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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경향신문] '국가대표 판타지'의 그림자

조회 수 3523 추천 수 0 2010.06.26 06:25:35
경향신문 '2030콘서트'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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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여지 없이 지구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축제, 월드컵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시차를 무시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고, 경기를 즐기고 있을 거다. 이번 월드컵은 전통의 축구 강호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일찌감치 짐을 쌌고, 한국과 일본이 유럽팀들을 격파하고 16강에 가는 등 유럽팀의 약세가 눈에 띈다.


어째서 천문학적인 몸값의 선수들이 즐비한 유럽의 강팀들이 남미, 아시아, 혹은 유럽의 축구 약소국들에 고전하는 것일까? 어찌보면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결과 같다. 자국의 축구리그가 융성한 유럽의 강국들은 클럽팀의 일정이 월드컵 준비보다 더 중요하다. 말하자면 자본이 국가 위에 있는 셈이다. 반면 대표선수 중 몇 명만이 빅리거인 축구세계의 ‘준주변부’ 국가들은 국가대표팀의 조직력을 강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빅리그에서 배워온 몇 명의 기술력을 중심으로 단결한다. ‘대표팀’의 기량으로 보면 이들이 ‘축구 강국’들을 능가하게 될 수 있는 요인이 있는 것이다.


국가의 부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우리 대한민국은 이러한 ‘국가대표’의 조직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한국의 국가대표가 국내리그의 기량에 비해 국제대회에서 유난히 좋은 성적을 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가령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생각해보라. 한국 국가대표 야구팀은 종종 미국이나 일본팀을 이긴다. 인프라나 리그 수준은 상대가 안 되지만 막상 국가대표끼리 붙으면 실력은 비등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이런 광경을 보며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대표 판타지’는 생활인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슬픈 것이다.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스포츠를 즐기다가 리그에 열광하고 훌륭한 선수를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국가대표팀을 만들기 위해 시민들의 생활과 떨어진 ‘별동대’를 키워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축구 같은 인기 스포츠는 형편이 좋지만, 시민들이 거의 보지도 않는 비인기종목 선수들의 생활이 어떠한지 우리는 알고 있다. 전설의 배드민턴 스타 박주봉은 나라 밖에만 나가면 금발소녀들의 비명소리를 들었지만 조국에선 올림픽 때나 뉴스에 나왔다. 여자핸드볼팀의 선전을 다룬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대표팀 경기’를 위해 육성된 선수들이 어떤 생활을 견뎌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래도 스포츠를 보며 대표팀에 열광하는 것은 폐해가 적은 편이다. 국가대표 판타지를 다른 영역에 적용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과거 한국은 경제개발을 위해 ‘산업역군’들을 ‘국가대표’와 같은 것으로 상징화했다. 그 결과 우리는 삼성전자가 거둔 천문학적 영업이익이나 삼성 반도체와 휴대폰의 세계시장 제패를 올림픽 금메달이나 월드컵 16강과 비슷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삼성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이 백혈병에 걸려 죽는다는 것을 고발하는 일은 김연아나 박태환을 비난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된다. 콜트나 기륭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을 해외에 고발하면 수구언론들은 사설에서 난리를 친다. 국내 일은 국내에서 해결해야지 해외에 나가서 우리 기업의 영업을 방해해선 안 된다는 거다. 세계시장의 순위보다, 우리 노동자들을 배려하는 기업이 성장하는 것이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는 언급되지도 못한다. ‘국가대표’를 응원해야 하니까.


국가대표 판타지와 관련해 최근에 날 가장 웃겼던 건 참여연대를 “어느 나라 국민이냐”고 비난한 총리님이다. 고명하신 경제학자께서 외교와 월드컵을 헷갈리시면 경제학도들 속상하지 않을까? 진짜 ‘대표’라면 ‘교체’해 달라고 ‘악플’이라도 달련만, 이럴 때면 웃다가도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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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7 04:37:16
*.167.182.218

중간에 충격적인(?) 반전.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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