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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비정규직당' 노선 글에 대한 논평

조회 수 838 추천 수 0 2010.09.12 12:13:26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9825

 

좋은 글이고, 필요한 글이다. 그런데 장석준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좀 다른 얘기를 해볼까 한다.

 

1.

진보신당 입당하면 당비와 함께 비정규직 연대기금이란 걸 내라고 한다.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이랑 갈라서면서 '종북주의'만 문제삼은게 아니라 '민주노총당'의 한계에 대해서도 얘기했었다. 정규직 노조 벗어나겠다는 핑계로 만든 당이니까 당비와 함께 비정규직 뭐시기 돈을 내라는 건 필연적이다. 근데도 왜 장석준의 주장처럼 '비정규직당' 노선이 정립이 안 된걸까.


  물론 당내 '정치인'과 '선수'들이 은연 중에 "그런 활동은 당장의 조직화가 잘 안 되니 하던 만큼만 하고 민주노총한테 민주노동당만 지지하지 말고 우리도 지지 좀 해달라고 떼쓰고 쇼부치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비정규직'이란 말이 그렇게 엄밀하지 않다는 것이다. 장석준 본인도 일종의 은유로 쓰고 있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이 은유에 포함된 대상들은 누구일까? 예전에 장석준이 쓴 바에 따르면 이렇다.

 

"노동자. 말 장난 같지만 ‘비-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함. ‘비-노동자’란 누구인가? 첫째, ‘비’판적 노동자. 둘째, ‘비’정규직 노동자. 셋째 노동자가 되려 하는(becoming 혹은 준‘비’하는) 청년층. 넷째, ‘비노동’이라는 노동을 하는 이들, 즉 주부 등. 이런 상징을 구사하면서, 출발은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 ‘비정규직’이라는 막연한 접근 대신 20대 기간제 혹은 여성 사회서비스 노동자 등 정체성이 분명한 하위 집단(‘비정규직’의 ‘하위’ 범주라는 뜻)을 조직하는 데서 출발해야 함."

 

'비정규직'이란 말을 써도 두루뭉술하게는 말이 통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파견업체 정규직'을 놓치게 되어서 '간접고용'이란 표현을 쓴다. 물론 이건 구체적인 표현이지만 장석준이 대변하자고 말하는 대상의 일부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노동운동에서도 '핵심 부문' 운동에 역량이 집중되었고 그것은 투쟁을 수월하게 조직할 수 있는 사업장을 겨냥한 전략적인 선택이었지만 그 결과는 과히 좋지 못하다. 비정규직 내부에서도 쉽게 문제가 눈에 들어오는 부문이 있고 그렇지 못한 부문이 있는데, 진보정당이 새로운 사회문제들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면 이런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가사노동자를 생각하면 비정규직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이란 단어 자체를 재정의해야 할 판국이다. 이런 일들은 장석준이 주장하는 것처럼 '새로운 진보'를 말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아마도 그런 문제의식에서 작년에 우석훈과 '88만원 세대'론을 이어받아 뭔가 활동을 해보려는 일군의 청년들이 쓴 말이 프레카리야트, 대충 번역하자면 불안정노동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경우 일본의 활동가들에게서 수입해왔다. 프레카리야트란 말은 입에 잘 안 붙지만, '불안정노동'이란 조어는 하나의 좋은 시도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이를테면 '불안정' 노동이란 노동형태가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을 가리지 않는다는 문제 말이다.

 

가령 금융자본주의의 피라미드의 꽤 윗부분에서 '돈놓고 돈먹기 놀이'를 중개하는 노동자들은 어떤 경우 '불안정노동자'이면서 고소득자다. (물론 안 그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고용형태의 불안정함은 이들의 능력을 발휘하는 조건이며, 고소득을 위한 토대다. 물론 장기적으로야 이런 이들의 고용형태도 안정적으로 바꾸어야 할 수도 있지만, 당장에 우리가 이들을 대변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들은 고용형태의 불안정함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의 무능함과 시대에 뒤떨어짐을 조소하는 경우가 많다. 여하튼 이런 이들의 존재는 '불안정노동'이란 용어도 우리의 작업을 위해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러모로 고민이 되는 지점이다.

 

 

2.

노선을 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말 쉽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왜 되지 않았는지를 반성해보고 할 수 있는 일은 빨리 처리하려는 실무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타당하게 지적하듯이 진보신당은 취약계층을 대변해야 하지만 당원들을 보자면 "수도권 거주, 중간계급 남성의 정당"이다. 이들은 세대와 소득에 의해 뉴미디어에 익숙하지만 진보신당이 대변해야 할 이들은 물론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할 때 당은 '당원'과 '당이 대변해야 할 사람들'을 매개하는 역할을 자임했어야 했는데, 초보적인 수준에서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를테면 당 홈피에 접속하면 비정규직 장투사업장 현황, 비정규직/간접고용 현황이라도 볼 수 있게 하자고 건의를 몇 번 했는데 전혀 고민하는 사람이 없었다. 진보신당 홈피를 보면 이 당이 뭐하자는 당인지가 보이지 않는다. '비정규직당' 노선을 말하려면 행동이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물론 이 당이 가설당이라 당원 교육도 없었고 당 기관지도 없었던 현실은 있지만, 이미 자료도 다 나와있는 사안을 홈피에 소개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진보신당은 다른 조직이 없어 인터넷 의존도가 큰 편인데, 처음에 접속했을 때 이 양반들은 이런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구나, 라는 인상도 주지 못한다는 거다.

 

이것도 몇번 하는 얘기인데 비정규직 연대기금이 집행되지 않는 것도 그렇다. 물론 많은 돈이 아니니 장투사업장에 조금씩 나눠주다가는 별다른 의의도 없이 금방 돈이 거덜날거다. 그래서 뭔가 '사업'을 기획해서 돈을 집행하고 싶다는 마음이야 납득할 만하다. 근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창당 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비정규직 연대기금을 사용해서 뭔가 이벤트를 펼쳤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으면 이건 문제가 심각한 거다.

 

이를테면 해고노동자들이 고추장 팔고 다니는데 당에서 고추장 단체구매한 후 희망하는 당원에게 염가로 넘겨주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이벤트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은가? 진보신당이 비정규직 투쟁 노동자들의 활동을 팔로우하고 있다면 소소한 규모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법하다. 그리고 그런 팔로우를 당원들에게 홈피로, 이메일 발송으로 소개한다면 당원들 역시 그런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적어도 이 당이 이런 일을 하는 당이란 건 알게 되는 것이다.

 

진보신당과 같은 군소정당의 최고의 고민이 "권력을 (거의) 분점하지 못한 3% (요샌 그것도 안된다지.) 정당을 지지하는게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변이 어렵다는 것이다. 당비로 내는 돈은 이 당의 정치활동을 위해 쓴다고 치자. 물론 그 돈도 모자란 건 알지만, 비정규직 연대기금 같은 건 어금니 꽉 깨물고 필요한 이들을 위해 집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진보신당이란 당이 약간의 지지율이 있어 국가보조금을 받고 존속하면 이런저런 활동들에 도움이 되는구나라는 점이 보이면, 존재의의를 훨씬 쉽게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소소한 이벤트들이 그 자체로 당원들에게 소속감과 동질감을 심어주는 것은 물론이다.

 

"왜 이런 간단한 일들이 이루어질 수 없었는가?" 라는 점에 대한 답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쟁가

2010.09.12 15:06:13
*.231.51.249

좋은 글이나, 용어의 사실관계 오류 지적.
"작년에 우석훈과 '88만원 세대'론을 이어받아 뭔가 활동을 해보려는 일군의 청년들이 쓴 말이 프레카리야트, 대충 번역하자면 불안정노동이었다"
불안정노동이란 말은 10년도 전부터 한국에 존재했던 말이구요, 불안정노동철페연대같은 훈늉한 조직도 있구요, 프리캐리어트라는 말도 '우석훈과 일군의 청년들' 이전에 한국에 들어온 말이었음. 그리고 요즘 나는 '불안노동'이란 말을 밀고있고...(...)

윤형

2010.09.12 16:22:06
*.149.153.7

끄덕끄덕.

verdendi

2010.09.12 16:02:47
*.134.84.239

도대체 왜 안그런답니까??

윤형

2010.09.12 16:22:17
*.149.153.7

몰러요...;;

이상한 모자

2010.09.17 09:44:05
*.114.22.131

리플 하나 하나의 유효성을 다 판별하실 필요는 없는데.... 이런 리플을 통해서 불만을 표출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명교

2010.09.17 00:38:43
*.105.167.140

그걸 누가 답하겠어요. 모두 하나같이 그렇게 질문할껄요. 유효할 수 없는 질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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