 힛걸의 여러 요소들은 상당부분 일본의 전투미소녀를 닮아 있다. 힛걸은 11살로 설정되어 있는 그야말로 어린 소녀이며 평소에는 너무나 귀엽다. 담력을 키운다며 딸에게 총을 겨누는 아빠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하거나, 전투 중 방심하여 뒤에서 당할 뻔 하는 장면, 총알이 떨어져 당황하는 모습 등 강한 여왕님 포스 가운데 은근히 약점들을 드러내 보인다. 이 부분에서 일본 전투 미소녀의 특징인 의외성이 들어난다. 그 거치디 거친 입담도 일본 라이트 노벨 <작안의 샤나>의 샤나를 떠올리게 한다. 이것도 2000년대 ‘츤데레’로 대표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 요소다.

 

애니메이션화가 되기도 했던 라이트노벨 <작안의 샤나>


직접적으로 섹슈얼리티와 연결된 부분은 없지만, 데이브의 친구가 TV에서 힛걸을 처음 보고 “7년 정도라면 동정으로 기다려줄 수 있어!”라고 외치는데 여기서 어느 정도의 섹슈얼리티도 암시하고 있다(더구나 발화자는 물론이고 주인공 데이브까지 작중에서 오타쿠스러운 외모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럴 듯 하다!). 결정적으로 힛걸의 교복 입은 씬이 등장한다. 교복은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 전투미소녀의 아이콘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전지현이 나오는 <블러드>나 <킬빌>의 여고생을 상기시켜 볼 것). 뿐만 아니라 힛걸의 복장부터가 원작에 없는 치마(교복풍 체크무늬!!!)를 입혀놓고 있다. 얘가 마지막엔 학교까지 다니는데, 만약 속편이 나온다면 그야말로 일상 비일상을 넘나드는 액션 히어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거슨 사립학교 교복의 위엄!


할리우드가 소재고갈로 인해 10여 년 전부터 이런저런 동양적인 것에서 소재를 찾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이 영화가 직접적으로 일본 서브컬처적인 어떤 것을 받아들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은 원작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으니. 그러나 미국 코믹스 혹은 그래픽노블 시장도 사실 이제는 대놓고 일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파워퍼프 걸>처럼 귀여운 여성 히어로가 나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해당 작은 역으로 일본에서 자기들 스타일로 변신소녀물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일본의 전투미소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미국 코믹스 시장을 거쳐 할리우드까지 진출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더 이상 전투미소녀는 일본의 전유물은 아니다.

 

아무튼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는 오랜만이라, 당분간은 하악할 듯하다. 어느 블로거분의 표현대로 일본에서 개봉한다면 동인지들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겠다. 이미 헤르미온느의 전적이 있으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원문 : http://taeppo.egloos.com/category/%EC%A0%A0%EC%B9%B4%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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