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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HWP 파일 형식 ‘무엇을, 어떻게, 왜’ 공개했나

by 이희욱 | 2010. 06. 30

 

“HWP는 독점 파일 형식이란 비판은 일부는 맞지만, 오해도 있습니다. ‘한글 2002′ 이전까지 쓰던 HWP 2.×와 3.× 파일 포맷은 사용 동의를 한 200여군데 이상 기업과 기관에 무료로 제공했어요. 정부기관 결제문서 시스템도 아래아한글 형식을 지원하고 포털도 데이터베이스를 인덱싱할 때 HWP 문서가 검색되도록 하고 있고요. HDK란 개발자용 툴킷을 제공해 HWP 문서 가공을 지원하고, 한글 마크업 언어인 ‘HWPML’도 이미 공개했는데….”

 

‘아래아한글’ 파일 형식인 ‘HWP’는 다른 문서나 응용프로그램에서 읽거나 편집할 수 없다는 이유로 ‘독점 포맷’이란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양왕성 한글과컴퓨터 상무와 한컴쪽으로선 좀 억울할 만도 했나보다. “파일 포맷을 공개했지만, 이를 가져다 제대로 아래아한글 문서를 보여주도록 만든 곳은 드물었다”는 설명이다. 요컨대, HWP 파일 포맷을 기반으로 제대로 아래아한글 형식을 지원하는 데는 오랜 기간 HWP 형식을 만들고 고치며 쌓은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다.

 

HWP가 ‘독점 포맷’이란 비판을 받은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MS 워드’나 ‘오픈오피스’ 같은 문서작성기들이 HWP 파일 형식을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아래아한글’에선 MS 워드의 기본 형식인 ‘DOC’ 파일을 읽고 편집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용자 입장에선 유독 HWP 파일만 다른 곳에서 열어볼 수 없다는 이유로 한컴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재미있다. 한컴은 원하는 곳에 HWP 파일을 공개했지만, 딱 두 제품에만 예외를 뒀다. ‘MS 워드’와 ‘훈민정음’이다. 경쟁사이기도 하거니와, 상대방이 문서 형식을 공개하지 않는데 HWP 형식만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건 불공정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면서 ‘아래아한글’ 이용자들 편의를 위해 자체적으로 DOC 파일 형식을 분석하고 연구한 끝에, 아래아한글에서 DOC 문서를 열어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 ‘아래아한글’은 DOC를 지원하지만, MS 오피스는 HWP를 지원하지 않는 모양새가 됐다. 한컴으로선 고생끝에 DOC를 자체 지원했는데 ‘HWP는 독점 포맷’이란 비판이 부메랑 되어 돌아온 셈이다.

 

이제 경쟁 문서편집기 간 신경전은 끝났다. 한컴은 6월29일 HWP 문서 형식을 누구나 쉽게 가져다 쓰도록 일반에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HWP 형식엔 이미 공공기관이나 일부 기업이 적용하고 있는 HWP 2.×/3.×에 더해, ‘한글 2002′부터 적용된 ‘HWP 5.×’까지 포함돼 있다. HWP 2.×/3.×/5.×와 HWPML 문서 구조를 자세히 설명한 170여페이지짜리 안내 문서도 공개했다. 누구나 간단한 절차를 거치면 아래아한글 파일형식을 활용한 다양한 2차 저작물들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부연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HWP 2.×/3.×은 ‘한글 2.1′부터 ‘한글 97′까지 사용된 HWP 바이너리 포맷이다. ‘HWP 5.×’는 ‘한글 2002′부터 ‘한글 워디안’을 거쳐 ‘한글 2010′까지 쓰고 있는 HWP 바이너리 포맷이다. 이와 달리 HWPML은 이름대로 ‘마크업 랭귀지’다. 약속된 ‘태그’ 기반 언어로 ‘HTML’이나 ‘XML’ 등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HWPML은 행정안전부나 법제처, 문제은행 등에서 다양한 용도로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

 

HWPML과 비슷한 문서작성용 마크업 언어로는 ODF(Open Document Format)와 OOXML(Office Open eXtensible Markup Language)이 있다. 오픈오피스 진영은 ODF를, 마이크로소프트는 OOXML을 각각 표준 문서 형식으로 밀고 있으며 둘 다 ISO에 표준 문서형식으로 등록돼 있다.

 

MS도 2008년 2월 OOXML을 ISO 표준으로 등록하기 직전, DOC 바이너리 포맷을 공개한 바 있다. 그러니 한컴으로서도 굳이 HWP 바이너리 포맷을 쥐고 있을 이유도, 명분도 없어져버렸다. 그러니 HWP 파일 형식 공개는 어찌보면 예정된 수순이었던 셈이다.

 

정리하면, 한컴은 이번에 HWP HWP 2.×/3.×/5.× 바이너리 포맷과 HWPML까지 모두 일반에 공개했다. 이를 가져다 다양한 응용프로그램이나 2차 저작물을 만들도록 가이드 문서도 공개하고, 이와 별도로 HWP 파일 형식을 좀더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개발자용 HDK도 제공한다.

 

이용자에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예컨대 MS 오피스에서 HWP 문서를 불러들여 편집하고 저장하는 일이 가능해질 수 있다. MS가 공개된 HWP 형식을 가져다 MS 워드에서 지원되도록 만들면 되는 일이다. 웹메일이나 e메일 응용프로그램에서도 ‘아래아한글’이나 ‘한글 뷰어’ 없이도 HWP 파일을 곧바로 본문에서 미리보거나 읽는 일도 어렵잖게 된다. 다양한 기기와 플랫폼에서 HWP 파일을 지원하는 서비스와 응용프로그램이 등장하게 될 전망이다.

 

그럼 한컴 입장에선 손해 아닐까. 지금껏 HWP 형식에 대한 기술력을 손에 쥐고 먹거리를 만들어왔는데, 앞으로는 어떡해야 할까. 하지만 한컴쪽은 아직은 느긋한 입장이다. HWP 형식은 공개했지만, 이를 가져다 제대로 HWP 문서를 보여주는 일은 아직도 기술과 노하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만만치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양왕성 상무 설명을 들어보자. “공공시장은 정부기관의 요청들을 짧은 시간 안에 세밀한 부분까지 맞춰줘야 하는 곳입니다. 한컴은 10년 동안 그런 요구들을 맞춰가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게 한컴의 진짜 경쟁력인 셈이죠. 만약 MS가 HWP 문서를 잘 읽고 만들 수 있는 기능을 MS 워드에 넣어 공공시장을 공략한다고 칩시다. 한컴이 지난 10년 동안 해온 작업이나 노하우를 MS가 단기간에 따라잡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컴은 이번 HWP 파일 형식 공개를 시작으로 새로운 기능을 꾸준히 판올림하고 이를 외부에 공개할 심산이다. 마크업 언어인 HWPML은 이참에 표준화 등록도 추진한다. 오픈오피스 진영의 ODF나 MS OOXML에 맞서는 ‘한국형 표준’으로 HWPML을 발전시키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한컴 홈페이지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HWP 형식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활용해 2차 저작물을 만들고픈 SW 제작사들을 돕는 ‘ISV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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