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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971

쇠젓가락 들고 강간하면 무죄?
- 판례 보도의 선정성과 인터넷문화


북한 연평도 포격이 지워버린 수많은 이슈 중에 재미있는 판례가 하나 있다. 2010년 11월 17일자 연합뉴스가 보도한 <고법 "쇠젓가락 흉기 아니다"…특수강도 무죄판결>이 그것이다. 기사를 읽어보면 전혀 문제가 될 내용이 아닌데 문제는 제목이었다. 이 제목은 마치 쇠젓가락을 들고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판결이 된 건은 한 중년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쇠젓가락을 들고 “눈을 찌르겠다.”고 위협한 후 성폭행을 하고 금품을 갈취한 사건이다. 고법은 이 남성에게 ‘징역 7년’의 판결을 내렸고 검찰은 항소를 한다고 했다. 문제가 된 건 ‘특수강도죄’의 성립여부였다. 법 논리상 특수강도가 성립하려면 그가 ‘흉기’를 들고 범행을 저질러야 했던 거다. 고법은 쇠젓가락이 ‘흉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고 대신 ‘위험한 물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특수강도죄는 무죄가 선고되었고 대신 강도죄와 특수강간죄 등이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연합뉴스에서 “특수강도 무죄판결”이란 제목으로 보도된 후 비슷한 포맷으로 쓰여진 무수한 기사로 재생산되었다. 누리꾼들은 이 기사들을 보고 트위터에서 “쇠젓가락 들고 강간하면 무죄라니 이게 나라냐?!”라고 들끓었다. 그렇게 말한 사람들도 직접 붙잡고 물어보면 한국 법원이 설마 강간범을 무죄 선고했다고 믿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법원이 그런 선고를 내린 양 행동했고, 규탄했다.


인터넷 문화의 책임을 물어야 할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언론보도 자체가 이런 선정적인 반응을 유도했다. 누군가에게 이 범죄는 ‘징역 7년’의 선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잔혹한 범죄일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어쨌든 법원은 죄를 ‘계량화’하는 기관이고, 그 계량화는 다른 죄와의 상대성을 판단하는 문맥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죄가 ‘징역 10년’이 될 때 이 죄는 그만한 죄는 못 되기 때문에 ‘징역 7년’을 선고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폭행 범죄가 보도될 때 여론의 들끓는 반응은 이러한 지점을 잘 고려하지 않는다. 한국의 법제도에서 양형량 자체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그런 반응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언론이라면 이런 문제들에 대해 진지한 보도를 해줘야 한다. 아마도 법원은 이 판례가 언급할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고작 쇠젓가락을 들고 강간 및 강도질을 하겠다고 설치는 이가 많을 리 만무하니, 이 차에 형법에 규정된 ‘흉기’와 ‘위험한 물건’의 정의를 확실히 하자고 여겼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쇠젓가락 들고 강간하면 무죄라니!!”라고 외치는 트위터의 여론을 봤다면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정의의 관점에서 그 범죄자에게 ‘징역 7년’이 미약한 형벌이었을 수도 있으나, 특수강도죄에 대해 무죄를 선도하고 특수강간죄에 유죄를 선도한 법원이 그런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2010년 11월 18일자 세계일보 칼럼 <설왕설래>는 “이번 판결로 강도들이 쇠젓가락을 들고 설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적었다. 아마도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싶다면 그럴 것이다. 그래도 맥락을 짚은 보도를 한 11월 18일자 중앙일보 기사(“성폭행범이 임산부 위협하며 쓴 쇠젓가락은 흉기일까”)에선 판례에서 ‘위험한 물건’으로 간주한 것과 ‘위험하지 않은 물건’으로 간주한 것을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위험한 물건’ 쪽엔 하이힐, 가위, 부러진 걸레자루, 생맥주잔, 쇠젓가락, 벽돌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설명에선 ‘실탄이 장전되지 않은 공기총’도 이 범주에 해당한다고 적혀 있다. ‘위험하지 않은 물건’ 쪽엔 당구공과 자동차 열쇠, 당구 큐대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법원을 조소하는 사람들은 이 ‘위험하지 않은 물건’을 들고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큰소리칠 것이다. 쇠젓가락이 무시무시한 흉기임을 강변했던 사람들처럼. 물론 살다보면 그런 일도 생긴다. 그러나 법원이 그 물건들을 ‘위험하지 않은 물건’이라 판단한다 해도 살인죄를 무시하지 않는다면, 그런 조소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봐야 할 거다.


참고로 1974년 판례에 따르면 드라이버, 면도날, 그리고 적당한 크기의 손톱깎이 칼은 ‘흉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레벨9

2010.12.02 02:35:43
*.141.234.84

인터넷 기사 읽기가 보편화되면서 '표제'의 중요성은 과거보다 더 커졌죠.
기사 내용보다 제목을 읽고 댓글을 읽고 판단을 마치는 경우가 많아졌으니..

하뉴녕

2010.12.02 02:43:14
*.149.153.7

그러면서 그 '표제'가 트래픽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표제를 점점 더 섹시하게(?) 뽑고 있는 실정이지요.

종섭

2010.12.02 09:47:41
*.234.198.63

그렇다면 책은 언제 나오죠? ㅋㅋ

정해찬

2010.12.04 00:32:51
*.199.134.229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군대의 미스테리가 생각나네요.

Q 점심때 '짜장면'을 메뉴에 올려놓고도 장병들에게 젓가락을 주지 않는 이유는?

1.포카락의 우수성을 믿어서 2.젓가락의 흉기화를 염려하여 3.군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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