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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김규항과 김어준

조회 수 2806 추천 수 0 2011.10.11 14:14:17

김규항의 아래 칼럼이 트위터에서 각광받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도 김규항이 최근에 쓴 글 중에 이만한 글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의 글 중에서 2/3 이상 동의가 되는 글은 몇 년 만에 보는 것 같다. 


[야! 한국사회] 반이명박 매트릭스 / 김규항
등록 : 20111010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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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즉자적 짜증과 비아냥으로
충분히 변화시킬만큼 간단한가?

»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이명박을 반대하는 사람이 이명박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명박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종일 반복해서 확인하는 일’은 사회에 어떤 것일까? 적어도 운동은 아닐 것이다. 운동이란 이미 그 운동의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들끼리 운동의 내용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세를 넓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반이명박 운동의 주요한 흐름은 그런 ‘집단적 카타르시스’의 면모를 보인 지 오래다. 반이명박 운동은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이 아니라 그 운동에 앞장선, 그 운동으로 ‘고객’을 확보하는 사람들을 위한 운동이 되고 있다.


그 운동에 앞장선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명박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이명박 덕을 보고 사는지 말하지 않는다. 이명박 이후 그들이 정의롭고 진보적이고 인간적인 사람 행세하기가 얼마나 수월해졌는지 말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 때만 해도 수구세력을 욕하는 것만으로 진보 행세를 하긴 어려웠다. 수구세력이 ‘좌빨’로 대우한 노무현 정권도 노동자 인민의 관점에서는 진보를 가장한 신자유주의 세력이라는 비판이 상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진보개혁’세력이라는 비루한 조어로 자신을 표현하곤 했는데 이젠 당당하게 ‘진보세력’이라, 자신들의 재집권을 ‘진보집권’이라 말한다. 다 ‘각하’ 덕이다.


운동의 실천은 또 얼마나 수월해졌는가. 그 운동의 이름난 논객이나 평론가들의 실천이란 이명박 패거리들이 매일같이, 아니 하루에도 수십개씩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소재들 가운데 가장 자극적인 것 몇개를 골라 ‘이랬다네요’ ‘기가 막히네요’ ‘○○도 아니고 씨바’ 따위 짜증과 비아냥의 코멘트를 다는 게 전부다. 코흘리개도 할 수 있는 그 즉자적 코멘트는 이명박에게 짜증이 날 대로 난 많은 시민들에게 ‘의미있는 진보적 담론’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그 의미는 사회적 의미가 아니라 짜증이 날 대로 난 사람들의 심정을 잘 집어낸다는 의미겠지만.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런 즉자적 짜증과 비아냥으로 충분히 파악하고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간단한가?


우리는 이명박 정권은 지배체제의 전부가 아니라 추악함이 불거진 체제의 일부임을 안다. 물론 운동이 언제나 체제의 모든 부분과 고르게 싸워야 하는 건 아니다. 불거진 일부, 더 많은 대중들이 분노하고 교감할 수 있는 일부를 간판으로 삼는 건 체제와 싸우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오늘 반이명박 운동은 그 일부를 체제의 전부로 삼는, 그 일부만 사라지면 세상이 변화할 것처럼 과장하는, 그 일부에 체제에 대한 모든 분노와 에너지를 쏟아 넣어 소모하는 ‘반이명박 매트릭스’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그 운동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이 아니라 체제를 수호하고 세상을 수호하는 운동이라 할 만하다.


‘이명박 반대’는 진보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일 뿐이다. 이명박 패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저급함은 두뇌와 심장이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수용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인간의 기본이 진보로 승격된 사회, 짜증과 비아냥이 진보적 담론이자 실천인 사회, 체제를 꿰뚫어보는 냉철한 지성도 체제 속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사라져버린 사회는 퇴행할 수밖에 없다. 안철수 같은 ‘착한 자본가’가 사회의 유일한 희망으로 여겨지는 모습은 퇴행의 한 귀결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리는 끝없이 자신을 추락시켜 우리의 진보와 정의와 인간성의 하한선을 ‘동반하락’시키는 이명박이라는 물귀신 앞에서 냉철한 지성과 진지한 성찰을 되살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비로소 짜증과 비아냥도 풍자와 골계가 된다.


----


이 글은 (첫문단에서 말하는 사정이 단어 몇개만 고치면 김규항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은 논외로 치자. 김규항이 하는 일의 대부분이 포교보다는 기존 신자에 대한 팍팍한 간증의 요구란 건 슬픈 일이다.) 마지막 문단만 빼면 내 생각과 같다. 마지막 문단에서 내가 결국 발견해 내고야 만 동의하지 못할 구절은 바로 이것. "이명박 패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저급함은 두뇌와 심장이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수용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정말로 그럴까? '이명박 패거리'의 '저급함'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동네 아저씨들에게서 상상할 수 있는 것들 그 자체이기 때문에 한심한 것이다. 그리고 김어준이 조롱하는 이명박의 내심은 이명박의 가슴 속이 아니라 김어준과 그에 열광하는 이들의 환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김규항의 감각은 김어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단지 그 감각 위에 억지로 자신이 상정하는 '급진성'을 추가로 올려놓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좌파연하는 많은 꼬마들이 좌파를 연기하기 위해 취하는 전략도 그런 것이다. 본연의 노빠적 감수성은 그대로 둔 채로, 그 위에 몇몇 급진적 어휘를 포개놓고 자신을 남들과 차별화하면 대단한 혁명좌파가 되었다고 여긴다. 물론 본인들은 그런 모순을 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에서 좌파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감수성이 그런 식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만든 정체성이 자기 본연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나처럼 혁명을 생각하지도 않는 헐렁한 진보주의자들도 저런 감각과는 다른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자유주의자'를 욕하는 자칭 좌파들의 저 엉성한 도덕관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개중에는 내가 자기들이 쓰는 그 어휘를 따라쓰지 않는다고 날 자유주의자라고 욕할 놈들도 있다.) 




댓글 '5'

시작과끝

2011.10.11 15:03:45
*.104.204.17

글읽으면서 글에서 한윤형씨의 냄새가 난다!!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낫꿀

2011.10.12 09:24:51
*.53.247.194

하뉴녕님 왜 블로그 닫았음? 갈 데가 별로 없음

이상한 모자

2011.10.12 10:50:01
*.114.22.71

http://127thshelter.tistory.com/142

낫꿀

2011.10.12 13:39:49
*.53.247.194

그렇군요. 그러나 언제나 우울은 식자들의 친구니까 머....친하게 지내야겠다, 선에서 마무리해야지...절교다! 이러면 답이 없음. 암튼 두분 다 건강하시라는.

그물짜는이

2011.10.13 18:46:16
*.122.144.3

살아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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