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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힐러리는 텍사스에서 '기사회생' 못했다"
  [기고] 유권자 책임 철저히 묻는 텍사스 경선의 마술
  2008-03-30 오전 11:55:14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장기화되고 있다. 패색이 짙었던 힐러리 클린턴은 3월 4일 '미니 슈퍼화요일'에서 기사회생했다. 힐러리는 미니 슈퍼화요일에 경선을 치른 4개 주 중 대의원이 많은 텍사스와 오하이오에서 승리함으로써 4월 22일 펜실베이니아 예비선거로 승부를 연장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미 시라큐스 대학 한종우 교수에 따르면 힐러리는 미니 슈퍼화요일에서 기사회생하지 못했다. 텍사스주 민주당의 복잡한 경선 절차로 인해 힐러리는 오바마 보다 6명의 대의원을 더 얻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사실상 무승부이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기 보다 패배 확정의 시간을 뒤로 미룬 것일 뿐이다.
  
  한종우 교수는 민주당원들이 이전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얼마나 많은 표를 던졌냐에 따라 차기 선거에서 선거구별 대의원의 수를 달리 배당함으로써, 당원으로서의 책임을 철저히 묻는 텍사스 민주당의 경선 규칙에 따라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현재 뉴욕 <라디오코리아>에서 미국 대선 후보 경선에 관한 프로그램을 3개월 째 진행하고 있는 한 교수는 당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철저히 묻는 미국 정치의 모습을 통해 정당제와 민주주의의 참모습에 대해 묻고 있다. <편집자>
  
  총선을 몇 주 앞둔 한국에서는 공천에서 떨어져 나간 후보들을 '이삭'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창 진행되고 있는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이야 말로 진정한 이삭줍기라 할 수 있다.
  
  공화당에서는 한꺼번에 볏단을 들고 통째로 탈곡기를 돌려 승자가 모든 이삭을 주어 담는, 즉 승자독식제도를 채택해 이미 후보가 정해졌다. 그러나 탈곡기 아래 떨어진 이삭을 한 톨 한 톨 주어야 하는 민주당 경선 시스템 때문에 버락 오바마 후보가 현재까지 쌓아올린 '마의 벽'을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역전시키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힐러리, 남은 경선 모두 압승해야 승리
  
  민주당과 공화당의 경선은 각 당이 배정한 대의원의 과반수를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 하는 싸움이다. 민주당은 총 4048명, 공화당은 총 2380명의 대의원이 배정되어 있다. 그 중 약 20%에 해당하는 슈퍼대의원(superdelegates, 민주당) 또는 지지 후보 미확정 대의원(unpledged delegates, 공화당)은 각 당의 전당대회(민주당 8월 말, 공화당 9월 초)에서 지지후보를 결정하는 1표씩을 행사한다.
  
  공화당은 승자독식(winner-takes-it-all) 제도를 채택해 매케인이 과반수를 확보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각 후보가 득표한 총 수에 비례해 대의원을 나누어 갖는 비율분할제를 채택함으로써, 밀레의 '이삭줍기 여인'을 연상케 하는, 허리를 굽혀 한 톨 한 톨 이삭을 줍는 대의원 확보 과정을 거쳐야한다. 따라서 어느 한 후보도 총 대의원 수의 과반수인 2025명을 일반 대의원만으로 채우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28일 현재 각 언론사별로 그 통계가 제각기 다르지만, 오바마가 일반 대의원 확보 경쟁에서 약 150여명을 앞서고 있고, 슈퍼대의원에서는 힐러리가 30여명을 앞서고 있다. 따라서 오바마가 총 120여명의 대의원을 리드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격차는 앞으로 남은 10개 주에서의 경선으로 뒤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산술적 계산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유럽처럼 확실한 정당중심의 선거제도를 채택하지는 않았더라도, 적어도 20세기 초까지는 양 당의 지도자급 당원들이 정치적 계산과 담합에 의해 밀실에서 토론을 거쳐 각 당의 후보를 선정하는 코커스 방식이 대선 후보 선출 과정의 전부였다. 일반 당원이 후보 선정 과정에서 제외되었음은 물론, 정치적 담합으로 야기되는 부작용을 개혁하기 위해 일반 당원들의 투표로 후보를 정하는 프라이머리 제도가 미국의 '개혁시대'(Progressive Era)를 주도한 이들에 의해 20세기 초부터 몇 개의 주에서 선별적으로 시도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 초 까지만 해도 프라이머리를 실행하는 주는 10개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많은 주가 여전히 코커스 방식을 고집해오다 1980년대 이후부터 프라이머리 방식이 주된 후보 선출방법으로 정착하게 된다. 물론 코커스 방식을 고수하는 주도 여전히 상당수 존재한다. 일률적인 방법에 길들여진 한국적 토양에선 이해하기 힘든 각 주들만의 방식을 유지하고 계승해온 미국적 방식의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한 나라에서 각 주마다 다른 방법으로 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할 수 있을까하는 일종의 경이로움 마저 들게하는 대목이다.
  
▲ 텍사스 경선 '승리' 후 기뻐하는 힐러리. 그러나 그는 오바마보다 대의원 6명을 더 획득하는데 그쳤다. ⓒ로이터=뉴시스

  텍사스 경선, '입후보 안 했으면 알려 하지 마라'
  
  그러나 다양성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 복잡한 텍사스의 후보 경선방식을 알고 난 후 필자는 할 말을 잃었다. 선거 전문가인 동료 교수도 손사래를 치며 본인이 대선에 출마하는 게 아니라면 알기를 포기하란다.
  
  3월 4일 미니 슈퍼화요일 경선으로 알려진 텍사스 선거는 프라이머리와 코커스를 동시에 실시했다. 기존의 코커스 방식을 그대로 둔 채 1988년 처음으로 프라이머리를 채택한 텍사스는 이번 선거에서 총 193명의 대의원 중 126명을 프라이머리로, 나머지 67명을 코커스로 뽑았다.
  
  힐러리는 텍사스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했으나 코커스에서는 패해 전체적인 대의원 확보 경쟁에서는 지고 있다. 여기서 굳이 '지고 있다'는 표현을 쓴 것은 코커스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텍사스 코커스는 3차에 걸쳐서 대의원을 최종확정하는 단계적 절차이다. 3월 4일 코커스는 기초단위 지역구에서 각 후보의 대의원을 선정한 것에 불과하다. 그로부터 약 한달 후 군 단위 지역구에서 1차로 선발된 각 후보의 대의원을 놓고 또 다시 선거를 할 예정이다. 그리고 나서 또 3차로 주 코커스 선거를 실시해 대의원을 최종 확정한다. 이렇게 설명해도 부족한 게 텍사스 코커스다.
  
  프라이머리에 비해 훨씬 적은 대의원이 배정된 코커스에서 이긴 오바마가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한 클린턴 후보를 대의원 수 확보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었을까? 텍사스의 프라이머리는 연방상원이 아닌 주 상원의원을 뽑는 31개 지역구에서 각각 2명에서 8명 사이의 대의원을 선출하게 되는데, 각 지역구마다, 그리고 각 선거때마다 다른 수의 대의원을 배정하는 텍사스 주 민주당의 독특한 방식에 기인한다.
  
  텍사스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 경선 전 있었던 두 번의 공직 선거에서 각 지역구의 민주당 유권자들이 투표에 얼마나 참여했느냐에 따라 그 지역구에 배정되는 대의원 수를 결정한다. 각 지역구 유권자의 책임성을 100% 추궁하는 민주정치 묘책이다. 이 원칙은 이번 텍사스 선거에서 힐러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일반적으로 텍사스 유권자의 30%를 차지하는 히스패닉들은 힐러리를 편애하기 때문에 텍사스 경선은 그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예측을 뒤엎은 것은 히스패닉들이 2004년 대선과 2006년 주지사 선거에서 낮은 투표율을 보였고, 따라서 그들이 밀집된 지역구에 배당된 대의원 수가 이번 경선에서 상대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2004년 대선에서 히스패닉들은 민주당 존 케리 후보에게 약 50%, 공화당 부시 후보에게 약 49%의 표를 던졌다. 히스패닉 표가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양분되었기 때문에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는 히스패닉이 집중된 지역구에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대의원이 배정되었다.
  
  반면 오바마 지지가 확고한 흑인들은 당시 대선에서 케리에게 83%, 부시에게 17%를 던져 흑인들이 집중된 지역구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대의원이 배정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오바마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작용된 것이다.
  
  또한 각 지역구에 배정된 대의원을 나누어 갖는 원칙도 힐러리에게 매우 불리했다. 총 31개 지역구 중 15개는 4명의 대의원이 배정되는데, 텍사스 민주당 경선 원칙에 의하면 이런 지역구의 경우 한 후보가 63%로 이기지 않는 한 두 후보는 공히 각각 2명의 대의원을 나누어 갖게 된다. 3명의 대의원이 배정된 9개의 지역구에서는 83%로 이겨야만 상대방 후보보다 단지 1명의 대의원을 더 갖게 될 뿐이다. 나머지 지역구에서도 평균 70%로 이기지 않는 한, 앞서 설명한 대로 기나긴 한 톨 한 톨의 이삭줍기에 그치고 말 뿐이다. 결과는 프라이머리에서 135만8785표(47%)를 얻은 오바마를 10만표 이상으로 이긴 힐러리(145만9814 표, 51%)가 4표를 더 줍는데 그쳤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코커스 방식에서 항상 강세를 보여 온 오바마는 밤 9시 프라이머리가 끝나고 난 후 총 8247개의 기초단위 지역구에서 시작된 코커스에서 3월 16일 현재 추산으로 2만3918표를 얻어, 총투표수로는 1만8620표를 얻은 클린턴 후보에 약 50000여표 밖에 이기지 못했지만, 확보한 대의원 수에 있어서는 힐러리 보다 9명을 앞서고 있다.
  
  결론적으로 오바마는 텍사스 일반 투표(프라이머리)에서는 졌지만 코커스에서 이겨 텍사스 전체 투표에서 힐러리에 비해 대의원 5명을 더 확보함으로써 힐러리를 빛 좋은 개살구가 되게 한 셈이다.
  
  <워싱턴포스트> 힐러리를 죽음에서 부활시켰다고 명명한 미니 슈퍼화요일에서 힐러리가 오바마에 비해 더 얻은 이삭은 결국 6개에 불과했다.
  
  이같은 각 주의 다양한 경선 제도와 규칙으로 인해 민주당 경선은 구조적으로 이삭줍기를 벗어나기 힘들다. 따라서 오바마의 엄청난 실수가 발생하거나 앞으로 남은 10개 선거 모두에서 힐러리가 60~70%의 앞도적인 표차로 이기지 못하면 힐러리는 '마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다.
   
 
  한종우/美시라큐스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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