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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트위터에 어떤 네티즌이 '귀족노조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법 자체가 임금인상 등에 관한 의제의 파업이 아니면 전부 불법파업이 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면서, 이를 두고 소위 귀족노조만을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를 보면서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하였는데, 우선 '귀족노조'라는 용어를 둘러싼 그동안의 분쟁에 대해 다시 한 번 정리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위 귀족노조 프레임에 대한 좌파들의 초기 대응은 첫째, 논쟁을 통한 정면돌파와 둘째, 구체적 사례 제시를 통한 우회가 같이 이루어졌다. 논쟁이라는 것은 임금의 높고 낮음을 구분하여 파업을 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방법이라는 점을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것이고, 구체적 사례 제시라는 것은 실제 연봉 6천을 받는다는 노동자가 그러한 임금을 받게 되기까지 잔업, 특근, 철야, 2교대 등을 강요받고 각종 질환에 시달리게 된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2가지 점에서 실패하였는데 첫째는 노동계급 내의 양극화가 논리적 대응을 통해 모든 노동자가 파업을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 무의미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고 둘째는 소위 귀족노동자 연봉 1/3 수준의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똑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소위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입장에서도 더 이상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반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이쯤되자 소위 활동가들의 반성과 자기비판이 줄줄이 터져나왔다. 그러한 비판의 대부분은 우리가 지나치게 임금인상과 복리증진을 요구하는 경제주의적 투쟁만 중시하였다는 것이다. 즉, 위의 네티즌의 주장에 비추어 본다면 87년 이후 소위 활동가들은 고생은 크게 안 해도 성과가 바로 나오는 길, 즉 '편한 길'을 추구하였고 그 결과가 오늘날의 '귀족노조 프레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이들이 경제주의라는 '편한 길'을 가지 않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노선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는데, 첫번째는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대한 것이고 두번째는 산별노조건설에 대한 것이다.

노동자정치세력화 시도의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은 96년~97년의 소위 노개투 총파업이었다. 이 투쟁은 노동법 개악안의 날치기 통과를 규탄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는데 이후 보수여야가 손을 맞잡고 개악안에 합의하면서 노동운동진영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우리에게 국회의원 한 명만 있었더라면...' 이라는 정서가 노동운동 내에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노동자정치세력화 담론이 유의미해진 것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던 권영길의 유일한 업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그로부터 이어진 진보정당의 슬픈 역사는 여기에서 따로 적지 않기로 하고.

산별노조건설의 경우에 대해서는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이 있었다. 현대자동차에서 파업을 할 때 기아자동차에서 현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동조파업을 하면 이는 당연히 불법파업이다. 하지만 금속노조라는 하나의 틀로 묶일 수 있다면 많은 수의 노동자가 한 번에 파업을 하는 것이 더욱 수월하지 않겠는가... 물론 소위 활동가들은 이 외에도 수많은 딜레마를 산별노조 건설을 통해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그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루어 보기로 하자.

하여튼 이러한 와중에서 산별노조건설과 관련하여 특히 금속산업 부문에서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사업장 각각의 사정과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조직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민주노총 산하 연맹체계를 산별노조 형태로 전환하는 투표를 수차례 실시하였으나 대기업노조의 여러가지 정치적 상황 때문에 늘 부결되다가 2006년에야 비로소 지금과 같은 형태의 금속노조가 생겨날 수 있었다. 이때 많은 금속산업의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눈물을 흘렸다.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평생의 짐을 덜어내기 위한 한 발짝이 내딛어진 것이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산별전환 이후에도 사업장마다 각자의 사정이 다른 까닭에 이를 조율하여 하나의 체계로 만드는 지난한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 저기서 이제 시간이 없다는 진단이 터져나온다. '산별노조로 전환한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변화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논리가 조합원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올해 이어지는 비정규직 투쟁은 이러한 측면에서 산별노조의 지도력이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라간 것으로 말할 수 있다.

현장의 조합원들은 아마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입장에서 현대자동차 싸움이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와의 갈등과 연대의 문제는 산별노조라는 새로운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은) 도구가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현대자동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이 하루이틀 된 일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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