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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펌/쩜셋] 인셉션을 봤는데

조회 수 1017 추천 수 0 2010.12.30 10:52:02
내 나이가 있으니 인셉션을 보게 된 이유가 더 중요하겠지만 그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고,
 
일단, 광고 자체를 매트릭스니 뭐니에 엮어버리는 바람에 낚인 중생들이 가상세계 어쩌고 헛소리를 까던데, 아이고 작작 좀 해두자. 인셉션에 선행하는 텍스트는 매트릭스가 아니라 차라리 sleepwalkers 라는 TV 시리즈물이야. (1997) 다른 사람의 꿈으로 들어가 사건을 해결하는 에피소드들. 뭔 내용이 있었는지는 굳이 관심둘 필요 없다. 나는 기억도 안나. 다만 나오미 왓츠가 좀 끼는 티셔츠를 입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통에 침이 줄줄 흐르긴 하더라. 낄낄.
 
어쨌든,
 
참 놀란다운 영화라는 게 첫번째 느낌이었다. 놀란은, 뭐랄까, 어떤 영화에든 삽입될 수밖에 없는 일종의 작가적 자의식이라는 게 있다 치고, 그걸 아주 적절한 위치에 고정시켜 놓고 있는 것 같아. 늘 한결 같은 자리에서 말을 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자리에 앉아 보기를 끝없이 권유하고 있달까. 다크 나이트가 조커를 위한 조커에 의한 조커의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러한 거리감이 조커를 통해 두드러지기 때문인 것. 조커를 바라보면 관객들은 마음이 편안해져. 조커만 바라보고 있으면, 박쥐씨가 알아서 쫓아오지.
 
그렇기 때문에, 이건 예전에도 한 번 했던 얘기인데, 놀란은, 심지어 폭탄이 막 터지고 차가 휙휙 뒤집어지는 커트들의 연쇄에 있어서도, 마이클 베이나 가이 리치 부류의 광고쟁이들이 하는 것처럼 정신사납게 앵글들을 배치하지는 않아. 주먹을 뻗고, 맞고, 쓰러지고. 놀란의 드라마는 마치 완성도 높은 교과서적 습작처럼 보이지.
 
그런데 인셉션은 꿈을 소재로 하는 영화라는 거야. 이건 달리 말하면 시작하자마자 망하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어. 꿈을 꾸기 위해서는 잠들어야 하는데, 놀란은 절대 잠들지 않는 스타일이거든. 커트들에 대해 어떤 논리적 강박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놀란이 어떻게 꿈을 다룰 수 있겠냔 말야. 존나 ㅄ같은 영화가 예상되지.
 
감상문들을 보니 이런 부분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불만들이 꽤 있는 것 같아. 꿈이 전혀 꿈 같지 않다. 아니 뭐 어쩌라고 이 새끼들이? 내가 감히 추측하건데, 놀란은 아마 처음부터 그 꿈스러움이라는 걸 배제했던 것 같아. 예를 들면 이런 정황이었겠지.
 
자본가 : 뭐임? 꿈속의 꿈? 이건 안될 것 같은데. 피곤해.
놀란: 뭐가여?
자본가 : 평론가들 말야. 그 시발 프로이튼가 뭔가 하는 놈 때문에 꿈 얘기만 나오면 이놈저놈 할 것 없이 자지보지 타령을 해대지. 영화판이 조루가 되는 거야.
놀란 : 아 그래서 그걸 그냥 빼고 갈 겁니다.
자본가 : 어떻게 빼? 여기 시놉 보니, 여대생도 나오는구만.
놀란 : 문제 없슴요. 가슴이 작거든요.
자본가 : 읭?
놀란 : ㅋㅋ
자본가 : ㅋㅋ
 
이렇게 말야. 아 시발 이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말야, 난 보다보다, 미키마우스보다도 섹시 안 하는 여주인공 나오는 영화는 처음 본 것 같다. 그 마누라는 그래도 몇 번 드레스라도 입어주는데, 설계사 얘는 도대체 정체가 뭐여. 슴가는 소시윤아인데 스키니진을 안 입고...어떤 헐리우드스러움 때문에 일당에는 여자가 하나 들어가줘야 한다는 전형론에 입각하긴 했는데 알고보면 걔가 여대생이어야 할 이유라는 건...2단계에서 키스 때릴 때 남자끼리 하면 이상하니까요? 에이 씨양... 
 
한편 약간 객관적인 측면에서. 영화라는 표현 쟝르의 가장 특징이 뭔 줄 알아? 그건 바로, 모든 영화들은 그 자체에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포함하고 있다는 거지.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말야. 후진 영화를 보면 니들 흔히 이러잖아. 이 시발 이게 영화냐, 이걸 영화라고 만들었냐. 그럼 영화는 뭔데, 응? 소설이나 시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지. 귀여니를 읽지 않는 한, 이 시발 이걸 소설이라고 썼냐라고 항의하지는 않잖아.
 
그리고 다분히 주관적인 측면에서. 이 얘기도 한 번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영화를 보는 나만의 습관이 하나 있어. 모든 영화를, 특정한 시점부터는 아 시발 쿰 하는 것으로 구성하는 거지. 아마 바톤핑크를 보면서 생긴 습관이었지 싶은데, 이거 되게 재미있고 나름 유효하더라고. 만든 놈 입장에서는 잔뜩 허세 부리면서 드라마-이야기를 완결했다고 뻐기고 싶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부 꾸다 멈춘 꿈들일 뿐. 나나 너나 다 잉ㅋ여ㅋ. 
 
그런데 인셉션, 초반 에피소드가 끝나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무슨 약쟁이들 소굴에 갔을 때, 나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어. 여기서 짜르면 딱이네. 저 놈 저거 약이나 빨면서 헤롱대는 거로군. 근데 팽이를 돌리려다가 떨어뜨리고 결국 확인을 못하네? 아주 유치한 떡밥. 그래서 나는 당황스러운 한편 궁금해졌지. 놀란 이놈 이거, 알고서 저지르는 건가 그냥 소가 뒷발로 쥐를 잡고 있는 건가.
 
적어도 하나는 분명해. 꿈의 꿈스러움이 배제된 상태에서 꿈의 중층성이라는 건, 논리적 영역이라는 거야. 굳이 억지로 말하자면 상상적 논리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 꿈이라는 게 시발 뭐 별 거냐. 호랑이가 나를 확 덥쳤는데 그게 알고 보니 중학교때 교생 선생이었고 그래서 올타구나 떡질을 하려고 했더니 슴가가 별다방 쿠폰으로 변하는 게 꿈이지. 그런데 인셉션에서, 놀란의 기획속에서 꿈이라는 건 이게 아니야. 오로지 단 하나의 비약만 작동하고 있지. 어쩌다가 그 시간 거기에 있게 됐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연쇄되는 앵글논리기계 놀란의 교과서적 카메라들.
 
결국 나는 인셉션을, 지나치게 노골적인, 영화에 관한 영화라고 읽었어. 3단계 설원의 전투에서 누가 그러더라. 야 시발 도대체 이딴 걸 생각하는 이유가 뭐야. 그래 맞아 내가 아주 어릴 적에 하고 싶었던 말도 그거였지. 무슨 007시리즈 중의 하나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뽄드가 스키를 획획 타면서 총질을 하더라고. 야 시발 도대체 저기서 총질하는 이유가 뭐야...라는 건 일종의 페이크일 뿐, 상황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것은 영화적 문법이라 불리우는 기교.
 
일견 우습게 보이는 각 단계들에 대한 배려 (강으로 빠지는 승합차, 충격을 받는 엘리베이터, 파괴되는 기지, 그리고 역시 파괴되는 어떤 심연) 는 그래서 충분히 놀란적인 것이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금새 식상해지는 겹쳐쓰기가 되겠지. 여기서 식상하다는 건 까기 위한 서술만은 아니야. 맨 처음에 내가 인셉션에 선행하는 텍스트는 슬립워커스라고 했지? 만약 인셉션이 성공한 블록버스터 감독에 의한 헐리우드식 돈지랄이 아니라 하나의 TV 시리즈였다면, 오히려 더 영화적 진실이라는 걸 드러낼 수 있었을 꺼야. 매회 종막이 되면 잠에 빠져드는 캐릭터들, 그리고 새로운 에피소드가 시작되면 갑자기 터지는 폭탄, 혹은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 내지는 그저 갑자기 밀려드는 파도. 기타 등등... 늘 일정한 자리를 고수하는 한 명의 작가는 그렇게, 마치 호랑이가 교생으로 변하는 순간처럼 왜 그때 그곳이었는지 모르는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지.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꿈 속에 있을 경우 사건들의 꿈스러움은 논리적으로 전혀 의심스러운 것이 아니야. 전혀 꿈답지 않은 꿈은, 놀란을 참고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자연스럽다는 거지.
 
아 물론,
 
배제와 집중에 따른 놀란 특유의 방법론이 아주 훌륭하게 그 자신으로 되돌아온다...는 식의 얘기는 당연히 아니지 시발. 난 이 놈 영화를 보면 이상하게 스탠리큐브릭이 일정하게 겹쳐. 간단하게, 이야기 병신. 모든 감독들이 스필버그처럼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일정한 수준의 서사성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 건데, 놀란은 그 능력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 초딩들은 메멘토 보고 우와 하겠지만, 버철덥으로 그거 다 잘라서 시간 순서대로 이어붙이면 그냥 코미디가 된다?
 
뭔 말이냐면 투사체니 뭐니 헛소리 해봤자 어차피 셀프 힐링이라는 건데, 뭔 놈의 영화가 감동이라는 게 한 개도 없어. 찌질한 중년이 도대체 어디에서 감동받아야 할지 모르는 헐리우드 영화라는 건, 뭐랄까, 되게 잘 만든 레기물이라고 해도 좋을 듯. 이 시발 이걸 영화라고 만들었냐. 도대체 영화가 뭐야?

ps. 막판에 팽이 도는 개그는 만족스럽게 웃겼다. 놀란이 다음에 코미디를 찍으려나? 그게 될까?

이상한 모자

2010.12.30 11:10:30
*.114.22.131

이 글을 본인이 직접 이 사이트에 올리려 하였던 것 같은데 스팸필터에 막혔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특히 쩜셋을 탄압하는 스팸사전은 제거를 해버렸습니다.

....

2010.12.31 00:53:47
*.70.117.132

시발 ps가 없어졌잖아. 어제 또 차단당했는데 오늘은 풀렸을라나?

...

2010.12.31 00:54:18
*.70.117.132

오케바리 풀렸구나. 모자 너님 임마, 세밑에 엿이나 한 번 먹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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