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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경향신문 '2030콘서트' 원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12111818025&code=990000


대학가에서 가을은 총학생회 선거의 계절이다. 올해는 유난히 총학 선거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 지인이 많았다. 개표 전 ‘투표함 개봉’과 ‘도청’을 통한 비리 폭로로 파행으로 치달은 서울대 총학 선거를 비롯해 우려스러운 모습이 많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기성 정치권 못잖은 ‘꼬마 정치인’들의 진흙탕 싸움? 어떻게 해도 투표를 하지 않는 대학생들의 정치적 무관심? 어느 쪽을 택하든 씁쓸함은 남는다. 우스갯소리로 운동권이 총학을 잡으면 자기네 정치조직으로 돈이 흘러가고, 비(운동)권이 총학을 잡으면 학생회장과 그 측근들의 주머니로 돈이 흘러간다고 한다. 이 말에 약간이라도 진실이 있다면 어느 쪽이든 학생의 대표자로서 제 역할을 하는 총학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이런 실정이므로 학생들이 총학 선거에 무심해지고, 그 무심함의 장막 뒤편에서 총학이란 조직에 배정된 빵부스러기를 주워 먹기 위한 난장판이 벌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 아닐까.


오늘날의 대학은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하기 위한 ‘해방구’도 아니고, 진학률 86% 시대의 대학생을 특권층이라 칭하는 것도 부질없다. 대학생의 위상이 낮아지면서 이들을 예비노동자라 부르는 이도 나타났지만, 지금은 이조차 사치스럽다. ‘예비’라는 글자를 떼어내기 위해 젊은이들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이제 대학생은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에서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는 없고, 다만 자신의 삶이 정치에 의해 규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시대에 던져진 2000년대 초반의 운동권 정파들은 등록금 인상 저지 투쟁을 주장해서 학우들의 신망을 얻어 총학을 잡고, 총학을 잡은 이후엔 자기네 정치조직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학생들을 위하는 ‘복지공약’과 제 이념을 실현하는 ‘정치투쟁’의 이분법 속에서 등록금 문제가 그 자체로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설령 그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총학은 대학 당국에 대해 얼마나 무력한 조직인가? 가장 강경한 정파가 가장 강경하게 투쟁했을 때도 등록금 투쟁은 실패로 끝나곤 했다.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몇몇만 희생양이 되면서.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총학 선거가 복마전이 되는 이유는 총학이 학생들에게 참여를 독려할 만큼의 권력은 지니지 못했으되, 선거에서 승리한 몇몇 학생들에겐 충분히 보상을 해줄 수 있는 수준의 조직이 되어버렸기 때문 아닐까? ‘시민 없는 시민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듯이, ‘학생 없는 학생회’에 대해 얘기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는 ‘꼬마 정치꾼들’과 ‘선거에 무관심한 대학생들’에 대한 규탄보다 훨씬 본질적인 문제다.


총학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회복되지 않는 이상, 학생들이 총학 선거에 관심을 기울일 수는 없을 것 같다. 한편 학생들의 열렬한 참여 없이는 대학 당국이 총학에 더 큰 권력을 배분하는 일 따위는 생기지 않을 거다. 이 딜레마 속에서 총학은 대학 당국과 학생들 사이에 어떠한 소통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허울 좋은 들러리가 되고 말았다. 총학에 대한 고민은, 이렇게 그것이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진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한윤형 | 대학생·자유기고가>




zeno

2009.12.13 16:23:17
*.10.23.208

잘 읽었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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