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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우울의 원인

기타 조회 수 2230 추천 수 0 2013.06.09 01: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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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 산다. 그게 기득권에 편입되는 것이든, 산처럼 쌓여있는 빚을 갚는 것이든, 아니면 알량한 것일지라도 어쨌든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든, 사람들은 구원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어떤 것들을 기대하며 산다.


어릴 때부터 최소한 나에겐 구원이란 것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출생, 비정상적이고 가난한 집안 환경, 보잘것 없는 학벌, 괴팍한 성격. 이런 것들을 가지고는 누구라도 희망적인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른 환상에 몸을 싣는 수밖에 없었다.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언젠가 근본적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어떤 일에 인생을 거는 것이다. 그게 나에게는 당이었고 운동이었다.


운동에 인생을 건다는 대의가 있을 때에는 남들이 아무리 행복해보여도 아무런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들의 그런 행복이 기만적인 데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홍대, 신촌, 이태원에 사람들이 넘치고 흘러도 그들은 아주 일부를 제외하면 어쨌든 불행한 삶에 매여있는 존재들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니까 운동권들은 그런 삶의 조건 자체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이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도록 우리가 세상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급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고, 락페스티벌에 안 가도 되며, 아름다운 여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2012년 4월 총선의 결과는 우리의 그러한 노력이 최소한의 정치적 시민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수준까지 내몰렸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머리로야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다. 언제는 우리가 다수였는가? 우리가 고생을 하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레닌도 10년 간의 두 번째 망명을 겪고서야 정국의 주도권을 잡지 않았던가? 오랜 기간 정당으로서의 정치적 시민권 없이 고생한 사회당 동지들도 있지 않는가?


하지만 머리와 가슴은 아무래도 다른 것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우리의 신념은 그저 도착증에 불과하였는가? 이 질문이 머릿 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았다. 2008년과 2011년, 두 번의 실질적 분당은 우리에게 파탄지경의 아픔을 주었지만 최소한 작은 가능성이나마 남겨놓았다. 하지만 2012년 4월의 사건은 그 가능성마저 이제는 폐기될 것임을 드러내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론적으로는 다소 부적절한 비유이겠지만, 불가능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행위를 거듭하는 강박증자였던 나는 이 때문에 순식간에 히스테리증자가 됐다. 생전 처음으로 내 직업을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는 경험을 했다. 지난 10년 간 내가 무엇을 한 것인 지에 대한 혼란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대의는, 무너졌다.


고백하자면 내 지난 1년은 무너진 대의를 외면한 일탈의 연속이었다. 공(公)이 무너졌기 때문에 사(私)에서라도 위로를 얻고 싶었다. 그 순간 만큼은 나에게도 구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기만이었다. 스스로를 속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당 조직만은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그게 마지노선이었다.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당직에서 물러나게 되자 내 공적 활동에 대한 욕망은 그대로 파국을 맞게 됐다. 일탈도 끝났다. 아무 것도 남긴 것이 없는 상태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무너진 대의와 파탄이 난 개인사에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하는 시간이 왔다는 것이 고통스럽다. 대타자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나를 괴롭힌다. 단 1분도 버틸 수 없다. "Quo Vadis, Domine?" 라는 촌스런 인용을 되풀이해보자. 신께서는 대답을 하지 않으신다.


그래도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거기에서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늘 그랬듯이 도망칠 생각은 없다. 다만, 좋은 아빠가 되기는 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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