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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수퍼스타K에 관한 잡설

조회 수 1194 추천 수 0 2010.09.29 14:10:36

수퍼스타K가 인기다. 어딜 가도 그 얘기를 하는 판이다. 특정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으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를 찾아보는 것도 어떤 시대정신을 추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의미있는 작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사실 아메리칸 아이돌이나 엑스팩터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오디션 리얼리티쇼가 인기몰이를 하는 상황 자체는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즉, 오디션 리얼리티쇼가 인기를 얻는 어떤 인류보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이것은 세간에 만연한 냉소주의에 대한 미디어의 맞춤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시대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부여되는 것이므로 당신도 능력만 잘 보여줄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위안을 얼마나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으냐 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열렬한 TV시청자가 아니므로 이러한 측면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하여, 나는 트위터를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당신이 수퍼스타K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결과는 예상과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평범한 사람'이 '수퍼스타'가 되어가는 과정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오늘날의 세상은 '거짓말의 세상'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속지 않는 것이 가장 시급한 절체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에 모두들 자신이 속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기위해 최선을 다한다. 즉, 오늘날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기 위한 가장 빠른 최선의 방법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이런 거짓말들에 대한 검증 작업이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도 이러한 검증 작업은 여러 형태로 등장한다. 이를테면 스타들의 과거를 캐는 안티팬들의 습성을 보라. 미쓰에이의 특정 멤버가 과거에 일진이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타블로의 스탠포드 졸업 여부가 중요한 이유는 또 무엇인가? 이러한 '거짓말 검증'을 통해 대중들이 확인하고자 하는 바는 자신의 소비활동이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공평하게 이루어졌는가, 즉 본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정도의 등가교환 작동 여부이다. 이 등가교환의 한 축이 다름 아닌 '쾌락'이라는 점에서 이는 '쾌락의 평등주의'의 일종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오디션 리얼리티쇼가 가지는 매력에 대한 추론이 가능해진다. 오디션 리얼리티쇼는 참가자들에 대한 공모를 통하여 이들이 시청자와 같은 입장의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보증한다. 또한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통하여 참가자들의 '출세'가 정당한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증한다. 이 쇼의 화룡점정은 온라인 투표 등의 방법으로 시청자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이러한 보증의 공범의식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종류의 쇼는 그것에 대한 열광 그 자체가 이러한 공범의식을 재생산한다.) 이제 시청자들은 수퍼스타K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대하여 그것을 의심하지 않거나 의심되는 상황이 있더라도 무시 혹은 부인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미쓰에이와 타블로의 경우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의 인기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수퍼스타K 이후의 상황과 외국의 사례를 비교해보면 추측이 가능해진다. 지난 연말에 영국에서 벌어진 작은 소동을 기억해보자. 영국의 오디션 리얼리티쇼인 엑스팩터를 통해 생산된 아이돌은 늘 그 해의 크리스마스 차트에서 늘 1등을 한다. 이것에 불만을 가진 과격분자들이 한 물 간 RATM의 노래를 1등으로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벌여 결국 승리 했었다. 즉, 이러한 상황은 엑스팩터라는 프로그램이 위에서 언급한 '보증'을 상실한 경우 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엑스팩터를 통한 아이돌의 생산'이 일종의 특권으로 간주되는 상황은 당연히 엑스팩터의 유례없는 흥행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의 전조를 '장재인'이라는 상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장재인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브리튼즈 갓 탤런트의 폴 포츠를 떠올려보라!) 학교를 그만 둔 왕따인 이 소녀의, 하마터면 그냥 파묻힐 뻔했던 음악적 재능을 수퍼스타K가 구원해줬다는 것이 핵심이다. 즉, 이것은 늘 네거티브한 방식으로 적용되는 쾌락의 평등주의가 포지티브한 방식으로 구현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이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즉, 이 프로그램이 종료된 순간 앨범 한 장을 낼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이 게임의 본질이야 말로 오늘날 시스템화 된 아이돌 산업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다. 이것은 티비 프로그램이 반복되면 반복될 수록, 그리고 흥행에 성공하면 성공할 수록 이러한 본질은 더욱 더 명확한 형태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보증'의 진실성 또는 진정성 등은 상품화된 댄스가수를 양산해낸다는 사실 때문에 비판받는 오늘날의 아이돌 산업이 그렇듯 시간이 지날 수록 훼손될 것이고, 지난 연말의 엑스팩터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쉽게 예견할 수 있다. 다음 번에는 이것과 관련한 열광과 냉소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고 하나마나한 소리는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하자.


쿠르세

2010.09.29 14:19:20
*.230.216.142

큰스승께서도 쾌락의 평등주의에 탑승하셨근여. 이제 손잡고 같이 욕먹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상한 모자

2010.09.29 14:21:06
*.114.2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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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옛날에 갈아탔죠. 옛말에 이르기를 전중권후택광이라 하였습니다. 또 타락한 젤'나가 일족인 '어두운목소리'는 '진중권은 너희의 시작이었니 또한 끝이리라.'고 말하기도 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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