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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새로운 진보정당, 이렇게 만들자 
  [기고] "'이념' 논쟁 대신 '제도' 논쟁이 필요하다" 
 

  2008-02-17 오후 6:24:22    
 
 
 
 
 
  어차피 당원의 다수는 자주파였다. 심상정 비상대책위원회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원 총투표가 아니라 대의원에게 안건을 제출하는 방법을 택했다. 정파를 좌지우지하는 소수들을 모아놓고 "너희들도 당을 깨고 싶진 않지? 그러니까 여기까진 합의를 해."라고 속삭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자주파는 비대위의 엉덩이를 걷어차 버렸다. 그 광경은 자주파니 평등파니 하는 말에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에게조차 자주파의 실체를 폭로했다. 북한 정보부에 정당 활동가에 대한 정보를 넘긴 이를 '국가보안법 피해자'라는 이유로 두둔하는 게 그들이었다.

 
  그들은 당대회에서 "종북주의는 없다"고 선언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도 계속 대중에게 거짓말을 할 테니 협조하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으름장이었다. 거짓말을 거짓말이라 주장하는 사람에게 "재를 뿌린다."고 비난했다. 어느 지식인은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나온 사건을 범죄자가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양심의 자유'를 지켜줄 것을 호소했다.

 
  일부 탈당파는 정말로 '양심의 자유'에 대해 숙고해야 할 것 같기는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동안 자주파의 실체를 알면서도 대중에게 그것이 드러날까 봐 자주파와 함께 전전긍긍했기 때문이다.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당을 지키려고 했건만, 그들이 변할 거라고 믿었건만, 돌아온 결과는 이런 것이었다. 정파연합당으로써의 민주노동당은 종말을 맞이했다.

 
  심상정 비대위는 약간의 정치적 성과를 거두었다. 2ㆍ3 당대회를 지켜본 모든 매체들이 드디어 민주노동당 분당의 명분을 추인했다. 신당을 만들려면 홍보가 필요하고 그 홍보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기 마련인데, 특히 제 입맛대로 민주노동당을 비판한 조ㆍ중ㆍ동 등 수구언론은 자발적으로 그 역할을 떠맡기까지 했다.
 

  사건의 규모에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2004년의 '탄핵 역풍'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과다. 하지만 그런 성과는 반대측의 책임을 요구한다. 이제 한국의 좌파들은 대중적인 좌파정당을 건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만을 남겨두었다. 이번에는 "자주파 때문"이라는 변명으로 사람을 납득시켰지만, 다음에는 어떠한 핑계도 불가능하다.

 
  바야흐로 좌파들이 두려워해야 할 시간이다. 그 사실을 납득한다면 지분 싸움 따위에 허비할 시간은 없다.
 

  진보신당의 평당원이 되고 싶은 사람들, 그리하여 한국 사회의 변혁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은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먼저 우리는 진보신당도 정파연합당이 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보신당은 양당제의 한축을 담당하는 정당이 되려고 노력하는 정당이어야 되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런 정당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다른 방법은 없다고 답변해야겠다. 현재 상황에선 자민련과 같이 한 지역의 맹주가 되지 않는 이상 소수정당으로써 지속적으로 생존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 가령 서구 녹색당과 같은 군소정당이 성립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진보신당이 대중적인 영향력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정치 제도적 변혁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진보신당 역시 민주노동당이 그랬던 것처럼 좌파 진영 안에 포함되는 수많은 정치세력들을 포괄하는 정파연합당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제 정파의 정치인이나 활동가들도 이런 상황을 (적어도 본능적으로는) 알고 있는 만큼, 평당원 지망생으로써 정파연합당에 반대하는 것은 소득이 없는 일이다. 정 정파연합당이 싫다면, 아마도 진보신당은 당신의 대안이 아닐 것이다.

 
  다시 정파연합당이 될 거라면 어째서 자주파와는 당을 함께 하지 못하고 뛰쳐나와야 했는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시효가 지난 질문이다. 왜냐하면 자주파는 민주노동당의 당헌을 인정하지 않았음이 이미 밝혀졌기 때문이다. "왜 자주파와는 함께 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은 자주파나 그들을 옹호하려는 지식인들에게나 맡겨두고,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왜 민주노동당은 자주파를 제어하지 못했나?"

 
  '자주파가 아닌 당원의 숫자가 적었기 때문이다.'라는 답변은 문제의 실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 답변은 자주파가 최고위원회 선거에서 완승을 거둔 2004년 이후의 상황에 대한 답변은 될 수 있다. 하지만 2001년 이후 속속들이 입당하기 시작한 자주파들이 여기저기서 종파적 사건을 일으킴에도 불구하고 수수방관한 2004년까지의 상황에 대해선 설명하지 못한다. 정파연합당이라는 명칭이 경멸적인 것으로 전락한 데에는, 당헌과 당 체제를 사수하는 데에 소극적이었던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한심한 행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01년에 자주파들이 용산 지구당(준)을 장악하려고 한 소위 "용산 지구당 사태"가 있었다. 그들의 시도는 당시로서는 당규에 비추어도 하자가 없었다. 당시의 민주노동당은 입당하는 당원이 소속 지구당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이 사태를 수수방관하다가 평당원들이 모임까지 만들어 난리를 치자 그제야 제도를 바꾸었다.

 
  이후 자주파들은 자신들이 다수를 장악한 지구당에서 온갖 편법적 행위를 일삼았으나 당으로부터 처벌되지는 않았다. 굳이 자주파에 대한 처분이 아니더라도, 당헌과 당규를 수호하려는 중앙당의 의지는 언제나 의심스러웠다. 당기위의 처벌이 웃음거리가 되는 세태 속에서 정파연합당은 정파 분할 통치당이 되어 갔다.
 

  그러다가 2004년 자주파가 최고위원회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에는 선거승리를 위해 당비 대납을 시도해도, 기관지 편집장을 부당하게 해고해도, 대표 선거에서 상대편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해도, 심지어 명명백백한 회계부정을 저질러도 당은 당원들을 처벌할 줄을 몰랐다.
 

  이는 엄연히 당을 수호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수호를 포기한 정치적 자살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바이러스가 뇌수에 침투하고 있는 데에도 '당이 깨질까봐' 비판을 하지 않은 소수파도에게도 반성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반성은 새로운 정당을 만듦에 있어 어떤 행동으로 구체화될 수 있을까. 나는 정파연합당이 하나의 정당으로 존속할 수 있는 당원 민주주의의 제도에 대해서 고민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노동당의 실패를 이념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주파의 이념이 낡아서 실패한 것이라면, 그에 반대한 소위 평등파의 이념은 어느 정도나 참신한 것인가.

 
  <레디앙> 등에서 1980년대의 여러 이념적 지향에 대해 좋은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진보신당의 구성원들이 그런 지향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 진보신당에 참여할 수 있는 이들이 '변신'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념적인 변화가 미래의 약속이 되고, 단지 그것만으로 과거의 구태가 인정받고 반복된다면, 진보신당에도 미래가 없다. 우리는 마땅히 민주노동당의 실패를 당원 민주주의의 실패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단순히 투표라는 절차와 다수결의 원칙이 있다고 해서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1987년에 대통령 직선제 성취 이후 민주주의가 완전히 성립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가 잘 기능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섬세한 제도적인 디자인이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으로부터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느꼈다고 말하는 것을 '좌파적'인 인식이라 착각하고 의원단이나 활동가 중심의 정당을 만들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퇴행을 주도하는 것이다.

 
  개별 정파들이 이합집산하겠지만 결국엔 하나의 정당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마도 총선 전에 창당이 시작되어 총선 후까지 그 흐름이 이어질 것이다. 정치 공학적으로 볼 때 이처럼 뻔한 사실에 대한 찬반을 표현하기 위해 평당원 지망생들이 오래 논쟁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진보신당의 의사결정 구조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추상적인 선언이 아니라, 과거 민주노동당에서 기능했던 모든 제도들을 모조리 검토하여 추려낼 것은 추려내고, 덧붙여 새로운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일단 목표만을 얘기한다면, 정파연합당이라는 현실에서, 정파들이 공개적으로 활동하면서 정당한 경쟁을 보장받으면서도, 무정파 평당원들의 권리구제가 가능한 제도의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에 관한 논쟁을 통해, 정파의 활동의 자유는 당헌과 당규를 통해 제약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을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

 
  이 논쟁은 심지어 이념 논쟁보다도 중요하다. 가령 사민주의-사회주의 논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용한 것인가. 사민주의를 옹호하는 주대환의 주장은 대중들에게 어떤 본보기를 보여주지 않으면 대중정당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조봉암의 진보당과 유럽의 사민당을 내세우는 그의 전략은 유효하다. 반면 반대편의 논자들은 사민주의는 이미 유럽에서 한계를 드러낸 체제이며, 그것에 대한 집착은 미래를 위한 상상력을 가로막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역시 일리는 있는 말이다.

 
  결국 이 논쟁은 신학에 비유하자면 눈에 보이는 십자가와 예수상을 만들고 포교를 해야 한다는 쪽과 그것은 참된 신앙을 담보하지 못하는 우상숭배라는 쪽의 대립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개발할지 또한 그중에서 정치적으로 무슨 정책을 우선적으로 내세울지에 대한 논쟁이라면 몰라도, 무엇이 무엇에 대해서 우선하는지에 대해 논하는 것은 별스런 의미가 없다. 비유한 그대로 이것은 차라리 신학 논쟁에 가깝다. 당연히 조봉암의 진보당을 계승하고 유럽의 사민당을 참조하면서도, 자본주의를 넘어설 다양한 대안들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어느 쪽에 방점을 찍건 다시 문제는 당원 민주주의를 관철시키는 체제다. 사민주의를 지지한다 해도 유럽의 제도를 곧바로 우리 현실에 수입할 수는 없을 것이며,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고 해도 이론가의 상상력을 곧바로 현실정책에 그대로 반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당원과 대중을 설득하고 추인받는 과정에서 발전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당원 개개인의 권리가 강화되고 그들을 설득하려는 정파들의 경쟁이 공정해야 한다. 정당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역시 구체적인 제도에 대한 찬반논쟁을 통해서 실천적인 논의의 맥락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평당원 지망생들은 소속된 정파나 활동하는 사이트를 넘어 당원 중심 정당의 구체적인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일에 다같이 참여해야 한다. 이합집산의 과정에서 서로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활동가나 이론가뿐만 아니라 평당원 지망생들끼리도 활발한 논의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나 역시 다음부터는 구체적인 제도에 대한 논의로 미래의 당원들을 찾아뵙고자 한다. 
   
 
 
  한윤형/인터넷 논객


ecol

2008.02.18 14:41:12
*.238.239.6

좌파들에게 '자신의 사상의 옳음의 한계'를 인정하라고 하시다니, 용감하십니다. ^^

서쪽하늘

2008.02.18 15:35:49
*.200.67.93

전반적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특히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라는 부분에 동의합니다.

2008.02.18 21:50:58
*.150.47.91

아 정말 완전 굿. 제 블로그에 퍼 놔써요. 두고두고 읽게요;

mete0r

2008.02.19 17:51:50
*.117.193.194

보수지들이 입을 모아 '민주노동당 분당의 명분을 추인하는 상황'을 공짜 홍보 기회 정도로 받아들이는 건 지나치게 낙관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sd

2008.02.20 11:34:10
*.142.9.27

심하게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말씀하신 방향으로 신당이 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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