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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낫꿀

2011.11.29 14:37

* 정치는 뒤늦게 도착하기도 한다. 인정하기 어렵지만 그렇다. 이를테면 나경원이 이뻐서 그에게 투표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어떤 이유를 가졌건, 그는 정치적 결과로 수렴되는 행위에 동참했다. 물론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늦게나마 합리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또 어떤 점에서는 '이뻐서'라고 그가 표현한 이유는 자신도 모르게 더 많은 정치적 무의식을 은폐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 그는 더 나아가서 나경원이라는 상징적 인물이 가진 정치적 함의와 맥락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려고 들지도 모른다. 이처럼 '정치'는 공시적 개념화만 가지고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지점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정치는 자칫 공시적인 개념처럼 보이지만 서사 뿐 아니라, 뒤틀리거나 뒤바뀐 서사의 표현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 박원순을 서울 시장으로 뽑았다고 해서 그가 박원순의 등장 이전부터 정치와 시민 의식에 대한 맥락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온 사람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또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박원순을 뽑은 행위가 정치적으로 무의미한 일일 수는 없다. 정치적 결과로 수렴되는 한 모든 행위는 정치적이다. 또 반대로 정치적 결과로 수렴되거나 당장 표현되지 못한다고 해서 일관된 정치적 지향이나 실천이, 생각이 정치가 아닌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럼 서울시장에 후보를 내지 못한 진보신당은? 진보신당 당원들은? 나는? 이들은 지금 당장 정치적 결과를 내지 못했다고 해도 일관된 정치적 지향을 갖고 있거나, 혹은 진성당원들이므로 이들은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정치적 지향이 '이미' 뚜렷했던 이들, 어떤 식으로든 일관된 정치 의식을 가진 이들이 저 '사후적 정치'를 '비정치'나 '탈정치'라고 생각하고 그곳에서 어떤 가능성도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좌파들과 진보정당에 어떤 식으로든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이와 같은 성향이 강하다. 이와 같은 맥락은 정치적 지향과는 관계없는 어떤 지점이다. 나경원은 물론이고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좌파'적 혹은 '진보'적 가치관과 합치하지 않는 지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박원순을 지지한 많은 이들의 선택이 '일관된 정치적 지향'이나 '시민 의식의 자각'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좌파 혹은 진보적 정치 지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박원순 지지'나 '촛불 시민'들의 어떤 정치적 가능성을 미리 재단해 폐기하는 행위는 제대로 된 진보 정당의 출현, 진보 정치에의 열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순혈주의와 지나친 자기 정당성의 확인 이외에 어떤 뜻도 될 수 없다.

정치는 정치 의식과 정치적 자각을 통해 선취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촛불을 통해, 박원순을 통해, 심지어는 이명박을 통해서 뒤늦게 도착하기도 한다. 그런데 노동자 정치세력화나, 좌파들이 대중 정당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를 다시 곱씹어보자. 대중정당, 선거와 같은 정치 기제들은 결국 모든 정치가 '정치의식'과 같은 선차적 요소보다 '사후적'으로 선택되고 고려된다는 측면을 인정한 것이 아닐까. 박원순 이전에 존재했던 정치가 박원순을 선택지로 드러낸 것이 아니라, 박원순 이후에 도착한 정치가 박원순 이전의 자신을 정의내리는 도착적 정치.

도착적이라고 해서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뒤틀려 있는 것이지만 대중 정당, 선거, 의회, 대의제 민주주의는 이와 같은 사후적 정치가, 도착적 정치가 작동하기 위한 타협적 산물이기도 하다. 유물론으로 보면 이 도착적 정치는 분석의 대상이 되지만, 단계론으로 보면 교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겠지. 레닌과 스탈린처럼 말이지. 유물론과 단계론은 비슷해보이지만 완전히 다르다. 때문에 그 뒤틀린 서사를 계몽하고 '정상'으로 바꿔주자는 것이 대중정당 운동일 수는 없다. 그 도착된 정치를 수렴하고, 자각하게 해주고, 그 도착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로 전환시켜야 하는 것도 좌파와 대중정당을 지향하는 진보 세력들의

...몫일까?....음......그냥 그렇다구요....댓글에 제한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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