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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관료제

조회 수 1083 추천 수 0 2009.01.11 14:15:59



(이 글에는 관료제, 합리, 민주주의에 대한 어떠한 학적 검토도 없다.)

관료제의 폐해에 대한 윤리 교과서의 예시가 '5시 59분에 등본떼러 가면 떼주고 6시 1분에 가면 등본을 안 떼주더라..'(사실 꼭 그렇진 않은데)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료제의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나이브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현대 사회에서 관료제가 작동하는 방식은 5살된 아이에게 주어지는 산타클로스의 선물과 비슷한 것인데, 아이가 보기에는 산타가 굴뚝을 타고 들어와 (비록 집에 굴뚝은 없지만) 양말에 선물을 넣어주고 다시 돌아간 것이지만 실제로는 아이의 부모가 아이의 정서적 균형감각을 위해 없는 돈 들여 마련한 이벤트에 불과한 것이다.

정부는 미네르바를 왜 긴급체포했는가? 이것은 여러가지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인데 물론 그 중에는 관료의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미네르바에 대한 긴급체포를 어느 선에서 결정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다루는 일반적 방식과 대비되는 것이다. 이명박이 워룸에서 미네르바 체포를 지시했을까? 강만수가 검찰청에 전화를 걸었을까? 법무부? 검찰청장? 혹시 농림수산식품부가..

가장 쉬운 추측은 어떤 부장검사(검찰 내부의 논의 구조에 대해서 나는 아는 바가 없으므로 부장검사라는 표현은 틀릴 수도 있다. 하여간.)가 심심해서 그랬던지, 승진을 위한 껀수가 필요했던지, 하여튼 용감하게 일을 진행시켰을 것이라는 것이다. 미네르바 긴급체포로 언론에 연일 오르내리는 마약조직범죄수사부 김주선 부장검사는 안재환 사건, 연예인 도박 사건 등으로 언론 노출도가 좀 있는 편에 속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관점이 성립할 여지가 조금 높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면 검찰청 조직 내부의 어떤 기류에 의한 것일 가능성 등 미네르바의 긴급체포가 다분히 관료제적 특성에 근거한 것일 가능성이 이명박 정부를 구성하는 관료들의 획일화된 조직적 움직임일 가능성 보다는 훨씬 높지 않은가 싶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과 관계없이 '정치적 문제'는 언제나 가장 자극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고야 만다.

'미네르바 문제가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정부의 주요한 인사들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라는 식의 주장도 그게 얼마나 가능성이 있겠는가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검찰청 내의 일선 실무 담당자 등이 아니면 미네르바를 긴급체포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정부의 핵심 담당자가 있었을 리가 만무하다. 하루는 짧고 인간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으며 그 하루 안에도 너무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기획재정부나 워룸에서 회의를 하는 국무위원들이 언제까지 인터넷 문제를 붙들고 있어야 했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국민들이 이런 관료제적 매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에 맞는 비판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게 함으로서 쟁취 가능한 것은 더욱 완벽한 관료제적 사회의 성립이다. 관료제적 사회는 대의민주주의가 이식된 현대의 사회질서에 합리적 기준을 최대한으로 적용시켰을 때에 등장 가능한 것이다. 즉, 어떤 관점에서 관료제는 민주주의적 합리의 최대치다.

그러나 이러한 합리가 있는가 하면 또다른 관점의 합리가 있기도 한데, 재미있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것이 합리적이다' 라는 자기 모순적 논리가 성립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즉, 관료제의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 빠져나올 길이 없는 경우도 만만찮다는 얘긴데.

관료제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을때 우리가 마주치게 되는 가장 뻔뻔스런 질문은 '인간이 왜 존엄한데?'라는 것이다. 과거 양반 나으리들은 인간이 신의 모사품이기 때문에 존엄하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이미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오늘날 어디를 뒤져도 인간이 존엄하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존엄해야 하고, 나아가서는 인간만 존엄하기 때문에 쇠고기를 마구 먹는 그런 것도 안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중하며 평생을 죄인처럼 지내야 한다 라는 안드로메다의 결론.

노지아

2009.01.11 14:45:03
*.176.99.27

재미있는 이야기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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