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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보다/인터뷰] 장기하 만세!

조회 수 1080 추천 수 0 2008.10.29 18:59:01


지금 '장기하 현상'을 보면서 계속 떠올렸던 생각은 이게 얼마나 '지속가능'한 흐름일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현상에 '음악'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인지도 궁금했고. 어쩌면 이 인터뷰가 '대세'에 뒤늦게 동참한 것일 수도, 또 말 그대로 '뒷북'을 치는 걸 수도 있겠지만 이런 궁금증들에 대해 본인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 건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는 여전히 유머가 있었지만 그 유머 안에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진지한 생각과 이해가 포함되어 있었다.

일시: 2008년 10월 24일, 18:30~19:30
장소: 홍대 근처 한 카페.
대담: 장기하 vs 김학선

※ 이 인터뷰는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의 인터뷰 전문입니다.

김학선: 요즘 갑자기 인터넷의 대세가 돼버렸다.(웃음) 기분이 어떤가?

장기하: 오늘도 싸이월드 클럽에 많이 가입하셨던데, 9월 말에 (EBS 스페이스) 공감 방송이 나간 후에 지금까지 6~7배 정도 회원들이 늘어난 것 같다. 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알게 돼서 음악 들어주면 나로선 좋다.

김학선: 미디어와의 인터뷰도 많을 것 같은데, 잘 적응을 하고 있는 편인가?

장기하: 특별히 적응이라고 할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냥 평소에 얘기하던 것처럼 나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면 되는 거니까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다.

김학선: 이제 좀 옛날 얘기로 돌아가서, 어렸을 땐 어떤 학생이었나?

장기하: 공부는 잘 하는 편이었다. 근데 한편으론 애들이랑 노는 것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누구나 그랬듯이 WWF 보고 헐크 호건을 자칭하면서 애들이라 놀이터에서 해가 질 때까지 레슬링을 하면서 놀았다. 음악은 좋아하긴 좋아했는데 막 찾아듣고 하는 건 아니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온갖 쇼 프로와 개그 프로를 다 봤다. 가요 프로그램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다 봤다. 남들 독서할 때 '유머 1번지'를 봤고, 남들 이순신 전기 읽을 때 '젊음의 행진'을 봤다. 그때 좋아했던 가수들이 소방차, 정수라, 이지연, 박남정, 도시의 아이들, 현철, 김지애 등이었고, '토토즐(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이나 '화만나(화요일에 만나요)' 같은 프로들도 빼놓지 않고 다 봤다. 그러다가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면서 6학년 반 학예회 때는 춤도 따라 추고 했었다.(웃음)

김학선: 팝보다는 가요 쪽을 듣는 걸 더 좋아했던 건가?

장기하: 그런 편이다. 근데 그러다가도 누구나 다 아는 되게 유명한 노래들,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이나 보이즈 투 맨(Boyz Ⅱ Men) 노래들도 좋아했다.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나 크리스 크로스(Kriss Kross)도 되게 좋아했었고.

김학선: 가요든 팝이든 TV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들만 거의 들었던 건가?

장기하: 그렇다. 아주 그냥 표면적으로 마구 드러나는 그런 노래들에 눈이 다 팔려있었다.(웃음)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부모님이 통기타를 사주셨는데 교회 찬양팀에 나가고 하면서 악기들을 배울 수 있었다. 중학교 때는 또 패닉(Panic)을 되게 좋아해서 <강>이나 <기다리다> 같은 노래들을 기타로 연주하기 위해 많이 연습하고 했었다.

김학선: 고등학교 때까지는 모범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장기하: 그렇긴 한데, 앞에 나가서 친구들 웃기고 그러는 것도 좋아했었다.

김학선: 그렇다면 음악 활동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시작하게 된 건가?

장기하: 고등학교 때 처음 밴드라는 걸 해봤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교회 중·고등부에서 드럼을 배우게 됐는데, 당시에 나보다 한두 살 많은 교회 형들이 자기들끼리 밴드를 만들어서 자작곡을 연주하곤 했었다. 그걸 보면서 나도 밴드가 하고 싶단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 날 H.O.T의 <행복>을 듣다가 계이름으로 그 멜로디를 따라 부르고 있는 날 발견하게 됐다. 그렇게 멜로디를 계이름으로 분석할 수가 있고, 또 코드 진행도 대충 아니까 형들이 하는 것처럼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밴드를 조직하게 되었다. 밴드를 하다 보니까 좀 더 욕심이 생겨서 집에 음대에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결국 설득을 당하고, 대학에 들어와서도 거의 2년 동안은 음악이랑은 상관없는 생활을 하면서 보냈다. 대학에 들어오면서 밴드 활동을 꼭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나니까 이대로 있다간 아무 것도 못하고 졸업을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과 친구들을 주섬주섬 다 모아가지고 무작정 밴드를 만들었다.

김학선: 그럼 음악 생활은 취미활동이었을 뿐이고, 본인이 생각했던 졸업 후의 모습은 평범한 직장인 같은 거였나?

장기하: 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학자가 되겠다고 한 건 되게 조악한 생각에서 나온 건데, 고등학교 때 공부를 좀 잘 하는 편이었으니까 당연히 그게 학문을 연구하는 것과도 연결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던 거다. 근데 전혀 아니지 않나.(웃음) 고등학교 때 성적이 잘 나오는 거랑 학문을 한다는 건 전혀 다른 얘긴데 그때는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이런저런 경로를 거치며 사회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대학에서 공부를 해보니까 전혀 적성에 맞질 않았다.

김학선: 대학에서 결성했다는 그 밴드는 어떤 성격의 팀이었나?

장기하: 과 밴드였는데,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도 아니고 그냥 학교 내에서 축제 때 무대에 선다든지 아니면 학교 내 소극장을 대관해서 공연하는 정도였다. 지금도 내가 음악을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음악 듣는 폭이 되게 좁았었다. 록에도 관심이 생기긴 했지만 역시 유년시절의 연장선상에서 정말 유명한 음악들만 들었다. 고등학교 때 들었던 메탈리카(Metallica), 너바나(Nirvana), 레이지 어겐스트 머신(Rage Against Machine)에서 대학교 때는 린킨 파크(Linkin Park), 크리드(Creed) 이런 음악들들 주로 들었다. 물론 다 좋은 음악이지만 모두 수면 위에 떠올라있는 유명한 음악들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정말 좋아하는데 당시에 가장 좋아했던 밴드가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li Peppers)였다. 그렇다고 이런 팀들의 음악과 관련 있는 밴드를 했던 건 아니고, 그냥 우리가 만들 수 있고 연주할 수 있는 음악들을 했다. 춤 추는 애들도 세 명을 두고 가사 내용 그대로 춤을 추곤 했었다. 그런 와중에 눈뜨고 코베인 멤버들이 우리 과 밴드의 공연을 보고는 노래도 좀 만들어봤다고 하고 드럼도 칠 수 있다고 하니까 같이 하자 해서 눈뜨고 코베인에 가입을 하게 된 거다.

김학선: 방금 눈뜨고 코베인 얘기도 했지만, 지금 장기하 씨나 눈뜨고 코베인, 브로콜리 너마저, 그림자 궁전, 청년실업, 술탄 오브 더 디스코(Sultan Of The Disco) 등 한 학교에서 거의 동시에 이런 밴드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게 좀 신기하게 생각된다. '서울대 무브먼트'라고 말해도 될 정도다.(웃음)

장기하: 지금 언급한 대부분 밴드들의 공통점이 [뺀드뺀드짠짠]이라는 서울대 내 창작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뺀드뺀드짠짠] 1집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눈뜨고 코베인의 멤버들인 깜악귀와 슬프니, 목말라이다. 거기선 서로 다른 팀으로 참여를 했다가 이후에 의기투합을 해서 눈뜨고 코베인을 결성을 한 거다. 나는 그 다음 해 2집에 참여를 했었고, 그림자 궁전의 송재경(a.k.a. 9) 씨도 참여를 했었다. 송재경 씨 같은 경우는 내가 참여했던 청년실업의 엔지니어도 해주었고, 또 청년실업과 관악청년포크협의회는 붕가붕가레코드에서 가장 먼저 앨범을 낸 팀들이었다. 현재 붕가붕가레코드 대표로 있는 친구도 [뺀드뺀드짠짠] 2집의 기획자였다. 그런 식으로 다 엮이면서 그 동네에서 많이 나오게 된 것 같다.

김학선: 최근 서울대 출신 밴드들을 보면 약간 의도적으로 키치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의도적으로 그러는 건지, 원래 갖고 있는 정서가 표출되는 건지 좀 궁금하다.

장기하: 글쎄, 키치라는 것에 의미를 어떻게 둬야 할지 불명확하지만 좀 유머스러운 부분들에 대해서 그런 말들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냥 유머러스하게 하고 싶은 거다. 잰 체 하기 싫어하고 약간 없어 보이더라도 유머러스한 요소들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건데, 나 같은 경우엔 눈뜨고 코베인 하기 전부터 그런 방식을 좋아했었다. 과 밴드 할 때도 장르는 없었어도 개그는 있었다.(웃음) 깜악귀 같은 경우는 산울림이 활동하던 시절의 유머러스한 부분을 캐치하고 많이 받아들인 거라고 생각한다. 본인 성향도 그렇고.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가끔씩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영화는 유머러스한 영화라도 정극으로 취급을 해주고 진지한 영화에 유머가 들어가 있다고 해서 그게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음악은 그런 면에서 좀 엄숙한 것 같다. 우리나라가 특히 그런 거 같다. 음악을 되게 많이 듣는 내 친구 한 명도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멤버들이 웃겨서 그 음악을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왜 유머러스하면 안 되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키치적인 부분이 의도적일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게 다 의도적인 것 아닌가. 음악이라는 자체가 의도적으로 만드는 거니까. 키치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한 건 아니지만 유머러스한 요소를 의도적으로 첨가한다, 그리고 그걸 전체 음악과 융합을 시킨다, 이런 부분은 분명히 있다.

김학선: 혹시 음악 하는 데 있어서 서울대 출신이라는 프리미엄이 붙고, 엘리트 모범생이라는 이미지가 배경에 붙을까봐 그게 부담스러워 의도적으로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장기하: 일단 나는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얘기를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걸 싫어해서 그런다.(웃음) 공연장이든 어디든 서로간에 어색한 느낌을 싫어해가지고 좀 유머러스하면 아무래도 서로 부담이 없어지고 벽이 낮아지니까 그런 것들 때문에 나 같은 경우에는 음악에도 유머러스한 부분을 넣는 것이다.

김학선: 눈뜨고 코베인이 '제 2의 산울림' 정도로 불리고 있다. 이런 것들이 깜악귀 씨나 장기하 씨나 멤버들이 모두 공유를 하고 있는 부분인가?

장기하: 산울림으로 대표되는 그 당시 1970~80년대 한국 록 밴드들의 음악에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멤버들이 우리의 지향점이라며 산울림이나 송골매의 음악을 들려줘서 그때 처음 제대로 들어본 거였다. 드럼을 칠 줄 안다고 해서 나를 데려온 건데, 그런 쪽으로는 완전 무지하고 펑키한 거나 하자고 그러니까 세뇌를 시키려고 계속 그 음악들을 들려줬다. 송골매, 산울림, 신중현, 사랑과 평화 등등 해가지고 그런 음악들을 추천해주면서 계속 들려주고 산울림 노래 카피도 하고 그랬다.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뭥미?'라는 생각도 들고 구리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계속 듣다 보니까 들으면 들을수록 매번 느낌이 달라지면서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운율을 살리면서 한국어에 가장 적합한 가사를 썼다고 생각하고, 전위적인 명곡이 아니라 가요로서의 명곡들을 많이 썼다고 생각을 한다. 그 당시의 한국 음악들을 지금 장기하와 얼굴들이 본받으려고 하는 측면이 많다. 지금 내가 음악을 듣는 성향이라든지 음악을 만드는 성향 같은 거는 전적으로 눈뜨고 코베인 활동을 통해 형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적인 잔재주는 그 전에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취향과 성향은 눈뜨고 코베인을 하면서 형성이 된 거다.

김학선: 눈뜨고 코베인의 드러머 장기하와, 장기하와 얼굴들의 장기하는 어떻게 다른가?

장기하: 눈뜨고 코베인에서 메인 송라이터의 정체성이 되게 확실한 건 사실이다. 내가 쓴 곡도 한두 곡 있고 다른 멤버들도 곡을 쓰긴 하지만 어쨌든 깜악귀라는 존재가 없으면 눈뜨고 코베인의 성립이 어렵다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편곡을 하는 데 있어서는 거의 공동 작업이다. 그런데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경우에는 내가 편곡까지 거의 관여를 하는 편이다.

김학선: 그럼 본인의 음악을 장르로서 규정을 한다면.

장기하: 연주 편성이라든지 사운드의 특성상 포크 록이라고 하고 다니는데, 그게 '내가 포크 폭을 해야지' 하고 만든 게 아니고, 그냥 지금 내가 할 줄 아는 악기와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이런 노래를 만들었는데 모아놓고 보니까 대충 포크 록이라고 하면 엮이겠다 싶어서 사후적으로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거다.

김학선: 솔로 활동은 언제부터 하려고 계획을 했던 건가?

장기하: 군대 있을 때 솔로 활동에 대한 생각을 가장 강하게 했던 것 같다. '내 노래를 주로 연주하는 내 밴드를 하고 싶다.' 1년 전에 제대를 했는데 그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김학선: 장기하 씨 개인의 이력만 놓고 보면 얼굴도 잘 생긴 편이고, 공부도 잘 하는 소위 '엄친아'에 가까운 사람인데, 가사에는 변두리 정서나 룸펜 정서가 많이 담겨 있다.

장기하: <싸구려 커피> 하면 많이 떠올리는 가사가 '자취방'인데 난 자취를 해본 경험이 없다. 하지만 대학을 거의 10년 가까이 다니는 동안 친구들의 자취방에서 보낸 시간이 많긴 하다. 그런데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 가사는 분명 실제 내 얘기이고 내가 느낀 거를 내가 생각하기에 적절한 어휘로 표현을 한 거다. 그 가사는 나에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정선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20대 접어들면서부터 데자뷰처럼 시간을 두고 계속 찾아왔다. 평소에는 내가 발전하고 있고, 나름대로 괜찮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그게 다 착각이었고 결국 아직 원점에 있는 거구나' 하는 공허한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런 비슷한 기분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싸구려 커피>를 만들었던 그 당시도 나에겐 너무나 익숙한 그 느낌이 찾아왔을 때였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픽션이지만 내 얘기이기도 한 거다.

김학선: 그럼 장기하 씨 대부분의 노래가 그런 정서에 기대고 있다고 봐도 되는 건가?

장기하: 그건 깊이 생각을 안 해봤지만 조금 그런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게 내가 주로 기분이 안 좋을 때 곡이 만들어진다. 연애를 하는데 있어서 큰 걸림돌이 생겼을 때나 사람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리고 방금 얘기한 그 공허한 느낌이 찾아올 때 주로 노래가 만들어진다. 대충 연결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학선: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

장기하: '하나마나한' 거여선 안 된다는 거다. 솔직하든 뭐든 감정을 표현하는 건 기본적인 건데, 솔직한 감정을 표현해도 그게 하나마나한 얘기라면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사람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해왔던 얘기라든지,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반응이 나올 법한 얘기는 하지 않아야겠다, 란 생각을 한다. 내가 사는 이 세상 안에 내 노래를 딱 던져놓았을 때 그 노래의 자리가 있어야 하고 존재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살 자격이 있어야 한다.(웃음) 살 자격이 없는 노래도 많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무의미한 노래를 만들진 않겠단 생각을 한다.

김학선: 힙합 음악도 많이 듣는 편인가?

장기하: 힙합 음악은 내 취향이랑 가깝지 않아서 거의 듣지 않는 편인데, 일부 오다가다 좋아하게 되는 노래들이 있다. 힙합 음악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들을 갖춰서가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좋은 가요의 덕목을 갖췄기 때문에 좋아하는 경우다. 그럼 면에서 리쌍 1, 2집 되게 좋아했었고, UMC 음악도 많이 좋아했다.

김학선: <싸구려 커피> 영상이 리드머라는 흑인음악 사이트에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 장기하 씨 랩에 대한 반응이 되게 뜨거웠다. 그루브 타는 게 장난이 아니라며.(웃음) 일단 그걸 랩이란 생각을 갖고 시도한 건가?

장기하: 그렇다. 랩이라고 생각을 하고 한 거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리쌍의 개리가 1, 2집에서 했던 랩의 영향도 어느 정도는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창 산울림의 음악을 들으면서 한국어로 가사를 쓴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리쌍의 음악을 들었다. 당시에 개리의 랩은 라임이란 측면에서 그렇게 뛰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걸 들으면서 '이게 한국어 방식이다'란 생각을 했다. 라임이란 게 영어권에선 영시에도 다 라임이 있고, 그냥 랩 말고 일반 노래에도 다 라임이 있는데 그게 그 언어문화에 그대로 녹아있는 거다. 근데 우리나라는 그게 아니지 않은가. 리쌍이 그걸 이론적으로 의도한 것 같진 않지만 되게 자연스럽게 한국어에 알맞은 방식으로 랩을 한 것 같다. 가사도 전달이 잘 되고. 오히려 라임 칼같이 맞추는 노래들은 가사도 귀에 잘 안 들어온다. 리쌍의 노래들은 가사도 잘 들어오고 나와 다른 삶이지만 가사에서 느껴지는 울림이 있었다. UMC도 마찬가지 경우다.

김학선: 이 인터뷰 내용이 만약 흑인음악 커뮤니티에 올라간다면 또 한 번 라임론에 대한 논란이 일어날 것 같다.(웃음)

장기하: (웃음) 아무튼 나는 라임을 많이 따지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비중을 두진 않는 편이다. 내 노래할 때 각운을 이용하긴 하지만.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평소에 말을 할 때 어떤 억양을 쓰는가를 포착해서 그걸 음악으로 만드는 거다. 흑인들이 그걸 잘 했기 때문에 힙합이란 음악이 생겨났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 식으로 해서 한국말로도 랩과 노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지금 내가 '평소에'란 말을 했을 때 '평' 발음이 더 길고 음도 더 높다는 걸 포착해서 잘 가져간다면 듣기에도 무리가 없으면서 운율감이 살아있고 재미있는 가사를 쓸 수 있는 거다.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거에는 관심이 없고 원래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잘 조합해서 만들어내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그걸 언어로 얘기를 하면 한국어의 원래 있는 것들 중에서 억양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소재가 정말 무궁무진한 거다. 원래 다 있는 거니까 새로운 걸 만들 필요도 없다.

김학선: 그럼 지금 현재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뮤지션은 누구인가?

장기하: 그 질문을 받으면 일단 첫 번째로 배철수 선배님을 얘기를 하고, 그 다음에 토킹 헤즈(Talking Heads)를 얘기한다. 배철수 선배님은 보컬 스타일라든지 정서라든지, 아니 '라든지'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되게 좋아한다.(웃음) 그리고 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전략을 세울 거냐, 하는 부분에서는 토킹 헤즈를 많이 본받고 싶다.

김학선: 송골매도 눈뜨고 코베인에 들어가서 처음 들었던 건가?

장기하: 그 전에는 <모여라> 이런 노래 외에는 알지 못하다가 눈뜨고 코베인 들어가서 제대로 듣기 시작했다. 밴드로서의 절묘함은 산울림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보컬의 치명적인 매력은 배철수 선배님이 더 좋다.(웃음) 배철수 선배님은 음악을 하든 안 하든 말씀하는 그 자체가 음악이라고 생각을 한다.

김학선: 지금은 장기하와 얼굴들인데 왜 싱글을 낼 때는 솔로로서 냈던 건가?

장기하: 그때는 솔로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지금은 밴드 쪽으로 더 많이 기울었다. 연주라든지 모든 면에 있어서 멤버들의 자리가 되게 크고, 또 좋은 음반을 내기 위해선 이들의 연주력이 꼭 필요하다.

김학선: 그럼 현재 곡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나?

장기하: 집에서 편곡에 필요한 최소한의 녹음 기술을 공부를 했다. 곡이 의도하는 바가 뭐다, 정도만 알 수 있는 녹음 기술을 갖추고 집에서 데모를 만들어서 멤버들에게 들려주고 같이 연주를 한다. 녹음도 마찬가지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나잠수에게 먼저 데모를 들려준 후에 정식 녹음을 한다.

김학선: 요즘 또 화제가 되고 있는 게 미미 시스터즌데 미미 자매도 밴드의 한 일원인 건가?

장기하: 그렇다. 정식 멤버다. 6인조 밴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김학선: 그럼 악기 연습 말고 안무 연습도 따로 하는 건가?

장기하: 넷이 모여서 악기 연습하고, 셋이 모여서 춤 연습하고, 다 같이 모여서 한 번 맞춰본다. 안무는 대충 내가 얼개를 만들어 오면 그 후에 디테일한 부분은 미미 시스터즈와 함께 짜보는 식이다.

김학선: 싱글을 처음 낼 때 이 정도 반응을 예상했었나?

장기하: 아무리 많은 인기를 얻은 뮤지션이라도 처음에 이 정도 될 줄 알았다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인기가 많아지면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것에 대해서는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를 충분히 표현한다면 분명히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거의 이 정도로만 생각을 했다.

김학선: 최근의 인기는 거의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디시인사이드의 동영배 갤러리라든지 인디밴드 갤러리를 중심으로 점점 범위를 넓혀갔는데, 이게 장기하 씨 음악이 좋아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퍼포먼스 등이 재밌기 때문에 그러는 건지 아직도 가늠하기가 어렵다.

장기하: 다 섞여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분들도 계시고 저런 분들도 계시다고 생각하는데 그거에 대해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세상에 재미있는 일 하나 더 생기면 그 자체로 좋은 거니까 음악은 구리지만 얘네들 골 때린다, 이런 생각으로 단순히 퍼포먼스만 좋아하는 분들이라도 그분들이 즐겁게 사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모든 분들이 다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좀 슬플 것 같긴 한데 그런 건 또 아니니까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내가 열 가지 정도의 의도를 섞어서 음악을 만들었다고 했을 때 열 가지를 다 캐치할 분들도 계실 거고 두세 가지만 캐치할 분들도 계실 건데, 내가 거기에 대고 열 가지를 다 캐치해라 말 할 자격도 없는 거고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아니까 거기에 대해서 불만은 없다. 대충 표현은 다 되고 있다.(웃음) 관심을 가져주는 거에 대해서 감사할 따름이다.

김학선: 장기하 씨 음악이 그저 희화화되고 소비되는 것에 대한 우려는 없나?

장기하: 꼭 엄숙할 필요는 없지 않나? 애초에 나는 개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웃기면 좋다고 생각을 한다.(웃음) 요즘 세상에 웃길 일도 별로 없는데.

김학선: 정규 앨범은 언제쯤 낼 예정인가?

장기하: 아마 내년 초가 될 것 같다. 해는 넘길 것 같다. 지금 공연에서 하고 있는 곡들은 다 수록을 할 예정이고, 싱글에 수록돼있던 노래들도 편곡을 다시 해서 실을 생각이다. 거기에 아직 아무에게도 공개를 안 한 몇 곡을 추가를 할 예정이다. 지금 공연에서 보이는 스타일에다 약간 의외의 노래가 한두 곡 들어갈 수도 있다. 별로 안 포크적인, 조금 더 전자적인 스타일의 노래를 담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구상만 하고 있는 상태다. 송라이팅도 끝났고 셋리스트도 다 정해졌는데 편곡과 녹음을 어떤 방식으로 할까 생각 중이다.

김학선: 붕가붕가레코드의 모토가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인데 장기하 씨 역시 여기에 동참할 수 있는 건가?

장기하: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거 같다. 내가 음악을 직업으로 한다는 건 한 마디로 내가 인기가 있으면 되는 거고, 없으면 안 되는 거다.(웃음) 그 정도로 인기가 있게 되면 다른 일을 안 하겠지만 지금은 알바 같은 것도 하고 있고,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다.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란 말처럼 그 정도의 인기가 없더라도 따로 돈을 벌든지 하면서 음악은 계속 할 생각이다. 다른 일을 안 해도 될 정도의 상황이 된다면 더 좋은 거겠지만 일단 음악을 한다는 게 중요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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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 텍스트 큐브에서 이미지 업로드가 안 되는 경우 file [3] 녹차군 2008-10-30 967
425 대륙의 소닉 이상한 모자 2008-10-30 912
» [보다/인터뷰] 장기하 만세! 이상한 모자 2008-10-29 1080
423 호기심 file [1] 녹차군 2008-10-28 749
422 흑흑 [1] 아가뿡 2008-10-28 802
421 [기사] 사람 아기 뱄다? 암소를 바다에 수장시켜 [3] 이상한 모자 2008-10-28 881
420 짤방첨부가 안된다. [2] 이상한 모자 2008-10-27 805
419 기차 이상한 모자 2008-10-27 713
418 경제학자 뺨치는 ‘인터넷 스타 논객’ [4] 이상한 모자 2008-10-24 1216
417 MBIT [5] 이상한 모자 2008-10-23 2185
416 왕표횽 [1] 이상한 모자 2008-10-22 883
415 나루의 구렛나룻은 [1] 이상한 모자 2008-10-22 1871
414 조공을 바치러 왔스빈다...스승님! [1] 진빠1호 2008-10-21 1395
413 운동권 스펙 [4] 이상한 모자 2008-10-21 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