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
정치평론가 행세를 하며 이 지면에 글을 쓴 지 9개월째다. 나름대로 정론을 쓰려고 노력해 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어느 날, 진보신당 강상구 부대표가 이렇게 물었다. “지면 이름이 2030 세상읽기인데, 너무 2030 이야기가 없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그런 대화를 한 지 꼭 2주 만에 편집자로부터 똑같은 취지의 의견이 전달됐다. 앞으로는 2030 세대의 목소리를 반영한 글을 써달라는 것이다.
한 청년단체 활동가가 청년실업 관련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주간경향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운동권을 10년 하면서 이런 기분을 종종 느꼈던 것 같다. 이를테면 2006년 덤프연대라는 노동조합에 취직을 할 때였다. 민주노총 관료 출신 한모라는 사람이 있다. 이분이 나에게 사무실 주소 하나를 던져 주고는 알아서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전노협 만들 때도 주소 하나 달랑 받고 노조 사무실 찾아가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사무실 찾아가는 것도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이 일은 참 황당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두 번째 사건은 17대 대선에 강남구에서 권영길 후보 선거운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역시 민주노총 관료 출신으로 유명했던 신모라는 사람과 함께 일을 할 때다. 대통령 선거에 쓰이는 공보물들이 처음 모이는 곳이 각 기초단체의 선거관리위원회다. 여기에서 각 동별 주민자치센터로 가구 수대로 배분을 하고 주민자치센터에서 공보물을 각 가정으로 우편발송을 하는 것인데, 우리 후보의 공보물이 제대로 왔는지 각 후보의 지역 사무소에서 선거관리위원회에 확인을 하게 되어 있다. 강남구의 권영길 후보 사무소에서는 내가 확인을 했다. 그 많은 공보물들을 일일이 세어볼 수도 없고 하여 대충 선관위 직원의 설명을 듣고 확인증에 서명을 했는데,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신모 본부장님은 그걸 다 세어봐야지 그냥 왔다며 노발대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너의 아마추어적인 태도를 고칠 수 있도록 내가 훈련시켜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분에게 훈련을 받을 새도 없이 나는 진보신당으로, 그분은 통합진보당으로 가는 길이 달라지기는 했으나 어쨌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얘길 하자면 과천에서 기초단체장으로 출마했었던 진보신당 경기도당 위원장 출신의 김모라는 분과 일하며 겪었던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정치인들이 출마를 준비하면서 책을 내는 경우가 있다. 김모라는 분도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시에도 나는 여기 저기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책을 만드는 일을 도와주게 됐다. 같이 일하면서 느낀 그분의 위대함을 책의 한 챕터로 정리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글을 썼고 드디어 책이 나왔다. 정치인이 책을 내면 보통 또 출판기념회를 한다. 출판기념회장에서 나를 포함한 3명의 외부 필자가 앞에 나가 인사를 하게 됐는데, 김모라는 분이 나를 두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와 경기도당에서 동거동락을 함께 한 동지로 아직까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만 잘 훈련시켜 훌륭한 활동가로 만들어야겠습니다.”
이 얘기들의 공통점은 운동권에서 젊은 활동가라는 존재가 어떻게 취급되는지에 관한 것일 게다. 아직 미숙한 존재지만 40대의 훌륭한 사람이 될 때까지 기성세대의 배려를 받으며 그 반대급부로서 윗세대의 액세서리 같은 역할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운동을 재생산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프랑스의 젊은 정치인 올리비에 브장스노나 그리스 시리자의 당수 알렉시스 치프라스도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했는지 의문이다. 편집자의 의견을 받고 이런 느낌을 똑같이 받았다. ‘2030’이라는 짐을 기꺼이 짊어지되 이러한 비극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계속 이런 시한폭탄 같은 글을 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다.
80년대 학번들은 자기들 머리 위에 훈련을 시켜줄 선배 활동가를 둔 적이 없죠. 신문사 같은 곳의 군기를 그대로 수입해서 쓰고 있는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