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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북한 3대세습 문제 관련 민주노동당-경향신문의 논쟁을 보면 민주노동당 산하 새세상연구소 부소장이라는 박경순이란 사람이 나온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새세상연구소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박경순 부소장은 발제를 통해 “일부 언론이 소위 3대 세습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종북이란 딱지를 붙이고 있는데 이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방식”이라며, 이는 “반민중적 태도”라고 말했고, “김정은이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것이 단순히 자식에게 권력을 물려주기 위한 것인지, 후계자로 자질·능력·업적 때문에 당원들로부터 추대됐는지 판단할 자료가 현재는 없다”며 “모든 북한 문제는 6.15와 10.4 선언을 잣대로 내정 불간섭 원칙, 체제 인정과 존중의 원칙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내게도 기억이 남는 이름인지라, '북한 문제'를 저렇게 파악하는 사람이 '한국 정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옛날에 쓴 글을 퍼왔다. 민주노동당이 국가보안법 반대 투쟁에 올인해야 한다고 주장한 NL들의 대표론자로 박경순을 잡고 2004년 12월 28일에 쓴 비판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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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적극적 주장과 소극적 주장

"민주노동당내에서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에 동의하지 않는 당원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에 당력을 집중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그것은 왜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국보법 폐지투쟁의 정치적 의의에 대한 인식의 불일치도 큰 이유중의 하나이다. 반대론자(국보법 폐지투쟁에 총력집중하자는 주장에 대한 반대론자; 이하 반대론자라 지칭함)들은 대부분 국보법 폐지투쟁을 기능주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공통성을 갖고 있다. 즉 자신의 심장과 영혼으로 국보법 폐지를 열렬히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진보적 민중들의 정치적 의제로 되고 있기 때문에 반대하지 못하고 찬성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국보법 폐지 문제’가 여러 가지 정치경제적 개혁과제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의 정치적 의의와 민주노동당의 역할과 과제, 박경순, 이하 인용은 모두 이 글임)


박경순이 적절히 지적했듯이 '반대론자'들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 나서는 것도 반대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는 심지어 국가보안법 폐지에 당력을 집중하자는 주장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그 '집중'의 강도이다. 민주노동당은 현재 당 재정의 8할을 사용하면서 국보법 폐지 투쟁을 하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학생위원회는 지하철에서 '국보법 철폐투쟁 기금'을 모으러 앵벌이를 하러 돌아다니고 있는데, 이도 모자라 '당력을 집중'하자는 이들은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모두 일반적인 상임위 활동을 중지하고 거리로 뛰어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민주노동당이 당의 명운을 걸고 투쟁하여 국보법 폐지를 관철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주장인가.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소극적인 것이다. 국보법 폐지도 중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중요한 이슈가 완전히 묻혀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이미 국보법 문제는 민주노동당의 투쟁과는 다른 차원에서 결정될 확률이 높다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적극적인 것이다. 국보법 폐지 운동은 마땅히 올인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원래 적극적인 주장을 하려면 소극적인 주장을 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근거가 필요하다. 사실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국가보안법이 한국 사회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없고서야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런 주장을 가장 긴 글로 정리한 박경순 한국진보운동연구소 소장의 핵심적인 주장을 비판해보기로 한다.


2. 어째서 민주노동당이 가능한가?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가 “자신의 대표직을 걸고라도 국가보안법을 사수하겠다”고 선언하고, 한나라당과 수구세력들이 총결집하여 ‘국가보안법 사수’를 외치며, 여기에 총력집중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리고 왜 수구세력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대변자인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들이 ‘국보법 사수’에 사활을 걸고 있는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국가보안법 문제’와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이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의 보호속에서만 자신들의 특권적 정치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들은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하여 수구반동적인 언론활동을 벌여나감으로서 언론권력의 성역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은 한국사회의 분단체제와 이데올로기를 지탱해주는 중심적 기둥이다. 냉전수구세력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보호자인 국가보안법이 없이는 하루라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보안법 폐지는 곧 자신들의 특권적 정치적 지위와 생명의 종말을 의미한다."


여기, 상대방의 이데올로기적 신념을 곧이 곧대로 듣는 사람이 하나 있다. 이 사람의 말이 옳다면 노동관계법이 개정될 때마다 한국 자본주의는 몰락해야 했을 거다. 적어도 수백번은 망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저런 친절한 자세를 견지한다면, 이라크 파병을 거부하면 한국 경제 망한다는 청와대의 엄살도 경청해야 할 것이다. "아, 이라크 파병하면 한국경제 망하는군요. 그럼 닥치고 이라크 파병." 뭐 이러자는 소린가?


이 사람과 그의 지지자들은 이렇게 반론할지도 모른다. "여보게, 한군. 지난번에 와서 내게 사정을 한 그들은 만두를 씹으면서 얼굴에 웃음을 실실 흘리고, 자이툰 부대를 방문하면서도 실실 쪼개는게 내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틀림없네. 하지만 오늘 저들의 표정은 매우 다급하고, 코너에 몰린 심경이 몸짓에 드러나니 진심으로 쫄은 걸세. 자네는 어째서 이 간단한 이치를 모르는가." 허생을 한눈에 알아본 변부자가 따로 없다.


하지만 나는, 설령 그 사람이 진실이라고 믿는 이데올로기일지라도 사실이 아닌 경우를 많이 알고 있다. 인간은 자기 밥그릇을 챙겨먹는다고 믿지만, 언제나 그것에 성공하는 존재는 아니다. 만일 그런 전제가 없다면 각종 사회운동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으리라. 가령 남의 이데올로기적 신념을 곧이 곧대로 듣는 이 사람조차도 그러하다. 그는 뭐라고 했던가.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는 낡은 국가보안법 체제 아래에서 민중의 정치적 참여가 배제되고 진보 정치가 원천적으로 부정된 보수 정치만 판을 쳐왔다. 따라서 보수정치를 타파하고 진보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선차적으로 국가보안법 체제를 구조적으로 붕괴시켜야 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는 그 출발점으로 된다.


만일 국가보안법 폐지가 진보정치의 출발점이라면, 어째서 지금 이 순간 '진보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은 의원 10명을 배출한 정치적 실체로써 현존하고 있는가? 나는 이 사람과 그의 지지자들이 설익은 논변을 내뱉기 전에 다음과 같은 경구를 암송하기를 권고한다.


'어째서 민주노동당이 가능한가?

어째서 민주노동당이 가능한가?

어째서 가능한가? 어째서? ...왜? ...국보법이 살아있는데 무엇 때문에?

어째서 이다지도 슬프게도 민주노동당이 가능한가?'



천만번쯤 암송하다보면 문리(文理)가 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기 전에는 함부로 토론장에 나오지 마시라. 만약 해답도 얻기 전에 토론장에 나온다면,


"그것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진보와 보수간의 구체적인 계급적 대결에 대한 무지몽매이며, 스스로 정치의 문외한임을 고백하는 소치이다."


누가 할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단, 나는 합리적인 사람인지라 다른 가능성도 열어둔다. 그것은 민주노동당이 진보정치에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고백하는 자해공갈이다. 나는 민주노동당에 아무런 의의도 찾지 못하는 이들이 민주노동당의 노선에 간섭하는 실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왜 의미가 있는 다른 일을 하지 않는가? 여기 일은, 여기서 의미를 보는 다른 이들에게 맡겨두라.


3. 민중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원하는가?


"이처럼 국가보안법의 최대의 피해자 희생자도 민중과 진보정치세력이며,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의 주체도 민중과 진보정치세력이다. 더 나아가 국가보안법과 가장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것도 바로 민중과 진보정치세력이다.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은 결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싸움이 아니며, 반동적 수구세력들과 민중들과의 투쟁인 것이다."


"개혁과 진보를 염원하는 이 땅의 민중들은 당연히 이러한 유리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모든 힘과 역량을 총동원하여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역사적 사명이며, 당연한 원칙이다."


민중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원하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박경순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렇다!" 이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간단하다. "반동적 수구세력들과 민중들과의 투쟁"이라고 했으니, 폐지를 원하지 않으면 '반동적 수구세력'이라고 부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민중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원한다."나 "국민은 개혁을 원한다."라는 명제의 이데올로기적인 속성이다. 즉, 정치적으로 나에게 동의하는 사람들을 민중이나 국민과 같은 주체로 호명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민중은 힘이 있다."나 "국민은 힘이 있다"는 말은 그저 '우리편은 힘이 세다.'를 의미할 뿐이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편은 힘이 세다.'라는 것을 믿고 싸움에 나서야 할까? 아무도 이런 멍청한 질문을 하지는 않는다. 우리편이 힘이 세다는 것만을 믿고 싸우면 승리한다면, 반세기전에 대일본제국은 귀축영미를 타도하고 천하를 제패했으리라.


하지만 "민중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원한다."는 주장엔 저러한 이데올로기 비판적 논파에도 불구하고 깨지지 않는 믿음이 이물질처럼 삽입되어 있다. 그것은 (국보법 폐지를 원하는) 민중은 다수이며, 이를 억누르는 수구적 반동세력은 권력을 가진 소수라는 관점이다. 소수가 다수를 억누르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총칼이 되었든 정치기구가 되었든 '도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는 한나  아렌트식으로 말하자면 "권력이 없는 이가 폭력을 가진 상황"이라 볼 수 있다. 박경순과 같은 이들은 그 강력한 도구의 중심에 '국가보안법'이 있다고 믿고, 이것을 폐지하는 것이 다수-소수 관계의 정상화를 꾀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일례로 박경순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정치의 주인은 반동적 수구세력이다. 반동적 수구세력은 6월 항쟁이후 민중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점차 약화되고 있다. 특히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이후 정권을 차지하지 못하고 지난 4.15총선이후에는 국회마저 빼앗겨 정치권에서 소수세력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까지 이땅의 특권세력, 지배계급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특권계급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개혁과 진보를 필사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들이 의지하고 있는 유일한 버팀목은 바로 국가보안법이며, 국가보안법에 기초하고 있는 공안탄압기구와 반공반북이데올로기이다."


"낡은 체제의 지배세력들은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휘둘러 민중운동 진보운동을 탄압하고 가로막아왔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87년 이후 한국의 정치체제는 줄곧 대통령 직선제였다. 이른바 '반동적 수구세력'이 국가보안법이라는 '도구'가 사라진다해서 소수로 전락할 거라는 견해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에 의해 지탱되는 집단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은 존속해야 한다, 노무현 정권은 좌파정권이다, 따위의 주장에 동의할 준비가 되어 있는 30%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적 실체다. 조선일보는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하여 수구반동적인 언론활동을 벌여나감으로서 언론권력의 성역을 유지할 수" 있는 나약한 집단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력에 기인한 정보력으로 막강한 정치력을 유지하는 언론권력이다.


물론 그들의 권력의 근원을 원인까지 소급해서 들어가면 공권력의 물질적 힘이 나올 것이다. 가령 영남지역이 한나라당과 조선일보의 텃밭인 이유는 71년 대선에서 김대중을 꺾기 위한 박정희 정권의 지역주의 선동 때문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선동받는 이'가 "스스로 행동했다."고 믿게 만드는 교묘한 이데올로기적인 술책인 것이지, 총칼을 통한 위협은 아니다. 게다가 30년이 지난 지금 영남지역의 사람들은 실제로 '보수주의적'이고 한나라당의 주장에 대개 동의한다. 그래서 더 이상 영남의 한나라당 몰표 현상을 '지역주의'로 부르지 말자는 주장도 나온다. 영남인들의 한나라당 지지는 이제는 사실상 이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한국의 독재권력은 그 권력을 상실하면서 그 독재권력의 이념에 동의하는 지지자들을 남겨두었다.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아버지의 몸'이 죽으면서 '아버지의 법'이 구현된 것이다. 이 지지자들도 일반적인 어법에 따른다면 '국민'이며 심지어 '민중'이다. (가령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주로 저소득층, 저학력층, 지역인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이라는 특정한 '도구'를 없앤다고 이들이 사라지리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왕당파가 직접 정당을 만들며 자유주의 정당과 대립했던 영국은 물론이거니와, 혁명을 했다는 프랑스조차도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에는 왕당파 정당이 주기적으로 거대한 정치적 실체로 부상했다. 반혁명분자들을 아예 외래의 것(영국)으로 상정할 수 있었던 미국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이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부 한국인들이 정치적 반대파를 '친일잔재'라고 칭하는 것은 심정적으로 납득할 만한 주장이다. 일부 친일파들이 이 나라를 주물락 거리고 있다는 그 논리는, 그 논리의 현실성보다는 그 논리를 구성해낸 그들의 슬픈 관념에 주목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그들은 내재하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주목하기를 거부하고, 그들을 '외국인'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미국 독립혁명의 주역들이 그랬듯이.


하지만 이 나라는 '미국'이 아니며, 독재권력에 속했던 이들이 모여있는 정당이나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조차도 우리의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조건이다. 이 조건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무리들은 "그들은 쉽게 절멸될 수 있기 때문에, 절멸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뒤집어 말하면 "절멸하고 싶은 그들은 사실 쉽게 절멸될 수 있을 거야."고 믿고 싶어하는 것이다. 절대반지를 오로드루인에 집어던지면 바랏두르와 사우론의 권세가 무너지듯, 국가보안법의 폐지가 한나라당과 조선일보와 그 지지자들을 파멸시키는 장관을 보고 싶은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국가보안법 폐지'에 올인하는 정치적 선택은 실용적인 것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반대파의 절멸을 욕망하는 행위의 윤리적 정당성에 대한 판단은 뒤로 넘기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당장 노무현이 집권하면 한나라당이 절반으로 깨질거다, 그러니까 이번 한번만 우리도 밀어주자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내가 본 것은 그저 한나라당 의원 5명이 촐랑촐랑 열린우리당으로 온 광경뿐이다. 사실 그 정도 변했어도 많이 변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자신의 노선을 포기할 만큼 변한 것은 아니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적어도 자기가 원하는 정치인에게 투표한다. 정치영역에서는 더 이상 '다수-소수'의 관계가 역전되어 있다는 주장이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타나는 것은 정말로 '다수'인 것들이 '소수'를 억압하는 현상이다. '다수'라고 무조건 옳다는 법은 있을 수 없기에, 소수의 권익을 지키는 것은 앞으로 정치영역의 과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민주노동당의 권익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그게 아니라 '다수-소수'의 관계가 비정상적으로 억압되어 있는 사례를 보려면 경제영역으로 가야 할 것이다. 박경순의 주장은 한국의 시민권자들이 아직도 독재권력을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전제 하에서나 성립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자신이 '옳다'라고 믿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박경순처럼 자신이 '소수'이면서 '다수'라고 믿는 자뻑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4. 반동혁명의 징후


정치영역에서 '다수-소수'의 관계가 폭력에 의해 역전되어 있다고 본다면 이를 정상화시킬 방법은 다수의 봉기뿐이다. 봉기를 통해 다수가 정치권력을 잡는 것이 그 대안이다. 그러므로 박경순이 다음과 같은 말을 지껄이는 것은 논리적 필연이라고 볼 수 있다.


"노동자 대중과 민중들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내세우기 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피나는 투쟁을 벌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민중이 스스로 정치의 주인으로 서지 못하게 되면 정치적 권리는 고사하고 경제적 요구마저도 제대로 관철해 낼 수 없다는 피어린 교훈 때문이 아닌가? 민중이 스스로 정치의 주인이 되는 길은 결코 소수정당으로 머물러 있어서는 불가능하다. 수권정당으로 등장하고 궁극적으로 집권을 실현해야 한다.

수권정당으로 등장하고 집권을 실현하려면 낡은 정치구조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구조를 세워나가야 한다. 낡은 정치구조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구조를 세워나가는 길은 대중의 정치적 요구와 이익을 내세우고 대중과 함께 정치투쟁을 전개해 나가면서 낡은 정치세력들을 하나씩 하나씩 무너뜨려 나가는 치열한 계급투쟁, 계급적 정치적 대결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정치세력화를 통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과제인 것이다.

현 정부와 집권여당이 성장 발전해 온 과정을 보면 그들이 과연 대중의 경제적 요구와 이익을 반영하는 민생활동과 투쟁 즉 민생정치를 잘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이 집권의 길에 이르게 된 것은 순전히 정치투쟁의 덕분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민중들의 정치투쟁의 덕을 본 것이다.

(중략)

명백히 말하지만 현 시기는 미시적 정책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과 전망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치열한 정치투쟁노선과 방향을 제시하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민중과 함께 투쟁하는 거대한 전략적 투쟁의 시대이다."



하지만 이미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성립된 현대 한국에서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은 쑥스럽다. '민중의 정치적 권리'는 어찌됐건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미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실현된 것을 다시 실현하겠다고 나서는 꼴은 징후적이다. 물론 거기에는 사람을 끄는 낭만성과 매력이 있다. 가령 무솔리니는 "권력을 잡으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무엇을 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권력을 잡는 것이다." 한마디로 심심해서 의회에서 혁명적으로 세를 불려 보겠다는 얘기다.


나는 역사 끝까지 혁명이 불가능하고 필요 없을 거라고 믿는 민주주의교의 맹신도는 아니다. 다만 혁명이란 것을 위해선, 1) 민주주의 체제의 한계가 잠정적인 것이 아니라 체제근원적이라는 지적과, 2)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적 대안에 대한 모색이 선차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게다가 박경순의 '혁명'은 제대로 혁명하자는 얘기도 아니고 그냥 의회에서 세를 불리자는 얘기다. 그것도 정책이 아니라 정치투쟁만으로. 노무현에게 참 좋은 거 배웠다. 칭찬해줘야 하나?  


그가 말하는 '낡은 정치구조'와 '새로운 정치구조'의 대립 사이엔 아무런 내용이 없다. 그저 텅 빈 기표일 뿐이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혁명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반동혁명이다. 그가 말하는 '민중의 정치적 권리'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미 실현되었거나 서서히 실현되는 중이다. 민주주의 체제가 이미 성취한 것을 혁명으로 취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반동혁명이다. 역사가 그렇게 심심한가? 그런 일이 아니라도 할 일은 많다. 그런데도 박경순은 이렇게 말한다.


"300명의 이름모를 평범한 사람들의 단식도 그러한 힘을 가졌을 진데 만약에 민주노동당 의원 10명이 죽기를 각오하고 단식하고 기정 정치인들이 보여줄 수 없는 진정성을 갖고 호소하며 정말을 목숨을 내건 투쟁을 전개하여 대중들에게 감동을 준다면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것이며, 민중들의 투쟁을 폭발적으로 분출시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의석의 힘이 아닌가?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의 단식이 국무총리의 방문사과를 불러낼 수 있었던 것을 상기해보면 명확하다. 투쟁의 승리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대중이 감동하면 역사를 바꾸어 낸다. 이것이 바로 감동의 정치미학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민주노동당은 박경순이 바라는 '정치장난질'을 위해서 만들어진 정당은 아닌 것 같다. 감동은 드라마에서만 느껴도 충분하다. 투쟁은 감동적인 것이 아니다. 투쟁이 필요하다면, 필요하니까, 내몰려서 하는 일이다. 거기에 어울리는 미학이 있다면 숭고의 미학일 것이다. 숭고조차도 거듭 불리면 상스러워지거늘, 하물며 감동 따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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