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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펌] 배트맨과 페이트

조회 수 1256 추천 수 0 2008.09.16 00:35:49
「아───────」

조커는 고층빌딩 옥상의 난간 위에 서서 고담시를 내려보고 있었다.

「조커, 모든 준비가 끝났다. 곧 배트맨이 도착할거야」
「쇼타임이군. 이제 됐어, 너희 쓰레기들은 그냥 꺼져버려」

조커의 손짓에 부하들은 궁시렁 대면서 옥상에서 사라졌다.

「꿈에서 깰 시간이야.」

그 말은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배트맨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인지. 그저 공허하게 밤하늘로 사라졌다

*

강철같은 육신은 상처투성이,

심장은 녹이 슨 것마냥 삐걱거린다.

이제와서는 너덜너덜하지 않은 곳을 찾아내는 것이 어려울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배트맨은 멈추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자는 죽었고,

동경하던 사람은 타락했으며,

지키고 싶던 도시는 망가졌다.

모두에게 비난을 사면서, 오면을 뒤집어쓰면서

이제는 포기해도 좋을텐데, 이제는 편해져도 좋을텐데.

그래도 배트맨은 멈추지 않는다.

이정도엔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듯이,
이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고담을 지키기 위해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사실은 아니면서.

브루스 웨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배트맨이었다.

「조커─────」

어느새 옥상에 도착한 배트맨은 힘차게 문을 걷어차며 돌진했다.

배트맨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다.

평소에는 잘 단련된 일본도같던 그의 정신과 육체는

과도하게 마모되어 이제는 부러질듯이 한겹밖에 남지 않았다.

「Why So Serious?」

그런 배트맨을 보면서──── 조커는 기폭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

순간,

거대한 폭염이 빌딩을 감쌌다.

조커와 배트맨이 있는 옥상을 제외한 건물의 모든 부분이 타오르고 있었다.

짝짝짝

당황해하는 배트맨 앞으로 조커가 다가선다.

「축하해, 배트맨. 이걸로 이 도시의 쓰레기가 99%는 사라졌지」

조커는 기괴한 얼굴을 비틀며 말했다.

「물론 아직 1%인 나는 남았지만 말이지」

조커의 표정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이제 분간이 되지 않는다.

「조커, 넌 대체──────」

*

웃음을 짓는 것 마냥 우스꽝스러운 그 흉터가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커 그 자신도 모른다.

부모의 학대때문인지, 부인을 위로하기 위해서인지.

잊어버린 건지, 어째서 생긴지도 모르는 흉터를 안고

조커는 고담의 뒷골목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비정하고, 무정하고, 사악하고, 혼란스럽고, 메마른.

고담의 뒷골목에 흉측한 몰골의 조커를 위한 자리는 없다.

조커나이또래의 남자들에게 이곳에서 주어진 일자리는 두개뿐이다.

약물의 노예이거나, 갱단의 총알받이.

조커는 그 중 무엇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조커는 자신의 신세가 한심해서 히죽─ 하고 웃어보려고했지만 웃어지지 않았다.

참으로 기구한 마지막이라며 조커는 그렇게 쓰러졌다.

*

하지만 조커는 죽지않았다.

「다행이에요, 만약 '웨인씨'가 당신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정말로 죽었을거에요 」

그것은 조커가 태어나서 처음 느낀,
고담에서 처음 느낀,

자그마한 따뜻함. 온기. 온정. 인정. 사랑.

그 것이 자그마하다고 금방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다.

체력을 회복한 조커는 웨인그룹을 찾아갔다. '웨인씨'란 사람이 누구인지 보고싶었다.

물어보고 싶었다. 왜 자신을 구해주었는지.

흉측한 몰골의 그를 웨인그룹 본사 건물에서 들여보내줄리 만무했다.

경비원들에게 수십번씩 끌려나오고, 경찰서 유치장에 잡혀가기까지 하면서도 조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하야─

결국 조커는 '웨인씨'를 만났다.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 전부나 마찬가지인 구원.

현실에서 만난 영웅은 상상 속에서보다 더 거대했다.

그리고 따스했다.

'웨인씨'는 조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조언을 해주었으며, 일자리를 알아봐주었다.

조커는 그렇게 고담에 녹아들어갔다.

*

그러던 어느날─────

'웨인씨'는. 고담을 사랑하고 지키던 영웅은.

무법자들에 의해서 암살당했다.

조커는 슬퍼했다. 분노했다. 오열했다.

그러나 절망하지는 않았다.

「만약 웨인씨가 사라지면 고담은 어쩌죠?」 라고 조커가 물었을 때
「그렇다면 네가 내 아들을 도와서 고담을 지켜주면 되는거지」 라고 말해주었다.

아직 희망은 있다.
'웨인씨'의 아들 '브루스 웨인'.

그러나 브루스 웨인은 사라졌다.

어디서도 그 이름을 들을 수 없었다.

도시는 비탄에 잠기고, 혼란에 삼켜졌다.

공권력은 무능하고, 부패하고, 한심하고, 믿을 수 없다.

'웨인씨'가 지켜왔던 고담이 빠르게 망가져갔다.

부식되고, 부패되고, 무너지고, 부숴지고, 흔들리고, 붕괴되고, 파괴된다.

조커는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무언가, 방법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고담에서 조커가 무언가 할 수 있는게 있을 턱이 없다.

절망한 조커는 일자리를 잃고 다시 거리로 쫒겨났다.

*

조커는 고층빌딩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죽기로 결심했다.

위에서 내려다 본 고담의 야경은 황량했다.

예전처럼 따뜻하고 밝지 않았다.

그때였다──

조커가 한쪽 발을 내딛으려던 순간, 한 생각이 그를 붙들고 늘어졌다.

어째서 고담에는 악이 끊이지 않는가?

그것은 무수한 악의 조직이 점조직화하여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놈을 없애도 재빨리 다른 놈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압도적으로 카리스마있고 공포적인 악당이 나타나서 모든 악을 통합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악의 힘이 강해지겠지만, 만약 그 단 하나뿐인 악의 세력이 패배한다면?

악의 조직으로 흘러들어가는 모든 자금줄을 차단한다면?

부패하고 무능한 경찰들을 모조리 처단해버린다면?

「그렇다면, 이 얼굴은 더없이 훌륭한 무기가 된다」

달조차 뜨지 않은 고담의 새벽, 조커는 고담을 내려다보며 맹세했다.



자신이야 말로 이 도시의 악이 되어주겠다고.

*

「날 죽이고 싶지? 미치도록 밉지? 날 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 칼로 베고, 차로 짓뭉게고, 총으로 갈기고, 살을 자르고, 뼈를 부수고, 드릴로 파내고, 고층에서 떨어트리고, 폭탄으로 터트리고, 갈기갈기갈기갈기갈기갈기 찢어서 박쥐모이로 주고 싶겠지. (하악하악) 자, 조커가 여기있다. 날 죽여라, 배트맨」

「난 널 죽이지 않는다, 조커」

「하? 이제와서 성인군자인척을 하는거야, 배트맨? 난 널 알고있어, 넌 나와같이 똑같이 미친놈이야. 자, 참을 필요없어. 날 죽인다고 널 비난할 이는 아무도 없어. 날 죽이고 넌 이 도시의 영웅이 되는거야.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널 죽이지 않을거야, 조커. 왜냐하면 너도 이 고담의 일원이니까」

욱씬─

그 말이 조커의 가슴을 찌른다.

「쓰레기 같은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사람이 쓰레기는 아니란다. 그리고 쓰레기라 하더라도 그 것이 고담의 쓰레기라는 사실은 변함없지. 난 고담의 모든 것을 사랑해」

'웨인씨'에게 들었던 말이다.

탕아, 브루스 웨인이 고담으로 돌아왔을 때 조커의 가슴은 희망으로 부풀었다.

그러나 브루스 웨인은 조커를 실망시켰다.

방탕하고, 무절제하고, 사리분간을 못했다. 그저 아버지의 유산을 뜯어먹는 좀벌레같은 녀석이었다.

배트맨?

이런 녀석따위, 인정할까보냐─

조커는 속으로 외치며 나이프를 들고 배트맨에게 달려들었다.

*

싸움의 결과는 너무도 뻔하다.

조커는 사람의 공포를 조종한다.

하지만, 배트맨에게 공포심따윈 없다.

설령 부러질듯이 위태로운 상태라 할지라도, 철벽의 슈트는 나이프따위로 공략되지 않는다.


수없이 주먹이 쏟아졌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주먹은 쥐어지지 않으며, 호흡은 곤란하다.

명멸하는 시야 속에는 배트맨만이 가득하다.

천천히 조커는 쓰러져갔다.

「폭스─」

조커가 쓰러진 것을 확인한 배트맨이 방심한 순간이었다.

조커가 스프링을 튕기듯 일어나며 품에서 기폭장치로 보이는 것을 꺼냈다.

「안돼!」

순식간에 배트맨의 품에서 표창이 날아갔다.

푹─

빠르게 날아간 그 것은 조커의 배와 가슴에 박혔다.

배트맨은 당황한 나머지 기폭장치를 향해서 던진 표창이 어째서 조커의 배에 박혔는지.

조커가 노린 듯이 몸을 움직인 것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끅끅끅끄」

조커는 당황하는 배트맨의 모습을 즐기듯이 기폭장치로 보이는 것의 버튼을 연타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정말로 '기폭장치로 보이는 것'이었을 뿐, 기폭장치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봐, 배트맨. 악당은 이렇게 끝내는 거라고──」

휘청거리는 조커의 몸이 정말로 끝임을 고하고 있다.

옥상 위에서 대치한 두 남자.

두사람이 품은 뜻은 '고담을 지킨다'.

같은 뜻이었을 텐데, 어째서 방향이 이렇게나 달라졌을까.

처음 그 마음에 삿된 의도따윈 섞이지 않았을 텐데.

한쪽은 어둠에 물들어 있고, 한쪽은 피에 물들어 있다.

그렇게 조커는 쓰러졌다.

*

조커는 쓰러지면서 생각했다.

이걸로 다 된거라고.

비록, 자신은 고담을 공포에 몰아넣은 흉측한 몰골의 악당으로 죽겠지만.

악당을 한곳에 모아서 소탕하고, 악당의 자금을 소탕하고, 부패한 경찰을 처치하고, 사람차별하는 병원을 파괴하고.

어떻게보면 영웅이라 불려도 모자름 없는 행적이건만,

그래도 스스로가 완벽한 악당이되기를 꿈꾸었다.

그래서 정말로 악당이 되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브루스 웨인에게 쓰러지지 못한 것.

만약 자신을 쓰러트린 이가 브루스 웨인이라면 브루스 웨인은 영웅의 칭호를 얻었을 텐데.

저 배트맨이 부르스 웨인이기를 기원하며 그 얼굴을 보며 노력했으나 그 얼굴을 보지 못한 것.

하지만── 이제와서 그게 어쨌냐고 조커는 스스로에게 반문한다.

이걸로 고담은 평화로워 질테니, 고담은 지켜졌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악당으로 죽지만 그게 뭐 어쨌냐며 웃음을 지어본다.

언제 생긴지도 모르는 흉터를 얻은 이후로 처음 입꼬리를 들어서 웃어본다.

하지만, 피가 흘러 차가워지는 몸은 말을 듣지 않고, 한쪽 입가만 찌그러질 뿐이다.

툭툭─ 하고 고담의 밤거리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는 얼음같이 차가워서 살을 헤집고,

들이쉬는 공기는 유리조각같이 폐를 찢는다.

새벽은 너무 어두워, 여명이 언제 올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하지만 조커는 곧 동이 틀 것을 알고있다.

브루스 웨인.

넌 지금 무엇을 하고있을까?

질문을 마음 속으로 던져도, 대답은 없고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너를 생각하며 싸늘히 식어가는 것을 모를거라고 조커는 생각해본다.

죽기 전에, 이 마음은 닿지 않겠지.
죽어도, 이 마음은 전해지지 않겠지.

어쩔 수 없구나─ 하면서 조커는 최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땀인지, 눈물인지, 비인지.

알 수 없는 것으로 화장이 지워진 조커의 얼굴을 보고 배트맨은 생각했다.

내 나이 또래의 너무도 평범한 청년이 아닌가── 하고.

만약 이 자가 조커가 아니었다면, 이 곳이 고담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배트맨이 아니었다면하고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다시 한번 자신의 무력함과 자신의 정의를 가슴에 새기고, 배트맨은 조용히 조커를 남겨두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Fin-
 

이상한 모자

2008.09.16 00:36:01
*.54.99.233

「아───────」 를 보는 순간 미친듯이 웃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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