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과연 진보인가?' 라는 식의 발언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도 가끔 그런 말을 하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한 사람이 30분 동안 혼자서 떠들고, 다음 사람이 10분 얘기한 것에 대해서, 다시 앞의 그 사람이 30분 동안 반론을 하는 것이 똑바로 된 토론인가? 30분 동안 발언한 내용이 3분 이내에 요약될 수 있는 것이라면 도대체 나머지 27분의 시간 동안 똑같은 취지의 말을 계속해서 들어야 했던 다른 참석자들의 피해는 누가 보상을 해준단 말인가?
이런 일을 한 두 번 겪는 것이 아니다. 당 관료일 때에야 화를 내고 싶을 때마다 그 화를 꾹꾹 눌러 담아야 했다. 당 관료의 임무는 소중한 당원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것을 어떻게 정책과 행정에 반영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염병.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열 받으면 그냥 화를 낸다. 한 두 번이라야 참지. 본인은 남의 말을 예사로 끊으면서 자신의 말이 끊기는 것에 대해 왜 그렇게 신경질을 내는가? 왜 절차에 맞춰 진행하는 회의를 마비시키는가? 왜 아무도 하지 않은 주장에 30분씩 반론을 하는가? 왜 목소리 크기로 이기려고 드는가?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모처럼 나도 비슷한 모드로 대응을 했더니 사람들의 반응은 쌀쌀맞다. 어디 아들뻘 되는 녀석이 어른에게 대드는가 하는 눈빛 들이다. 그런 것을 몰라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나이 드신 분들의 경험을 존중해야한다. 나도 젊을 때는 반항도 하고 하였지만 나이를 먹고 보니 어른들이 하신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렇다면 당 대표도 나이 순으로 뽑아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꼰대질 하는 사람들이 꼭 '20대가 중요하다' 이딴 소리를 한다. 20대가 중요하면 20대의 얘기를 듣고 수긍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나도 그냥 경향신문 2030콘서트 마냥 해야 하는가? 나에게는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소위 운동 비슷한 것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런 역할은 되도록 안 하려고 노력해왔다.
20대니 뭐니 그딴 소리 다 필요 없다. 그냥 남이 하는 말을 주의깊게 듣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말이 있으면 제발 남을 배려해서 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면 된다. 젊은 사람이 하는 말을 그냥 나이로 깔아 뭉개고 싶다면 그냥 그렇다고 얘기하면 된다. '나는 당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으니 이제부터 나이를 이용해 당신을 깔아 뭉개려고 합니다.' 라고 얘기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러면 내가 뭐라고 하겠나? 그냥 말을 안 하겠다고 하지. 목석처럼 앉아 있다가 사람들 일어날 때 같이 일어나면 되는 것 아닌가? 왜 기껏 말은 시켜놓고 깔아 뭉개느냔 말이다.
'내가 그래도 나이가 50인데..' 재미있는 말씀이다. 덤프에 있을때 조합원 평균 나이가 50쯤 됐던것 같다. 특히 내가 있던 지역은 간부들이 평균보다 나이를 더 먹었다. 나이 50, 60 먹은 양반들 데리고 운동질을 하면 그 양반들은 그래도 막말은 할지언정 내가 무슨 주장을 할 때 최소한의 존중은 해줬다. 의견이 안 맞아 싸우게 되더라도 문제가 본인들한테 있다는 것을 최소한 인정은 했다. 평생 별 생각 없이 살다가 갑자기 노동조합이니 투쟁이니 하게 됐는데, 그걸 가르쳐주는 사람하고 의견이 안 맞으면 본인이 의식이 덜 됐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소위 운동가들의 주장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는 문제만 남는 것이다.
이 빌어먹을 놈의 진보정당은 그런 것조차도 아니다. 잘나기는 10살부터 70살까지 다 잘났다. 이걸 다 받아주는 것이 정치라면 그딴 정치 필요 없다. 그냥 구청에 등본 떼러 오는 촌부면 이런 긴 얘기 안 한다. 그래도 나름 본인들이 깨어있는 사람들이라고 자부하면서 그런 자의식으로 남의 말을 들어먹지를 않고 조직을 막 깔아뭉개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제자
http://solid.or.kr/zbxe/30250#3
위로의 링크입니다. ㅋㅋ
...라 하다가 쥔장이 소시 코스프레 하는 걸 잠시 상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