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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또 '상산의 뱀'님 께

조회 수 1899 추천 수 0 2011.12.02 14:41:25
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보기 바랍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1900년대 초기의 상황이라는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스탈린주의의 고정된 도식으로 레닌의 언술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라는 것이죠.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이것을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본인들의 이론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스탈린 이후 정치적 국면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여러가지 조치들을 '이러한 도식은 레닌이 만든 이론을 스탈린이 정식화 한 것'이라고 분칠하기 일쑤였지요. 이러한 폐해는 한국의 운동권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NLPDR과 같은 도식을 갖고 스탈린주의적 논쟁을 하느라 시간을 소비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레닌을 독재자를 정당화 시켜주는 하나의 모델로 여기는 것입니다. 제가 누차 주장하는 바이지만 레닌의 조직론은 중앙집권적 집행 체계를 가지되 그에 대한 책임은 아래의 조직들에게 분권화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 당내민주주의를 이야기 하는 모든 주장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죠. 그러나 스탈린주의자들은 특정 상황에서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레닌이 동원했던 레토릭을 하나 하나 분리해서 갖고와서 자신들의 비민주적 당 체계를 확립하는데 써먹었죠. 제가 자꾸 위의 원칙을 강조하는 이유도 운동권들이 레닌을 두고 어떤 논쟁을 함에 있어서도 이런 일들이 늘 시끄럽게 벌어졌기곤 했기 때문입니다.

레닌의 훌륭한 점은 그가 이론가 행세를 하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조직가이자 실무자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를 혁명의 지도자로 만든 핵심적인 키워드겠죠. 그는 자신의 주장을 이론적 도식으로 만들어 그것을 강화시키는 데에 모든 것을 걸지 않았습니다. 필요에 따라 주장을 했고 나중에는 그런 말들을 뒤집기도 했죠. 레닌은 자신의 그런 모든 행동들이 결론적으로는 혁명에 필요했던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이것을 '막대 구부리기'라고 표현합니다. 레닌의 이런 특성 때문에 그와 관련한 논쟁에서 전체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우리는 스탈린주의자들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설령 거기에 악의가 없다고 해도 말입니다.

자, 이러한 전제를 놓고 규약 1조를 둘러싼 논쟁을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레닌이 직업적 혁명가들로 이루어진 당을 건설할 것을 주장했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자기 입으로 그렇게 얘기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논쟁해야 하는 지점은 '그러므로 오늘날 레닌의 사상대로 당을 설계하려면 직업적 혁명가들만 당원으로 받는 당을 만들어야 한다.' 라고 말한다면 이게 옳은 얘기냐는 것입니다. 저는 이건 틀린 얘기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이야 말로 스탈린주의자들의 악의적 왜곡과 같은 형태로 레닌의 주장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맥락을 봅시다. 레닌이 '직업적 혁명가'가 필요하다고 말할 때 그럼 '직업적 혁명가가 아닌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각성을 못해서 집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당시의 레닌에게 있어서 '직업적 혁명가'의 대립항은 '기회주의자'였습니다. 혁명에 참여하지 않고 집에서 놀고 있는 어떤 노동자는 그럼 기회주의자일까요? 아닙니다.

레닌의 기회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은 평소에는 과격한 주장을 늘어놓으며 혁명가 행세를 하지만 실제로 행동이 필요한 시기에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2차 당대회 시기 역시 이러한 기회주의자들 때문에 혼란이 발생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 혼란은 단지 사람들이 덜 의식화됐기 때문이 아니라 조직적 체계가 일관된 사업의 집행과 그것에 책임을 명확히 형태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심화되었지요. 일보전진 이보후퇴를 보면 2차 당대회가 시작하자 마자 사람들이 '분트'에 대한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분트 문제'는 규약 1조 논쟁과 함께 2차 당대회의 주요한 논란 중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점을 참고하면 당시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이 직면하고 있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을겁니다.

이를테면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당론이 '혁명'이라고 할 때에 이것에 필요한 구체적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당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일 것입니다. 당론이 혁명이 아니고 '라면 끓이기'라고 해도 마찬가집니다. 당론을 정했으면 그것은 집행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조직적 상태에 따라 이것이 잘 집행될 수도 있고 집행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2가지가 있을 겁니다. 첫번째는 '왜 사람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가?'라는 것일테고 두번째는 '사람들에게 당론을 집행하게 만드는 조직체계는 어떤 것인가?'라는 것이겠죠. 당시 규약 1조에 대한 논란 문제는 후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마르토프의 안은 당론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사실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당적 구조를 고착화 시키는 것이었고 레닌은 이러한 상황이 해소되어야 할 전기가 마련되길 바랬던 것입니다. 이것이 규약 1조 논쟁이 과열된 이유이지요.

이것이 한가한 논쟁일까요? '이론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가', '실무자'의 입장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하기 위해 문제를 다소 단순화 시켜서 예를 들어보기로 하지요. 2004년 정도의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을 배타적 지지 합니다. 마르토프의 안에서 민주노총 80만 조합원은 민주노동당의 당원입니다. 레닌의 안에서는 80만 조합원을 거느린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 지지 하더라도 당원가입원서를 쓴 사람만 당원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분트에 대한 논란을 대입시켜 보세요!) 마르토프의 안대로 실무를 집행하는 어떤 사람이 당원이 80만인 조직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리고 이 사업이 집행이 되지 않은 상황을 민주노총에 책임을 물으려고 하면 과연 물을 수 있을까요? 그냥 배타적 지지를 철회하면 끝인데? 이런 조직을 가지고 심지어 '혁명'을 할 수 있었을까요? 레닌이 당의 조직체계에 대한 원칙에 집착했던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이것은 관계가 없는 첨언이지만 사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입당을 결의하면 80만명의 당원이 추가로 생겨나는 당 조직도 있긴 있습니다. 영국노동당이 그런 구조지요. 지도부 선거를 할 때 예를 들어 민주노총이 토니 블레어를 지지하기로 결정하면 토니 블레어가 80만표를 득표하는 구조입니다.)

즉, 레닌이 온갖 레토릭을 동원해서 관철하고자 했던 것은 조직의 '체계'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 '체계'가 필요한 이유는 당의 당론을 당원이 집행해야 하는 책임을 명확히 해야 당이 실제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체계의 실체는 사실상 우리가 오늘날 구성하고 있는 여러 조직들의 체계와 (어디까지나 형식에 있어서는!)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마르토프와 레닌의 충돌을 전근대적 조직론과 근대적 조직론의 문제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런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이죠. 그리고 이걸 자꾸 강조하는 이유는 스탈린주의자들이 이 규약 1조 논쟁을 가져다가 자신들의 왜곡된 전위정당론과 당내의 독재를 정당화하는데 쓰기 때문입니다.

님은 이런 견해를 처음 듣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맥락을 이해한다면 이게 그렇게 특이한 얘기는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님이 제 주장을 신뢰하지 못하니 적어도 레닌을 왜곡한 스탈린주의 조직관에 대한 비판을 담은 글을 링크하여 다른 운동권들도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http://sanosin.jinbo.net/Publish/magazine.php?ex=article&pkno=69&b_fn=RD

위의 링크는 사노신에 과거 올라왔던 글인데, 솔직히 사노신를 좋아하지 않고 이 글의 모든 내용에 동의하지도 않지만 이런 불행한 운동권들도 나름 스탈린주의에서 레닌을 구출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이러고 있는 이유도 저 역시 똑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기 때문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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