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글 수 1,361
혼자서 공부하고 추론하는 것보다는 논점을 잡고 박터지게 싸우는 쪽이 더 많이 아는데 도움이 된다.
좋은 논쟁상대를 만나야 한다......라는 말은 자기 연민에 불과하고, 자기 자신부터 논점을 제대로 잡고 성실히 논쟁하면 언제나 일정 수준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물론 내가 성실해도 상대방이 리프 무한 반복 녹음기인 경우가 존재하지만, 그 경우엔 어느 순간에 논쟁을 그만두면 되니까.
아이추판다 님과의 논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복기해 보고 새로운세상 님과 노정태 님의 글도 다 읽었는데, 아주 흥미로웠음. 논쟁 초기의 내 주장은 다소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감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전체 논쟁을 이끌어내는 데엔 도움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 역시 자신의 무식함을 드러낼 각오를 하고 논쟁을 하는 쪽이 더 많은 정보를 드러내는 길이라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 되겠지. 아래는 링크 목록.
라캉을 모르면 막장인가효? (아이추판다)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이 아닌가? (아이추판다)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한윤형)
일관성 (아이추판다)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재론(한윤형)
프로이트, 융, 라캉 (아이추판다)
라캉과 정신의학, 그리고 관념론 (노정태)
한국라깡학회 저널을 구경하고 - 라깡을 읽지 않기로.. (새로운세상)
그나저나 인문대생의 입장에서는 조금 서글픔을 느꼈달까. "소칼 논쟁을 통해 드러난 프랑스 철학자들의 모습은, 비유하자면 과학이라는 유방을 욕망하지만 미국이라는 엄마는 부정하고 싶어하는 도착증 환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노정태의 주장은 타당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된다. (정신분석학의 언어는 이렇게 비평적으로 탁월한 구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분석철학자들이 과학을 지지하는 것은 단지 편의상의 문제"라는 스티브 풀러의 지적 역시 핵심을 찌르는 구석이 있다. 방식은 다르지만 철학의 제 정파들이 어떻게든 과학의 위력을 등에 업으려는 시대. "제1학문의 위상은 어디 갔는가?"라는 노정태의 일갈에는 심히 동의하는 바이지만, 결국 이런 세태는 스스로의 역할을 정당화할 자신이 없는 무기력한 인문학의 위상에 기인한다. 그 자신감 부족을 그저 질타만 하는 것은, 신지식인의 논법일 뿐.
군대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내무반에 앉아서 김기현 교수가 쓴 <현대 인식론>이란 책을 읽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욕망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면, 참을 수 없어 하는 인종들이다. 6개월 고참이 나를 잡아 먹을 듯한 어투로 "도대체 그딴 걸 읽으면 무슨 쓸모가 있는데?"라고 시비를 걸어 왔다. "뭐 하나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나??" 씩씩 거리며 재차 답변을 요구하는 그를 쳐다보며 나는 책에서 눈을 뗀 후 조용히 말했다. "AI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고참은 머쓱해 하며 내무반 반대편 구석으로 가버렸고 다시는 책을 읽는 내게 시비를 걸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읽던 것이 <현대 인식론>이 아니었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었을까?
이집트 인들은 쓸모를 위해 측량술을 만들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인 후진적인 그리스인들은 그저 심심해서 그걸 가지고 이런 저런 소리를 하다가 기하학이란 특수한 학문을 만들어 냈다. 프레게의 철학적 기획은 러셀이 제기한 패러독스에 의해 무너졌지만, 결국 그 실패한 기획 때문에 기호논리학이 생겼고 튜링 머신이 생겼으며 오늘날의 컴퓨터가 나왔다. 인문학의 쓸모라는 것은, 이렇게 멀리 돌아서 오거나, 아니면 오지 않지만, 만일 인류의 조상들이 한국인들처럼 쓸모만 따지는 인간들이었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 블로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아예 쓸모라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때에 인문학은 그 쓸모를 발휘하게 된다는 뻔한 소리를 하고 싶지만, 사실 이런 소리를 늘어놓는 것 자체가 이미 매우 구차한 일인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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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_-
이과입장으로 인문학, 아니 문과계 학문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짜증나는 측면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소칼의 지적사기까지 갈것도 없습니다.
이과가 만들어 낸 지식, 물건(이글에서 예를 들자면 컴퓨터) 들을 은글슬쩍 가져와선
"우리(문과계학문)가 없었으면 이건 나오지도 않았어" 식으로 갖다붙이는 것입니다.
기호논리학 말씀하셨는데. 기호논리학 같은것의 역사를 살펴보십시오. 주요한 인물들은 전부 수.학.자.지요?
차라리 순수수학처럼 "쓸모를 논하는게 ㅄ"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곱게라도 봐 주지.
이글처럼 이과의 업적을 가져와서 이야기 하지 말길 바랍니다.
소칼의 지적사기까지 갈것도 없습니다.
이과가 만들어 낸 지식, 물건(이글에서 예를 들자면 컴퓨터) 들을 은글슬쩍 가져와선
"우리(문과계학문)가 없었으면 이건 나오지도 않았어" 식으로 갖다붙이는 것입니다.
기호논리학 말씀하셨는데. 기호논리학 같은것의 역사를 살펴보십시오. 주요한 인물들은 전부 수.학.자.지요?
차라리 순수수학처럼 "쓸모를 논하는게 ㅄ"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곱게라도 봐 주지.
이글처럼 이과의 업적을 가져와서 이야기 하지 말길 바랍니다.
당연히 기호논리학 역사에서 주요한 인물들은 수학자겠지요. 프레게 자신이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는 걸요. 그후에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 말의 요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실용'과는 별 상관없는 철학적 기획이 이상하게 작용하여 컴퓨터라는 물건까지 나왔다는 것인데요. 이 말이 그렇게 불쾌하셨다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문과학문이 처음부터 끝까지 컴퓨터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최초의 논의를 끌어냈다는 것이지.
게다가 인문대생으로서 저는, 대개의 다른 인문학적 논의들은 그런 대답도 할 수 없음에 비애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다른 논지이기도 하거늘......
이과의 업적에 인문대생 따위가 참견해서 아주아주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게다가 인문대생으로서 저는, 대개의 다른 인문학적 논의들은 그런 대답도 할 수 없음에 비애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다른 논지이기도 하거늘......
이과의 업적에 인문대생 따위가 참견해서 아주아주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svinna
"소칼 논쟁을 통해 드러난 프랑스 철학자들의 모습은, 비유하자면 과학이라는 유방을 욕망하지만 미국이라는 엄마는 부정하고 싶어하는 도착증 환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왔는지 몰라서 말씀드리기가 그렇기는 하지만...
프랑스 철학이 가진 실증주의적 성향은을 단순히 이렇게 말해버린 상당히 난감할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좀 뜨악합니다.
나름대로 데카르트 이후로...
영국경험론의 프랑스 나름의 수용을 걸치면서 형성되온 일종의 흐름 같은 게 있는데...
그걸 단순히 도착증으로 넘겨버리면... 참. 그쪽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는 기분이 아행행합니다...;;;
뭐. 결국 왜 그런지 자세히 설명할 배경지식도 없고...
사실 저도 배우는 중이고... 콩디약이나 드 트라시, 맨드비랑 같은 사람들의 심리학적 전통에서 흘러가는 면면이 분명 있다는 것 외에는 어떤 말씀도 못 드리니 답답하군요.
거기다 현대 프랑스 철학은... 베르그송 이후로는 아는 게 전혀 없으니 더더욱...;;;
하여간 독일철학이 간 것 처럼... 아예 과학 쪽하고 선 그어버리면 편했을텐데...
괜히 실증과학하고 긴밀히 가겠다고 뻘짓소리 듣는게 프랑스 철학적 전통이랄까요...;;;
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왔는지 몰라서 말씀드리기가 그렇기는 하지만...
프랑스 철학이 가진 실증주의적 성향은을 단순히 이렇게 말해버린 상당히 난감할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좀 뜨악합니다.
나름대로 데카르트 이후로...
영국경험론의 프랑스 나름의 수용을 걸치면서 형성되온 일종의 흐름 같은 게 있는데...
그걸 단순히 도착증으로 넘겨버리면... 참. 그쪽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는 기분이 아행행합니다...;;;
뭐. 결국 왜 그런지 자세히 설명할 배경지식도 없고...
사실 저도 배우는 중이고... 콩디약이나 드 트라시, 맨드비랑 같은 사람들의 심리학적 전통에서 흘러가는 면면이 분명 있다는 것 외에는 어떤 말씀도 못 드리니 답답하군요.
거기다 현대 프랑스 철학은... 베르그송 이후로는 아는 게 전혀 없으니 더더욱...;;;
하여간 독일철학이 간 것 처럼... 아예 과학 쪽하고 선 그어버리면 편했을텐데...
괜히 실증과학하고 긴밀히 가겠다고 뻘짓소리 듣는게 프랑스 철학적 전통이랄까요...;;;
홍선생
학생들이 '수학은 왜 배워요? 뭐에 써먹어요?'라는 질문을 할 때마다 그런 기분을 느껴요. 실용적이지 않다고 하면 귀담아듣지도 않을테니 '이러저러한 것들이 수학 없었으면 나올 수 없었다'고 말은 하지만, 실은 윤형님 말씀대로 결정적으로 도움이 된 이론들은 '재미삼아 해보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수학은 완전히 추상적인 세계를 추구하고 있지만 결국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것에 도움을 줘버리고 만다- 고 표현한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모든 '공부'가 공부 자체로 대접받지 못하고 '쓸모'가 있음을 증명해야하는 이 현실이 너무 슬퍼요.
0_-
본문: "이 논의 덕분에 결국 컴퓨터가 생겼습니다." ->이 부분만 보노라면 저는 저의 주장을 파기할 수 없군요.
간단하게 말하지요. 무슨일의 시발점은 모두 "인문학의 논의"에서 비롯되나요?
본문에선 "실용적이지 않은 생각"이라고 쓰고 있지만, 어느순간부터인가 그것이 "인문학"으로 대치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실용적이지 않은 생각"은 비단 인문학이 아니라도 가능한 생각입니다.
그것을 단순히 "인문학의 쓸모"식으로 갖다 붙이려는게 성과도둑질이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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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글의 큰 맥락에는 동의합니다.
실용정부니 뭐니 전부 "실용"이라는 존재가치를 붙여야만 하는 세태....
간단하게 말하지요. 무슨일의 시발점은 모두 "인문학의 논의"에서 비롯되나요?
본문에선 "실용적이지 않은 생각"이라고 쓰고 있지만, 어느순간부터인가 그것이 "인문학"으로 대치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실용적이지 않은 생각"은 비단 인문학이 아니라도 가능한 생각입니다.
그것을 단순히 "인문학의 쓸모"식으로 갖다 붙이려는게 성과도둑질이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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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글의 큰 맥락에는 동의합니다.
실용정부니 뭐니 전부 "실용"이라는 존재가치를 붙여야만 하는 세태....
인문학이 아니라 수학이라도 별 상관없어요. 정말 어이없는 시비로군요. 저 에피소드는 다분히 위악적인 거에요. 군대라는 공간에서, 고참이라는 사람에게 "쓸모를 논하는게 ㅄ"이라고 대답할까요? 간단하게 넘어가려고 저렇게 얘기해야만 했다는 에피소드를 가지고, 한탄하는게 이 글을 흐르는 제 정서가 아니던가요? (그리고 사실, 다시 기억을 되짚어보니 정확히 저렇게 얘기한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수정하려던 찰나입니다. 컴퓨터가 아니라 AI 얘기했던 것 같아요. AI의 경우 실제로 미국에선 철학자들과 인지과학자들, 그리고 컴퓨터 전공자들이 같이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쯤이면 되었죠?)
순수수학도들이 "쓸모를 논하는게 ㅄ"이라고 얘기한다면 그건 존중받을 만한 얘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말로 순수수학이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얘기는 아니잖아요? 제가 이 글의 마지막에 했던 얘기들은, 사실은 그야말로 순수수학의 얘기이기도 하니까. 왜 이 문제를 이과와 문과의 파벌싸움으로 몰고 가시는지 심히 불쾌합니다.
순수수학도들이 "쓸모를 논하는게 ㅄ"이라고 얘기한다면 그건 존중받을 만한 얘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말로 순수수학이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얘기는 아니잖아요? 제가 이 글의 마지막에 했던 얘기들은, 사실은 그야말로 순수수학의 얘기이기도 하니까. 왜 이 문제를 이과와 문과의 파벌싸움으로 몰고 가시는지 심히 불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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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 호오? 사람을 기계부품 취급해대는군요. 인문학이란 "현실이 어떻다"는 문제가 아니라 를 "지금 이런 현실을 어떤 방향으로 가져가야 한다"를 논하는 학문 아니었던가요? 정말 인문학이 죽긴 죽었나 봅니다.
좀 막말 하죠.
세상사는 이야기 해 볼까요?
내가 "이리 살아야 겠다"는 결론을 내려도 다른놈은 "저리 살아야 해"라고 결론 내려도 이상하지 않죠. 네. 세상살이에 정답이 없는건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걸 "연구"하는게 "학문"이 될 수 있을까요? 대개 "학문"이라 함은 "체계"를 세우는건데. 백놈이 백가지 체계를 가져놓고는 어떤 한가지 대상을 이야기 하는게, 애초에 정답도 없는걸 가지고, "학문"을 한다는게 모순으로 보이지는 않습니까?
뭐 하나를 논해도 제대로 된 결론 없이 백놈이 백소리 해 대도 그럴싸 하다 싶으면 인정하는게 인문학이니 뭐 말 다 했죠.
좀 막말 하죠.
세상사는 이야기 해 볼까요?
내가 "이리 살아야 겠다"는 결론을 내려도 다른놈은 "저리 살아야 해"라고 결론 내려도 이상하지 않죠. 네. 세상살이에 정답이 없는건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걸 "연구"하는게 "학문"이 될 수 있을까요? 대개 "학문"이라 함은 "체계"를 세우는건데. 백놈이 백가지 체계를 가져놓고는 어떤 한가지 대상을 이야기 하는게, 애초에 정답도 없는걸 가지고, "학문"을 한다는게 모순으로 보이지는 않습니까?
뭐 하나를 논해도 제대로 된 결론 없이 백놈이 백소리 해 대도 그럴싸 하다 싶으면 인정하는게 인문학이니 뭐 말 다 했죠.
멀미 조심하세요. 멀리까지 모시겠습니다.
1) 윤리적 상대주의는 윤리학의 한 일파입니다. 이 사람들이 자기 주장을 하려면, 객관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의 주장을 방어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윤리학의 내용을 이룹니다.
2) 님은 "답이 안 나오는 문제에 대해 논하는 것은 학문이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윤리적 상대주의자의 입장과도 다릅니다. '윤리적 상대주의자'는 그 나름의 윤리학자이며,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자살테제거든요.
3) 윤리적 상대주의자의 주장은 진지하게 취급되어야 하지만, 이 블로그에서 제가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 자신 아직 공부를 하는 중이기도 하구요.
4) 님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될 수 있습니다.
a) 과학은 다수의 합의가 가능한 '믿음'을 산출한다.
b) 윤리학은 그런 '믿음'을 산출하지 못한다.
c) 그러므로 과학은 윤리학보다 우월하다.
d) 혹은, 윤리학은 학문이 가능한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없다.
a),b)에서 c)를 도출하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모순이 생깁니다.
첫째, 과학자들의 합의를 못하는 문제도 있고, 윤리학자도 폭넓게 합의하는 문제들이 있지요. 양자의 차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듯합니다. 가령 10이 2보다 크다고, 2는 숫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지요. 그러므로 이분의 정리는 과학이 기타 학문과 자신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기각.
둘째, 방법론에 의한 '정당성'을 논하지 않고, '믿음'을 산출했다는 결과론만 놓고 논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주장이 가능해지죠.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행위는 과학이 아니고, 전체주의 국가의 정치행위는 과학이다. 왜냐하면 전자는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단일한 믿음을 산출해 내기 때문이다." 이는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고, 주창자의 의도에서도 벗어나 보입니다. 그러므로 역시 기각.
d)는 좀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 발화자는 윤리적 문제들이 본성상 과학적 문제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그러므로, 과학적 지식처럼 엄밀하지 않다고 해서 윤리학을 무시할 수는 없다."가 대개의 결론인데, 이 단무지 님은 "그러므로, 우리는 윤리적 문제 따위에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역시 아귀가 잘 들어맞는 소리는 아닌데, 이것에 대해 검토하려면 좀 더 긴 논의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단무지 님은 윤리학과 과학을 비교해 놓고서, 과학이 어째서 과학인지를 규명하는데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진지하게 취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과학이 왜 과학인지를 묻는게 과학철학이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과학철학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도 단무지 님보다 더 검토해볼만한 소리를 합니다. 그리고 위에 적은, 단무지 님의 말이 왜 아귀가 안 맞는지에 대한 제 논변은, 인문학도들이라 해도 대개 합의가 가능합니다. 님은 자신의 멍청함에 대해 인문학도들의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례를 실천적으로 입증한 셈이죠.
1) 윤리적 상대주의는 윤리학의 한 일파입니다. 이 사람들이 자기 주장을 하려면, 객관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의 주장을 방어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윤리학의 내용을 이룹니다.
2) 님은 "답이 안 나오는 문제에 대해 논하는 것은 학문이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윤리적 상대주의자의 입장과도 다릅니다. '윤리적 상대주의자'는 그 나름의 윤리학자이며,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자살테제거든요.
3) 윤리적 상대주의자의 주장은 진지하게 취급되어야 하지만, 이 블로그에서 제가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 자신 아직 공부를 하는 중이기도 하구요.
4) 님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될 수 있습니다.
a) 과학은 다수의 합의가 가능한 '믿음'을 산출한다.
b) 윤리학은 그런 '믿음'을 산출하지 못한다.
c) 그러므로 과학은 윤리학보다 우월하다.
d) 혹은, 윤리학은 학문이 가능한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없다.
a),b)에서 c)를 도출하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모순이 생깁니다.
첫째, 과학자들의 합의를 못하는 문제도 있고, 윤리학자도 폭넓게 합의하는 문제들이 있지요. 양자의 차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듯합니다. 가령 10이 2보다 크다고, 2는 숫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지요. 그러므로 이분의 정리는 과학이 기타 학문과 자신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기각.
둘째, 방법론에 의한 '정당성'을 논하지 않고, '믿음'을 산출했다는 결과론만 놓고 논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주장이 가능해지죠.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행위는 과학이 아니고, 전체주의 국가의 정치행위는 과학이다. 왜냐하면 전자는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단일한 믿음을 산출해 내기 때문이다." 이는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고, 주창자의 의도에서도 벗어나 보입니다. 그러므로 역시 기각.
d)는 좀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 발화자는 윤리적 문제들이 본성상 과학적 문제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그러므로, 과학적 지식처럼 엄밀하지 않다고 해서 윤리학을 무시할 수는 없다."가 대개의 결론인데, 이 단무지 님은 "그러므로, 우리는 윤리적 문제 따위에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역시 아귀가 잘 들어맞는 소리는 아닌데, 이것에 대해 검토하려면 좀 더 긴 논의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단무지 님은 윤리학과 과학을 비교해 놓고서, 과학이 어째서 과학인지를 규명하는데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진지하게 취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과학이 왜 과학인지를 묻는게 과학철학이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과학철학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도 단무지 님보다 더 검토해볼만한 소리를 합니다. 그리고 위에 적은, 단무지 님의 말이 왜 아귀가 안 맞는지에 대한 제 논변은, 인문학도들이라 해도 대개 합의가 가능합니다. 님은 자신의 멍청함에 대해 인문학도들의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례를 실천적으로 입증한 셈이죠.
에에, 뭐 특별히 누구 변명해주거나 옹호하거나 시비거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는 말이니 오해말고 들어주세요. (다들 이 정도는 알고 계시리라 믿지만..)
저, 공대나온 입장에서, 저 위에 0_-라는 사람의 의견은 이공계의 스테레오타입은 아닙니다. 당연하겠지만. 마찬가지로 인문대에도 웬 ㅄ이 있어서, 쓸데없이 비약하는 말투로 이공계 학생들에게 시비를 걸 때가 있겠지요? 그걸 듣고 '꼭지가 돌면' 머릿속으로 한없이 비약을 반복하고, 결국 저렇게까지 생각을 하기도 하는 겁니다.
가끔 집안 어르신들이 드라마 보다가 '요즘 젊은 애들의 싸가지'에 대해서 분통을 터뜨리곤 하더군요. 그럴 때 제가 대답하는 건, '그냥 그건 저 드라마 등장인물이 개념없는 인간으로 나오는 겁니다' 입니다.
가아~~끔 개념없는 인문학자가 있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좆병신같은 소리 해재끼는 경우도 있는 건데, 저 위에 0_-님이 처음 리플 달기 시작할 때 부터 실수로 시작했잖습니까. 함 보세요. "이과입장으로 인문학, 아니 문과계 학문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짜증나는 측면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라고 시작했지요? 하지만 뚜껑 열어보면,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측면이 아니라 특정 소수의 ㅄ같은 소리에 불과한 거거든요. 그걸 듣고 짜증나 한다면 ... 뭐 어쩌겠어요. '그래 그냥 짜증나 있으렴' 할 수 밖에.
저, 공대나온 입장에서, 저 위에 0_-라는 사람의 의견은 이공계의 스테레오타입은 아닙니다. 당연하겠지만. 마찬가지로 인문대에도 웬 ㅄ이 있어서, 쓸데없이 비약하는 말투로 이공계 학생들에게 시비를 걸 때가 있겠지요? 그걸 듣고 '꼭지가 돌면' 머릿속으로 한없이 비약을 반복하고, 결국 저렇게까지 생각을 하기도 하는 겁니다.
가끔 집안 어르신들이 드라마 보다가 '요즘 젊은 애들의 싸가지'에 대해서 분통을 터뜨리곤 하더군요. 그럴 때 제가 대답하는 건, '그냥 그건 저 드라마 등장인물이 개념없는 인간으로 나오는 겁니다' 입니다.
가아~~끔 개념없는 인문학자가 있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좆병신같은 소리 해재끼는 경우도 있는 건데, 저 위에 0_-님이 처음 리플 달기 시작할 때 부터 실수로 시작했잖습니까. 함 보세요. "이과입장으로 인문학, 아니 문과계 학문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짜증나는 측면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라고 시작했지요? 하지만 뚜껑 열어보면,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측면이 아니라 특정 소수의 ㅄ같은 소리에 불과한 거거든요. 그걸 듣고 짜증나 한다면 ... 뭐 어쩌겠어요. '그래 그냥 짜증나 있으렴' 할 수 밖에.
레비나스 님은 라캉 임상에 대한 비판이 "많이 사용되는 것이 아니므로 즐-"이라는 식이므로 오히려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말씀하고 계시지만, 이 긴긴 덧글의 내용을 종합하자면 "우리도 많이 쓰여요. 그러므로 라캉 임상도 효과적임-"이라는 것밖에 안 됩니다.
아이추판다 님의 경우는 (이분 제 블로그에 들어오시지 않아요. 그러니까 여기서 이러는 거 소용없습니다. 방금 확인해 보니 다른 포스트를 하나 새로 올렸더군요.) 치료방법이 많이 쓰이고 안 쓰이고를 떠나서 치료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는 경험적 통계를 들이밀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치료의 효과는 미미할지 몰라도, 정신분석적 접근이 마음에 대해 분석할 수 있는 유효한 도구를 준 것은 사실이다."라는 식으로 정신분석적 접근의 의의를 옹호해야 했습니다. 레비나스 님 역시 막상 논의에 들어가면 다른 전략을 쓰실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논점도 잡지 못 하고 있네요.
그리고 소칼의 과학 전쟁에 있어서 라캉을 옹호하는 데엔 논리적으로 몇 가지 방법이 있겠죠.
1) 소칼의 과학 용어 해설이 오히려 틀렸다.
2) 라캉의 과학 용어 차용은 비유적인 것인데, 그것을 학적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범주 오류다.
3) 소칼의 라캉 비판은 옳다. 라캉은 그 점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라캉 이론 전부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1)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니 우리는 2) 혹은 3)을 택해야 할 텐데, 레비나스 님은 이 부분에서도 논지를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은채 그저 "소칼은 나빠-. 옛날에 다 증명됐어."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논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징징대는 글쓰기라고 할 만합니다.
이하 다른 논의는 아이추판다 님 블로그를 이용하십시오. 거긴 이글루스라서 덧글 달기도 편합니다. 이 아래로도 뻘소리하면 정말로 지우겠습니다.
아이추판다 님의 경우는 (이분 제 블로그에 들어오시지 않아요. 그러니까 여기서 이러는 거 소용없습니다. 방금 확인해 보니 다른 포스트를 하나 새로 올렸더군요.) 치료방법이 많이 쓰이고 안 쓰이고를 떠나서 치료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는 경험적 통계를 들이밀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치료의 효과는 미미할지 몰라도, 정신분석적 접근이 마음에 대해 분석할 수 있는 유효한 도구를 준 것은 사실이다."라는 식으로 정신분석적 접근의 의의를 옹호해야 했습니다. 레비나스 님 역시 막상 논의에 들어가면 다른 전략을 쓰실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논점도 잡지 못 하고 있네요.
그리고 소칼의 과학 전쟁에 있어서 라캉을 옹호하는 데엔 논리적으로 몇 가지 방법이 있겠죠.
1) 소칼의 과학 용어 해설이 오히려 틀렸다.
2) 라캉의 과학 용어 차용은 비유적인 것인데, 그것을 학적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범주 오류다.
3) 소칼의 라캉 비판은 옳다. 라캉은 그 점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라캉 이론 전부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1)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니 우리는 2) 혹은 3)을 택해야 할 텐데, 레비나스 님은 이 부분에서도 논지를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은채 그저 "소칼은 나빠-. 옛날에 다 증명됐어."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논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징징대는 글쓰기라고 할 만합니다.
이하 다른 논의는 아이추판다 님 블로그를 이용하십시오. 거긴 이글루스라서 덧글 달기도 편합니다. 이 아래로도 뻘소리하면 정말로 지우겠습니다.
레비나스
지우셔도 상관 없는데.. 소칼이 무슨 말을 하고 있고, 라캉이 무슨 무슨 도식 사용했는지 여기서 자세히 알고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제가 봤을때 그거 가지고 싸운 님이 더 우스워 보여요. 너무나 엉터리 같으니까. 라캉이 수학소나 도식을 도입한 것은 명백히 자기 이론을 그림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건 사실 아닙니까? 이걸 가지고 무슨 논쟁이 더 필요합니까?
게다가 난 들뢰즈도 의심스러운데. 사실 들뢰즈는 포스트모더니즘도 아닐 뿐더러(이에 대해서 지젝의 문제제기로 시작된 국내 들뢰즈 전문가인 이정우씨와 김재인씨등의 논의 참조), 그가 방정식이나 현대 수학이론을 차용한 것은, 자신의 존재론을 해석하려는 차원이었습니다. 마치 지젝이 파동 이론으로 현대를 분석할때 처럼 말입니다. 앙티 오이디푸스를 보면 알지만, 들뢰즈-가타리는 수학, 과학 뿐만 아니라, 지질학, 역사학, 인류학등등등을 끌어 들이고 있고, 사실 그 분야 사람들은 창조적인 해석이라고 했을 뿐이지요. 그런데 소칼은 지 책에서 들뢰브가 과학을 왜곡하고 있다고 쳐 말하고 있지요. 이런건 왜곡이 아니라 참조라고 말하는게 당연한거 아닙니까? 게다가 죽~ 들뢰즈의 글을 나열해 놓고 지 해석이 아니라 '말도 안돼', 이 수준으로 소칼은 지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적 사기는 소칼이었습니다. 엉성한 책 꼬라지는 말할것도 없지요.
프랑스는 원래부터 과학을 철학과 함께 사유하는 지적 전통이 강한 나라입니다. 베르그송도 그렇고, 퐁티도 그렇고, 심지어 들뢰즈는 수학으로 교수를 지낸 사람이었습니다.
애초부터 포스트모던 담론은 미국제이고, 사실 그 담론에 그에 속했다고 칭해지는 철학자들이 냉소를 보냈던건 사실입니다. 반면에 미국 시장이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철학자들은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런 시장이 마음대로 자신들을 포소트모던이라고 묶고(여기에 라캉이 들어가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희극적입니까), 그것도 들뢰즈와 라캉이 의도하지 않은 것으로, 미국내 추종자들을 비난하기 위해 자신들이 말려들고 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 까요?
님아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라캉의 대상a 나 팔루스, RSI, 쥬이상스 가지고 논쟁 했습니까 아니면 완전 쓸데없는 그것도 텍스트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논쟁했습니까. 이런게 바로 이런 논쟁의 본질입니다. 쓰잘데기 없고, 철딱서니 없는..
게다가 난 들뢰즈도 의심스러운데. 사실 들뢰즈는 포스트모더니즘도 아닐 뿐더러(이에 대해서 지젝의 문제제기로 시작된 국내 들뢰즈 전문가인 이정우씨와 김재인씨등의 논의 참조), 그가 방정식이나 현대 수학이론을 차용한 것은, 자신의 존재론을 해석하려는 차원이었습니다. 마치 지젝이 파동 이론으로 현대를 분석할때 처럼 말입니다. 앙티 오이디푸스를 보면 알지만, 들뢰즈-가타리는 수학, 과학 뿐만 아니라, 지질학, 역사학, 인류학등등등을 끌어 들이고 있고, 사실 그 분야 사람들은 창조적인 해석이라고 했을 뿐이지요. 그런데 소칼은 지 책에서 들뢰브가 과학을 왜곡하고 있다고 쳐 말하고 있지요. 이런건 왜곡이 아니라 참조라고 말하는게 당연한거 아닙니까? 게다가 죽~ 들뢰즈의 글을 나열해 놓고 지 해석이 아니라 '말도 안돼', 이 수준으로 소칼은 지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적 사기는 소칼이었습니다. 엉성한 책 꼬라지는 말할것도 없지요.
프랑스는 원래부터 과학을 철학과 함께 사유하는 지적 전통이 강한 나라입니다. 베르그송도 그렇고, 퐁티도 그렇고, 심지어 들뢰즈는 수학으로 교수를 지낸 사람이었습니다.
애초부터 포스트모던 담론은 미국제이고, 사실 그 담론에 그에 속했다고 칭해지는 철학자들이 냉소를 보냈던건 사실입니다. 반면에 미국 시장이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철학자들은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런 시장이 마음대로 자신들을 포소트모던이라고 묶고(여기에 라캉이 들어가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희극적입니까), 그것도 들뢰즈와 라캉이 의도하지 않은 것으로, 미국내 추종자들을 비난하기 위해 자신들이 말려들고 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 까요?
님아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라캉의 대상a 나 팔루스, RSI, 쥬이상스 가지고 논쟁 했습니까 아니면 완전 쓸데없는 그것도 텍스트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논쟁했습니까. 이런게 바로 이런 논쟁의 본질입니다. 쓰잘데기 없고, 철딱서니 없는..
레비나스/
님이 하는 얘기들 중 몇몇은 일리가 있고, (설마하니 님이라고 맨날 헛소리만 하고 살겠습니까?) 그 부분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소칼이 국내에 번역되었을 때 논란이 한번 한국에서도 있었고, 그 당시 이정우 교수 등의 서평은 저도 그럭저럭 공감하면서 봤습니다. 하지만 논점이 소칼이 아니었다고 몇번 말했습니까. 이게 님처럼 교의를 내뱉는 사람들의 문제점입니다. 교의 논쟁이 아니면 논점을 파악할 줄을 모르고, 파악했다고 해도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거든요.
아이피 주소를 차단하지 않는 성은을 베풀 터이니, 앞으로도 종종 들르세요. 안 그래도 좀 있다가 이 논쟁에 관련한 글을 하나 쓸 생각입니다.
님이 하는 얘기들 중 몇몇은 일리가 있고, (설마하니 님이라고 맨날 헛소리만 하고 살겠습니까?) 그 부분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소칼이 국내에 번역되었을 때 논란이 한번 한국에서도 있었고, 그 당시 이정우 교수 등의 서평은 저도 그럭저럭 공감하면서 봤습니다. 하지만 논점이 소칼이 아니었다고 몇번 말했습니까. 이게 님처럼 교의를 내뱉는 사람들의 문제점입니다. 교의 논쟁이 아니면 논점을 파악할 줄을 모르고, 파악했다고 해도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거든요.
아이피 주소를 차단하지 않는 성은을 베풀 터이니, 앞으로도 종종 들르세요. 안 그래도 좀 있다가 이 논쟁에 관련한 글을 하나 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