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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홍세화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조회 수 3553 추천 수 0 2012.03.15 22:00:44
홍세화 선생님께.

대표님이 아니라 선생님이라 불러 봅니다. 당 대표와 당직자의 관계 이전에 홍세화 선생님의 글을 읽고 사상을 깨우쳤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기에 이러한 호칭을 씁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당의 정당명부비례대표후보 순번 논의가 한창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께서 2순위의 순번으로 추천되는 것을 허락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홍세화를 국회로!" 참으로 멋진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구호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물론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이 구호가 부담스럽게 느껴지실지 모르겠습니다. 동시에, 도대체 사람들이 이렇게 외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똑같은 의문을 저도 가지게 됩니다. 도대체 사람들이 홍세화 선생님의 옷깃에 금배지를 달아주고 싶어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을 살리는 데에 홍세화의 명망을 불쏘시개로 쓰고 싶기 때문일까요? 에세이스트 홍세화의 팬이어서 일까요? 아니면, 선생님의 아우라에 비치는 지식인으로서의 낭만과 고독에 이끌렸기 때문일까요?

아마 이런 이야기 들이 전부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것들로 선생님이 상위 순번의 비례대표 후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국회에 입성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들의 근본에는 보다 진지하고 절실한 바람이 나타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 ‘오르고 싶지 않았던 무대’에 오르며 던졌던 말 중 하나는 진보좌파정당을 다시 건설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제안은 많은 당원들의 마음에 감동적인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왜 일까요? 아마도 진보좌파정당의 건설이 우리들에게는 일종의 ‘못 다 이룬 꿈’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꿈을 이루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애초에 이것을 약속했던 우리의 지도자들이 바로 이 꿈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보좌파정당을 건설하자는 선생님의 말씀은 좌파정치를 실현시켜줄 것으로 믿었던 지도자들에게 끝내 버림받고 만 불행한 당원들의 트라우마를 어루만져준 따뜻한 손길이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떠나버린 우리의 지도자들도 이 척박한 땅에서 진보좌파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리라는 결의에 가득 차있었던 시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좌파정치로부터 떠나가게 만들었던 것일까요? 작은 권력에 대한 희구, 군소정당에서의 간난고초, 대중으로부터의 멸시……. 하지만 이런 것들은 애초에 예견된 것들이지 않았습니까? 이제 떠나고 없는 우리의 지도자들도 제 한 몸을 불사르리라는 결의를 다질 때 이런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나름대로 하지 않았을까요? 만일 이러한 고충이 좌파정치에 대한 포기의 충분조건이라면 우리는 결코 앞으로도 이 땅에서 좌파정치의 열매를 수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좌파정치에 대한 희망이 근거가 있는 것이라면, 도대체 우리를 버린 지도자들은 무엇을 배신하고 떠나갔던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사상’일 것입니다. 진보정치 10년 동안, 그들에게 사상보다 중요한 너무나 많은 것들이 생겨버렸던 것입니다. 존재는 의식을 규정한다고 외쳐오던 그들이 어느새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에 굴복해버렸던 것입니다. 사상을 버리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그만 깨달아버렸던 것입니다. ‘이제는 운동 대신 정치를 해야 한다.’, ‘민심과 당심이 다를 때에는 결단이 필요하다.’, ‘올바른 정치는 대중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핑계입니까? 우리가 지켜온 좌파정치의 사상은 그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배척당했습니다.

홍세화 선생님. 선생님의 이름에 늘 따라붙는 수식어들이 있습니다. 빠리의 택시 운전사, 남민전, 똘레랑스, 망명객……. 선생님은 이러한 수식어들을 책 한 권으로 얻은 ‘허명’의 결과로 부르십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수식어들이야 말로 우리의 세계에서 갖는 선생님의 진짜 이름을 상기하게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배척당한 사상’의 상징입니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너무나 거추장스러워 던져버렸던 사상, 바로 그것입니다. 선생님의 존재야 말로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진보좌파정당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이것은 우리가 남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남은 자산입니다.

선생님을 국회로 보내고자 하는 마음들은 바로 이 사상의 승리를 다시 한 번 체현하고 싶은 욕망의 몸부림인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당은 이미 비례대표 1순위를 진보좌파정당을 함께 해야 할 주체인 노동자를 상징하는 후보로 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습니다. 이 주체가 아주 오래 전 이 땅에서 배척당하고, 또 진보정치의 지도자들에게 배신당한 그 사상의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함께 승리하는 것, 그것이 진보좌파정당 건설을 향한 우리의 또 다른 한 걸음임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알아차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다시 한 번, 선생님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선생님을 향한 많은 사람들의 기대가 채워질 기회를 한 번만 주십시오. 이 땅의 대중정치에서 배척당한 사상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마치 기적처럼 부활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저에게 사상의 승리를 위해 온 힘을 다할 기회를 주십시오.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진보신당 경기도당원 김민하 드림.

댓글 '6'

백수

2012.03.15 22:17:30
*.244.164.214

제 개드립을 부끄럽게 만드는 명문입니다. 사상의 승리...

아리스토텔레토비

2012.03.15 22:33:45
*.246.73.210

두번째 감동을 기다립니다.

pang

2012.03.15 22:39:16
*.180.114.118

이모, 미안... 진진한 글인데.. 갑자기 캐릭이 겹치면서 오글해졌어... --;;

2012.03.16 09:53:19
*.133.9.63

실로 명문입니다! 왜 통합진보당에는 그런 사람들이 적은 걸까요?

한빠514호

2012.03.16 10:13:06
*.1.100.203

스승님의 명문에 지난 번 홍세화 대표님의 당대표 출마의 변을 읽는듯한 데자 뷔가 ㅠㅠ 

꼬뮌

2012.03.18 01:10:11
*.254.238.34

으음...홍세화

이런 명문을 쓰게 하다닉..

홍샘 2년만 희생해 주세요...비례 2번은 전직 운수노동자로 갑시닷 ㅅㅅ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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