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민원인 열전

조회 수 759 추천 수 0 2010.03.16 02:26:29

나는 말을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화를 내는 스타일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행인A : 저기요.

나 : 네.

행인A : 수원역..

나 : 네.

행인A : 길을..

나 : 네.

행인A : 저, 죄송한데요. 수원역..

나 : 네.

행인A : 실례합니다. 제가 지금 수원역을 찾아가려고 하는데 길을 찾지 못해 도움을 요청합니다. 길을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 : 여기서 저 쪽으로 직진 하셔서요..

 

요즘 내 생활을 아는 사람들은 무슨 소리 할 지 감이 딱 올 것이다. 민원인들 얘기다. 민원인들은 항상 날 열받게 한다. 가장 많은 경우는 없는 부서를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서 오는 경우이다. '여기 사회과가 어디있어?'(반말로 찍찍) 라고 묻는 경우다. '사회과'라는 건 없다. 어떤 관청에도 '사회과'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당당히 묻는다. 사회과 어디있냐고..

 

두 번째로 많은 경우는 대답을 똑바로 안 하는 경우다. '사회과 어디 있어요?' 라고 물으면 '여기 사회과 없는데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 내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랬다간 욕 먹기 딱 좋다. 그래서 친절하게 물어준다. '뭐하시러 오셨어요?' (구청의 바람직한 언어는 무조건 주어가 뭐든 모든 동사를 높이면 된다) 보통 이렇게 대답한다. '아, 뭐 할 게 있어서요.' 그럼 물론 할 게 있으니까 왔겠지. 결국 오늘은 이런 경우가 나왔다.

 

나 : 어떻게 오셨어요?

민원인 : 여기 에너지관리과가 어딨습니까?

나 : (에너지관리과는 없지..) 뭐 하시러 오셨어요?

민원인 : 볼 일 있어서요.

나 : 뭐 하시려구요?

민원인 : 물어볼 것이 있어서요.

나 : 뭐 하시려구요?

민원인 : 제가 외국인 신분인데, 사업을 좀 하려구요.

나 : 뭐 하시려구요?

민원인 : 주요소요.

나 : 왼쪽에 문으로 나가시며는요. 저쪽 복도에 환경위생과가 있으시거든요? (모든 동사를 높여야 한다) 그쪽으로 가세요~!

 

가끔은 비슷한 부서 이름을 대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도 정확하게 뭘 하러 왔는지 물어야 한다. 민원인이 구청의 업무 분장을 전부 다 알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 저기 여기 사회복지과가 어디있소?

나 : 사회복지과 없으시구요. 주민생활지원과가 있으시구요. 왼편 복도로 가시면.. 아! 근데 뭐 하시려구요?

할아버지 : 응, 공공근로 신청 하려구.

나 : 이층으로 가시며는요. 오른쪽에 보시며는요. 경제교통과라구 있으시거든요? 그쪽으로 가셔요.

 

여긴 민원이 많으니 번호표가 있는데 이것도 참 애물단지다. 원리는 간단하다. 화면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업무를 누른다. 1) 등, 초본 및 가족관계증명원 2) 인감증명 3) 토지대장 및 토지이용계획 4) 건축물대장 ... 이 중에 하고 싶은 것을 누르면 번호표가 나오고 이것을 잘 가지고 있다가 은행처럼 위에 숫자가 뜨면 그 창구로 가면 된다.

 

근데 민원인들이, 이걸 이용을 못한다!

 

첫째, 터치스크린을 이해하지 않는 경우

 

민원인 : 저기요. 번호표가 안 나오는데요. 없는데요. 고장났나봐요.

나 : 화면에 하시고 싶으신 업무 누르시구요. 그러면 번호표 나오시거든요? 저 위에 번호표에 번호 뜨세요. 그럼 번호 뜨시는 창구로 가세요.

민원인 : 아 예.

 

둘째, 번호표의 번호와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민원인 : 아 3003번은 어디로 가야 혀?

나 : 저 위에 번호표에 적힌 번호 뜨세요. 번호 뜨시면 그 창구로 가시면 돼요.

 

셋째, 번호표가 의심스러운 경우.

 

민원인 : 아니 지금 15번 뜨는데 나는 3004번이야. 잘못된거 아냐?

나 : 선생님. 업무마다 앞 번호가 틀리셔서 그러세요. 건축물 대장 뽑으실때는 앞번호가 3번이세요. 인감 떼실때는 앞번호가 1번이세요. 기다리시면 저 위에 번호 뜨세요.

 

넷째, 이 모든 것이 한 번에!

 

민원인 : (주민등록증을 꺼내며) 아 인감, 인감 한 통 떼줘.

나 : 저기 번호표 뽑으시구요.

민원인 : (번호표 출력 기계를 툭툭치며) 안 나와~ 고장났나벼~

나 : 화면에서 하시고 싶으신 업무 누르시구요.

민원인 : 아 그렇구만! (번호표를 뽑고) 1007번인데 어디로 가야혀?

나 : 저 위에 보시면은 번호가 뜨실거거든요? 번호 뜨시면 그 창구로 가세요.

민원인 : 아 근데 지금 15번 떠있는데 나는 1007번이여. 고장난거 아녀? 이거? 천 명을 기다리란 말여?

나 : 업무마다 앞 번호가 다르세요.

 

그니까, 내 얘기는, 사는게 짜증난다고!


Axel

2010.03.16 10:19:58
*.253.60.49

민원 업무....힘들다고 그러던데, 정말 사람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시군요.ㄷㄷ

구경꾼

2010.03.17 01:46:19
*.171.216.146

배꼽을 잡았네요. ^^;; 퍼가도 되겠죠? 대민홍보차원으루다가~~

박버섯

2010.03.17 09:17:19
*.33.68.240

스승님, 제가 책에서 교정 오류를 2개 찾았습니다.
사는게 더 짜증 나시라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구요;
'문제라가' -> 문제가
'도우지' -> 돕지

이상한 모자

2010.03.18 11:03:37
*.114.22.71

저도 책 보면서 오타 많이 찾았습니다. 생각보다.. 많더라구요. 뭐 애초에 제가 완벽하게 써서 내면 될 일이었으니, 제 업보라고 생각합니다.

고양이

2010.03.20 09:23:58
*.140.136.145

위로가 될지 신경질이 나실지 모르겠지만, 완벽하게 써서 내도 오타 생긴답니다. 그게 워드파일->조판용 파일로 변환되면서 오타가 생기는 경우도 있고, 출판사 전산실 디자이너나 편집자가 실수하는 경우도 있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1232 [기사] 역시 사람은 배가 있어야 돼 이상한 모자 2010-02-27 758
1231 자의식 이상한 모자 2010-09-19 758
1230 지방선거에 대한 단상 이상한 모자 2010-01-28 758
1229 기타치고 노래하는 동영상 이상한 모자 2010-02-02 758
» 민원인 열전 [5] 이상한 모자 2010-03-16 759
1227 [레디앙] 프랑스도 방송장악 저지 투쟁 중 이상한 모자 2009-01-02 759
1226 은평 을에 대한 전망? [1] 이상한 모자 2010-07-18 760
1225 재미있는 오늘의 기사 2개 이상한 모자 2010-01-11 761
1224 심상정 사퇴에 대한 큰 스승 7문 7답 이상한 모자 2010-06-01 761
1223 돈 쓸 일이 많다. file [1] 이상한 모자 2010-03-03 762
1222 [쓸모없게 된 글] 심상정을 권한다 [1] 이상한 모자 2010-05-31 762
1221 망했네 file 이상한 모자 2010-03-20 763
1220 여러분~! 인터넷이 풀렸슴다! file 이상한 모자 2011-01-02 763
1219 심상정 출마선언을 지켜보며 file [2] 이상한 모자 2010-01-20 763
1218 사람이 아닌 것들과 file 이상한 모자 2010-03-24 764
1217 어제의 그 무슨 도배 소동이라는 것에 대한 진실 [1] 울적한 ... 2010-10-14 765
1216 심상정의 초반 행보 이상한 모자 2010-01-18 765
1215 선거를 마치고... [1] 박버섯 2010-10-15 766
1214 [사진] 진보신당 똥차 [2] 이상한 모자 2010-05-23 766
1213 이종걸 출마선언의 핵심 이상한 모자 2010-01-27 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