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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노동자"라는 진보의 근본어휘

조회 수 921 추천 수 0 2003.03.12 23:46:00

진보누리의 아흐리만씨가 쓴 것. 이제야 2003년 것을 뒤지고 있는데 벌써 지겹다. 과거 글을 모으겠다는 생각이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쿨럭;;

아참, 근본어휘라는 건 리처드 로티의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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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긴요성을 부인할 사람은 자본가뿐이다. 그 절실함에 비할 때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지체되었다. (홍세화,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세개의 진보정당])

기본적으로 아직도 현장에서 땅개노릇하는 동지들, 어쩌다 '노동해방'이라는 참으로 기이한 단어 한마디에 그만 반역의 불길로 심장을 태워버린 노동자들 말이다.(수군작, [중권이가 빨갱이라고? 사기치지 말라구 그래라 응? ^^])

그러나 세계의 노동자들이 단한가지라도 공통점을 찾는다고 노력한다면 그것은 두번 생각할 것도 없이 평등이요, <프롤레타리아>의 권익이며, 노동해방이다. (지에팡, [전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왜 "민주노동당은 노동자계급의 정당입니까?" (달동무, [민주노동당은 '노동자계급'의 정당인가?])


기왕에 "민주노동당의 우방한계선"이라는 괴상한 커밍아웃(?)을 했으니, 궁금한 걸 물어봐야겠다.  진보사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노동자"라는 기표는 그야말로 막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나는 이 기표가 기의와 굳건히 결합되어 있지도 않으면서,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미끄러지며 진보의 근본어휘로 행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300만 노동자"라고 말할때의 노동자는 고용인이라는 뜻일 것이다. 내 아버지는 저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동산도 가지고 있고 부동산도 가지고 있는 내 아버지가 "무산계급"일리는 만무하다. 그래서 나는 노동자라는 말에 영성을 투여한 좌파의 어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노동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킬까?

민주노동당의 긍정성은 현실과 맞닿아있는 구체성과 실천성에 있다. 당 강령은 노동자, 농민, 어민, 도시빈민, 영세상공인을 언급한다. 그리고 이들을 위한 정책을 발의한다. 이들을 예외가 없는 일반적인 용어로 묶으려면 "사회적 약자" 정도가 될 것이다. "진보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 될 것이다. 좀 더 감상적이고 문학적이고 싶다면, "상처"라는 단어를 끌어들이면 되겠다. "진보는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사상을 가진 사람의 텍스트가 이런 용어에서 출발하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시작은 노동자다. 여기서 노동자는 무엇일까?

이론은 옛날에 쓰던 대로 냅두고, 실천은 그걸로 하면 망가지는걸 아니까 제대로 하고... 그런 건가? 수군작이라는 극단화된 인간형태를 체험한 후라 더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저런 식의 감상이 들 때도 있다.

"사회적 약자"나 "상처입은 이" 같은 언어가 첫 머리에 등장하면, 비대한 집단인 노동자가 그 안에 온전히 소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은 대기업 노조 정당"이라는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의 히스테리를 떠올릴 수도 있다. 나도 그와 같은 얘기를 하려는걸까? 그런데 나는 많은 경우 직감적으로 국가나 자본가보다는 대기업 노동자의 편이었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들과 나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그것은 진보가 행해야 할 다른 문제를 제시하면서 해결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사회적 약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경제생활의 안정성의 문제인 것 같다. 단순히 말하면, 사회구성원들이 앞날 걱정을 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복지제도는 이를 위한 것이다. 아프면 의료비 없을까봐 걱정하고 살지 마라, 애들 교육이 없을까봐 걱정하고 살지 마라... 그런건 비인간적이다... 진보는 이런게 아닐까? 이 문제는 상위 몇프로 이내에 드는 일부 부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에게 적용되는 것 같다. 그러므로 한국의 경우 사회구성원들의 경제생활의 안정성의 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에, 비교적 연봉이 높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요구 역시 두말할 나위없이 정당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나는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이 해야 할 두 개의 과제를 정리하게 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
2. 사회구성원의 경제생활의 안정성을 향상시킨다.

"노동자"라는 기표는 내게는 뚜렷이 구별되는 이 두개의 문제를 한큐에 다 포섭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 원리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선진국의 진보정당의 경우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는 2를 절실하게 추구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겐 2 역시 1과 맞먹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절실한 문제다.

1은 일부 사람을 위하는 것이지만, 2는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에게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지지는 당파성과 함께 보편성을 띠게 되는 것 같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강화를 위한 전략은 2를 사회구성원들에게 설득시키고, 이에 부기하여 1의 가치를 주장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실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1 역시 크게 보아 2 안에 들어간다고 말할 수도 있다. 여하간 내가 보기엔 이런 식의 구별이 유효하다. 현실과 부합하기에 설득력이 있고, 대중들의 요구에 부합하기에 실현성이 있다. 노동자란 기표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도 지금껏 내게 그 작동원리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해 주지는 못했다.

알고자 함은 더 잘 행동하기 위함이다. 나는 1과 2를 구별하면서, 민주노동당의 주요정책이 2에 있으며, 1의 경우도 상가임대차보호법이나 여성관련 법안들에서는 실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1을 더욱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선, 한국사회의 못사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보는 일이 진보정당의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자 함은 더 잘 행동하기 위함이다. 노동자라는 두리뭉실한 기표는 이런 작용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아흐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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