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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상산의 뱀님께 - 우리의 차이

조회 수 19342 추천 수 0 2011.12.05 19:18:04
이제 마지막으로 상산의 뱀님과의 의견 차이에 대한 정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이것이 '훈고학'에 관한 대화였다면 저는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산의 뱀님이 이것을 진보신당의 조직 체계에 대한 원리의 차원에서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충분히 논쟁해야 할 대상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산의 뱀님은 이렇게 주장하였습니다.

"당이 현재 직면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당이 급진 좌파 결사체가 되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당원 자격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아져야 하고 이는 '이론'을 습득하게 강제함으로서 실제로 작동된다."

잘못 요약한 것이면 문제제기를 해도 됩니다.

저는 이것이 일종의 '퇴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물론 당이 처한 외적 조건들과 이것에 의해 규정될 당 기구의 비밀적 성격에 따라 당원 자격의 진입 장벽은 높아질 수도 있고 낮아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추가로 올린 아래의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지금 우리가 그러한 정세에 처해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대중을 조직하는 방법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고 그러한 운동들이 실패했던 것에서 연유한 것이지, 우리 자신의 사상적 통일성을 높이기 위해 '당'이 아닌 '써클'의 방식으로 돌아가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 왜 이것이 '써클'의 방식이냐는 문제를 제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강조하면 '써클' -> '당'의 관계는 지금 제가 이야기를 쉽게 하기 위해 다소 편의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이 전제를 염두에 두시고요. 20세기 초 러시아 사회주의자의 맥락에서 '써클'이 문제였던 점은 모여서 이념적 동질성을 강화하는 학습을 하고 이와 관련한 사업도 하였지만 실제로 세상을 바꿀 사업을 집행할 수 있는 조직적 체계가 아니었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레닌은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고 중앙집권적이고 실제로 혁명을 할 수 있는, 사업을 집행 가능한 조직 체계를 만들기 위해 규약1조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저는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민은 레닌이 아니더라도, 어떤 조직체계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늘 부딪치는 문제일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항상 '좋은 뜻'으로 사람들이 모입니다. 모여서 학습도 하고 친교도 나누지요. 이러한 활동은 늘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제 실질적으로 어떤 '사업'을 집행할 수 있는 체계를 세우려면 거기서부터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이 조직에는 어떤 대의체계가 필요하며, 이 대의체계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내부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루는 방식은 무엇이며.. 등등.. 오늘날의 일반적인 대중정당 체계는 이러한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변화하고 완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체계를 저는 '근대적 조직체계'라고 편의적으로 칭한 것이고요. 레닌 역시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조직관을 피력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레닌과 마르토프의 충돌을 '근대적 조직체계'와 '전근대적 조직체계'의 충돌이라고 주장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과 현대 진보정당들의 당적 기구들의 대비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제 얘기는 이런 것입니다. 당시 러시아에서의 당 조직원들은 실제로 사업을 기획하고 생산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지도부 선출권도 가지지 못했지요. 이것은 당시의 외적인 조건들에서 기인하는 것인데, 탄압이 너무 심하고 컴퓨터와 전산망이 있거나 한 것이 아니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지역위원회는 중앙위원회가 승인하는데, 정작 중앙위원은 중앙위원회 자신이 스스로 충원하는 다소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이 바뀌고 1905년 이후 다수의 젊은 노동자 당원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레닌은 당내 선거를 통한 지도부의 선출과 당내 조직의 권한 등을 다시 조정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맨셰비키와의 재통합을 위한 것이기도 했는데, 어쨌든 이 사례에서 이것이 어떤 양보할 수 없는 조직원리는 아니었다는 점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오늘날의 진보정당 조직을 보면, 각 지역에는 하나의 지역위원회가 구성되며 이 역시 철저한 조직 간의 형평을 고려하여 짜여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수원시권선구지역위원회'와 '수원시위원회'는 양립해서 존재할 수 없지요. 이러한 조직적 위상의 형평은 상위 기관의 대의기구적 합리성을 보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지역위원회에 소속된 당원은 '당내의 대의제'라는 방식을 통해 당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경로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당원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보장하는 형식적 증거이기도 한 것입니다.

제가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진보신당 이라는 도식에서 직업적 혁명가=당원, 당 기구=지역위원회 라는 점을 강조한 것은 이러한 측면과 앞에서 언급한 써클주의적 조직 형태가 만연했던 맥락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해주시면 고맙겠고요.

물론 상산의 뱀님은 저의 이러한 많은 의견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야기 하려던 것은 레닌이 그 당시 그런 주장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맨 서두에 제가 언급한 것이 바로 그 점입니다. 이것이 '당시에 레닌이 이러한 말을 했는지'에 대한 '훈고학'을 논하는 것이었다면 제가 굳이 이렇게 열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상산의 뱀님이 주장한 것을 실제로 실현하려면 레닌의 조직원리를 현실에 적용해야 하는 문제를 피해갈 수 없고, 그러자면 레닌주의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레닌주의의 조직원리에 대한 맥락을 따져볼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래의 글과 함께 우리의 차이를 이 정도로 설명하면 제 생각과 의도, 주장이 무엇이었는 지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충실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 '6'

상산의 뱀

2011.12.05 20:31:30
*.109.69.239

진보신당 조직체계에 대한 것이라면, 제가 쓴 글은 별 의미없이 쓴거에요.

진보신당에서 강한 이념적 결사체에 대한 열망을 발견했는데,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당원 자격을 높이면 해결될 문제이며, 당원 진입자격을 높이는 2가지 방법을 제시한 겁니다. 그렇게 해서 강한 이념적 결사체가 되면 뭘 하려고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면 도입하면 되겠고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으면 따로 고안해내겠죠.

그리고 마지막에서 당원배가운동과 이러한 당원 진입장벽을 높이는 건 동시에 달성 하기가 어려운 일이니깐 한가지는 포기하는게 좋은데, 통합논의 이후 진보신당의 포지션과 말이 과거보다 더 좌편향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후자를 선택해서 급진 좌파 결사체라도 제대로 해야하는게 아니겠느냐고 한겁니다.

저는 이게 진보신당의 위기를 해결해준다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않죠. 전 진보신당이 통합진보당과 경쟁해서 대중적 진보정당이 되는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또한 진보신당이 급진 좌파당이 된다고 그게 의미있는거라고 보지 않으니깐요. 진보신당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니 탈당한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냥 급진 좌파당이 되기 위한 제 나름의 방법론을 제시한 것 뿐이지, 거기에 동의하거나 주장한게 아니고, 그게 오늘날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무의미한 정력을 소비하는걸 안타까워는 하지요.

이상한 모자

2011.12.05 20:55:28
*.208.114.70

의미없이 쓴 글을 진지하게 다룬 셈이 됐는데, 님이 한 주장을 의미있게 할만한 어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대화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상산의 뱀

2011.12.05 21:13:28
*.109.69.239

그래서 짧게 레닌 훈고학만 하면 될 문제가 불필요하게 길어지고 있다고 한겁니다. 열심히 쓰셨는데,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겠지요.

이상한 모자

2011.12.05 21:33:35
*.208.114.70

먼 훗날 모든 사람들은 저를 진정한 레닌주의의 수호자이며 좌파의 지도자였다고 추억할 것입니다.

낫꿀

2011.12.05 23:50:19
*.162.204.20

그 누군가가 접니다. 이상한 모자님이 10년후에는 지도자, 는 아니고 수많은 지도자들을 양산하는 좌파 사관학교의 교장...머 이런 게 되어 있으면 좋겠네요..

음...저는 레닌 관련된 책을 접해보긴 했는데, 이게 머 해설자가 없으면 알 수 없는 좌파 수사학 사전으로 읽힐 뿐입니다...

저는 당이 보다 좌편향한다는 데 이의가 없는데요, 다만 상산의 뱀?님이 말하신 일종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방식으로 혹은, 선언적 방식으로 좌편향한다는 기획은 아주 망하자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음...저는 그냥 10년 직장생활한 샐러리맨인데요, 진보신당이 입당은 쉽지만, 혹은 열려있지만 탈퇴하기는 왠지 어려운, 그런 당을 지향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기관지도 만들구요. 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한 십년 하면 진보신당이 좌파 사관학교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건 머 이상한 모자님이 반드시 이루어내리라고 믿구요.

퇴근하면 교육도 받고, 집으로 기관지를 배달시키자구요!!!

그럼 그렇게 하는 걸루 알고 이만 잘려구요.....

이상한 모자

2011.12.06 13:19:21
*.208.114.70

과분한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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