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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풍경

기타 조회 수 597 추천 수 0 2013.06.16 23:57:13

남쪽에는 비교적 큰 다세대 주택이 있다. 1층에 도대체 영업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없는 김밥집이 있는 4층짜리 건물이다. 이 건물이 전망을 가린다. 내 방에서는 3층과 4층의 창문들이 보인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모니터 너머로 늘 불이 켜진 창문들이 보이는 것이다.


내 시점을 기준으로 그 건물의 좌측에는 좀 넓은 방들이 있고 우측에는 상대적으로 좁은 방들이 있다. 넓은 방들에는 4칸짜리 큰 창문이 달려있으므로 커다란 커튼들이 쳐져있다. 출근을 할 때 커튼이 젖혀진 창을 보게 되는데 중년의 여성이 포함된 가족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즉, 중년의 여성들 밖에 보지 못했다.) 그들은 아침이나 저녁에 스트레칭 같은 운동을 한다. 그걸 하고 나서는 바로 불을 끈다. 희미한 빛이 비추는 것으로 보아 TV를 보다가 잠드는 것 같다.


좁은 방에는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산다. 4층 좁은 방에는 아무렇게나 옷을 널어놓은 청년이 산다. 가끔 창문 밖으로 이불을 털기도 한다.


3층 좁은 방에도 청년이 산다. 경찰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일이 있었다. 경찰의 겨울용 겉옷으로 보이는 옷으로 창문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롤스크린을 잘 달고 있다. 하지만 이 롤스크린이 달리지 않았을 때에 그와 그의 여자친구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같이 사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그 정도까지 감시하지는 않는다. 여자친구의 외모는 보기에 좋다. 이목구비를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몸의 형태가 늘씬하고 건강해보인다. 둘의 사이는 좋아 보인다. 그런 젊음이 부럽다.


시야를 돌려서, 서쪽에도 다세대 주택이 있다. 여기에서 인상적인 것은 옥탑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 옥탑은 꽤 넓다. 나는 출퇴근 시에 항상 그 옥탑을 보게 되는데, 문 앞에 작은 탁자가 있고 저녁 때에는 아저씨, 아줌마 두 세명이 거기에 모여 음주를 한다. 그다지 젊은 사람들은 아니다. 분명 사는 게 팍팍한 사람들일 게다. 그래도 그 탁자를 둘러싸고 술을 마시면서 나름의 우애를 다지는 모습이 보기에는 좋다.


북서쪽에도 역시 다세대 주택이 있다. 여기에도 인상적인 데는 옥탑이다. 그 옥탑도 대단히 넓어 보인다. 벽돌조에 샌드위치 판넬로 확장을 한 모양새다. 외벽에는 '生ビ-ル'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을 애교로 달아놓았다. 그 옥탑이 내가 사는 곳보다 높기 때문에 정확히 관찰할 수는 없지만 건장한 청년이 최소한 둘은 사는 것 같았다. 그들은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기도 하고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기도 한다. 가끔 누군가의 여자친구를 데려온다. 한 번은 밤에 빨래를 널다가 그들이 사는 방으로 올라가는 여성을 보게 된 일이 있었다. 막 계단을 오르던 그 여성은 갑자기 멈춰서서는 어디엔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마 이 동네에 많이 출몰하는 고양이가 계단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냥 가까이 가면 고양이가 알아서 길을 비켜줄 것인데 접근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동물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결국 남자가 내려와서 고양이를 쫓은 후에야 그 여성은 옥탑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북쪽에도 다세대 주택이 있다. 내가 사는 옥탑과 거의 붙어있다시피 한다. 빨래를 널때 언제나 들여다볼 수 밖에 없게 되는 방이 있다. 방문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아직도 달려있고 옷가지들이 쌓여있어 쓰지 않는 방인가 했다. 하지만 날마다 창문이 열려있는 정도가 달랐기 때문에 아예 쓰지 않는 방은 아닌 듯 했다. 어느 날은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개의치 않고 건조대에 빨래를 너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못 미더운 표정으로 나를 잠깐 흘겨보더니 창문을 닫아버렸다.


댓글 '1'

unknown

2013.06.17 16:30:39
*.93.79.50

히치콕 감독의 "이창"이 떠오르네요.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는데 우산은 가지고 나가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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