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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흠냐

2012.06.13 00:07

저도 뭐 까칠하게 대응한 건 마찬가지죠.ㅎㅎ

다시 짚으면, 복용률이 낮다는 건 피임약이 호르몬을 조절하는 약제이기 때문에 여성들 스스로가 남용하지 않음을 입증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복용률이 낮은 게 그 약을 특수한 경우에만 복용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생리와 임신, 출산은 모든 여성들에게 해당되는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피임약을 모든 여성들이 복용하지만, 조심스럽게 복용하기 때문에 그렇게 낮은 수치가 나왔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실제로 모든 여성들이 피임약을 복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평생 한번도 복용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여성이라면 언제든 복용해야 할 경우가 발생하지요. 그래서 복용률이 낮다고 해서 일부만 혹은 특수한 경우에만 복용하는 것으로 추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약에 대한 접근성을 어렵게 했을 때 실질적인 곤란을 겪는 사람들은 여성들 중에서도 청소년과 빈곤계급을 포함하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입니다.

 

그렇다해도 그 약이 임상적으로 빈번한 부작용을 유발한다면 당연히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해 반드시 의사의 진료와 처방 하에 복용토록 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안전성은 아시는대로 검증됐고 여성들 스스로도 조심스럽게 복용하기 때문에 패스~

 

따라서 남은 문제는 그거지요. 이상적인 상황이 도래했을 때도 꼭 일반의약품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는가. 과잉생산에 따라 과잉소비를 해대는 것처럼 우리는 화학약품에 대해서도 남용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므로 그런 상황에서는 피임약도 처방을 받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얼핏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말 같지만 그 주장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그게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차 정리해고 철회 요구가 과잉생산을 자제해야 한다는 좌파의 이상과 배치될 수도 있다는 지적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진중이나 쌍차에 대해서는 왜 자본주의가 끝장나고 있다는 사실의 전제 위에서 우리의 요구를 만들어내지 않는 걸까요? 그 정리해고 철회라는 '당면' 구호를 외친다고 해서 좌파적 전망을 포기한게 아니기 때문이 아닌가요? 오히려 그런 당면 구호들을 통해 좌파가 원하는 사회로의 진전을 꾀할 수 있어서이기 때문이 아니던가요? 피임약 문제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발 더 나가 궁극적으로 인간해방이 이루어진 사회가 도래하면 병원가는 시간을 내는데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때의 사회모습이 구체적으로 상상되지는 않지만 그때는 일반의약품이니 전문의약품이니 하는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만, 한진중이나 쌍차 문제를 더이상은 과잉생산의 유지가 가능하지 않으므로 20세기적 수출입국 기조에 기초한 대규모 생산장들은 필요가 없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정리해고 철회 구호를 외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관점으로 접근하면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의 기제를 강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겠지요. 피임약 문제를 이상론에 입각해 접근하면 그 또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여성들에 대한 억압의 기제를 강화하는데 기여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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