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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펌/김현우] 6월 11일 토론회 발제 (2)

조회 수 774 추천 수 0 2010.06.15 22:04:30

당 정체성, 어떻게 세워 나갈 것인가

 

 

김현우 (진보신당 정책위원)

 

 

O 당 정체성을 논하는 이유

 

지방선거 평가와 함께, 많은 이들이 진보신당의 정체성 정립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정체성 정립이라는 것은 대단한 원칙이라기 보다는 가장 실용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 “1)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 당이다, 2) 그러하니 그 뜻과 방식에 동의하고 활동할 수 있는 이들은 당원이 되어 달라, 3) 그런 진보신당에 전반적으로 동의되고 좋다고 느껴지면 지지해달라라는 것을 밝히는 게 정체성이다. 이게 고답적인 좌파 전위정당에만 필요한 것으로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특정한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고자 하고 사람을 모아내고자 하는 조직이라면 당연히 그러한 정치적 정체성이 있기 마련이다. 정체성이 없는 정당은 희귀할 뿐 아니라 오래 존립하기가 어렵다. 심지어 소수 지도부가 파당적으로 운영하는 정당이라 하더라도, 그 지도자는 조직의 존재 이유와 지지 이유를 체화한다. 세계의 진보정당이 겪어온 숱한 노선투쟁은 좌파가 분열과 논쟁에 환장해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진보신당은 그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다는 안팎의 평이다. 진보신당이 독자적인 비전과 프로그램을 가진 조직이라기 보다는 아직 ()정립으로서의 당이라는 지적은 옳다. 민주노동당 분당을 통해 반정립했고, 맹목적 민족주의와 조직노동자 중심주의를 비판함으로써 반정립했으며,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와 타협하지 않고자 함으로써 반정립했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반정립의 조직이었던가? 반정립에는 이미 일정한 정(positive)의 방향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여전히 알 수 없으나 나름 괜찮은) “평등 생태 평화 연대의 가치가 있고, 당에 소속한 이들의 지향, 당을 지지하는 이들의 바램이 그것의 요소들이다. 그것을 정리해 내면 된다.

 

지금 필요한 당 정체성의 확립 토론은, 당의 정체를 규정하고 그 내용을 공유하는 것 뿐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는 방안과 과정까지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진보신당이 득표한 3%의 이유를 밝히고, 그것이 3% 이상이 되어야 할 이유를 100가지 정도 뽑아내는 과정이면 된다. 100가지 이유를 모아 한 개의 당명과 수 만 명의 당원을 만들고, 그래서 우리는 이런 정당을 한다고 말할 수 있으면 당 정체성 확립은 실현된 것이다.

 

 

O 창당 2년의 평가

 

창당 이래 진보신당은 민주노심당’, ‘심노신당등으로 조롱받곤 했다. 노회찬 대표와 심상정 전대표 개인만이 앞에 나서는 조직이란 의미지만, 당의 정체성이 불분명하고 차별적인 정치 프로그램을 가동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이유는 무엇이었나?

 

첫째, 준비되지 않은 분당과 땜빵 창당으로 인해, 심 노 두 대표를 앞장세울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여전히 분당은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며, 준비되지 않은 분당을 안타까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이야기라는 입장이다. 그리고 두 대표를 앞장세우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이 역시 이상적인 바램으로만 될 일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땜빵 창당과 진보신당 연대회의의 지속은 당 정체성이 왜 그토록 뒤로 밀리는 사안이 되었는지를 설명해줄 수는 있다.

 

둘째, 창당과 총선 이후 이제까지 당의 유일한 성장 전략은 지방선거까지 하자는 것 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중앙당과 지역 조직은 지방선거 준비 조직으로 짜여지고 활동했으며, 실질적인 제2창당은 물론이고 당원 교육이나 기관지 발행 같은 사업들도 모두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어졌다. 그 동안 당의 기획이라는 것도 지도부의 언론노출용 동선짜기가 대부분이었지, 지역이나 부문의 사업 기획이 있었던 적이 드물다. 까발리야호 대장정이든, 비정규직 투쟁 이벤트든, 태양광발전기든, 중앙에서 먼저 기획하고 추진된 것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셋째, 지도부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창당 이후 공동대표와 단일대표 체제를 거치는 동안 당의 실질적 지도부인 두 공동대표는 당 정체성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없거나 실은 내켜하지 않았다. 본인들 스스로가 당이 어떻게 가야 하느냐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이런 전망에 대해 당원들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조금 다른 측면의 사례이긴 하지만 심 전대표는 고양에 마을학교를 만들었고, 노 대표는 노원에 마들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나 초청되는 인사, 투입 역량 등을 보면 당 차원에서 해야하는 교육사업이나 연구사업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두 대표가 그렇게 지역사업을 하는 동안 당의 교육기관과 연구기관에 대한 투자는 극히 미흡했다.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명망성 있는 인물들의 지도력을 보존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지도력은 스스로 지도력을 발휘할 때 보존되고 강화되는 것이지 말로 챙겨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진보정당에서 통하는 지도력은 지도자가 감수하는 비판의 양과 전혀 무관하다.

 

넷째, 원인이자 결과로서 정파 세력의 부재다. 정파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논하기에 앞서 조직 내에서 조직의 노선과 스타일을 두고 경합하는 세력은 필연이고, 그러한 경합 속에 당의 정체성은 좀 더 구체화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당의 노선이 너무 불분명하여 다툴 꺼리가 없기 때문에(?) 경합할 정파가 생겨나고 분화되는 현상이 벌어지지 않았다. 전진이든, 민주노총 중앙파든, 사민그룹이든 한 발을 진보신당 내에 걸쳐놓고 당을 관망하는 꼴이었던 것이다. 역으로, 정체성의 확립 과정은 동시에 건강하고 책임있는 정파들을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이다.

 

 

O 당 정체성의 구성요소

 

당의 정체성은 대략 다음의 구성요소를 가질 것 같다. 이 중 일부는 강령으로, 당명으로, 사업이나 지도부의 발언, 당원들의 행동 속에서 관철될 것이다.

 

1) 역사 : 당은 어떤 흐름을 이어받아 여기까지 왔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자리 자리를 차지하고 어떤 역사적 역할을 하고자 하는가?

2) 시대규정과 정신 : 당 조직이 직면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당의 이념과 자세는 무엇인가?

3) 해석과 해법 : 이 사회의 변화/변혁을 위해 당은 어떻게 사회를 해석하고 그에 따라 어떤 해법을 강구하고자 하는가?

4) 당원 : 이 당에 몸담고자 하는 당원들은 어떤 이들이며, 어떻게 활동할 것을 동의한 이들인가?

5) 당 조직 구성과 문화 : 당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당 조직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구성되며, 어떤 문화를 가지고 움직이는가?

6) 지도자 : 그러한 정체성을 응축하여 담지하고 또한 이를 발산하는 당 지도자는 누구인가?

 

이러한 요소들은 지금 진보신당에게 충분히 규명되어 있고 공유되어 있는가? 강령, 당명, 사업, 당 조직은 그것을 잘 반영하여 만들어져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당 밖에 충분히 인지될 수 있도록 간명하고 친절하게 배치되어 있는가?

 

 

O 진보신당의 두 지표 그룹

 

왜 사람들은 진보신당을 좋아하나, 혹은 좋아하다가 말았나, 혹은 싫어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진보신당의 정체성을 밝히는 우회적 방법이기도 하고 진보신당의 정체성이 채워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당 정체성과 관련하여 적지 않은 이들이 촛불 당원을 걱정하곤 한다. 너무 강한 정체성과 당원 자격을 강제할 경우 심상정, 노회찬, 진중권을 보고 입당한 이들은 떨어져나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촛불당원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면 빨갱이 알러지를 일으키며 도망갈 집단인가? 당을 활동성을 보장하도록 정비하자고 하면 탈당계 쓸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인가?

 

소위 촛불 당원은 지금 진보신당 당원의 절반 안팎을 차지할 것이고, 수도권에는 그 비율이 더 높을 것이다. 그러나 촛불 당원은 이념 지표로 볼 때 더 좌익도 있고 온건한 쪽도 있으며, 대부분 진보신당의 잠정적 지향에 동의하는 이들이다. 당이 더 선명한 깃발와 정치방침을 가진다고 해서 반발하기 보다는, 그러한 내용을 궁금해하고 소통을 원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이에 대해 당은 제안과 토론을 준비해야지 촛불 당원의 이질성을 칭송하고 있어선 안된다.

 

오히려 진보신당이 주목해야 할 지표 그룹이 있다면 두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진보정당운동에 관심과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민주노동당에는 결합하지 않다가 분당 이후 결합한 집단이다. ‘자네를 오랫동안 지켜보아왔네하는 이들이다. 생활인으로서 활동의 곤란이 있는 이들이 많지만, 이들은 당 조직을 염려하고 물심양면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분당의 이유와 당의 급진화에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하나는 민주노동당원으로 활동하다가 분당 이후 탈당은 했으되 진보신당에 입당하지 않은 그룹이다. 이들은 진보정당 운동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충분하고 민주노동당의 문제에 대해서도 동의하지만, 진보신당이 아직 마뜩치 않은 집단이다. 민주노총을 통해 집단 입당했다가 탈당하여 냉담자로 존재하는 당원들도 적지 않지만, 진보신당이 충분히 선명하지 않고 혁신적인 활동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입당하지 않고 비판적 지지를 보내며 관망하는 이들도 유의미한 숫자로 존재한다.

 

필자는 이 두 집단이야말로 진보신당이 신경써야 할 지표 그룹이라고 생각하며, 그 숫자가 비록 몇 천명에 불과할지라도 진보신당이 내외의 굳건한 토대로 상정해야 할 집단이라고 본다. 이 두 집단의 기대와 지향에 화답하는 것이 곧 진보신당이 제대로 된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이다.

 

 

O 정체성 확립 방안

 

당의 정체성 확립은 선언이나 강령 채택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매우 현실적인 정치일정을 포함하여 몇 가지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1) 좌파 정계개편과 당명 개정 : 2창당 때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좌파세력 재편을 추진하며, 그 결과로 내년 초에 당명 개정을 포함한 재창당 당대회를 열자. 구체적으로는 사회당과의 통합 추진, 사회주의정당 추진세력과의 연대 강화, 그리고 재창당 당대회를 계기로 한 입당 운동이 될 것이다. 사회당과 진보신당은 두 당의 지향과 역사적 위치로 볼 때, ‘중복되어 존재하는 당이며, 따라서 합당과 재편은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금 선거평가와 정체성 정리 과정이야말로 이를 풀어낼 적기이다. ‘진보신당 연대회의라는 불완전한 당명을 정리하고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당명으로 바꾸는 계기이기도 하다. 좌파 정계개편의 폭이 그렇게 크지 않고 영향력도 제한적이겠지만, 21세기 한국 현실 좌파정치의 바운더리를 확인하고 핵심역량을 정비한다는 점에서 주체적으로는 중요한 의미고 미룰 필요가 없는 일이다.

 

2) 당대회를 통한 정강 문서 채택 : 당 정체성의 핵심 요소는 당명과 강령이지만, 현재의 강령은 매우 큰 방향을 담고 있는 문서로서 구체적인 정체성을 환기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현재 정기당대회가 2년에 한 번으로 되어 있는데, 중간에 정책당대회 성격으로 1주일-1달 가량 행사를 열고 이를 중기적 정강정책 혹은 전략문서로 채택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올해의 경우 가을-겨울 사이 이 정강정책 문서 작성을 위한 토론으로 당 정체성 확립 토론을 소화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3) 미디어와 교육 기관 : 당 기관지와 교육기관은 당 정체성을 환인하고 점검하는 가장 기본적인 눈귀, 손발, 심장과 두뇌다. 지방선거까지 모두 유예해왔던 이러한 계획을 재가동하면 된다. 좌파 정계개편이 진행되더라도 이런 사업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보신당에서 준비하고 추진했던 것들을 적절히 이어서 하면 된다. 돈이 문제라면 CMS 정기구독과 후원금을 모으고 가능한 재정 범위에서 추진하면 된다. 당 정체성 토론과 정리의 무대와 수단을 기관지와 교육 기관으로 삼을 수도 있다.

 

4) 당 조직의 개편 : 선거대응 중심으로 짜여져왔던 중앙당과 지역 조직을 당 고유의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체계로 바꾸는 것도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부문위원회와 부문 및 지역 기획사업의 활성화를 통해 당의 색깔을 더욱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아래는 김빠진 제2창당 논쟁이 전개되던, 200811월 토론에 제출했던 문서다. 이것을 다시 첨부하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변화한 고유명사와 상황 몇 가지를 빼고는 정체성 확립 문제와 관련하여 다시 토론할 자료로 여전히 의미가 있다는 판단에서이므로, 헤아려 읽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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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당 제2창당 토론 (정치노선) 토론문

 

 

김현우 (2008. 11.)

 

 

2창당은 말 그대로 당을 다시 만드는 것이며, 토론을 이를 위한 주요한 사항을 합의하기 위함이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논점은 대체 왜 만든 당인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 당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고자 당인지 하는 것이다. 그게 확인되면 당의 사업 원칙과 조직 체계도 도출되고 또 함께 할 세력도 자연스레 나온다.

2창당 토론의 공백과 관련하여 <레디앙>에도 기고한 바 있지만, 이 토론문에서는 정치노선에 국한하여 주장하고픈 몇가지 결론들을 다소 용감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O 가치와 깃발의 문제

 

'평등 생태 평화 연대'의 가치는 소중하고 제법 적절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진보신당의 정체성과 지향을 설명하는데 충분치 않다. 한 편으로는 더 집약적인 모토가 필요하고(당명과 수식문), 다른 한 편으로는 보다 맥락적인 설명으로 엮어져서(아마도 강령 전문) 진보신당의 존재 이유를 웅변해야 한다. 아래는 참고할만한 수식문들이다.

 

-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

- 평등세상 앞당기는 (전노협)

- 100% 좌파 (프랑스 LCR)

- 민생이 바뀝니다 (총선시기 진보신당)

-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 (새로운진보정당운동준비모임)

 

지금 우리에게라면 풍부한 진보와 폭넓은 연대를 위한또는 새로운 진보를 위한 성찰과 도전정도가 어떨지 싶은데, 너무 구 운동권스럽다면 세상을 바꾸는 칼라진보도 가능하겠다. 그런데 제2창당 토론은 수식문 만들기로 그칠 수 없으며, 강령적 시대인식과 주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4대 가치 역시 요동치는 금융 자본주의의 폭력과 위태로운 지구 행성, 다양한 형태로 약자를 강타하는 전쟁,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고리가 파괴된 피폐한 사회라는 치열한 상황 인식 속에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 속에서 진보신당은 이러한 세계를 어떻게 규정하며, 진보신당이 바꿀 세계는 무엇이라는 것, 이를 위해 진보신당의 역할은 무엇이라는 것이 입장과 의지로 밝혀져야 한다. 이는 몇 가지 가치로 분해되지 않는 정치 철학과 노선, 즉 깃발의 문제다.

 

O 체제지향 : 반자본주의의 입장을 명확히

 

당의 정체성과 노선을 확립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당연히 이념 논쟁이나 색깔 논쟁까지 해야 한다. 그것은 우선 체제지향이다. 진보신당은 현 사회 체제의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체제가 필요/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예컨대 아래의 선택지가 진보신당이 취할 수 있는 스탠스일 것이다. 특징을 편의적으로 정리한 것이고, 상충 또는 교차되는 측면도 있지만 논의 스펙트럼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국가사회주의 : 노동계급 중심 1당 정치, 국유화 및 국가 기구 중심 사회 운용

- 민주적 사회주의 : 다당제 인정하고 대의제 통한 이행 존중하나 국가 제도 변형 강조

- 북유럽형 사민주의 : 노동계급 통제력 통한 사회적 시장경제, 강력하고 큰 복지국가

- 서유럽형 사민주의 : 조직노동에 기반하지만 catch-all party 지향하며 시장에 대한 부분 제어 추구

- 인간적인(?) 시장자본주의 : 시장 경제 원리 하에 사회안전망 강화

- 생태 사회주의 : 국가 못지않게 풀뿌리 수준 지역 경제 및 정치 대안 중시

 

이 중 하나 아니면 이를 다 인정하는 열린 체제 지향이 입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되든 냉혹한 현실 인식과 논쟁 속에 나온 결론이어야 한다. 당원여론조사 결과 57%가 사민주의 지향으로 나왔다고 한다. 설문 구성이 적절치 않았다고 보지만 향후 논쟁 속에서 재확인된다면 진보신당은 사민주의 깃발을 내거는 것이 옳으며, 다른 의견을 가진 개인과 그룹은 토론과 선전을 통해 경합할 일이다.

기실 좌파 사민주의, 유로코뮤니즘 좌파, 민주적 사회주의 등은 지금 유의미한 차이를 갖기 어렵다. 다만 확인할 것은 자본주의적 시장에 대한 입장과 의회 바깥의 대중운동에 대한 입장이다. 현재 한국의 자칭 사민주의 그룹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존중과 부르주아 의회 정치 유일론 -- 그리고 대한민국 국가의 정통성 인정 -- 을 주장하고 있는 바, 진보신당이 이에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평등, 생태, 평화, 연대의 가치를 위협하고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동학에 대한 분명한 극복의 의지 천명이 당연하다.

그런데 공허한 깃발 이상의 사회주의 이행 프로그램이 있기나 하는가? 진보적 구조개혁, 사회국가, 기본소득 보장 등 이미 진전된 고민들이 존재하고 여기부터 출발하면 충분하다.

 

O 주체 구성 : 노동계급의 재형성 추구

 

당의 성격과 주체 전략의 문제다. 쉽게 말해 당은 계급 전위정당, 대중적 계급정당, 피해대중 연합당, 현대적 국민정당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 동시에 주체 전략과 연관하여, 당은 과거와 같은 노동계급 중심성을 인정하는가, 아니면 그 중심성은 재구성되거나 부인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해명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예컨대 노건추가 결정하도록 맡길 부분이 아니다.

계급 전위정당은 진리를 담지한 소수의 전위를 상정하며 그것이 노동계급의 전위라 주장한다. 이에 비해 대중적 계급정당은 노동계급이 현 체제의 피해자이자 미래 사회의 주역으로서 유의미하다고 간주하지만 그 실현은 대중적이고 계급연합적이어야 한다고 보는 쪽이다. 피해대중 연합당이나 현대적 국민정당은 노동계급에 별다른 유의성을 두지 않으며, 전자가 상대적으로 반자본주의적이라는 차이가 있을 듯싶다.

노동계급의 유의미성은 유지되어야 하는가? 신비화된 노동계급의 당파성이 아닌 한 그래야 한다. 그러나 그 노동계급은 현실의 단초에서 미래의 구체로, 당과 같이 성장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로 진보신당은 지금 당장 노동계급의 당이라기 보다는 노동계급 재형성을 추구하는 동지이나 조직자가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재형성된 노동계급은 보다 보편적 평등 지향적이고 연대적인 (보다 적색인) 노동계급이자, 생태적 지속가능성 고려와 지역 수준의 대안에 함께 하는 (보다 녹색인) 노동계급일 것이다. 이는 현실의 조직노동이 당장 진보신당과 큰 덩어리로 함께 하기 어렵다는 매우 아픈 인정을 수반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곧 조직화된 노동이 아니며, 노동정치의 주체가 오로지 진보정당만도 아니다 -- 이 주장은 사실 예전부터 사회당, 노동자의 힘 등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에 대해 해온 지적이다. 그들의 부족함과 별개로 이 대목에서 진보신당은 인정할 부분이 있다.

문제는 미래다. 한국사회에서 10%에 불과한 조직력이라는 현상 보다, 노동 구성과 성격의 다양화와 복잡화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의 민주노총이 노동계급의 재형성과 정치화에 긍정적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있다면 좀더 솔직하고 과감해야 한다. 진보신당이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불안정 노동집단의 우산을 만들거나 우산의 일부가 될 제안을 던져야 한다. 기존 조직과 크게 충돌하지 않으면서 공공/비정규 부문을 조직한 프랑스의 SUD 노조의 사례를 살펴봄직 하다.

 

O 운동 전략 : 사회운동적 대중정당

 

당이 운동을 풀어가는 방식이다. 의회진출 중심인가, 기성제도 활용 중심인가, 사회운동적 정당인가 등등. 이는 당의 성장 전략 및 연대 전략과도 연관되는 것으로, 의회도 중요하지만 사회운동도 존중한다는 식의 절충 이상이어야 한다. 과거 민주노동당 의회전략 실패를 의원과 당 조직의 대응을 가지고 평가하기 이전에, 의회를 통해 무엇을 한다는 전략이 합의된 바 없었음을 지적해둔다.

사회운동적 대중정당이란 의회와 선거를 통한 집권을 고집하지 않는(?) 정당이다. 의회와 선거를 적극 활용하지만, 그것만으로 체제가 바뀌지 않음을 선전하며, 현재와 같은 국가와 의회의 작동방식을 상대화하는 노선이다. 이는 브라질노동자당의 참여예산제 같은 지역 프로그램으로 나올 수도 있고, 가두의 발언과 직접행동을 정치과정의 일부로 인정하는 관행이나 합의로 구현될 수도 있다. 훈련된 기성정치인으로 상징되는 대의자를 고정시키지 않고, 의회를 통한 과정 외의 -- 중앙 국가기구를 변형시키고 상대화하는 -- 정치과정을 활성화하는 노선이다.

이것이 혹 국회 의석이 없다는 진보신당의 처지 때문에 나온 발상은 아닌가? 그러나 서구식 정상적(?) 정당정치를 유일한 모델로 삼을 필요는 전혀 없으며, 이미 세계적 현상이 변하고 있다. 중남미의 사례들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유럽 지역에서 기존 사민당, 노동당의 왼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련의 그룹핑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 사회당, 독일 좌파당(Die Linke), 프랑스의 LCR, 영국의 RESPECT, 이탈리아의 재건공산당-무지개연합 등은 선거 상으로도 일부 성과를 내고 있을 뿐 아니라 당의 운동 방식도 과거와 다르다. 이들은 보편적 평등주의 프로그램과 함께 여성주의, 생태주의 지향을 자연스레 담고 있으며, 대중운동에 적극 결합할 뿐 아니라 당 자체가 사회운동적 스타일로 운영된다.

자신의 당이 집권해야만 세상을 제대로 바꿀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오만이고 억측이다. 집권 이전에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노선, 혼자만의 집권이 아니라 사회운동과 대안 적 정치블럭의 전반적 형성과 변화 속에 자신의 역할을 자리매김하는 노선이 필요하다. 물론 더 춥고 배고플 수 있는 길이겠지만, 이미 21세기의 세계 진보정치 지형은 새롭게 구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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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3 협상은 끝났다. [4] 이상한 모자 2010-03-16 7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