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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마블

2011.12.20 05:15

인페스티드 테란님,

그 ‘선생님’의 하소연을 잘 인지하셨지만, 공감해 주지는 않으셨던 것 같아요.
님은 택배 기사 아저씨에게 공감했다고 생각하시지만, 그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님은 그 택배 기사 아저씨가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한 것을 택배 일의 열악한 상황으로 합리화하고 그 선생님에게 강요한 것처럼 보여요. 그러니 님의 논리에 맞서 그 선생님은 자신이 느낀 억울함 불쾌감이 정당한 것이었다고 방어하기 위해 님의 논리 전체에 반발하는 상황이 된 것 같네요.

사람은 감정이 상하면 그 감정에 빠져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잠시 잃게 되기 마련이예요.
하지만 그 감정을 누군가 인정해 주면 거기서 빠져나와 여유를 되찾고 스스로 주위를 돌아볼 수 있게 되지요. 예를 들어 집에 도둑이 들어서 속상하고 안심이 안된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에게 "그래도 다친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하면 그 사람은 자기의 속상함과 불안함이 하찮게 여겨진다고 느낄테고, 울고 싶은데 뺨때려준 격이 되어 화를 낼 가능성이 크지요. 하지만 "정말 속상하고 불안하겠다"고 공감해 주면, 그 사람 스스로가 "그래도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말 할 거예요.

그 선생님이 느낀 억울함, 불쾌함은 정당한 것이었지요.
"정말 억울하고 황당하셨겠네요"라고 공감하고 "그 택배 기사는 왜 엉뚱한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화를 냈을까요?"라고 했다면 그 선생님 자신이 "자기도 주소 찾느라 고생해서 그랬겠지"라고 얘기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랬을 때, "하긴 택배기사 일이 힘들긴 하다고 하더라고요" 하며 이야기 했다면 그 선생님이 그렇게 방어적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요즘엔 "공감한다"는 말이 "동의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객관적으로 부당해 보이는 지나친 반응이라고 해도 나름의 사정을 가진 어떤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었겠다라고 생각해 줄 수 있는 게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좌파라고 하는 사람들은 올바른 생각을 갖는다는 데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사람들이라 올바른 얘기를 하는 건 잘하지만 그 반대 급부로 공감 능력은 그래서 더 떨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게 제 생각인데요.

설사 "열사"라는 단어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어도 택배 일의 열악한 실태에는 공감해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본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어야, 그 사람을 계몽하고 계도하려는 사명감을 느끼기 보다는 그 사람의 감정을 헤아려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겠지요.

여자친구가 하소연을 하면 남자친구는 해결책을 제시해서 많이 싸운다지요.
여자친구도 감정이 정리된 후에는 이성적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데, 남자친구가 여자친구가 느꼈던 감정에 공감해 주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하면, "넌 참 감정적이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남녀불문하고 우리가 누군가의 하소연을 들을 때 같이 걱정해 주고 같이 슬퍼해 주는 대신 "괜찮을 거야", "이렇게 해", 저렇게 해" 하면서 섣불리 위로의 말을 던지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부정적인 감정을 같이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힘드니까 상대방도 느끼지 못하게 하려는, 그러나 부질없는 시도이지요. 참고로 지인 중에 암수술을 받은 사람이 있는데, 수술 전 병문안 온 사람들이 "다 잘 될 거야" 라고 하는 말이 제일 듣기 싫었었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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