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진보정당 운동 심각한 상황에 직면" 
[인터뷰] 단병호 "내가 받은 분당의 충격이란 건…" 
 
'노동자 정치세력화'. 박제가 된 듯 했던 이 말이 다시 살아났다. '단병호 충격'은 그의 민주노동당 탈당이나 총선 불출마 선언에 있지 않다. 유일 진보정당을 자처한 민노당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처참하게 실패했음을 환기시킨 게 진짜 충격이다. 탈당과 불출마는 그저 그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를 책임 지기 위해 선택한 나름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 화두를 평생 가슴에 담고 지내온 단 의원이 던진 문제제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묵지근하지는 않았을 듯싶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04년 국회에 첫걸음을 디딘 날 "노동자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한두 명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라며 눈물을 비친 그가 4년이 지난 지금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눈물을 보였다. 외골수 노동투사의 감격이 끝내 회한의 눈물로 바뀔 때까지 민노당의 존재는 과연 무엇이었나 하는 근본으로 향한다.
 
반쪽이 된 민노당과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이들이 앞 다퉈 단 의원의 문제의식에 크게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어떻게? 명쾌한 답이 나올 수 없다. 하루아침에 될 일도 아니거니와 '종북주의', '패권주의', '분열주의' 등의 용어를 퍼부으며 난타전을 벌이는 자주파, 평등파 모두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나 다름없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3월15일께 의원직을 정리하려 한다고 했다. 보름 쯤 뒤면 '노동자 국회의원 단병호'는 없다.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으로 단 의원을 찾아갔다.
 
"총선용 신당 논의엔 참여 의사 없다"
 
단 의원은 "당 내에서 시끄럽고 내부 갈등이 생기더라도 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는지를 반성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선 패배 후 두 달 동안 그토록 당이 시끄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단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다는 게 그를 더욱 낙담하게 만든 것 같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 "노동자나 계급 문제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 나갈 수 있는 조건들이 당 내에서 어렵겠다는 개인적 판단이 내려져 불가피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당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배타적 지지'를 민주노총이 더 강화하겠다는 입장이고, 이는 민노당이 그에 안주하게끔 만드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의 시각에선 적어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관한 한 민주노총과 민노당은 더 큰 실패로 가는 경로를 택했다.

세간의 관심은 그가 심상정 노회찬 의원이 주축이 돼 추진 중인 진보신당에 몸을 담을 것이냐다. 대체로 언젠가는 결합하지 않겠느냐고 본다. 하지만 진보신당에 대한 단 의원의 평가는 상당히 야박했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일 같으면 누가 걱정하겠는가. 이건 정말 지난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경우에 따라 지난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잘 안 될 수 있는 어려운 문제이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방관할 문제도 아니다. 진보정치가 제대로 서려면 노동자가 중심에 서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어렵더라도 해내야 할 문제다. 앞으로는 이것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야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만들어질 것 아닌가."
 
그는 단호하게 "총선 전 신당을 만들겠다는 논의에 참여할 의사는 없다"고 했다. 덧붙이길 "내가 당에서 나온 이유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다시 고민하고 판단하기 위한 것인데 지금 신당의 주된 고민은 그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불가피성은 인정했지만 '총선용' 정당 만들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다.
 
단 의원은 또한 "내가 받아들이고 있는 충격은 정치일정(에 대한 다급함)보다 더 크다. 탈당하자마자 신당을 만들어 가는 것은 신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며 "자칫하면 또 관성적으로 똑같은 학습을 반복하는 과정이 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강조하는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을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한 철저한 자기성찰과 반성"은 신당 추진파 쪽에서도 정치일정에 얽매여 건너뛰고 있다는 것이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의도한 바는 아닐지라도 총선을 앞둔 상황은 진보 경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이것이 상승효과를 낼지 공멸의 결과를 낼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현재 전망은 매우 어둡다. 단 의원은 "양당이 합쳐 2004년에 얻은 13%만이라도 얻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 의원은 어쩌면 총선 뒤의 진보정당 운동을 챙기려는 듯 보였다. 수 십 년 한솥밥 먹은 '동지'들이 선거 대응에 눈코 뜰 겨를 없는 와중에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러 가겠다는 그의 한가해 보일 법한 발걸음도 분명한 자기역할에 대한 확신 없이는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을 테니….
 
다음은 인터뷰 전문.
 
 "의원들도 책임과 부담을 느껴야"
 
프레시안: 한동안 포항에 머물다 상경했는데, 지역구는 정리된 건가?
 
단병호: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출마하지 않겠다는 얘기만 했지 포항 주민들이나 지인들을 만나서 왜 출마를 안 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양해 구해는 과정을 갖지 못 했다. 다음주에 다시 내려가 일주일 정도 지내면서 나를 지지했던 분들이나 주민들을 만나 출마하지 못 하게 된 데 대한 미안함도 얘기하고 수습할 생각이다.
 
프레시안: 불출마 소식을 접한 포항 주민들의 반응은 어떻던가?
 
단병호: 민주노동당 포항시당과 지역 민주노총에서는 이번 선거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보고 준비를 해왔다. 2006년 건설노조 투쟁 이후 포스코가 포항지역 노사관계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 노조 탈퇴 공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협력업체에 상당한 압력을 가하며 노조 무력화 시도를 2년간 해오고 있는 중이다. 노조나 당은 이번 총선을 계기로 당원과 노동 세력이 재결집해 포항에서 일어나는 노조 탄압을 돌파하고 진보정치 세력화 토대도 새로이 굳건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런데 갑자기 출마를 안 하겠다고 해서 당원들이나 조합원들이 상당히 허탈해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에 대해 내려가 얘기를 좀 하고 추슬러야 한다.
 
프레시안: 다른 분이 출마하게 되나?
 
단병호: 출마가 어려울 것 같다. 이런 변수가 있을 것이라고 전혀 예상 못 했고, 불가피한 사정 탓에 출마할 만한 사람도 없다. 포항시당 위원장은 건설노조 투쟁을 하다 기소돼 집행유예가 확정됐기 때문에 피선거권이 없다. 이 외에 몇 사람 손꼽는다 해도 조건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출마가 어려울 것 같다.
 
프레시안: 지역에서 이렇게 허탈한 분위기가 있다는 건 단 의원의 총선 불출마가 좀 갑작스러웠다는 얘기가 되는데….
 
단병호: 당원들이나 지역에 있는 분들께는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고민 많이 했던 것이다. 하루 이틀에 결정한 게 아니라 대선 직후부터 사태가 계속 발전돼 왔다. 불출마 결심하기 전에 시당이나 노조에 있는 주요 간부들은 불출마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대중적으로는 이런 사정이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아주 뜬금없는 것은 아니었다.
 
프레시안: 본격적인 고민의 단초가 대선 패배 시점부터라는 얘기인가?
 
단병호: 기자회견 때 밝힌 이유 그대로이다.
 
프레시안: 기자회견에서는 2004년 국회 진출 이후 오래 전부터 해 온 근본적 문제 때문이라고 했는데.

단병호: 분당 상황이 된 것은 어느 한 순에 일어난 돌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모두 누적돼 일어난 것이란 걸 다들 공감할 것이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누적된 문제의 고리에 대한 진단은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조승수 전 의원을 중심으로 탈당 한 동지들이 제기한 문제의식하고 내가 바라본 문제의식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책임 문제를 저울로 달면 추가 어느 쪽으로 더 기우느냐는 다르게 볼 수 있지만 누구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없다. 기자회견 때 언급은 안 했지만 사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책임도 크다. 의원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 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냉철하게 본다면 민노당이 2004년 총선에서 13%의 지지를 받았는데, 그건 진보정당이 제도권에 들어가 개혁 민생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고 준 표다.
 
하지만 국민들의 평가는 제도권 정치인들의 관점에서 우리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일한다고 했지만, 국민들의 기준에선 민노당의 객관적 한계까지 이해해줄 아량은 없었다. '민노당 의원들이 국회에 들어가 이런 법을 만들어 우리 삶에 어떻게 작용되고 있구나'라는 것이 국민들의 눈에 가시적으로 보이는 게 없다. 의원 9명이라는 한계가 명백히 존재하지만, 국민들의 일반적인 평가는 '들어 갔어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의원들도 책임과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포기하고 방관할 문제인가?"
 
프레시안: 말씀대로 의원들이 민생을 위해 열심히 안 한 것이 아니다. 객관적인 한계는 불가피성이 있다. 그 이상에 대해 의원들이 책임져야 할 것이 있는가?
 
단병호: 다른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상당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 탈당 이유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실패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이런 사태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구체적으로 뭘 했느냐'고 내게 반문할지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했지만'이라고 뚜렷이 내세우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노동자들이 당의 중심으로 공고화될 수 있도록 당 사업의 조직활동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공식·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수차례 제기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에 심각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철저한 문제의식을 갖고 관철시키려 노력하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로 진단할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상당한 책임감을 느낀다. 왜 좀 더 일찍 이런 문제를 치열하게 제기하지 않았을까. 안에서 시끄러워지고 내부적으로 갈등이 생기더라도 왜 그런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반성하고 있고, 역시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프레시안: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진보정당 존재의 근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명제로만 남아있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단병호: 한 마디로 압축해 얘기하기 어렵다. 평가해봐야겠지만 돌아보면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당이 노동자 속으로 가라 앉아 들어가야 한다.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당 내에서 크게 호응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이걸 계속 문제제기 하면 처음 국회에 들어온 진보정당이 엉뚱한 얘기로 시끄러울 것 같았다. 이런 문제는 나중에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둘째는 국회에 들어와 보니 국회에서 해야 할 일들이 보기보다 많았다. 제도, 정치 문제 등을 관철시키기 위한 과정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개인의 시간이나 역할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 현안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고, 사실상 주어진 조건 속에 자신의 스스로의 역할을 규정해 갔었다.
 
이 두 가지 조건에 처해 있으면서도 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지 못했던 것 아닌가 판단한다.
 
프레시안: 탈당은 곧 민노당의 틀에선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일 텐데 그 이유를 말하자면?
 
단병호: 민노당 내에선 대선 후 두 달 동안 당의 갈등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얘기가 나왔는데, 단 한 번도 노동자의 정체세력화 문제가 얘기된 적이 없었다. 내가 나오면서 화두를 던져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다시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그냥 말 한 마디 던지고 말면 이 문제가 다시 가볍게 치부될 것 같아서 확실하게 전달돼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또 당에 남아서 내 고민들이 실현가능할까 생각해봤는데, 안타까운 얘기지만 회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치 중심의 문제라기보다는 노동자나 계급 문제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갈 수 있는 조건들이 당 내에서 어렵겠다는 개인적 판단이 내려져 불가피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프레시안: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현장 노동자들과 다시 시작한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단병호: 일단 현장 노동자의 문제의식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같이 공감되는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 얘기해보고 싶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그것이 원론적이고 형식적인 동의인지 아닌지 등을 진지하게 얘기해보고자 한다.
 
내가 가진 문제의식을 대중들에게 좀 더 알려보고 그 토대 위에서 다음 고민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다. 그래서 현장을 다녀보겠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나중에 판단하겠다. 열 명이 뜻을 같이 하면 열 명의 뜻이 나오는 법 아닌가.
 
프레시안: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는 당이 적극적이지 않아서 생긴 문제일까 아니면 실제 노동 대중들에게서 그에 대한 절실함이 사라져서일까?
 
단병호: 나도 판단이 잘 안 선다. 현장에서의 요구는 높은데 당이 요구를 눌러왔다고 평가를 해야 하는 것인지, 현장에서 정치세력화에 대한 반응이 없고 노동자 중심의 정치세력화에 부정적이어서 안 되는 것인지 세밀하게 평가를 해봐야겠다.
 
그런데 둘 다 아닌 것 같다. 현장에서의 정치세력화 요구가 엄청난데 이를 당이 누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당이 열심히 하는데 현장이 거부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현장의 요구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당이 그 역할을 했느냐는 것이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일 같으면 누가 걱정하겠는가. 이건 정말 지난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경우에 따라 지난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잘 안 될 수 있는 어려운 문제이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방관할 문제도 아니다. 진보정치가 제대로 서려면 노동자가 중심에 서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어렵더라도 해내야 할 문제다. 앞으로는 이것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야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만들어질 것 아닌가.
 
"민주노총이라고 어찌 순탄하겠나"

프레시안: 그 문제에서 민주노총의 역할과 책임을 따져보자.
 
단병호: 민주노총은 배타적 지지를 했고 당은 부문할당이라고 해서 30%에 대한 의결과 집행의 참여를 보장하며 주고받았다. 이를 통해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당의 중심성을 만들어가자고 했는데, 난 초기엔 반대했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분명히 있긴 있어서 결사반대하지 않았다. 긍정적 측면이란 당이 초기에 자리를 잡는데 기여한 것이다.
 
그런데 일정 기간이 지나면서 이를 당의 강점으로, 당의 확고한 정치기반으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자기 노력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게 없었다. 당에서는 노동자들이 당의 절대적 지지자라고 생각해 안주해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을 당의 기본정신이나 정책, 강령을 자기 활동의 정치적 목적으로 설정하고 활동하는 당원으로 배출시키려는 시도를 아예 안 한 것이다. 이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런 면에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관계가 긍정적이었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당의 질적 발전이 정지되는 부정적 양상을 만들었다. 부문할당제를 냉정하게 평가해봐야겠다. 섣불리 얘기할 것은 아니지만,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신장시키고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조금 더 확대시키는 사업을 만들고 그런 사업 방향으로 가도록 당이 기능적 역할을 충실하게 했는가에 대해 냉철하게 평가해야 할 지점이다.
 
프레시안: 배타적 지지와 노동부문 할당이 결과적으로 부정적 영향이 긍정적 영향을 압도해버린 건 어느 시점의 어느 계기가 컸다고 보나?
 
단병호: 당에 긍정적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갖고 활동하는 당원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해내야 하는데, 처음부터 그런 질적 발전에 대한 시도가 없었다.
 
프레시안: 민주노총의 정치적 분열도 불가피하다고 보나?
 
단병호: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두 개의 정당이 존재할 때 대중조직 내부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토대를 어느 쪽이 더 많이 구축하느냐, 자기 세력이 지지하는 정당이 발전하느냐 못 하느냐와 직결되는데, 대중조직이 어찌 순탄하겠나. 그건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민주노총이라는 조직 내에 2~3개의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다고 해서 그 것을 민주노총의 분열로 연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은 어떻든 노동조합이라는 대중조직의 특성을 갖고 있는 조직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존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정치 세력으로 집단화 된다는 것이지만, 어느 한 정파로 단일화되거나 반대로 조직이 아예 분열되리라 보지 않는다. 대중조직의 분화와 분열과 같은 식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프레시안: 같은 뿌리의 정당이 두 개 생기는 것인데 배타적 지지라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진 것 아닌가? 하지만 민주노총은 배타적지지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단병호: 난 개인적으로 당이 자신의 정치적 토대를 구축하고 정치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선, 또한 그에 걸맞는 활동 당원을 키우기 위해서는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를 받지 않는 것이 질적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서로 지지한다고 규정해버리면 사람들이 안일해진다. 민노당이 민주노총을 확고한 자기 세력이라고 규정해 안주해온 사실 부정할 수 없다. 배타적 지지를 철회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도리어 진보정당이 자기 건강성과 정체성을 강화해나가는 촉매제도 될 수 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은 일반적인 전제이고, 배타적 지지냐 아니냐는 초기와는 다른 양상이다. 이게 진보정당의 강령이라도 놓고 얘기를 해봐야 하는데 강령과 실천적 활동을 해보면 대중 조직에서 배타적 지지라는 문제에 대해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는 문제 제기 있을 수 있다.
 
사실 민주노총 지도위원직 그만 둔 것도 이런 문제와 연관이 있다. 민주노총 지도위원으로서 배타적 지지를 더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 현 집행부의 입장과 다르다. 난 신중히 검토하자는 입장이다. 가장 민감한 문제이고, 정치적 문제에 대해 명확히 다른 견해 갖고 있으면서 현 집행부 지도위원 있는 것은 모순이겠다 싶어서 사퇴했다.
 
프레시안: 민주노총 현 집행부가 배타적 지지 강화 결정을 내린 것도 어찌 보면 정파 논리의 연장선으로 해석되는 측면이 있다.
 
단병호: 거기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고, 단지 현 지도부가 택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과정과 방법으로 이해한다.
 
"정파연합인 걸 모르고 시작했나?"
 
프레시안: 단 의원의 진단은 민노당 분당과 관련해 주되게 제기된 문제의식과 결이 다르다. 정파 간 이념갈등, 혹은 패권주의 등은 주된 요소가 아니라는 판단인가?
 
단병호: 이념적 갈등은 당 내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게 현상적으로는 주요 이슈가 되면서 분당까지 갔는데, 나는 그 것이 본질은 아니라고 본다. 처음부터 민주노동당 만들 때 정파연합이라는 것을 상정해 만들었다. 한국에서 정파라는 것은 운동이 실현돼 오는 과정에서 어떤 성격을 갖고 있고, 어떤 모습인지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끼리 정파연합으로 만들었다. 그걸 새삼스레 문제라고 하는 것은 과도한 규정이다.
 
창당 기본정신과 강령으로 확고히 무장된 노동자 대오들이 당 내에서 확고한 중심에 서 있었다면 이런 양상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상 민노당이 구현하고자 했던 정치관념이나 사회 지향점을 자신의 신념으로 갖고 있는 통일된 정치구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원들 사이에서 이런 것들이 확고히 굳혀져 있지 않았다. 이것이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아쉬운 일이지만 분당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됐다. 한 쪽에서는 진보의 분열로 보는 시각이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진보의 분화와 재편으로 보기도 하는데.
 
단병호: 내가 얘기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을 것이고, 각자의 주장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당이 갈라지는 데 대해서만큼은 대단히 부정적 입장이었다. 갈라지지 않고 치유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하나의 길을 만드는 것이 맞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탈당까지 온 것인데, 하나로 갈 수 있으면 가장 좋았을 텐데 아쉽다.
 
프레시안: 재결합이 쉽지는 않겠지만 시도해 볼 수 있는 문제인가?
 
단병호: 현재 재결합은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운동이라는 건 상당히 적대적인 대립을 하다가도 어떤 시기에는 절대적인 단결의 필요성이 느껴져 함께 가기도 한다. 헤어진다고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고, 뭉친다고 영원히 뭉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헤어진다고 해서 영원히 헤어져 있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절대적 필요성이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고 그런 것 아니겠나. 그러나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다.

프레시안: 진보신당 참여 의사는?
 
단병호: 총선 전에 신당을 만들겠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논의에 참여할 의사는 없다. 내가 당에서 나온 이유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안 됐다는 것이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다시 고민하고 판단하기 위한 것인데, 지금 신당의 주된 고민은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당사자들도 말하듯이 총선에 대비한 정당의 형식이다. 그 논의는 그런 논의가 필요한 분들이 하면 될 것 같고 나는 개인적으로 그 기간 동안 사람들을 두루 많이 만나보고, 나름대로 내 고민들을 더 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내가 만나겠다는 사람들이 굳이 진보신당, 소위 탈당 인사들로만 제한하고 싶지 않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문제에 대해 정말 고민하고 있고, 고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모두와 얘기하고 싶다. 다양하게 만나고 싶다.
 
총선 이후에 진보신당이 얘기되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문제가 다시 본격적으로 얘기될 것으로 본다. 지금 탈당한 현장 노동자 중에도 신당이 이렇게 급하게 가는 것에 대해 우려를 가지면서도 불가피하다고 판단해 신당으로 가야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문제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당 문제와 관계없이 총선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밖에 없고, 그 때 함께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총선 전 진보신당 창당에는 부정적인 생각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단병호: 정치란 것이 제도권 정치일정을 완전히 무시하면 모르지만 무시하지 않는다면 제도권 정치일정을 중요하게 볼 수밖에 없다. 그걸 간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난 정치일정에 대응하는 것보다 (최근의 분당 사태를) 더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다. 수십 년 만에 진보정당이 만들어지고 국회의원이 10명까지 배출하며 단기간에 급성장한 정치적 과정이 있었는데, 분당이라는 현실이 나타났다.
 
분당이라는 문제로 인해 이후 민노당이나 신당이나 관계없이 진보정당운동의 자기 전망 속에 발전해 나갈 수 있을지, 아니면 몰락할지 모르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본다. 이런 중차대한 상황이라고 본다면 정해진 정치일정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황 인식에 상응하는 철저한 평가들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올곧게 지켜나가야 할 것이 있다면 발전시키는 논의를 더 철저히 해야 한다. 우리를 방해하는 것이 있었다면 찾아내 철저히 배제해야 하고, 무엇을 어떻게 중심에 놓을지 고민해야 한다.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을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철저하게 자기 성찰과 반성을 하고 고민해야 한다.
 
정치일정에 대한 고민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받아들이고 있는 충격은 정치일정보다 더 크다. 탈당하자마자 신당을 만들어 가는 것은 신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자칫하면 또 관성적으로 똑같은 학습 반복하는 과정이 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신당이 아직 창당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발기인 대회를 열고 창당도 곧 한다. 단 의원의 우려에 비춰볼 때 어떤 것 같나?
 
단병호: 총선에 대비해 총선을 효과적으로 치르기 위한 정치적 모색이라고 받아들인다. 그 이상의 평가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 정도만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그 동지들도 총선 이후에는 진짜 제대로 고민해 제대로 된 당 하나 만들어 보겠다니까 지금 평가할 때는 아닌 것 같다.
 
프레시안: 총선 이후의 진보신당 참여에 대해서는?
 
단병호: 총선이 끝나고 당을 만들어야 한다면 어떤 고민들이 선결돼야 할 것인지, 어떤 문제들이 평가돼야 할 것인지부터 이뤄져야 할 것이다. 상식적인 과정이다. 진행되는 과정을 보고 연동해 판단과 고민도 같이 하겠다. 이 과정에서 충분히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총선 이후 신당에 참여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진정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의지와 함께 그 때 가서 판단해봐야 할 것 같다.
 
"사회적 힘을 조직해 내야"
 
프레시안: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이나 총선을 효과적으로 치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나?
 
단병호: 내가 볼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총선에서 좋은 결과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신당도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이다. 총선에서 좋은 결과 있어야한다. 한 쪽은 죽고 한 쪽은 살아야 한다는 문제는 아니다. 2004년 13% 받았다. 그런데 지금 당을 열심히 추슬러서 총선을 치르려는 분들에게는 맥 빠질 얘긴지 모르겠지만 두 당이 합쳐서 2004년 민노당이 받았던 정당 지지율을 만들어 낸다면 분당은 됐지만, 그래도 진보정치가 실패의 과정으로 가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 정도만이라도 받아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프레시안: 맥 빠지는 얘기가 아닌 것 같다. 지금 같아선 두 당이 합쳐 13%를 받으면 굉장한 성공 같은데?
 
단병호: 최소한 그 정도는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잘 되길 바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18대 국회에선 단 의원을 보지 못하게 됐다. 지난 4년의 의정활동을 돌아보면 어떤가?
 
단병호: 아쉬움이 많다. 내가 들어올 때 민노당 당원으로서 비례대표 국회 들어왔다가 떠날 때는 민노당 당원이 아닌 이유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떠날 상황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회한도 많고 아쉬움도 많다.

가장 큰 것은 내가 처음 들어올 때 노동자 정치세력화 문제가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그 역할을 충실하지 못했다는 자기반성이 뼈아프게 느껴지고 있고, 그런 것들이 당의 오늘의 상황 만드는데 적잖게 기여한 것 같아 안타깝다.
 
국회 들어올 때 가졌던 정치적 자기 의지를 실현하지 못한 것이 크다. 국회에 들어와 일을 하면서 참 한계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 들어올 때 기자회견을 하면서 본청 앞에서 민노당 의원들이 마이크를 돌리며 한 마디 씩 했다. 그 때 내가 한 얘기가 "참 감격스럽다. 항상 '노동자 대변하는 국회의원 한 명만 있었어도'라고 외쳤는데, 내가 국회의원이 됐으니 지금은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다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수의 논리에서 작동하는 객관적 한계가 엄청 크다는 것을 느꼈다.
 
프레시안: 몇 명이 될지는 모르지만 후배 진보정치인이 18대 국회에 들어온다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

단병호: 다음에는 민노당이 되든 신당이 되든 또 국회에 들어올 텐데, 아마 지금 이 상태로 가면 다음 사람들도 똑같은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수의 문제에 짓눌려 처음 가졌던 각오가 실현되지 못하는 좌절감 크게 느끼게 될 것이다.
 
국회 안에 들어간 제도권 의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맞물려서 밖에서 당이 사회적 힘을 조직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안에서는 안에서 대로 활동하고 밖으로 연결하는 고리 역할은 하겠지만, 실제 사회적 힘을 만드는 역할을 당이 해야 한다. 제도권 안에서의 한계를 사회적 힘으로 극복해야 하는데 4년 동안 그걸 잘 못한 것 같다. 정말 당원들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 시민사회단체와 사안별 문제를 같이 연결시켜 해나갈 수 있는 튼튼한 고리들을 형성해야 한다. 사회적 힘을 당이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각별히 고민을 해야 하지 않겠나. 
   
임경구,김하영/기자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수
1292 (1) 신자유주의적 주체의 형성 이상한 모자 2008-02-27 5013
1291 [프레시안] 밀가루가 밤새 20% 폭등…애그플레이션 공포 이상한 모자 2008-02-28 3299
1290 [레디앙] 진보신당 창당 속도 붙었다 file 이상한 모자 2008-02-28 2994
1289 테스트 [1] 테스트 2008-02-28 5068
1288 설문조사 - 홈페이지 VS 블로그 이상한 모자 2008-02-28 10432
1287 인디아나 존스 file [1] 이상한 모자 2008-02-28 6299
1286 저의 소개 file [2] 이상한 모자 2008-02-28 5098
1285 [펌/민주노동당] 이주희를 국회로! [1] 이상한 모자 2008-02-28 9658
1284 평당원 민주주의와 신당? file 이상한 모자 2008-02-29 4661
1283 [한겨레] “장애여성 정치세력화 나서야죠” file 이상한 모자 2008-02-29 3560
1282 [강추]나루1집 천재기타 2008-02-29 5679
1281 이 게시판 에서는 띄어쓰기를 이상하게 해도 자유인가요? [1] 노정태 2008-02-29 5227
1280 [레디앙/오건호] "정든 사무실 떠나며 나는 부끄럽다" file 이상한 모자 2008-02-29 3028
1279 냐 냐냐 냐 냐냐 냐 냐냐 냐 file 냐냐냐냐 2008-02-29 5252
» [프레시안/단병호 인터뷰] "진보정당 운동 심각한 상황에 직면" file 이상한 모자 2008-03-01 2807
1277 단병호 file 이상한 모자 2008-03-02 4348
1276 [프레시안] 한나라, 현역 비례대표 첫 지역구 전략공천 file 이상한 모자 2008-03-02 3020
1275 실직을... [1] 하이데스 2008-03-02 4194
1274 [프레시안] '깨끗한 손' 이문옥 "진보신당에 바라는 세 가지" file 이상한 모자 2008-03-02 2889
1273 [프레시안] '진보신당' 창당 선언…"타협과 봉합은 악" file 이상한 모자 2008-03-02 3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