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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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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끝났다. 한나라당 압승, 통합민주당 참패, 진보세력 절멸. 예상된 결과다.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면, 이후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좀 더 신속하게 생각해 낼 수 있으리라. 오늘은 선거에 대해서만 쓰려고 한다. 비록 진보세력은 실패했지만,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그 교훈을 되새기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스스로의 것으로 만드는데 실패하고 말 것이다.

진보세력이 교훈을 얻어야 할 선거는 노회찬, 심상정의 낙선과 강기갑, 권영길의 당선이다. 진보세력이 관심있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이 선거들은 각기 놓치지 말아야 할 주요한 특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매우 단순한 진리이나 여태까지 진보진영이 반쯤 밖에 체득하지 못한 그런 것이다.

심상정, 절반의 패배

노회찬과 심상정은 함께 낙선했으나 애초에 선거에 뛰어들 때에는 서로 분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 노회찬은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정치적으로 패배했으나 심상정은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정치적으로 승리했다. 둘째, 노회찬은 출마 선언 때부터 줄곧 우위를 유지해왔으나 심상정은 출마 지역구를 결정했을 때 20%를 밑도는 지지율 밖에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셋째,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노회찬 보다 심상정이 선거 경험이 더 많다.

나는 애초에 선거를 시작할 때부터 노회찬은 마지막이 어려울 것이고 일을 낸다면 심상정이 내지 않겠느냐 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노회찬과 측근들에게 마무리 능력이 부족한지, 아니면 노회찬에게 늘 운이 따르지 않은 것인지, 노회찬은 항상 끝 마무리가 좋지 않았다.

이에 반해 심상정과 그 일당들은 최소한 내가 기억하기로는 언제나 파괴력 있는 마지막 한 방을 준비해 놓기를 잊지 않았다. 심상정이 고양갑이라는 지역에, 지지율도 그리 높게 나오지 않으면서 뛰어들 때에는 바로 이 한 방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심상정과 그 일당들은 그렇게 아무렇게나 처신할 만큼 허술한 인간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한 방이 뭐였을까? 나는 그것이 바로 통합민주당과의 단일화라고 본다. 나는 심상정이 처음부터 이러한 수를 알고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 및 평가는 일단 나중으로 미루겠다. 어쨌든 이러한 이슈를 대하는 태도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그것을 진짜로 실현시키려고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슈를 딛고 점프해서 다른 긍정적인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심상정의 대응은 전자였다. 그리고 그것은 실패했다. 아마도 이 때 심상정은 패배를 예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심상정은 역시 선수로서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20%를 밑도는 지지율에서 당선권까지 진입했었던 것은 근래에 진보진영에서 보기 힘들었던 대활약이다. 심상정은 선거에서 졌다. 하지만 절반만 졌다. 이것이 가장 냉정한 평가일 것이다.

노회찬의 연이은 실책

노회찬은 연예인을 동원하고 여러가지 구호를 내밀었으나 '꽃히는게' 없었다. 시작할 때의 높은 지지율이 끝까지 이어졌지만 이는 결국 역전을 허용했다. 마지막에 가서 노회찬의 전술은 '될 사람 밀어주자'였는데 여론조사 지지율이 계속 1위로 나왔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술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과연 진보진영의 대표주자 중 한 사람으로서 쓸모있는 슬로건 이었는가는 다시 생각해볼만 하다. 오히려 노회찬에게 마지막 한 방이 무엇이 있었는가, 우리는 그것을 물어야 한다.

홍정욱은 노원 유권자들의 저열한 욕망을 건드리면서 계속해서 치고 올라왔는데 노회찬은 여론조사 결과만 너무 믿었던것 아닌가,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렸던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피해가기가 어렵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진보진영에게 언제나 불리했다. 우리는 몇 번의 선거 경험을 통해 '우세'라고 할 때에는 '박빙'이라고 이해해야하고 '박빙'이라고 할 때에는 '열세'라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보진영은 언제나 보수진영에 비해 지역 밑바닥 장악력이 떨어졌었다. 바로 그것을 반영하는 여론조사의 숨겨진 변수는 당연히 언제나 보수진영의 편이었다. 노회찬의 당선을 의심치 않았던 사람들은 바로 이 점을 간과했다.

그래서 나는 심상정보다 여전히 노회찬의 낙선이 더 아쉽다. 최소한 심상정은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뛰어들어 반쪽짜리 결과나마 만들어 냈지만 노회찬은 처음부터 유리했던 지형에서도 후퇴만을 거듭했다. 노회찬에게 조금만 더 뒷심이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긴장했더라면 이길 수 있었지 않았을까 라는 이 아쉬움이 내내 머릿 속을 흔든다.

하지만 오늘의 이 선거를 통해 노회찬이 또 한 발자국 성장한다면 그것은 진보진영의 미래를 위해 훨씬 더 좋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부디 그러길 빈다. 같은 실수를 세 번 한다는 것은 너무도 큰 정치적 상처가 될 것이니 말이다.

권영길과 강기갑의 승리

진보신당의 처참한 패배에 비해 민주노동당은 그토록 염원하던 지역구 의석 2석을 뚫고야 말았다. 물론 정당 지지율은 애초의 예상대로 보잘것 없지만 권영길과 강기갑의 승리는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엄청난 정치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권영길은 민주노동당의 간판이었고 강기갑은 겉모습 부터가 농민 국회의원 이었다. 나는 늘 그렇듯 애초에 이들이 모두 낙선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여론조사는 어느쪽 편도 들어주지 않았다. 어째서 그게 가능했는가?

권영길은 재선에 도전한다는 사실이 이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현직 국회의원에다가 대선에도 출마했으니 인지도에서는 걱정할 일이 없었다. 거기에 권영길은 오랫동안 지역구에서 다시 출마하는 것을 준비해 왔다. 그가 준비한 지역구 공약은 대단히 공을 들인 티가 나는 것이어서 '대선 때 좀 그렇게 하지..' 라는 푸념을 듣기도 했다는 에피소드가 이러한 사실을 잘 나타내 준다. 권영길은 흔히 진보진영의 국회의원 후보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손과 발을 지역에서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강기갑의 경우는 조금 더 복잡한데, 강기갑의 당선이 경남 사천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결부되어 있다는 점이 일단 첫번째다. 어쨌든 이 곳은 농사를 짓는 지역이다. 그의 대중적 기반인 농민회의 활약이 첫째로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둘째는 그의 기이한 외모인데 농민의 구미에 맞는 외모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민주노동당 하면 떠오르는 독특한 이미지의 외모였기 때문에 인지도라는 측면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셋째는, 우습게도, 친박연대의 이방호 낙선 활동이다. 보수 종파주의라고 할 수 있는 이 사건은 특히나 경남지역에 있는 한나라당 지역조직의 움직임에 많은 혼란을 초래했을 것이다.

권영길과 강기갑의 바로 이러한 점들이 '여론조사에서 보이지 않는 표'를 작동하지 않게 하거나 중립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공통적으로 이는 지역적 차원에서의 선거운동조직의 문제였다. 그리고 이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준비와 지역 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의 문제였다는 데에 이들 승리자들의 공통점이 있다.

지역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우리가 다시 집중해야 할 것은 지역운동을 어떻게 다시 시작할 것인가 이다. 특히 노회찬과 심상정의 노원병과 고양덕양갑에서는 그에 걸맞는 진보신당의 지역적 활동이 활기차게 시작되지 않으면 안된다. 아마도 총선 이후 우리의 토론은 '어떤 지역운동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선거를 위한 것인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토론에서 생산적인 결론을 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다음 지방선거때 까지 우리가 어떤 결론을 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우리는 권영길, 강기갑의 성공을 따라서도 안되고 노회찬, 심상정의 방식을 다시 답습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 아닌가? 우리는 아직도 너무 깜깜한 곳에서 위태로운 촛불 하나를 들고 헤매고 있다.

당의 운명은 선거를 하는 것이지만 또 선거는 당의 전부가 아니다. 이번 총선은 어떻게든 세상에서 살아남아보려는 46%와 정치에 대한 모든 희망을 접어버린 54% 간의 싸움이었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모든 정당들이 이 54%를 어떻게 다시 투표장으로 끌어들일 것인가를 고민하겠지만 우리의 고민은 이 54%에게 어떤 지역정치를 안겨줄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일희일비 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번 선거의 교훈은 거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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