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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손재주

조회 수 5009 추천 수 0 2008.06.27 14:27:36



나의 외가는 손재주가 좋고, 친가 쪽은 그런 재주 대신, 좋은 외모를 갖고 있다. 외가가 목수라면 친가는 구라꾼이다.
한쪽은 손으로 빚어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쪽은 머리와 입으로 예술하는 사람들이다.
(어머니는 화가, 영감님는 직업 정치인)


나의 외모는 철저히 외탁이지만, 손재주는 친가 쪽 사람들처럼 젬병이었다.
어릴 적에는 나는 양쪽 집안의 열성을 모아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양가 사촌 육촌들 중  키도 가장 작았다. 웁쓰)
다만 동글동글한 성격과 여성스러운 부분은 어머니의 그것과 무척 닮았는데,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지.


나는 어머니와 그 형제들이 가진 손재주가 늘 부러웠다.
눈에 보이는 무엇, 손으로 빚어서 형상을 가진 창작품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재주가 없는 내가 예술 엇비슷한 것이라도 하고 싶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영화였다.

지금도 나는 손으로 일하는 이들을 보면 일종의 경외감을 느낀다.
목수는 말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카센터를 하는 와이프 친구 분이나 오토바이 가게를 하는 친구 아버님을 볼 때에도 놀랍다.
그들은 나사하나를 조이더라도 멋있다. 요령이라면 요령이고 예술이라면 예술인데,
미세한 손동작 하나로 일반인들이 조아 놓은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 영감님은 형광등 한번 간 적이 없다.
화장실 변기의 고리가 끊어지더라도, 문짝 경칩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하다못해 못질하나 하는 경우에도,
그런 일들은 철저하게 어머님의 손을 거쳐야만 제대로 돌아갔다.
어릴 적에는 그런 모습이 싫어서 내가 나서서 해보려고도 했으나, 그럴 때마다 깔끔한 결과물은 없고 옷만 버렸다.
결국 "나는 공부를 못해"처럼 "나는 요령이 없군"이란 결론을 내렸고, 공부를 파는 수밖에 없었다. 


군대에서 삽질을 할 때에도 아무리 해도 좀처럼 삽질의 기술은 늘지 않았다. 하도 시키니까 겨우 남들 따라가는 정도였을 뿐.
어느덧 짬이 차서 삽질 대신, 사람 굴리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
그 일을 너무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섬칫 했던 적이 있다. 나는 체질이었다. 사람들을 어르고 달래는 일에서.
어릴 적 느꼈던 손재주 부족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지금도 타이핑과 인터넷 정도만 할 줄 알 뿐, 거의 컴맹이다.
낯선 에러, 바이러스가 걸리면 아내를 먼저 찾게 된다. (seed는 전산과 출신)
체력은 좋지만, 수영과 달리기를 잘 할 뿐이고, "개발"이다.
운전은 하지만 그건 기술이 아니니 Pass.
나도 나름의 손재주가 있긴 한데, 그걸 경험한 사람은 스무 명 조금 넘을라나?


친가 쪽 멤버들에게 물려받은 것들 중 그나마 괜찮은 거라면, 근성 같은 건데
하염없이 꼬라박을 수 있는 체력이랄까 똥고집 비스무리한 것이 있고...  그리고 "알콜"이다.
사실 외가도 술이 약한 게 아니라서 굳이 친탁이라 할 수도 없지만, 친가 쪽 양반들이 워낙 말술인지라...
그들 중 내가 가장 약한 축에 든다. 삼사오육촌은 말할 것도 없고, 희한하게도 각자의 연인들까지 다 말술만 데리고 산다.

그나마 요즘엔 술도 많이 줄었는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술값은 원래도 조금 밖에 못 냈으니 똑같은데 끝까지 못 달리니까 좀 아쉽기는 하다.




이쯤에서 보좌관兄에게 들은 영감님 알콜 이야기 하나,

시의원 시절, 감사 시즌에 시장, 부시장, 각 국장 과장들을 졸라리 격파 시킨 일이 있단다.
감사가 끝나고 그 멤버들이(약 50명 정도) 고깃 집에 모여 회식하고 있는 자리에 영감님이 간 것이다.
멤버들은 꼬장 좀 부려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때마침 등장한 영감님은 앉아마자
소주 한 잔 주고 한 잔 받고 하는 식으로 시장부터 한 바퀴 쭈욱 도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멤버들도 몇 명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열외 1명 없이 단숨에 50명을 다 돌았다. 점점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인간들.
모든 인간들과 1잔씩을 나눠 마신 뒤, 한마디 하는데... 
"오늘 내가 심하게 야단친 것은 조금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에도 이런 식이면 나는 똑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다. 기분 상한 건 이걸로 이 한잔으로 잊으시고, 다음부터 똑바로 하시라"
그러고도 앉은 자리에서 한 시간 가량 더 마신 뒤 집으로 돌아왔단다.
정말 가끔이지만 여전히 두주불사인 그 양반이 부럽기도 하다.



추신 1
080619에 마신 것이 마지막 술자리였으니 1주일이 되었다.
나쁘지는 않은데, 해질 녘 바닷가를 걷다보면 목구멍이 간질간질하다.
냉수 한 모금 마시고 벌렁 자빠지면 사그라들긴 하지만 그러기 전에 나는 수영을 두 시간이나 한다.


추신 2
AS기사님이신 노지아 님과,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이상한 모자님이 보고 싶다.
아흐리만의 4벌쳐 드랍도 보고 싶고...
크힝~






이상한 모자

2008.06.27 14:37:55
*.77.132.117

스, 스무명!!!

ssy

2008.06.27 14:47:14
*.205.145.136

역시 빠르시군. 하지만 그 시절은 몇만 광년 떨어진 것처럼 아득하다네.

이상한 모자

2008.06.27 16:26:09
*.77.132.117

물론 그렇겠지. 엊그제 같구나 라고 말하면 혼날테니까.

ssy

2008.06.28 10:14:59
*.205.145.133

ㅎㅎ 그게 그런 거였군. 난 왜 이렇게 아득할까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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