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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도구적 냉소주의... 랄까 (웃음)

조회 수 1039 추천 수 0 2010.09.27 20:22:39

나는 남을 잘 위로하지 못하는 편이다. '힘 내', '괜찮을거야' 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데 도대체 힘을 내라고 말해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잠깐의 감정 다음엔 다시 물밀듯이 물질적 빈곤이 밀려오는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라도 말해주는 사람들을 아주 좋아한다. 그게 인간의 감정이고 그것이 가진 기능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것을 잘 할 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위로의 말을 건넨답시고 다소 괴상한 소릴 늘어놓아 곤경에 처하는 일이 있다.

 

그건 아마 위로에 대한 냉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늘 밝히다시피, 나는 냉소를 좋아하는 편이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거짓말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냉소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니, 사실 정치적인 맥락에서 거짓말을 거짓말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냉소의 대상이다. 이데올로기는 환상으로 기능하고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 구청을 방문한 한 민원인은 공무원들이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는 것이 너무 불쾌하다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던 중에 양치질을 마치고 한 손에 칫솔, 한 손엔 컵을 들고 공익요원들이 입장하자 그 민원인은 "지금 저를 불쾌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이러시는 겁니까!?" 라면서 더욱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 민원인의 경우, 세상을 좀 더 냉소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공무원은 완전한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고 한 사람의 인간이다. 유식한 말을 빌리자면 공무원 역시 결여를 내포하고 있는 텅 빈 주체일 뿐이다. 하지만 열정적인 민원인은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본인이 남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것처럼 공무원 역시 본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물론 이러한 열정이 늘 부당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열정은 일관적이지 않다. 이 민원인의 열정에 답해주기 위해서는 양치질 금지령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분명히 열정적인 누군가는 치아 사이에 고춧가루나 음식 찌꺼기가 낀 상태로 민원 상담에 응하는 말단 공무원들의 태도를 문제삼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다른 해결책으로 직원 전용 세면실을 만들어서 공무원이라면 반드시 그곳에서만 양치질을 하도록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다른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도대체 왜 직원 전용 세면실을 만드는 데에 국민의 세금을 낭비해야 하느냐고... 공무원이 무슨 특권계층인줄 아느냐고...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억지로라도 해결책을 내자면 우리는 아주 비밀리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직원 전용 세면실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정말 은밀히 그곳에서만 양치질을 하고, 민원인을 상대할 때에는 양치질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이라는 존재의 치아는 매우 깨끗하게 유지된다는 점을 어필하여야만 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민원인의 앞에서 치아의 청결에 대한 한 점의 결여도 내비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엄청난 비밀은 늘 지켜지지 않는 법이니 우리는 보다 완벽히 이 비밀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또 고민해야 한다. 자,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넓은 의미의 '기술관료'라는 존재들이 하는 일이다!

 

물론 이러한 심오한 고민에 대해서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여러분은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아니 뭐 사람들 말 하나 하나에 신경을 쓰나. 그냥 하던대로 하지..' 내 생각도 그렇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냉소주의라고.

 

그런데 우리는 고등교육에서의 학습을 통해 이러한 냉소주의가 만연할 경우 정치적으로 허무주의적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 허무주의적 상태야 말로 진보적인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의 경우 그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세계적 변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쨌든 변혁을 이루기 위한 열정을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냉소주의로 세상을 어떻게 바꾼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냉소주의를 꿈꾼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거짓말을 싫어한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속고 살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것이다. '좋아, 네가 원하는건 잘 알겠어. 그런데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대체 뭐야?' 이러한 질문의 형식은 이미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다. '좋아, 유태인. 네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겠어. 하지만 도대체 유태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대체 뭐야?'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거짓말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에야 말로 최대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 그럴줄 알았어!'

 

그런데 진정으로 거짓말이 아닌 존재를 만났을 때에는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진실된(?)존재를 냉소하지 않고 어떻게 긍정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진보주의자의 숙제이다.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냉소하는 자신조차 냉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물에 냉소하는 자기 자신이야 말로 냉소에 대한 열정적인 신봉자였던 것이 아닌가? 냉소를 냉소하는 것은 곧 일종의 낭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온다. 크리스마스 이브 0시가 크리스마스 0시로 되풀이 되듯이. 그리고 이제야 우리는 우리의 머리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나의 유사철학적 헛소리가 일종의 '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다들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어떻게 아이돌과 후크송에 냉소적 시선을 보내면서 수퍼스타K의 장재인에 열광할 수가 있단 말인가?


뮤탄트

2010.09.28 15:53:47
*.53.247.194

음 수퍼스타k에 열광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직접 아이돌을 뽑아 올리거나, 그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는 흥분 때문이죠. 아이돌들은 가요프로에서 1위를 하고나서야, 거기까지 올라온 내러티브를 이야기할 수 있고, 사람들이 그 내러티브에 귀를 기울이지만, 수퍼스타k는 딱, 아이돌이나 프로뮤지션이 될 때까지만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일 뿐....그러니까, 사실 수퍼스타k에 나오는 다양한 참가자들과 그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음악들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님....그냥 아이돌 전이냐, 아이돌 이후냐 머 그 차이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2222

2010.09.30 21:27:48
*.228.113.149

회의주의는 멋있기라도 하지 냉소주의는 찌질하지 않나염?

이상한 모자

2010.10.01 08:07:17
*.146.143.41

저는 찌질함이야 말로 이 시대의 미덕 중 하나라고 봅니다.

2010.10.01 00:35:37
*.80.86.2

공무원이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는건 냉소주의와 아무 관계가 없는 노동의 가치가 부재한 사회의 단면입니다.
공무원도 노동하는 사람들이란걸 인정하면 저런 일이 줄어들죠.
그리고 저건 정반대로 냉소주의의 정반대의 가치인 휴머니즘의 부재로 읽힐 수 있는 사례입니다.

전혀 영양가있는 냉소주의의 사례가 아니네요 풉.~

2222

2010.10.01 00:42:47
*.228.113.149

님 걍 주무세여

2222

2010.10.01 10:08:45
*.228.113.149

님말고 풉이여.

이상한 모자

2010.10.01 08:15:12
*.146.143.41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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