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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저자의 책임에 대해

조회 수 979 추천 수 0 2006.08.29 02:31:00
그렇소! 카이만은 병장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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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은 <폭력과 상스러움>에서 학자라면 하나의 주장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주장이 실제로 유통되는 방식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강준만은 명시적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더라도, 훨씬 더 이전부터 줄기차게 자신의 비평활동으로 그러한 명제를 웅변해 왔다. 내가 그들밖에 모르는 걸까? 하지만 내가 아는 한에선 한국 사회에서 유통되는 담론에 주목해서 그런 말을 내뱉은 사람들은 그들과 그들의 자장 안에 있는 이들 -학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정치비평 활동 면에 있어서는 그렇다고 볼 수 있는- 밖에 없다. 그런 그들을 보고 나처럼 온순한 청년도 자라났고 기타 여러 시끄러운 아이들도 자라났다.

가령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2004년 말? 내가 입대하기 직전) 진중권의 이영훈 비판의 요지 역시 "학적 맥락이 정치적 맥락에 부적절하게 개입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오래된 견해의 리바이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저자가 자신의 주장이 유통되는 맥락에 책임질 의무가 있다는 견해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일종의 '무한책임주의'로 해석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고 본다. 그리고 진중권이 이영훈에게 요구한 것은 '무한책임주의'에 가깝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견해의 위험성은 진중권 스스로가 실천적으로 증명한 바 있는데, 그의 열린우리당 비판은 종종 조선일보에 인용된다는 이유로 노무현 지지자들의 원성을 샀던 것이다. "조선일보에 결코 인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부 노무현 지지자들의 무한책임주의를 따르자면, 우리는 (글쓴이가 어느 정도 유명세가 있고, 조선일보가 부지런하다는 전제 하에) 조선일보에 인용되지 않기 위해 결코 열린우리당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

이런 종류의 규율과 관련된 사례 중 제일 흥미로운 것은 깜악귀님의 경우다. 깜악귀라는 아이디를 쓰는 필자가 서울대 학내 웹진에서 386세대에 대한 비판글을 쓰자, 그것을 조선일보에서 인용해버렸던 것이다. 깜악귀는 "멋지다, 내 학벌, 두렵다, 내 학벌!"이라는 글을 통해 그 인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나는 깜악귀님의 당혹스러운 심정을 이해한다. 이건 글쓴이가 유명해서 실린 사례도 아니었고, 단지 '어느 서울대생의 386세대 비판'이라는 컨셉에 그가 동원된 사례였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해도 그의 반응은 조선일보에 인용된 것이 마치 그의 잘못인 것처럼 선언하는 것처럼 보였다. 막연한 죄책감이 윤리적 판단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물론 욕을 먹지 않기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 현명한 행동이 없었을 것이다.

만일 깜악귀님이 마지막에 받아들였던 규율이 하나의 윤리라면, 그것은 우리의 행위의 자유를 지나치게 구속한다. 아마 저자가 적절한 수준에서 맥락에 책임을 지는 방식이 있을 것이고 (가령 신문에 정정보도를 신청하고, 다른 루트로 자신의 글의 원래 의도를 해명한다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곡'되는 부분은 도저히 저자 개인이 책임질 수 없는 '증상'에 해당할 것이다. '증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요구는 실현불가능할 뿐더러 그 자체가 병리적이다.

물론 그 '증상'도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증상'을 어찌할 수 없다면 '분석' 이외의 또 어떤 대응방식이 있을까. 내 이름을 둘러싼 증상-이것은 '나의 증상'과는 또 다른 것인데-까지 분석하는 이를 보고 싶다는 내 욕망은 어찌된 것일까? 이런 내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변태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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