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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전략)

 

풀뿌리는 확실히 빨갛거나 희다

 

지금까지 지적된 문제들의 대안으로 지역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5.31 지방선거의 평가에 있어서도 이러한 주장은 또다시 '반복'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주장을 내놓는 사람들이 민주노동당 내에 이 지역운동이라는 것을 어찌 어찌 해야 한다 라는 명확한 상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역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우 지역운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어떤 지역은 그냥 평소에 여기저기 머리 좀 들이밀고 이름을 걸어놓는데 정력을 소비한다. 인지도를 높여서 선거 시기 이득 좀 볼 수 있다는 전망이다.

 

어떤 지역은 당의 정책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동의를 구하기 위해 선전전을 진행한다. 선전전을 잘 하면 시민들의 몇몇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것이고 몇 명 정도는 당원가입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퍼포먼스를 곁들이면 더 많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어떤 지역은 당의 이념에 맞는 시민단체들의 사업이나 노동조합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함께하는 방식의 지역사업을 선호한다. 그리고 그것은 당의 정치적 역할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기에 진정으로 진보정당의 그것에 걸 맞는 지역운동 방식처럼 표현된다. 게다가 그것은 일군의 시민단체 매니아와 조합주의자들에 의해 이전에 언급했던 지역운동의 방식에 대해 '대안적'인 것으로 사고되기까지 한다.

 

이재영 레디앙 기획위원이 기가 막히게 표현한 것과 같이 풀뿌리는 빨갛거나 희다. 민주노동당의 지역운동 조직은 풀뿌리를 캐는 방법을 모른다. 풀뿌리를 캐본 적이 없기 때문에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이러저러한 지역운동을 펼치며 성과를 올리려 하고 있으나 그러한 것들은 대개 보수정당의 방식이거나 조직된 일부 노동자 및 서민에게만 주효한 방식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들은 지역운동의 '보조 장치'로서 충분히 활용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코 진보정당 운동의 전형적이고 가치 있는 지역운동의 방향을 제시할 수는 없다.

 

5.31 지방선거 패배의 주요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사실 여기서부터 문제를 짚어 나가야 한다. 진보정당이 펼쳐야 할 지역운동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지역운동을 실천하기 위하여 우리 운동이 가져야 할 기조와 전망은 무엇인가?

 

개념없는 의회주의

 

노선과 기조, 전망.. 아마 이런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일부 당원들은 지긋지긋한 당내 좌우파 갈등 구도에 들어서서 싸우기 시작할 것이다. 형성되어 있는 구도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시작된 모든 논의가 그러한 구도 속에서 의미를 잃고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그런 싸움은 당내 선거 시기에나 하는 것이 좋고, 지금은 일상적인 당 운동의 노선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하는 것이 생산적이다. 오래된 당내 좌, 우 구도를 넘어서서 새롭게 형성되는 구도를 놓고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것을 전제한 후, 나는 우선 개념 없는 의회주의에 대해 언급해 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레닌주의자는 의회주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데, 문제는 우리의 진보정당을 물들이고 있는 의회주의는 상당히 '개념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2004년 총선의 결과로 10명의 진보정당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이후 우리의 정치 노선에 대한 고뇌와 번민은 '국회의원을 가진 정당' 이라는 허울 속에 제한되었다. 그 전까지 활발히 이루어지던 이러 저러한 대안정당의 모델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중단되었다. 의원단에게는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고 민주노동당원 중 상당수는 그것 외에는 시선을 두지 않게 되었다.

 

때문에 진보정당의 물적 토대는 성장하지 않았다. 튼튼한 기초 대신에 유령 같은 상층 고공 정치가 당원들의 일희일비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비극적이었다. 민주노동당의 부르주아 정치 일정에 관심이 있는 것은 오로지 민주노동당의 당원들뿐이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가 확보한 지지율이 어디로부터 획득되었는가에 대한 두 가지 가능성을 보여준다. 첫째는 당원, 혹은 당원 수준의 충성도를 가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보내는 미미한 양의 지지요, 둘째는 정체모를 양심적 정의감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존 보수정당에 대한 반감에 기초한 막연한 기대와 호의다. 요는 일종의 '반사이익' 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당원들이 지지는 '의원단이 잘 해서' 얻는 것이라 착각한다.

 

퇴행적인 조합주의

 

이러한 비판을 늘어놓으면 아마 '투쟁'으로 대답하는 '동지'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투쟁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동지들이 외치는 투쟁은 보통 조합주의로 귀결되는 것 같다. 노동조합의 투쟁에 열심히 연대하는, 그러니까 같이 나가서 전경의 방패를 두들기는 일을 많이 하면 계급 투표나 뭐 그런 것들이 순식간에 조직되어서 진보정당을 구원해줄 것이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종종 노동조합이 당을 지도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극단적으로 이것은 당이 마치 노동조합의 악세서리인 것처럼 표현되기도 한다. 재밌는 얘기다.

 

물론 투쟁의 현안에 연대하고 함께 싸우는 것은 진보정당의 당연한 의무이고 책임이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우리 운동의 전망인 것처럼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포커스가 어긋난 얘기다. 조합운동이 우리 운동의 전망인 것과 투쟁에 연대하는 문제는 명백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조합운동은 변혁운동의 전부가 아니다. 조합운동과 계급운동은 동의어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운동이 후퇴한 배경에는 조합주의자들이 조합운동, 그 이상의 전망을 가지지 못한 책임이 분명하게 깔려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의 조합운동에 안주하려 하는 것은 일종의 퇴행이며 상상력 부족이다.

 

초보적인 지역운동

 

그렇다는 것을 한참 이야기 하고 있으면 또 일군의 사람들이 달려와 역시 '지역운동만이 희망'이라 말을 할 것이다. 그런데 진보정당의 그 지역운동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상당히 초보적인 형태에 불과하다.

 

조금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대중화된 소비사회에서 노동자는 하루 종일 굴절된 정치 관념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정치와 경제에 대한 정보는 오로지 지배계급에 의해서만 통제되어 제공되고 있으며 그의 모든 삶의 양식은 부르주아의 질서에 끼워 맞춰져 있다.

 

앞서 언급한 조합주의자들은 이것은 노동조합의, 조직된 노동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종종 정규직 노동자들은 같은 노동계급의 일원들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적대감을 표시한다. 그것이 노동조합의 운동 수준에서도 비극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문제는 계급의식이다. 정치의 시작은 자신과 다른 주체에 대해 사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급 정치의 시작은 자신과 다른 주체가 자신과 동일한 계급의 일원임을 인식하는 것일 게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가 부재하다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문제다.

 

한 예로, 일부에서 노동자를 혁명적으로 만드는 수단으로 굳건히 믿고 있는 노동조합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기업별 노동조합 체계에서 조합원들은 자신이 속한 기업에서 공통된 업무, 정서, 취향 등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 이상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공간' 과 '체계', '한계'의 문제가 노동자들의 '정치'를 규정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현재의 구조에서 이 문제를 정직하게 돌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면 성과는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우리는 근본적인 해결점에 다다르지는 못할 것이다. 구조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자본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가 좋은 정책을 생산하고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정당운동을 한다면 분명 어느 정도 지지율도 오르게 할 수 있고 당원의 수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이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조금만 구조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속도를 바꾸면, 마치 우리 운동의 성과가 '비정규직'이라는 함정에 빠져 무너져 내렸던 것과 같이 우리의 진보정당 운동도 순식간에 무력한 것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때문에 시민사회를 부르주아의 방식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방식으로 재편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것은 지배계급이 장악한 물적 토대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저항이다. 그들이 이리 저리 연결해놓은 고리와 사슬을 끊고 진정 자유로운 노동계급의 새로운 공간, 노동자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해 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독일이나 스위스 등 외국의 사례를 꼼꼼하게 검토하고 우리의 현실에 맞는 방법론을 개발해 내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다.

 

대산별 전환, 모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

 

물론 지금 언급한 지역 시민사회의 계급적 재편은 우리의 현실에서 공허하고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에게 다시금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는가? 2004년 총선의 결과물인 국회의원들과 조금만 더 하면 '메이저 정당'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기대감이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차피 우리에게는 모험의 시기가 닥쳐오고 있다. 벌써 2007년에 노사관계로드맵과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엄청난 자본의 공세가 예상되어 있다. 이것을 정면 돌파 하는 방법은 지금의 기업별노조 체제를 어떻게든 재빨리 산별노조 체제로 전환하는 방법뿐이다.

 

민주노총은 벌써 오래전부터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모색해왔고 그 궁극적 목표점은 대산별 체제로의 재편이다. 그것을 위한 준비가 지금도 차례로 진행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구심이 기업에서 지역으로 옮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 그리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우리가 고민하는 진보정당의 '지역정치' 문제와 맞물리게 된다.

 

이 부분에서 접점을 찾아 힘을 모아야 한다. 어차피 닥친 위기이고 이것을 정면 돌파할 계획이 세워져 있다면 더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진보정당과 산별노조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지역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노동계급에 단단히 뿌리박은 전체 변혁 운동을 이제 조직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대선이라는 관문을 돌파해야 한다. 대선의 판을 노동계급의 시민사회 재편이라는 이슈의 선전장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부르주아의 정치 일정을 이용해 부르주아의 정치에 균열을 내고 그들의 기만과 위선을 폭로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노동계급의 의회주의다.


이상한 모자

2010.02.18 00:32:39
*.146.143.41

언젠가 한 번 올렸던 것도 같은 느낌이지만, 손낙구 아저씨의 논의에 견해를 첨부하기 위하여 자펌을 해본다.

원문은 여기.
http://goequal.org/bbs/view.php?id=column&page=7&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40

무려 5년 가까이 된 글이므로 스스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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