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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나꼼수빠, 진보신당원을 꾸짖다

조회 수 3298 추천 수 0 2011.11.10 12:51:07
한밤중에 형이 노크와 동시에 방문을 덜컥 열었다.
“야, 오늘 나꼼수 들었냐?”
“아니, 지금 듣고 있어.”
형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서서 내 방을 둘러보더니 이내 말없이 돌아갔다.

다음날 밤, 형이 또다시 찾아왔다. 얼근하게 취했는지 낯빛이 대춧빛이다.
“야, 야권대통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글쎄, 질문이 너무 추상적인데?”
“지금 우리는 이명박 정권을 심판해야 하잖아.”
“그래야 하겠지.”
“그러자면 야권 세력들이 힘을 합쳐야 하잖아.”
“그럴지도.”
“근데 왜 진보신당 홍세화 대표는 여기에 동참 안 하는 거야?”
“!”

아, 그래, 이제 알았다. 형은, 마치 사시생이 찍찍이로 강의 테이프 돌려 듣듯이, 아침저녁으로 나꼼수를 반복해 청취하는 ‘나꼼수빠’다. 어젯밤 <떨거지 특집>에서 “소주 따로 맥주 따로 마시는 것보단 소맥이 맛있다”다는 노회찬의 말과 “정치에서 안 되는 게 어디 있느냐”는 심상정의 발언을 들었을 게다. 그리고 나꼼수에 대한 보도 기사를 포탈에서 뒤져보다가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후보의 발칙한 인터뷰와 마주쳤을 것이다. “현 야권통합론은 붕당정치와 다를 바 없다.”

말하자면, 형은 진보신당의 일개 유령당원인 나에게 ‘해명’을 요구한 것이다. 자기 주위에 진보신당과 연이 있는 사람은 나뿐이니까. 하긴, 나는 햇수로 3년째 진보신당에 다달이 당비를 헌납하고 있는 입장이고, 그걸 무슨 스펙이나 되는 양 자랑스레 떠벌리고 다녔다. 회합 한 번 참석하지 않는 주제에. 화물연대 아저씨들과 학습지 교사들이 왜 아직도 싸우고 있는지 이제야 알게 된 주제에.

이렇듯,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지 고작 3개월 차인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피로감을 느꼈다. ‘또 비판적 지지론인가?’ 나 같은 얼치기도 2002년 옥석논쟁부터 시작해서(물론 이 논리는 훨씬 이전에 정초되었으리라) 2010년 노회찬 역적론으로 이어지는 길고도 지루한 전래민담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형에게는 너무나 새롭고 절박하며 가슴 뭉클한 거대서사다.

나는 우선 이 ‘비지론자’들이 타기하고자 마지않는 정부와 그 ‘비지론자’들이 집권한 정부를 비교하는 것으로 입을 떼었다. 형 앞에서 참여정부 시절을 당원의 관점으로 재서술해 주었다는 말이다. 배달호가 불타 죽고 김주익이 목매 죽고 곽재규가 뛰어 죽었다. 화끈하게 욕 한 마디 보태지 않으면 어디 가서 배운 사람 취급 못 받는다는 그 FTA가 이 정부 때 극력 추진되었다. 국군은 ‘학살 도우미’가 되었다. 이러한 정신을 계승한다는 어느 공당의 대표는 당시에 만두를 먹고 있었다. 등등등.

아마도 형의 귀에는 나의 말들이 “#$%^@&^%$#” 정도로 들렸을 거다. 뭐, 애초에 내가 하는 말의 수준이 딱 그 정도다. 여기에 9월 테제나 용산 지구당 사건, 핵무장 찬성 발언이나 일심회 사건까지 설명하는 것은 나의 능력을 훨씬 넘어선다. 게다가 형도 들을 준비가 안 됐을 거다. 이미 우리는 둘 다 지쳐있었다.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던 형이 말문을 열었다. “네 말이 틀린 말은 아냐. 하지만 닭 잡는 덴 닭 잡는 칼을 써야 하듯이 한나라당 깨려면 야권통합이 필요하다. 조중동 잡는 데에는 나꼼수가 필요하듯이. ” 순간 나의 뇌리엔 2002년의 플래시백이 펼쳐졌다. 권영길의 대선 공약 중 ‘남북미평화협정’을 ‘북미평화협정’으로 써내던 <<한겨레신문>>.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 저번에는 비극이었으니까 이번에는 희극으로?


덧1> 나 역시 홍세화의 말을 듣고서 굉장히 불편했다. 당의 홍보를 위해 위악적으로 선정적인 수사를 사용한 거라면 모를까, 이는 성리학이나 조선정치사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는 것이라 여기는 까닭이다.
덧2> 혹시 지금 <밥, 꽃, 양> DVD 구할 수 있는 방법 없나요

댓글 '4'

하뉴녕

2011.11.10 16:56:36
*.118.59.205

홍세화도 그렇고 진중권도 그렇고, '근대주의자'들이라서요. 조선조에 대한 몰이해와 폄하가 있슴요. ㅎㅎㅎㅎ

저는 이 상황에 대한 표준적인 야권단일화론자들의 이해가 조선조 붕당정치가 아니라 주자적 의미의 붕당정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ㅎㅎㅎ 자꾸 '대의'와 '사익'을 대비시키니 자연스럽게 '군자당'vs '소인당'이 떠오르지 않겠습니까...ㅎㅎㅎㅎ 저분들 보기에 '안철수당'은 군자당이요, '박근혜당'과 '홍세화당'은 소인당인 거겠죠. ㅋㅋㅋㅋ

이상한 부자

2011.11.10 22:46:57
*.234.154.2

그나저나 홍세화씨는 참.... 총선 비례 5%를 먹겠다는데 이제 당원들에 대한 희망고문은 그만하는게 맞는게 아닐까 싶네요. 현실은 구월산 도적떼인데 본인들이 영남 사림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시는건 아닌지. 사민당 100년 역사 운운하시던 분이 갑자기 총선 5%라는 말도 안되는 목표를 내세운건 또 뭔지 모르겠습니다. 당원 상대로 언플인가...

백수

2011.11.11 00:27:07
*.244.177.226

그냥 언론플레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당 당시에도 뭐 5, 6석 말하지 않았나요? 저걸 구체적 수치로 진짜 믿으면 문제가 되겠습니다만...

엥겔스

2011.11.11 00:29:35
*.116.201.15

원래 선거 목표는 조금 높게 잡는 게 진영을 막론한 정치판 일반의 습속이잖아요? 한나라나 민주는 늘상 "압도적 과반 확보"를 말하고 민노당은 주구장창 "교섭단체 구성"을 말하고요. 저는 홍세화 예비대표의 그 말은 딱히 흠잡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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