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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 “진보의 종말” 요약 및 논평

조회 수 1439 추천 수 0 2010.09.07 21:00:52

http://blog.naver.com/paxwonik/40113897822

 

박가분 “진보의 종말” 요약 및 논평

 

블로그 안 없앴으면 트랙백으로 갔을 텐데, 왠지 모르는 장소에서 뒷담화까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볼 사람은 볼 테니 코멘트해보도록 하자.

 

요약

 

1. 진보정당의 이념적 노선과 청년/학생 당원들의 관계

 

: 청년/학생 당원들은 몸빵만 하려 들지 말고 이념적/이론적 노선 투쟁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은 진보운동에 만연한 ‘활동가 중심주의’에 대한 필자의 자기변호로 읽힌다.

 

2. 진보란 무엇인가?

 

: 이절에서 필자의 정치적 의도는 ‘진보대연합론’이라는 노회찬 등 진보신당 주요 인사들의 테제를, ‘진보’라는 개념을 해체하면서 무화시키려는 것이다. 진보는 계급모순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모순을 일부의 ‘적’들의 책임으로 떠넘긴다는 점에서 애초에 ‘상상적인 개념’으로 이해된다. 이를테면 “XXX부터 쳐부수자.”라는 정치영역의 어법이 ‘진보’란 어휘에서 연유한다는 것. 조선일보나 삼성이나 기득권세력이나 뭐 기타 등등을 다 집어넣어도 되겠다. 또한 필자는 재벌기업이나 강성노조를 비난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진보라고 강변했던 ‘잃어버린 10년’ 동안의 개혁세력의 레토릭을 해명하려고 한다. 즉 그들의 주장은 ‘진보’란 개념에 대한 잘못된 전유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애초에 ‘진보’ 혹은 ‘순수한 진보’라는 개념 자체가 그러한 착오를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필자는 ‘민중’이란 개념이 계급을 드러내지 않으며, 일본의 경우 이 개념이 우익적 기원을 품고 있었다고 진단한다.

 

즉 진보대연합론 비판→‘진보’ 개념 분석 및 비판→‘진보’라는 개념을 지탱하는 민중주의 판타지 비판의 논리구조다.

 

3. 이념의 종언을 둘러싼 담론들

 

: 필자는 (한국 사회에서) 1991년이 아니라 1987년이 ‘좌우대립의 역사적 종언’을 보여주는 시점이라고 말하며, 한국에서는 소비에트연방의 붕괴가 사회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남한에서는 애초에 좌우파 대립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산권 붕괴 이후의 ‘이념의 종언’이란 말이 성립할 수 없었고 다른 형태의 사상적 대립이 지속되어 왔다고 본다.

 

4. 진보의 종언

 

그 ‘다른 형태의 사상적 대립’이 바로 보수vs진보 구도인데, 필자는 그것이 이제 종언을 맞으리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그 종언의 이유는 2절에서 분석되었던 ‘민중’의 개념이 현대사회에선 더 이상 지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가 리버럴되고 계급/계층이 다양하게 분화되며 대중문화나 종교집단이 상상적인 통합을 시도하는 곳에서 ‘민중’ 개념은 설자리가 없다. 따라서 ‘비계급적 도덕적 정신주의’에 근거한 진보vs보수 구도는 그 자체로 사라질 것이라고 필자는 진단한다.

 

5. 진보의 미래는 누구의 미래인가?

 

“진보의 기반=민중주의→국민 담론→국민의 명령=반MB 연합론”의 논리적 흐름. 이런 이유로 민중주의에 기반한 진보가 국민의 명령 운운하는 반MB 연대를 넘어설 수 없었다고 필자는 진단한다.

 

그러면서 ‘사민주의=리버럴리즘=국가를 강화하는 것’의 논리적 흐름의 분석이 시도되고, 필자는 이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한다. 전반과 후반의 연결고리는 ‘국민=네이션=정부 강화=사민주의’이다.

 

 

논평 :

 

1) 1절은 논평할 여지가 없다. 본인이 그렇게 믿는다면 그걸로 좋은 것이다. 진보정당엔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여러 가지 방식의 참여가 모두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2) 3절의 ‘서사’는 동의할 수 없다. 1968년은 한국에 의미가 없었지만 (한국의 68년은 김신조 사건과 푸에블로호 사건으로 기억될 뿐이다.) 1991년이 한국에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을까? 1987년을 운동권들과 함께 만들어냈던 전노협 활동가들은 물론 소비에트연방의 붕괴에 별로 영향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980년대의 (조금 공허한) ‘이념적 급진성’을 주도했던 학생 운동권의 절반은 1991년에 좌절을 맛보았다. 이것을 필자는 ‘일부 386들의 문제’라고 폄하하는데, 당시의 ‘운동권’은 지금의 ‘좌파’보다는 훨씬 더 체제에 실질적인 위협이었다. 지금의 ‘청년좌파’들이야 좁쌀만한 커뮤니티를 점유하고 있을 뿐이지만, 당시의 운동권도 그랬다고 이해해선 곤란하다. 김문수 등이 ‘변절’한 이유도 1991년 때문이었다. 91년도에 운동을 포기하거나, 92년 대선 이후 운동을 포기한 운동권들이 90년대 전반에 대거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이 모든 것을 운동권의 문제라고 폄하한다면, 1990년대의 조선일보를 보라. 1990년대의 한국 대중은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과실을 누리면서 ‘박정희도 옳고 운동권도 옳다.’는 모순된 의식을 지니고 있었고, 조선일보 등은 박노해 등의 운동권 후일담을 집중 조명하면서 386세대 독자들에게 아부했다. 조선일보 문화면과 좌파의 ‘유착’은 1990년대 후반의 강준만을 열받게 하는 원인이 된다.

 

 

3) 5절의 전반과 후반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 연결고리가 없는 것은 아닌데, 일종의 유비추리로 읽힌다. 이 글의 전략이 사민주의에 대한 정교한 비판이라기 보다는, 진보의 개념을 무화시키면서 경쟁자의 주장을 설자리를 잃도록 만들겠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2절, 4절, 5절의 전반부가 논리적으로 제대로 이어진다. 어쩌면 그 부분이 내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흐름으로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2절, 4절, 그리고 5절 전반부의 논의에 동의하는 입장에서도 ‘진보의 종언’의 선언은 섣부르다. 필자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올바르다 하더라도, 더 이상 현실적합성이 없는 개념이 사람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정치현실을 가상으로 구성하는 일도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문성근이 말하는 ‘국민’의 개념을 해체하면서 우리의 정치의식을 표출해야 하겠지만, 우리가 그러기나 말기나 많은 사람들은 그가 말하는 ‘국민’의 의미를 받아들일 것이다. 그걸 극복하는게 우리의 과제인 것이지, 자동적으로 그들이 패퇴하는 것이 아니다.


이상한 모자

2010.09.07 21:12:36
*.146.1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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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교

2010.09.17 00:36:47
*.105.167.140

간만에 잘 읽었습니다. '진보의 종언' 선언이 섣부를 순 있는데, 지금은 그 섣부른 행동을 감행하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어쨌든 결국 시차라는 건 있을테지만 일단은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라도 지르고 개기는 거죠. 운동권 아저씨들처럼 얌전 떠는 건 아무 도움이 안되니까. 그런 점에서 이견일 수가 없는 지점인듯.

이상한 모자

2010.09.17 09:44:43
*.114.22.131

제가 언제 얌전을 떨었단 말입니까!?

윤형

2010.09.25 03:28:50
*.149.153.7

글쎄 냉정하단 건 상황을 다 알고 있다는 게 전제가 되는 것인데, 가분씨의 글은 좋게 말하면 참신하고 나쁘게 말하면 시행착오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다만 착상 중에서 살려나갈 부분은 있다고 보는데, 그런 착상들을 밀어붙여 다른 것들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해서 '얌전'하다는 거죠.

그리고 '서사'가 있단 걸 비판한게 아니라 분명 '그 서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죠. '미련' 얘기는 너무 개인적인 말씀이라 그렇게만 들어서는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모르겠네요.

명교

2010.09.23 17:15:22
*.105.167.140

생각보니 얌전?...은 잘 모르겠고 냉정한거 같긴 하네요. 순전히 느낌인데, '종언'은 어딘가 파국 자체를 대해 좀 더 쉬크하게 응시하거나 바라보면서 또 다른 순환이나 세계의 출현을 요청하는 바가 느껴지고, 파탄은 파국적이고 종말적인 상황 자체에 대한 파노라마에 강조를 두는 듯한 느낌? 그런 점에서 '종언'은 완결 지점을 선언하는게 느껴지고, 파탄은 그런게 느껴지진 않네요. 흔히 '종언'은, "종언을 고했다."는 표현에 쓰니까. 그래서 종언에는 미련없음이 느껴지고, 파탄에는 안타까움과 한탄이 느껴지고. 그래서 저는 오히려 서사가 있는 것 자체는 잘못된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단지 지금-여기에 우리가 미련을 두는게 맞는지, 아닌지를 생각해보는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군대 갔다오기전까지는 확실히 모든 것에 대해 미련만 가득했고, 요즘에도 여전히 그런게 남아있지만, 상황이 워낙 달라져서. 확실히 저는 매번 이중적이고 모순적이라서, 어떤 상황에선 미련 때문에 무리수를 두고, 또 어떤 상황에서는 그 누구보다 냉정하게 쉬크해지더군요.

윤형

2010.09.17 16:21:31
*.149.153.7

전 가분님 글도 얌전하다고 생각되는데...갠적으로는 '종언'보다는 '파탄'이 더 적절한 말이 아닌가 싶어요. '파탄'이란 말로는 '논리적 파탄'도 표현할 수 있고 파탄 이후 관성적으로 현존이 지속되는 상황을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종언'이란 말엔 일종의 서사가 담겨있는데 본문에서도 적었듯 그 서사에는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보는 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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