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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전편에서 나는 '연합정치론자'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루었다. 나는 그들의 문제의식이 '선거 구도의 재편'이라는 기술적인 측면에 대한 집착이라고 주장하였다. 심상정이 사퇴하면서 내세웠던 논리가 하필이면 이것이라는 점, 그리고 여러가지 곤란함을 겪으며 고생스럽게 선거 국면을 돌파해낸 '지방의원'들 사이에서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 한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연합정치론자들의 허약함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 내 생각이다. 독자정치론에 대한 주장 중 구체적인 실천 단계까지 적시하고 있는 '창당정신을 실현하는 당원모임 제안문'을 보자. 이 글은 깔끔한 문체로 작성되어 있기는 하나 별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연합정치론자들의 옹알이와 다를 바가 없다. 이 글을 요약하면 이렇게 하자는 것이다.

 

1. 뭘 잘 해보려고 분당을 했던 것인데 자기 불신과 패배감에 빠진 마음 약한 사람들이 괜스레 통합 얘기를 꺼내고 있다.

2. 뭘 잘해보자며 이런 저런 정치적 실험을 제안했던 사람들도 자기들 얘기에 책임을 안 졌던 것은 참 문제였던 것 같다.

3. 또다시 뭘 잘 해보기 위해서 우선 모여야 하니 뭘 잘 해보기 위한 모임을 만들자.

 

좋은 이야기이고 일부 올바른 진단도 있지만 이것 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대체 왜 마음만으로 실험을 했던 것인가?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왜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가? 누가 대답해줄 수 있다면 한 번 듣고싶다. 도대체 왜 그랬던건가?

 

답변을 할 수 있는 방식이 몇 가지 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변은 돈도 없고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돈도 없고 사람도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원이 적어서? 그렇다면 당원 수가 아마 비슷한 수준이었을 2000년 경의 민주노동당과 비교를 해보라. 아니, 상근자에게 일주일에 3만원 주던 97년 대선 이후의 '국민승리21'과 비교해도 좋다. 노회찬, 심상정이라는 대중정치인과 10년의 진보정당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현재의 우리가 97년의 '국민승리21'보다 나은 상황에 놓여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부족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야말로 '마음'이 부족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진보신당의 주요한 활동 당원들이 집단적으로 고해성사를 하거나 단체로 상담치료라도 받아야 한다는 것인가?

 

우리가 어떤 위기적 상황에 계속해서 내몰리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타개할만한 어떤 제안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독자정치를 주장하는 그 누구도 그러한 제안을 말하지 않는다. 단지 연합정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거나 지금 자신이 활동하는 당이 다른 그 무엇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것들은 당이 아니더라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 모든 감상들은 그저 당연한 것들일 뿐이다. 이 당연한 것들을 넘어서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한 마디를 해야만 한다.

 

아니 잠깐. 그런데 그 한 마디를 내밀 수 있는 공간은 있나? 창당 이후 당이 놀고 있지 않았는데, 당의 성과와 정체성에 대해 당원들에게 설명하고 그들의 의견이 수렴되도록 할 수 있는 장치가 있나? 왜 기관지와 교육 기관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가? 왜 정당법과 당의 정책에 의해 사실상 형해화된 기초 조직과 기관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가? 답은 간단하다. 이것조차도 이 당에서는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독자정치론자들의 곤란은 바로 이 당 내의 '정치적 문제'를 외면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연합정치론자들은 정치적이고 독자정치론자들은 운동적이다' 라는 항간의 그릇된 인식을 다시 한 번 곱씹으려는 것이 아니다.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를 주장하다가 오늘날 어색하게 독자정치론자의 위치에 서서 두리번거리는 신세가 된, 소위 '신당파'들의 '백의종군'의 자세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

2010.08.30 22:44:27
*.171.215.230

정태인씨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혁당에 이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그리고 의료보험 하나로... 등등

이상한 모자

2010.08.31 12:26:05
*.146.143.41

저는 정태인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다만, 참여정부의 관료 출신이 진보정당에 합류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심상정의 경기도지사 사퇴 행보에 일조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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