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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뉴라이트 사용후기>의 사후 교정

조회 수 1368 추천 수 0 2012.02.03 12:38:42


<뉴라이트 사용후기>(개마고원,2009)는 당시 담당 편집자와 동지적 애정과 신뢰를 기반하여 한 작업이 이루어졌으나, 마지막 순간에 제가 최종본을 보지 못한 채 책이 나오고 나니 제가 보기에 아쉬운 부분들이 몇몇 있었습니다(이후 저는 단행본 작업에서 까탈스러운 저자로 변신합니다). 제가 무식해서 오류가 나거나 논변이 문제가 있는 건 책임져야 할 일이지만, 편집과정에서 원의가 훼손되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여, 다음쇄를 찍을 때 반영해 달라고 당시 편집자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뉴라이트 사용후기>는, 저의 팬덤과 뉴라이트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과신한 출판사의 오판으로 1쇄를 무려 2,500부나 찍은 상태였습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 2,000부 가량 판매되었으며 2쇄를 찍을 날은 아마도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저는 만일 2쇄에 교정사항이 반영된다면, 그때에 이 교정사항을 블로그에 공지하여 1쇄 독자들도 제게 공평한 서비스를 받는 것에 도움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2쇄는 찍히지 않았고 세월이 지나다 보니 저도 이 사건 자체에 대해 잊어버려 블로그에 공지를 하지 못했습니다. 



몇몇 분들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질문을 하시는 바람에 이 헤묵은 사건이 기억이 나 당시 편집자에게 보낸 교정 사안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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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줄이거나 군더더기를 들어내는 과정에서 대개는 문장이 더 좋아졌지만 원래의 의미와 다소 다르게 된 구절들이 있더군요. 그래서 모아보았습니다. 밑줄 그은 부분이 문제가 되는 부분이고, 따옴표 안의 부분이 원래 문장입니다.

 

1. p 38-39 

하지만 상식인들의 세계로 돌아가면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은 정확히 이러한 두 가지 입장으로 요약된다. 나는 이런 요약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본다. 어떤 요약이든지 요약한 것의 내용을 훼손할 위험이 있으며 동시에 적대자들에 대한 인신공격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 “어떤 요약이든지 요약한 것의 내용을 훼손할 위험이 있는 법인데, 이런 식의 요약은 애초부터 적대자들의 인신공격에 도움을 주려고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 원래 문장의 의미는, 요약이란 것이 원래부터 문제가 있지만 이런 요약은 특히 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정된 문장에서는 요약이란 것이 보편적으로 이렇다는 얘기가 되어, 왜 필자가 ‘이런 요약’을 비판했는지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요약이란 게 원래 그렇다면 요약 그 자체를 비판해야지 ‘이런 요약’을 비판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요약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요약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다.

 

 

2. p57 

사실 제국주의 시기에는 정말로 끔찍한 일들이 많았다. 중국에 속한 티베트의 경우 20세기 후반 종종 대규모 유혈시위가 일어날 때마다 수만명 혹은 수십만 명이 죽어 나가기도 했다.

 

-> “20세기 후반에도 사회주의 국가라는 중국에게 정복당한 티베트의 경우 대규모 유혈시위가 일어날 때마다 수 만명 혹은 수십 만명이 죽어 나가기도 했다.”

 

: 원래 문장에서 티베트 사례는 ‘제국주의 시기에 일어난 정말로 끔짝한 일들’의 하나가 아니다. 두 문장은 and의 관계다. 제국주의 시기에도 끔찍한 일이 많았고, 심지어 20세기 후반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티베트, 위구르에 대한 중국의 행태를 제국주의적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나, 20세기 후반이라는 시간을 제국주의 시기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티베트 사례는 시공간적으로 우리에게 와닿을 사례를 고르려다 보니 나온 것이지 제국주의 시기의 특징적인 사례가 아니다. 이 헐거운 부분을 논리적으로 엮으려다 보니, 앞문장의 진술에 대한 예시로 뒷문장을 이해하고 축약한 듯 하다.

 

 

3. p79 

말하자면 나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유교 자본주의론 같은 이론들이 서구 문명의 우월성에 대한 의심 없이 동아시아의 경제적 성공을 설명하려는 욕망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에 대해 우리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유교 자본주의론 같은 이론들이 서구 문명의 우월성에 대한 의심 없이 동아시아의 경제적 성공을 설명하려는 욕망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원래 문장에서는 이 견해를 내 ‘생각’으로 서술하지 않았다. 단지 해당하는 단락의 논의에서 끌어들인 어떤 논리적인 비약이었다.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겠냐...’ 정도의 얘기다. 어쩌면 사족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사태를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붙인 말이다. 그런데 이걸 내 ‘생각’이라고 못 박아두면, 저 뒤에서 스스로를 ‘식민지 근대화론’자라고 칭하는 글쓴이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박에 없다. “아니 그럼 이 친구도 서구 문명의 우월성에 대한 의심 없이 동아시아의 경제적 성공을 설명하려는 욕망에 차 있는 건가?” 뭐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래서 “비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는 “내 생각에...이다”와 같지 않다.

 

 

4.

어떤 규준이 그런 작업에 적당할까?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일본 제국주의 체제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들을 추려내는 것이 그럴듯해 보인다. 즉 각 조직별로 일정 직급 이상의 사람들을 ‘친일파’라고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1948년에 활동하다가 해체된 반민특위의 기준이 이러한 상식에 부합하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는 반민특위의 기준을 친일파를 칭하는 일반원리로 이해해도 되는 것일까?

 

-> “그렇다면 우리는 반민특위의 기준을 친일파를 칭하는 일반원리로 이해해도 되는 것일까?”

 

: 이 단락 이후에 나오는 도표는 1948년에 활동한 반민특위의 기준이 아니다. 각주 78을 인용하자면, “이 표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시민연대’가 발제한 2004년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안’ 개정안의 주된 내용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를 ‘행위’를 기본으로 하여 이에 ‘지위’를 추가하여 분류한 것이다. 내가 말한 ‘이상적인 친일파 규정’을 위한 노력의 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이다. 앞선 단락에서 언급한 ‘이상적인 친일파 규정’의 한 예로 반민특위 기준과 친일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반민특위 기준도 얘기하고, 이 도표도 수록한 것이다. 하지만 양자가 같은 것은 아니다.

 

 

5. p169 각주 88 

이영훈은 13도 창의군을 이끌던 이인영이 부친상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버린 사건을 대학원 시절에 읽고 큰 심적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망국의 수순에서 거세게 저항해보지 못한 조선왕조에 대한 그의 못마땅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동아일보> 2006년 7월 3일자 칼럼)

 

->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의 “민족사에서 문명사로서의 전환을 위하여”와 2006년 7월 3일 동아일보의 이영훈 칼럼 “모자상봉, 천륜에 가려진 인권” 참조.“

 

: 사실 이 고백 자체는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의 “민족사에서 문명사로서의 전환을 위하여”에 자세히 나와 있는지라, 아예 출처를 표시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동아일보 출처만 말해서는 (그것을 찾아봐도 그의 발언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없는 얘기를 했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

 

 

 


댓글 '2'

ScrapHeap

2012.02.03 13:25:44
*.134.254.250

하필이면 요약에 관한 문장을 요약하면서 뜻이 왜곡되다니 이것 참 그렇네요...

이모씨

2012.02.03 21:40:01
*.202.145.254

4번은 7장 p135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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