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글 수 14
지난 3주간 트위터에서 떠든 것을 모두 다 녹여낸 글이다. hook에 게재되었으므로 좌표를 쌔우고 본문은 지운다.
http://hook.hani.co.kr/archives/16294
목차
곽노현을 평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금지되나?
교사는 학생을 제재할 권리가 없을까?
교사만이 책임을 지는 게 정당한가?
대안적 제재조치에 대한 고민들, 그리고 한계
격리사회의 위험에 대한 우려
마지막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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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글은 2007년에 기자실 문제를 가지고 쓴 두 편의 글과 비슷한 문맥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전 글들의 링크를 추가.
2007/05/25 - [정치/언론] - 기자실 통폐합 문제 : 언론 보도와 블로그 여론, 그리고 언론개혁
2007/05/25 - [정치/언론] - 기자실 통폐합 문제를 둘러싼 논의의 혼선 정리
흐음..
말씀대로, 전 사회적 개혁과 맞물려 병행되지 않는 교육적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봐서요. '교육개혁'이라는 독립적 수행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봐요. 저도 근본주의자지만, "근대적 법치국가에서 헌법적 가치관에 벗어나는 직접체형을 좌시할 수 없다"라는 근본적인 말은 윤형씨의 말씀대로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다고 보거든요. 솔직히 왜 줄세우기가 강력한 통제수단(체벌, 혹은 체벌의 아웃소싱, 혹은 체벌급의 폭력성을 띈 통제수단)을 필요로 하는 지 그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어렴풋이 추정할 따름이지요. 그러나 어쨌뜬 현행 교육구조내에서 강력한 통제수단이 지속돼왔고 필요하다는 전제를 가진다면, 바뀌어야 할 것은 구조이지 수단이 아니니까요. 어떤 분은 이런 말이 상상우주 자가발전하는 소리 아니냐고 하는 데, 글쎄요 제 말의 나이브한 구석을 없애고 이상을 현실에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 방법 외에는 결국 바뀔 수 없거든요. 지금 이 상태로는 역공격에 당하면 당했지. ㅡㅡ; 곽노현의 이번 정신승리 선언도 사실은 실효성에 대한 확신 보다는 정치적 쇼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고..
p.s 캡콜드님은 '다운쉬프트'가 체벌문제의 답이다라고 하시면서, 대학에서 체벌하지 않는 다고 통제 안되느냐고 이야기하시면서 고등학교를 대학화, 중학교를 고등학교화 하자고 하시기도 하던데..
p.s 캡콜드님은 '다운쉬프트'가 체벌문제의 답이다라고 하시면서, 대학에서 체벌하지 않는 다고 통제 안되느냐고 이야기하시면서 고등학교를 대학화, 중학교를 고등학교화 하자고 하시기도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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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애시당초 근대 이후 확립된 공교육 체제는 관료제적 체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당장 교사를 뽑는 것이 고시 제도로 정립되어있다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애초에 현대사회에서 학교란 애들을 데려다가 사회가 원하는 인간으로 만들어내겨나 관리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현실은 학급당 학생수가 15명 정도로 준다고 해도 변치 않을 겁니다.
생불같은 시드니 포이티어나 미셸 파이어는 판타지의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학생 중 고작 몇 명만을 구제시켰을 뿐이지요. 애초에 가르치는 입장과 (아는 이)와 배우는 입장(모르는 이)는 동등할래야 할 수가 없습니다.
외고가 어떤 곳인지 모르고 아들을 보냈다는 청순한 멘트는 해프닝으로 넘긴다고 해도 솔직히 최근의 행보를 보면 곽노현호가 성공할지는 의문입니다. 좀 위악적으로 말하면 강남좌파 곽노현 덕에 가장 피해를 보는 건 강북 꼴통학교의 찌질이 밖에 없겠다는 거?
생불같은 시드니 포이티어나 미셸 파이어는 판타지의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학생 중 고작 몇 명만을 구제시켰을 뿐이지요. 애초에 가르치는 입장과 (아는 이)와 배우는 입장(모르는 이)는 동등할래야 할 수가 없습니다.
외고가 어떤 곳인지 모르고 아들을 보냈다는 청순한 멘트는 해프닝으로 넘긴다고 해도 솔직히 최근의 행보를 보면 곽노현호가 성공할지는 의문입니다. 좀 위악적으로 말하면 강남좌파 곽노현 덕에 가장 피해를 보는 건 강북 꼴통학교의 찌질이 밖에 없겠다는 거?
결국 최저임금제같은 제도적 문제나 계급모순의 해결이후에 생각할 '큰 혁명 이후에 작은 혁명'의 문제이냐,
혹은 다양한 혁명들을 '같이' 이루어나갈 것이냐, 이런 것 아닐까요?
체벌의 아웃소싱 문제는 기실 필연적이라고 봐요. 학교, 성적이라는 강력한 목적을 위해서 철저하게 통제되어야 할 '상황'이 사라지지 않는 한, 교내 체벌이 없어지면 가정내 체벌이, 혹은 체벌이 없어지면 체벌'급'의 폭력성을 가진 통제수단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니까..
저는 저를 근본주의자로서 여기는 터라, 폭력을 사회적 차원에서 금지는 하되(그렇다고 이런 금지를 이탈하는 균열(즉 체벌을 하게 될 경우)의 책임을 오로지 교사에게 물을 수는 없는 것이라, 교사징계같은 처벌주의가 아닌 다른 방식의 금지가 필요할 듯), 여기서 벌어지는 혼란양상을 '다른 통제수단의 개발'에서가 아니라 학교라는 공간의 재구성(교내 학생 흡연실을 만든다거나, 교외 명찰 부착이라던가 두발 제한같은 규제기준을 축소하거나 제거한다든가 하는 미시적 차원 뿐만 아니라, 밥벌이의 어려움을 해결할 '밥터'의 개발을...)으로 해결하자는 생각인 데, 윤형씨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